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92016

오늘은 날씨가 매우 추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지하철역으로 바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고, 여의도역 2번 출구로 나와서 몇 분 걷지 않아 바로 회사 건물 입구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출근길에 추위를 많이 느낄 틈은 없었다. 점심도 회사 바로 건너편에 있는 빌딩에 있는 철판볶음집에 갔고, 퇴근길에는 택시를 타고 백화점으로 가서 장을 본 뒤 지하철을 이용해 안전하게 귀가했다. 요리조리 살살 잘 피해 다닌 셈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그게 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추위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너무 많이 있다. 그들에게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쉼터를, 추위를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국물 한그릇을 제공해드리지 못함을 자책한다. 매달 백만원 가까운 돈을 세금으로 내기 때문에 국가에게 그 책임을 미룬다는 그럴듯한 핑계도 이런 날씨에는 너무 궁색해 보인다. 제발, 이 추위에 아무도 건강을 해치지 말았으면 한다. 소녀상 앞에서 비닐을 뒤집어 쓰고 새벽을 보내는 젊은이들을 특히 더 생각한다.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장을 본다는 것은 사치일 수 있다. 오늘 나에게는 마음을 녹이는 과정이었다. 어머니가 십여년 이용했던 그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지금 내가 장을 본다. 그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어머니는 지난 십여년동안 얼굴을 서로 알고 지냈다. 과일코너를 담당하시는 분, 두부코너를 담당하시는 분, 생선코너를 담당하시는 분, 모두 지난 십년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다. 고용이 계속 이어지게 한 회사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하루종일 앉지도 못한 채 냉랭한 손님들을 상대로 친절함을 제공해야 하는 고된 노동을 참고 견딘 그 여성들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튼, 그곳에서 요즘 파는 딸기는 아주 맛있다. 나는 오늘 그 딸기를 사기 위해 그곳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가격표 앞에 마음은 오그라들기 마련이고, 그 중에서 가장 싼 딸기를, 마감시간 할인까지 붙여서 더 싸게 샀다. 명란젓도 사고, 시리얼도 사고, 블루베리도 샀다. 요거트도 사고, 초밥도 샀다. 각 코너를 담당하시는 분들은 냄새가 새지 않게 두번 세번 과잉 포장을 했지만, 집에 돌아와 쉽게 봉지 매듭을 풀 수 있도록 약간 헐겁게 묶는 섬세함도 갖추고 있었다. 계산대에선 포장을 대신 해주었는데, 하나의 큰 봉지에 모든 음식들이 다 들어갈 수 있도록 과한 포장은 다시 벗겨내어 차곡차곡 쌓아주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그 웃음과 친절함때문에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파는 음식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것인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웃음을 나누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라면, 웃음을 선물받는 값을 그정도로 치루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와서 분리수거를 했다. 분리수거를 하고 올라오면서 택배를 받았다. 향뮤직에서 주문했던 음반들이 보름이 걸려 도착했다. 한 장의 음반이 예정보다 늦게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집에 온 뒤 지금까지 계속 오늘 받은 음반들을 이어서 듣고 있다. 조성진 콩쿠르 음반을 드디어 씨디 음질로 들었고, 그 유명한 실리카겔의 EP도 들었다. 역시 칭찬을 많이 들었던 모노톤스의 음반과 사람12사람의 음반을 들은 뒤 밤신사의 짧은 음반도 들었다. 지금은 가을방학의 3집을 듣고 있다. 아직도 많이 남았다. 트렘폴린, 우효, 잠비나이, 록큰롤라디오, 정차식, 그리고 이 음반들을 늦게 받게 만든 방백의 음반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초밥을 먹고 딸기를 먹고 음악을 들으니까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심장이 여전히 무거운 추에 깔린채 찌그러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은 가시지 않았고, 지독한 편두통은 며칠째 오른쪽 정수리를 쪼아대고 있다. 오늘 아침에 머리를 감았더니 머리카락이 한웅큼 빠져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오늘 점심을 함께 한 회사 동료는 왜 요즘 말이 없냐며, 연애하느라 바쁘냐고 눙쳤다. 아침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공직자 재산신고를 해야 하는데 부모님의 주소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부모님에 대해 고지거부 신청을 했는데, 그래도 주소변경 신고는 해야 하나보다. 어머니에게 시골집 주소를 물어보면서 어쩔 수 없이 안부도 같이 물어야 했다. 당분간 부모님과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타박은 오히려 귀여운 애교 정도로 넘길 수 있다. 내가 괴로운건, 이미 인생의 한고비를 넘기고 이 치열한 삶의 나선에서 홀연히 빠져나간 그들의 행복한 모습이 현재 나의 비참함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함양 시골집이 참 좋아서 자꾸 가고 싶으면서도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너무 춥다. 날씨는 춥지 않다. 볼더에서 자주 겪었던 날씨다. 비슷한 기온에 강풍과 폭설이 함께 오거나 아예 볼텍스가 와버려서 고속도로가 전부 마비되었던 그곳보다 오히려 맑은 하늘과 함께 온 추위는 반갑기까지 하다. 앞서 적었던, 이 추위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어쨌든, 날씨는 춥지 않다. 겨울을 견디는건 일도 아니다. 마음이 추운게 문제다. 마음이. 너무 춥다. “남의 일”을 자신들의 단순한 회로구조에 집어 던져 버린 뒤 “외로워서 그러네”라고 해답을 성급하게 제시하려는 주변인들의 폭력을 피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눈이 높다”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깨닫지 못하는 그들은 나의 소중한 친구, 혹은 직장동료, 혹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그 누군가이겠지만, 최소한 지금의 불안정한 나의 심리상태에서 이들과 적극적으로 말을 섞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서 우왕좌왕 방황만 하고 있다. 가끔 가슴이 너무 답답해 숨쉬기가 힘들 때도 있다. 내가 왜 이러지는 나도 잘 알수가 없어 답답하고 속상하다.

8 thoughts on “01192016

    • 저는 요즘 저 두 말을 거의 매일 들으며 살아요. 그렇게 매일 매일 평가받다 보니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네요.

  1. 부모님의 노년의 여유와 행복이 현재 자신의 비참함을 비춰 괴롭다는건 너무 슬퍼요

    • 가끔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슬프게 제 머릿속을 채우는건 제가 병신같아서 그렇구요…

    • 안녕하세요. 우울한 내용에 공감을 받으니 그래도 조금은 기운을 내게 되네요.

  2. 저는 우효가 좋네요. 요즘 포스팅 안 하시네요, 신변애 무슨 일이라도? 우효 썩 맘애 들어요.

    • 신변에 아~무 일 없습니다. 그냥 좀 바빠서 블로그까지 신경쓰지 못했어요. 이제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커밍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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