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 in Music, 2015

자, 이제 2015년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이야기하는 음악이란 매우 좁은 범위의 음악세상을 뜻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유통되는, 혹은 그곳에 사는 이들이 좋아하는, 영국과 미국의 매체들이 발견하는, 그런 ‘팝’한 음악들이 사는 세상. 거기에 더해 나의 모국, 모국어, 모국의 공기가 스며들어간 한국의 음악들 조금. 그게 다다. 이런 좁은 세상에서 거창하게 정리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이런 좁은 세상에서조차 쉽게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많은, 훌륭한 음악들이 나왔다는 것이 나에게 일어난 기적이고 행복이고 영광이다. 나는 그렇게 또 한번의 좋은 한 해를 보냈다. 좋은 음악은 너무나 많고, 어떤 음악이 나에게 도착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음악의 신이 점지해준 운명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놓친 음악을 억지로 잡으려고 애쓰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지만, 나는 그 부질없는 짓을 자꾸만 하고 싶다. 그만큼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것이고, 풍성하면 풍성할 수록 행복한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올해의 음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중지를 모은다면 거칠게 다섯장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Kendrick Lamar<To Pimp a Butterfly>, Sufjan Stevens<Carrie & Lowell>, Courtney Barnett<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 Tame Impala의 <Currents>, 그리고 Father John Misty<I Love You, Honeybear>. 다들 개인적인 ‘순위’를 다섯장 내에서 매길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 그러한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올 한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은 수피얀 스티븐스였고,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이제 작가다. 가장 신나게 들으며 춤을 춘 음반은 테임 임팔라였다. 나는 아직도 “The Less I know The Better>의 전주를 들으면 심장이 뛴다. 켄드릭 라마를 들으면서는 이 시대의 핑크 플로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정도로 감탄했다. 그는 이 음반을 통해 이제 흑인음악을 넘어 현대 팝음악의 역사에서 결코 잊으면 안되는 인물로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코트니 바넷은 올 한해 내가 들었던 음악들 중 가장 충격적인 음반으로 기억될 것이다. 삶의 작은 부분으로부터 큰 의미를 찾아내는 그녀의 시도는 그녀의 ‘조상’들이 이룩한 성취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 성취를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시켰다. 정말 대단했다. 파더 존 미스티 특유의 살카틱한 유머는 또 어떠한가. 피식 쪼개면서 들을 수 있는 명반은 흔치 않다. 현대 인디씬에서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올해는 뭔가 부족했어” 나는 이 말을 거의 매년, 매번 다른 누군가로부터 들어왔다. 화이트 스트라입스와 포스탈 서비스가 나온 2003년에도, 더 내셔널과 디어헌터, 비치 하우스의 음반이 발표된 2010년에도 누군가는 “올해는 재미가 별로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2003년과 2010년을 그리워한다. “그땐 정말 죽이는 음악들이 많았는데”라고 하면서. 나는 조금 생색을 내보려고 한다. 조금 더 빨리 이 찬란했던 2015년 한 해를 기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 2022년쯤, 누군가가 “2015년, 별거 없었지?”라고 물어본다면 위의 다섯장의 음반을 조용히 건네줄 것이다. “아니, 죽였어. 장난 아니었어”라고 말하면서.

나의 ‘베스트 5’에 동의하지 못하고 나름의 ‘honorable mention’을 언급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만의 긴 베스트 음반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음반도 있고, 정말 좋게 들었지만 한번 들을 때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서 손이 많이 가지 않았던 음반도 있다. (이쪽 분야로는 Swans와 Titus Andronicus가 최강이 아닐런지..) Bjork<Vulnicura>는 그중에서도 첫번째로 언급해야 하는 음반이다. 오랜 동반자였던 이와의 헤어짐을 다룬, 그래서 뷔욕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아마도 가장 감성적이고 감정적이며 격정적인, 그리고 가장 개인적인 음반으로 기록될 이 음반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미치도록 광활하다. 그녀는 여전히 다른 차원에서 놀고 있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The XX의 멤버 Jamie XX의 솔로 프로젝트 <In Colour> 역시 훌륭한 음반이었다. 새로운 사운드스케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The XX의 지난 작업물과는 다르게 Jamie XX는 기존에 존재했던 장르들을 새롭게 해석하는데 치중한다. 다양한 비트와 다양한 샘플링들이 The XX 특유의 공기 안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무척 신비롭다. 이와 비슷하게, Julia Holter<Have You in My Wilderness>에서 그녀의 세계가 결코 어렵지 않고 접근가능한 범위내에 존재함을 증명했다. 리듬과 사운드와 멜로디와 훅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그녀의 음악은 하나의 장르로 정의내릴 수도 없고, 장르 안에 가둬둘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다. 참 잘 들었다. Kamasi Washington이라는 뛰어난 신예(?) 색소포니스트를 발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수확이다. 세장짜리 앨범 <The Epic>은 그의 오버그라운드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와 밀도를 가지고 있다. 재즈에서 여전히 창조적인 작업들이 계속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주었다. DestroyerBeach House, Alabama Shakes는 기대에 거스르지 않는 모습으로 멋지게 돌아와 주었다. <Poisson Season>은 여전히 너무나 사랑스러운 데스트로여의 사운드로 가득차있다. 따뜻하고 정답지만 똑똑하다. <Depression Cherry>는 아마도 비치 하우스 커리어에서 한 순간의 절정을 담아낸 음반일 것이다. 이후 연달아 발표한 앨범보다 이 앨범에 손이 훨씬 많이 갔다. <Sound & Color>는 왜 알라바마 쉐잌스가 데뷔앨범 한 장만으로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서던록 밴드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증명하는 빡센 후일담이다. 여전히 완벽에 가까운 사운드를 뿜어낸다. Joanna Newsome<Driver>에서 여전히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가장 그녀답게, 최고의 레벨에서 구사하고 있다. 아무도 그녀를 따라할 수 없으며, 그녀만큼 음악을 하는 것은 여전히 무척 어렵다.

