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ar in Music, 2015

자, 이제 2015년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이야기하는 음악이란 매우 좁은 범위의 음악세상을 뜻한다.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유통되는, 혹은 그곳에 사는 이들이 좋아하는, 영국과 미국의 매체들이 발견하는, 그런 ‘팝’한 음악들이 사는 세상. 거기에 더해 나의 모국, 모국어, 모국의 공기가 스며들어간 한국의 음악들 조금. 그게 다다. 이런 좁은 세상에서 거창하게 정리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 우습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이런 좁은 세상에서조차 쉽게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많은, 훌륭한 음악들이 나왔다는 것이 나에게 일어난 기적이고 행복이고 영광이다. 나는 그렇게 또 한번의 좋은 한 해를 보냈다. 좋은 음악은 너무나 많고, 어떤 음악이 나에게 도착할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음악의 신이 점지해준 운명에 따라 결정된다. 내가 놓친 음악을 억지로 잡으려고 애쓰는 것도 부질없는 짓이지만, 나는 그 부질없는 짓을 자꾸만 하고 싶다. 그만큼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것이고, 풍성하면 풍성할 수록 행복한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올해의 음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중지를 모은다면 거칠게 다섯장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Kendrick Lamar<To Pimp a Butterfly>, Sufjan Stevens<Carrie & Lowell>, Courtney Barnett<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 Tame Impala의 <Currents>, 그리고 Father John Misty<I Love You, Honeybear>. 다들 개인적인 ‘순위’를 다섯장 내에서 매길 수 있겠지만, 나의 경우 그러한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올 한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은 수피얀 스티븐스였고, 가장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이제 작가다. 가장 신나게 들으며 춤을 춘 음반은 테임 임팔라였다. 나는 아직도 “The Less I know The Better>의 전주를 들으면 심장이 뛴다. 켄드릭 라마를 들으면서는 이 시대의 핑크 플로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정도로 감탄했다. 그는 이 음반을 통해 이제 흑인음악을 넘어 현대 팝음악의 역사에서 결코 잊으면 안되는 인물로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코트니 바넷은 올 한해 내가 들었던 음악들 중 가장 충격적인 음반으로 기억될 것이다. 삶의 작은 부분으로부터 큰 의미를 찾아내는 그녀의 시도는 그녀의 ‘조상’들이 이룩한 성취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그 성취를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시켰다. 정말 대단했다. 파더 존 미스티 특유의 살카틱한 유머는 또 어떠한가. 피식 쪼개면서 들을 수 있는 명반은 흔치 않다. 현대 인디씬에서 새로운 영역을 창조해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올해는 뭔가 부족했어” 나는 이 말을 거의 매년, 매번 다른 누군가로부터 들어왔다. 화이트 스트라입스와 포스탈 서비스가 나온 2003년에도, 더 내셔널과 디어헌터, 비치 하우스의 음반이 발표된 2010년에도 누군가는 “올해는 재미가 별로 없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2003년과 2010년을 그리워한다. “그땐 정말 죽이는 음악들이 많았는데”라고 하면서. 나는 조금 생색을 내보려고 한다. 조금 더 빨리 이 찬란했던 2015년 한 해를 기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아마 2022년쯤, 누군가가 “2015년, 별거 없었지?”라고 물어본다면 위의 다섯장의 음반을 조용히 건네줄 것이다. “아니, 죽였어. 장난 아니었어”라고 말하면서.

