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애, 혹은 fraternité, 혹은 camaraderie

한국어로 ‘동지애’, 혹은 ‘형제애’로 번역되는 단어, 혹은 프랑스 국기 중 빨간색을 상징하는 ‘fraternité’ – 종종 ‘박애’로 잘못 번역되는 – 의 영어식 표현인 fraternity, 혹은 camaraderie. 사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어로 표현되는 ‘동지애’나 ‘형제애’는 너무나 협소하다. 그렇다고 영어식 표현인 fraternity나 camaraderie가 내포하는 의미가 한국어로 일대일로 치환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귀찮지만 굳이 뜻을 풀어 ‘목적과 뜻을 공유하는 사람과 나누는 사랑의 감정’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메리엄-웹스터에서는 이 “사랑의 감정”을 그냥 “feeling of friendship”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 등장하는 “friendship”을 굳이 ‘우정’으로 번역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사랑과 우정은 맞닿아있기 때문이고, 이 두 감정이 지극해지면 서로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간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지극해지면 우정이 되고, 친구간의 우정이 깊어지면 사랑을 느낀다. 즉,’ 에로스적인 사랑’ 이상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동지애’ 개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궁극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궁극의 감정”이라 함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이 맺는 모든 관계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최종 종착지같은 감정 같은거다. 그리고 이 ‘동지애’가 바로 모든 종류의 사랑과 우정이 지극해질 때 발견되는 그 궁극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뜨거운 친밀함, 친구에게 느끼는 우정,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동료의식, 가족에게 느끼는 애틋함, 이웃에게 느끼는 편안함,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동지의식,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에게 느끼는 안도감, 세계인들에게 느끼는 형제애, 이 모든 감정들은 결국 하나의 감정을 향해 있다. 차별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시기하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한한 사랑의 감정. 그 감정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환대’의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모르고, 많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체득되는 후험적인 차원의 것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거기까지 다다르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추구한다. 그 감정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인생에 한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런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내 인생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은 타인에 의해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게 다 허리를 다쳤기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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