따로 문단을 나누어 유난을 떨며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두 개 정도 있다. 하나는 노장 뮤지션들의 뜬금없는, 하지만 아주 화려하고 멋진 복귀다. Wilco가, 그리고 트위디가 다시 활력을 찾게 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들은 이제 한물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발표된 <Star Wars>는 트위디의 송라이팅 커리어에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창조적인 기운을 마구 뽐내고 있다. 기존의 윌코 사운드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긴장감마저 감지되는 이 음반은 윌코의 디스코그래피가 새로운 챕터로 넘어갔음을 선언하는 듯 하다. Low는 여전히 Low의 음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좋다. <Ones and Sixes>에서 이들 특유의 느린 리듬 안에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사운드의 벽을 통렬하게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의 세계는 참으로 넓고 광활해서 음악을 들으며 숨을 한번 쉬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다. Sleater-Kinney의 반가운 복귀는 내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었다. <No Cities to Love>는 돈이 있든 없든 하나쯤 집에 가지고 있어야 할 음반이다. 반가움 이상의 감정을 전달받을 것이다. 윌코와 마찬가지로, 나는 New Order가 다시 명반을 만들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Music Complete>을 통해 내가 틀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은 여전히 신나는 리듬을 타고 있고, 근사한 록큰롤 음악을 만들고 있다. 애증의 Mercury Rev도 신보를 발표했다.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위의 밴드들과 같은 레벨에서 언급될 정도는 아니다. 그저 안타깝지 않을 정도.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것이다. 최근 여성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활약상은 단순히 계급주의적 시선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아까운 구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가장 포괄적인 약자 그룹을 형성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이들을 음악씬의 프런티어로 이끄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여성이자 흑인인 Jlin<Dark Energy>같은 괴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음반은 장르 하나를 통째로 진화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 Holly Herndon<Platform>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성 뮤지션들의 결과물을 굳이 마이너리티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더 나아가 여성이 처한 모든 종류의 종속성에 대한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이 넓은 의미의 패미니즘이라면, Speedy Ortiz<Foil Deer>Torres<Sprinter>는 록이라는 장르에서 남성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스피디 오티즈의 힘과 에너지가 좋았으며, 토레스의 뚝심과 자세가 좋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음악들이다. 한편, 올해 마지막 즈음에 발견한 GrimesKacey Musgraves는 이와는 또 완전히 다르게 읽어야 하는 뮤지션들이다. 그라임즈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의 하위문화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언급될 것이다. 전에는 없던 새로운 색깔의 페르소나를 무대 위에 창조해낸 것도 큰 성취다.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을 다 떠나서, <Art Angels>는 그냥 매우 좋은 팝 앨범이다. 그라임즈의 음악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컨트리 음악은 현대 팝 음악의 원류적 형태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크루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미국-남부라는 지역성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꽤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는 굉장히 사려깊고 섬세한 컨트리 뮤직을 선보인다. <Pageant Material>은 스토리텔링이라는, ‘내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음악이 가진 가장 원천적이고 본질적인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2015년에 이런 음반을 가진다는건 행운이다. 그것도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서.

많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밑으로 죽 써내려가야 할, 계속해서 이야기해야할 좋은 음악들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송호이 블루스같은 ‘말리 록’도 이야기하고 싶고, 김사월의 역사적인 데뷔 앨범에 대해서도 더 수다를 떨고 싶다. 밥 잉글리쉬나 짐 오루크같은 음악들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접하기 시작한 한국의 인디씬에 대해서도 내가 느낀 감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케이팝, 혹은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것들 모두 지금은 가만히 삼켜 두겠다.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한다는 좋은 핑계거리를 대면서. 다음에 더 자세히, 더 침착하게 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다만 마지막으로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하나 있다. 여러분, 음악 많이 들으세요. 좋잖아요. 좋은겁니다.

4 thoughts on “Year in Music, 2015

  1. 잘 읽었습니다. 올해는 옛날노래들을 주로 듣다보니 신보들을 많이 놓쳤었는데 언급해주신 음악들 한번 다 들어 봐야겠습니다ㅎㅎ. 개인적으론 sufjan, father john misty, jesso가 기억에 남네요 ㅎㅎ

    • 매년 이맘때쯤 되면 놓친 음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지는 것 같아요. 나름 부지런히 찾아 듣는다고 해도 항상 더 좋은 음악들이 들려지지 않은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제 리스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기쁠 것 같습니다 ㅎㅎ

  2. 참 편하게 자주들엇던 음반들 위주로 꼽아보는데 저역시 커트니바넷, 테임임팔라. 그라임스. 에프엑스 신보도 좋았는데 들어보셨나요

    • 그럼요. 에프엑스 이번 앨범도 좋았어요. 가요는 따로 정리하려고 했는데 정리가 안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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