나의 ‘베스트 5’에 동의하지 못하고 나름의 ‘honorable mention’을 언급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나만의 긴 베스트 음반 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 음반도 있고, 정말 좋게 들었지만 한번 들을 때마다 너무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해서 손이 많이 가지 않았던 음반도 있다. (이쪽 분야로는 Swans와 Titus Andronicus가 최강이 아닐런지..) Bjork<Vulnicura>는 그중에서도 첫번째로 언급해야 하는 음반이다. 오랜 동반자였던 이와의 헤어짐을 다룬, 그래서 뷔욕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아마도 가장 감성적이고 감정적이며 격정적인, 그리고 가장 개인적인 음반으로 기록될 이 음반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미치도록 광활하다. 그녀는 여전히 다른 차원에서 놀고 있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The XX의 멤버 Jamie XX의 솔로 프로젝트 <In Colour> 역시 훌륭한 음반이었다. 새로운 사운드스케입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The XX의 지난 작업물과는 다르게 Jamie XX는 기존에 존재했던 장르들을 새롭게 해석하는데 치중한다. 다양한 비트와 다양한 샘플링들이 The XX 특유의 공기 안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무척 신비롭다. 이와 비슷하게, Julia Holter<Have You in My Wilderness>에서 그녀의 세계가 결코 어렵지 않고 접근가능한 범위내에 존재함을 증명했다. 리듬과 사운드와 멜로디와 훅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그녀의 음악은 하나의 장르로 정의내릴 수도 없고, 장르 안에 가둬둘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다. 참 잘 들었다. Kamasi Washington이라는 뛰어난 신예(?) 색소포니스트를 발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수확이다. 세장짜리 앨범 <The Epic>은 그의 오버그라운드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퀄리티와 밀도를 가지고 있다. 재즈에서 여전히 창조적인 작업들이 계속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어주었다. DestroyerBeach House, Alabama Shakes는 기대에 거스르지 않는 모습으로 멋지게 돌아와 주었다. <Poisson Season>은 여전히 너무나 사랑스러운 데스트로여의 사운드로 가득차있다. 따뜻하고 정답지만 똑똑하다. <Depression Cherry>는 아마도 비치 하우스 커리어에서 한 순간의 절정을 담아낸 음반일 것이다. 이후 연달아 발표한 앨범보다 이 앨범에 손이 훨씬 많이 갔다. <Sound & Color>는 왜 알라바마 쉐잌스가 데뷔앨범 한 장만으로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서던록 밴드로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증명하는 빡센 후일담이다. 여전히 완벽에 가까운 사운드를 뿜어낸다. Joanna Newsome<Driver>에서 여전히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가장 그녀답게, 최고의 레벨에서 구사하고 있다. 아무도 그녀를 따라할 수 없으며, 그녀만큼 음악을 하는 것은 여전히 무척 어렵다.

따로 문단을 나누어 유난을 떨며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두 개 정도 있다. 하나는 노장 뮤지션들의 뜬금없는, 하지만 아주 화려하고 멋진 복귀다. Wilco가, 그리고 트위디가 다시 활력을 찾게 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들은 이제 한물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발표된 <Star Wars>는 트위디의 송라이팅 커리어에서 전환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창조적인 기운을 마구 뽐내고 있다. 기존의 윌코 사운드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긴장감마저 감지되는 이 음반은 윌코의 디스코그래피가 새로운 챕터로 넘어갔음을 선언하는 듯 하다. Low는 여전히 Low의 음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좋다. <Ones and Sixes>에서 이들 특유의 느린 리듬 안에 견고하게 쌓아 올려진 사운드의 벽을 통렬하게 실감할 수 있다. 이들의 세계는 참으로 넓고 광활해서 음악을 들으며 숨을 한번 쉬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다. Sleater-Kinney의 반가운 복귀는 내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많은 이들에 의해 회자되었다. <No Cities to Love>는 돈이 있든 없든 하나쯤 집에 가지고 있어야 할 음반이다. 반가움 이상의 감정을 전달받을 것이다. 윌코와 마찬가지로, 나는 New Order가 다시 명반을 만들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Music Complete>을 통해 내가 틀릴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은 여전히 신나는 리듬을 타고 있고, 근사한 록큰롤 음악을 만들고 있다. 애증의 Mercury Rev도 신보를 발표했다. 다행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위의 밴드들과 같은 레벨에서 언급될 정도는 아니다. 그저 안타깝지 않을 정도.

