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rt Vile: B’lieve I’m Goin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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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악’을 정의내리는 수많은 기준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음악인’을 정의내리는 방법은 조금 더 많이 모호하고 기준은 조금 더 다양할 것이다. 불세출의 영웅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뽐내며 씬을 정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악과 장르에 대한 확고한 이해 위에 단단한 음악을 꾸준히 뽑아내는 고수도 있다. 커트 바일의 음악을 굳이 따져 나누자면, 어깨선이 딱 맞게 재단된 좋은 원단의 명품수트보다는, 루즈한 핏에 구멍도 몇군데 뚫렸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오래된 청바지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대의 음악을 정의내리는 방식도 한가지만 존재하는건 아닐 것이다. 비틀즈나 The XX처럼 음악을 듣고 느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프런티어가 있는 반면, 요즘의 커트 바일이나 맥 드마르코, 코트니 바넷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장르 안에서, 기존에 존재해왔던 악기와 익숙한 코드진행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깜짝 놀랄 정도의 새로움을 선사하는 ‘조용한’ 천재들도 있다.

커트 바일은 록큰롤을, 기타를, 보컬을, 밴드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위에 루즈한 자신의 캐릭터를 더하고 그리 많이 뒤틀리지 않은 가벼운 유머를 더하여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아주 여유롭게 펼쳐 낸다. 그게 너무 새롭고 너무 좋다.이번 앨범에서 그는 “가족이 잠든 후 깊은 밤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해 노래한다. 그러니까 조금 더 어둡고,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의 유머와 여유로움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결코 듣는이에게 부담을 주거나 경직시키지 않으면서도 밝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없이 전달한다. 참 대단한 능력이다.

그의 오랜 친구들인 War on Drugs가 클라이막스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새로운 경험을 가능케 해준다면, 커트 바일은 그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나른하면서도 끈적거리는 감동을 선사한다. <b’lieve i’m goin down…>을 언뜻 듣다보면, 엄청난 찬사를 받았던 전작들인 <Smoke Ring for Halo>나 <Walkin on a Pretty Daze>에 비해 ‘훅’이나 ‘앵글’이 조금 부족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간 그의 내면을 가만히 지켜보다보면 그가 어떤 경지에 도달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 흔한 점층구조 하나 없이 끈질기게 하나의 구조를 오랜 시간 진득하게 밀어붙이는 “Lost my Head There”같은 곡은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서 큰 감동을 받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하는데, 나는 이러한 성취가 커트 바일같은 록큰롤 장인 정도 수준은 되어야 이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청자는 그의 음악을 참 쉽게 듣고 쉽게 좋아하는데, 그걸 실현시키는 뮤지션의 노력들, 예컨대 작곡, 편곡, 악기연주, 보컬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보면 결코 쉬운 부분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절묘한 밸런스를 스스로 깨지 않는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올해의 앨범 후보들을 꾸준히 만들어낼 것이다. 뭘 해도 거슬림이 없는 상태, 바일은 그런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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