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지난 일요일 아침, 회사 야구 동호회에 불려가서 몸을 좀 움직이다가 허리를 다쳤다. 쌀쌀한 기온에 비까지 으슬으슬하게 내려 몸이 많이 굳어 있었던 것 같다. 나름 열심히 몸을 푼다고 풀었는데, 그냥 평범한 레이업을 올라가다가 팝! 소리와 함께 무릎이 나간 데릭 로즈의 경우처럼, 부상은 그것과 상관없이 찾아오나보다. 한동안 몸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지 못했고, 덕분에 구급차 신세를 지고 응급실에서 주사까지 맞았다. 함양에 계신 어머니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했고, 종합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았다. 사고 후 사흘이 지난 어제가 되어서야 어머니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고, 나흘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나는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허리에 전해지는 통증은 상습적이긴 하지만 참을만 하다. 한시간 쯤 앉아 있다 보면 그 통증이 심해져 다시 침대에 몸을 누여야 하지만, 어쨌든 혼자 음악을 틀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차려 먹고, 빨래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이 뒤뚱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동작 속에서도 어찌어찌 다시 가능해졌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지난 며칠동안, 중력의 존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취하는 동작들 중 아주 많은 것들이 허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기도 했다. 지구에 비하면 먼지보다 가벼운 내 몸을 일으켜세우는 동작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좁게만 느껴졌던 집도 엄청 커보였다. 아무리 걸어도 화장실에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무언가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다시는 주울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1리터가 조금 넘는 생수통 하나도 너무 무거워 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모든 신경이 허리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맛있는(하지만 내겐 헤비하기도 한) 음식을 세 끼 다 받아 먹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음에도 살이 전혀 찌지 않았다. 덕분에 회사도 나가지 않아 육체적으로는 아주 잘 쉬고 있지만, 가만히 누워 할 수 있는 일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외에 딱히 많지 않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라기도 했다. 책을 읽으려면 고개를 들거나 팔을 들어야 하는데 이 두 동작 모두 많든 적든 허리에 부담을 주었다. 가벼운 스마트폰 하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가만히 낭비하고 있자니, 오디오 앞으로 걸어가서 음악 하나 틀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얼마나 작은 차이 하나로 그러한 삶 속으로 편입될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번 사고도 결혼과 연결지으셨다. 놀랍지도 않았다. 여자친구라도 있었으면 일요일 아침 야구 따위를 하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만에 하나 야구 도중 똑같은 부상을 당했다고 해도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는 명쾌하고 반박하기 힘들었다.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보이는 서울에서조차 혼자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음을 적지 않게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택배 하나를 받으려고 해도, 막힌 수도관을 뚫으려고 해도 9시부터 6시까지 부재중인 직장인에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전세자금대출같은 정책적인 혜택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여전히 가족, 그것도 남자와 여자의 법적 혼인관계로 생성된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이 갖는 이점이 상당한 구조의 나라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점이 우려스럽기 때문에 나에게 결혼을 종용하고 계신 것인지도 모른다. 더 늙기 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사고가 더 빈번히 일어나기 전에 어서빨리 ‘동반자’를 하나 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당하고 상식적이다. 나 역시,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늙은 어머니를 며칠동안 고생시키면서 룸메이트라도 하나 구해야 하나 싶었다. 결국 내 개인공간을 침범당하기 싫다는 병적인 고집을 스스로 꺾을 수 없어 이내 포기하긴 했지만, ‘늙은 나이까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게 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 졸업 당시에는 당연히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 소도시로의 이주같은(노스 다코타나 미주리같은), 아주 외딴 곳으로 홀로 걸어들어가는 시나리오는 이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외로움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지구라는 중력 외에 다른 어떤 끌림을 거부하지 말았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끌림과 어울림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지구로부터 받는 중력을 거부할 능력 따위는 없지만, 최소한 수평적으로 존재하는 또다른 중력 안에서 행복을 창조하고 발견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 중력의 영향을 애써 부정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별을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를 도는 또다른 별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너무 가깝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영원히 작별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영향을 주고 받는다. 우리 지구가 달을 붙잡아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삶에서 달이 묵직하게 계속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력도 그 정도가 어떻겠나 싶다. 극단적으로 가까워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멀어져 가지도 않는, 꽤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서로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그 정도의 관계. 물론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 그렇게 완벽하게 존재하는 해답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버릴 때가 있던가. 어제 본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의 가여운 여자와 남자처럼, 지나치게 가까워졌다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변덕스러움이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재밌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으로 숨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중력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보면, 결국 어디에도 이끌리지 못하고 어둠속을 영원히 헤매는 인공위성의 파편 조각 정도로 늙어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는 싫다. 이번 사고를 당한 뒤 약간은 변한 나의 마음은 그렇다.

2 thoughts on “gravity

  1. 한참 온라인 상으로 안 나타나셔서 회사 일이 많이 바쁘신가 보다 했는데, 어이쿠야. 저도 허리가 좀 부실한 편이라 읽기만 해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늠 안되면서도 엄청 힘드셨겠다 싶네요.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긴 하지만, 어서 완쾌하시길.

    • 투이타 아이디는 비공개계정으로 옮겼어요 (@plz_be_quiet).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지금도 사실 많이 불편하긴 한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에 한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처음엔 정말 아프더라구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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