다른 하나의 이야기는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것이다. 최근 여성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활약상은 단순히 계급주의적 시선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아까운 구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가장 포괄적인 약자 그룹을 형성하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이들을 음악씬의 프런티어로 이끄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그래서 여성이자 흑인인 Jlin<Dark Energy>같은 괴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음반은 장르 하나를 통째로 진화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 Holly Herndon<Platform>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성 뮤지션들의 결과물을 굳이 마이너리티의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더 나아가 여성이 처한 모든 종류의 종속성에 대한 해방을 이야기하는 것이 넓은 의미의 패미니즘이라면, Speedy Ortiz<Foil Deer>Torres<Sprinter>는 록이라는 장르에서 남성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스피디 오티즈의 힘과 에너지가 좋았으며, 토레스의 뚝심과 자세가 좋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음악들이다. 한편, 올해 마지막 즈음에 발견한 GrimesKacey Musgraves는 이와는 또 완전히 다르게 읽어야 하는 뮤지션들이다. 그라임즈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의 하위문화들이 하나로 융합되는 과정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언급될 것이다. 전에는 없던 새로운 색깔의 페르소나를 무대 위에 창조해낸 것도 큰 성취다. 이런 구질구질한 이야기들을 다 떠나서, <Art Angels>는 그냥 매우 좋은 팝 앨범이다. 그라임즈의 음악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컨트리 음악은 현대 팝 음악의 원류적 형태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크루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미국-남부라는 지역성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꽤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는 굉장히 사려깊고 섬세한 컨트리 뮤직을 선보인다. <Pageant Material>은 스토리텔링이라는, ‘내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음악이 가진 가장 원천적이고 본질적인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소중한 작품이다. 2015년에 이런 음반을 가진다는건 행운이다. 그것도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서.

많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밑으로 죽 써내려가야 할, 계속해서 이야기해야할 좋은 음악들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송호이 블루스같은 ‘말리 록’도 이야기하고 싶고, 김사월의 역사적인 데뷔 앨범에 대해서도 더 수다를 떨고 싶다. 밥 잉글리쉬나 짐 오루크같은 음악들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접하기 시작한 한국의 인디씬에 대해서도 내가 느낀 감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케이팝, 혹은 한국의 아이돌 문화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것들 모두 지금은 가만히 삼켜 두겠다. 내일 아침 출근해야 한다는 좋은 핑계거리를 대면서. 다음에 더 자세히, 더 침착하게 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다만 마지막으로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하나 있다. 여러분, 음악 많이 들으세요. 좋잖아요. 좋은겁니다.

Youth Lagoon: Savage Hills Ball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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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유스 라군 – 혹은 트레버 파워스 – 의 팬이었다. 데뷔 앨범에서 그의 어머니가 가르쳐준 인생의 진리 – “상상을 더이상 하지 않을때 넌 죽은 것과 다름 없어” – 를 공유했을 때도, 허름한 선술집에서 50여명 남짓한 관객을 모아놓고 수줍은듯한 미소와 함께 읊조릴 때도, 짐짓 심각하고 무거운 사운드로 돌아온 두번째 앨범으로 모두를 놀래켰을 때도, 나는 항상 그와 그의 음악을 좋아했고 뮤지션으로서의 그를 지지했다. 그는 너무 낮지 않은 곳에 위치했지만 그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충분한 힘을 갖지 못한 ‘평범한 루저들’의 페르소나였고, 그러한 평범함이 하찮은 것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하루하루가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음을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 세심하게 표현해냈다.

