사람과 사람들

새로운 서울 생활에서 전에 찾아볼 수 없는 극적인 변화를 세가지만 꼽아 보라면 다음과 같다. 첫째, 커피를 마신다. 그것도 많이 마신다. 카페인에 대한 두려움이 서울 생활의 피곤함에 의해 강제로 극복되어졌기 때문이고, 커피를 정말 잘 내리는 좋은 커피가게들의 가치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술보다는 커피를 앞에 두고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를 훨씬 더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커피를 많이 마신다. 둘째, 사람들을 집으로 부른다. 여러명을 들여도 답답하지 않을 정도의 좋은 공간을 얻었기 때문이며, 사람들에게 내 공간을 내어주어도 될 정도로 마음이 많이 너그러워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는 사람으로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사람들은 내 공간으로 불러 함께 노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인트로벑에게는 매우 놀라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잘 웃지 않게 되었다. 길가를 걸어가다가도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밝게 웃으며 인사하던 작은 동네에서, 백팩으로 어깨를 세게 치고 지나가도 뒤돌아보지 않는 대도시로 오면서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웃어주지 않는 동네에서 혼자 웃어보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것임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웃어주는 것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모두에게 친절하고 모두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참 피곤한 일이라는 사실을 몇 번을 더 애써 거부한 뒤에야 인정하게 되었다.

사람들을 조금 더 자주 찾고 있고, 나의 몸은 조금 더 피곤하고 지쳐 가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미국에서보다 더 많은 음악을 듣고, 더 많은 음반을 사고, 더 많은 술을 마시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고 있다. 여전히 텔레비전은 거의 보지 않지만 꾸준히 피스톤스와 아스날, 브롱코스의 게임은 챙겨 보고 있고, 전보다 책은 조금 더 적게 읽으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한마디로 조금 더 병신같아 진 것이다. 내 삶에서 균형을 찾지 못하면, 주변에 있는 사람도 불안함을 느낀다.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여유를 잃어버리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지쳐 떠나간다. 지금 나는 그런 종류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갖게 된 몇가지 확신들 중에는 꽤 그럴듯한 것도 있는데, 예를 들어 지금까지 믿어 왔던 삶의 방식을 꾸준하고 우직하게 고수해 나가야 나에게 가장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는 조금 더 확실한 모양의 나를 타인에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절망스럽게도, 만에 하나 그렇게 하여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나와 인연이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나의 손을 떠난 그 무언가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변할 수 없는 나이에 이르렀으며, 다행스럽게도 많이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한 모습으로 이 나이에 당도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병신이 되어가는 속도를 늦추는 노력과 함께, 아직도 고쳐나갈 수 있는 부분을 하루 빨리 찾아내어 조금 더 나은 나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것 정도일 것이다. 그렇게 하여 마침내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 사람 앞에 최소한 그 순간 갖추어진 최선의 모습으로 떳떳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제 사람들을 정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사람들 속에서 나를 더 확실하게 발견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국 사회에서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어떤 존재인지 그려나갈 수 있었다. 그런 내가 사랑하는 사람, 아낄 수 있는 사람,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 챙기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계속 나의 길을 걸어갈 것이고, 그 와중에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나의 길이 깨끗했으면 좋겠다. 그 길 위에서 어떤 다른 길과의 교차점을 만드는 순간,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떳떳할 수 있으면 좋겠다.

2 thoughts on “사람과 사람들

  1. 통과하는 시간이 분명 큰 의미가 될거에요. 점점 나아지는 종혁님의 미래를 낙관합니다.주변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을만큼 점점 좋은 사람이 될거에요. 그럴 것 같네요.

    • 덕분에 항상 큰 힘을 얻습니다. 은혜는 늘 잊지 않고 있어요. 부디 좋은 시간으로 제 인생에 축적되기를 바랄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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