세번째 앨범은 지난 두 장에서 그가 보여준 위와 같은 고유한 정체성을 그대로 간직한 채 새로운 단계로 진화한 유스 라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데뷔 앨범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단출한 구조를 좋아했던 이라면 두번째 앨범의 과장되고 복잡한 구조와 한껏 우울해진 분위기를 버거워했을수도 있다. 세번째 앨범은 트레버 파워스가 올바른 방향으로 우직하게 나아가고 있음을 증명한 수작이다. 그는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밖으로 나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앨범의 곳곳에서 아이다호주 보이지에서 나고 자라 소위 “방구석 음악”을 만들어온 그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성실하게’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녹음은 영국의 브리스톨에서 진행됐다. 아이다호를, 미국을 벗어나 그가 선택한 첫번째 거주지는 트립합의 본고장인, 흐리고 작은 항구도시였다. 그곳에서 퍼퓸 지니어스의 앨범을 프로듀스한 Ali Chant와 함께 작업했고, 그들은 기존 앨범에서 유지해온 몇가지 특징들 – 리버브가 깊게 걸린 파워스의 보컬이라던지 – 을 과감히 제거하고 조금 더 응축되고 단단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구조는 조금 더 단순해졌지만 한껏 단단해졌고 그의 목소리에도 힘이 더 들어갔다. 이와 함께 파워스가 전달하는 메시지도 조금 더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앨범의 첫번째-이자 마지막..- 싱글 “The Knower”는 트위터를 하는 그가 소셜미디어를 보고 느낀 환멸과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Highway Patrol Stun Gun”은 후디를 뒤집어 쓴 젊은이를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는 무장경찰에 대한 그의 시선을 담아냈다. <Savage Hills Ballroom>은 트레버 파워스가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하는 앨범이자, 그가 전국적인 조명을 받을 정도로 성장했음을 나타내는 징표로서 기능한다.

Shamir: Ratch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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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ir의 목소리를 처음 들으면 이 분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헷갈린다. (심지어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인터넷을 찾아본 뒤에야 이 분의 성별을 알 수 있었다!) 그레이스 존스나 안토니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그의 중성적인 목소리톤과 팔세토 창법이 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긴 하지만, 그의 데뷔앨범 <Ratchet>은 그것 이외에도 할 이야기가 꽤 많은, 생동감 넘치는, 풍성한 사운드의 하우스-디스코-힙합-소울 음반이다. 90년대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은 듯한 사운드 위에 샤미르는 자전적인 이야기들로 가사를 채우고 있다. 남들과 다른, 그래서 고독할 수밖에 없는 그의 인생에서 주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 이 음반이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선언을 하는 그의 목소리에는(“Don’t try me, I’m not a free sample”)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최면과 응원, 그리고 앞으로의 그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희망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옅게 흔들리는 높은 톤의 목소리는 근래에 보기 드문 꽉 잡힌 베이스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안정감을 준다. 최근 들은 전자-관련 음악들중 가장 확실한 베이스 사운드를 자랑하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그는 아직 완성된 자아가 아니기에 파르르 떨릴 때도 있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겠지만, 그 안에는 굵은 심지를 가진 의지와 용기가 있어서 이렇게 세상을 놀래키는 좋은 데뷔앨범을 만들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음악의 형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멜로디라인의 훅도 만만치 않고, 다양한 장르를 한 곡에 버무리는 능력도 예사롭지 않다. 가을 이후 자주 들었던 좋은 음반이다.

Kurt Vile: B’lieve I’m Goin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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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악’을 정의내리는 수많은 기준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음악인’을 정의내리는 방법은 조금 더 많이 모호하고 기준은 조금 더 다양할 것이다. 불세출의 영웅처럼 천재적인 재능을 뽐내며 씬을 정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악과 장르에 대한 확고한 이해 위에 단단한 음악을 꾸준히 뽑아내는 고수도 있다. 커트 바일의 음악을 굳이 따져 나누자면, 어깨선이 딱 맞게 재단된 좋은 원단의 명품수트보다는, 루즈한 핏에 구멍도 몇군데 뚫렸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오래된 청바지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대의 음악을 정의내리는 방식도 한가지만 존재하는건 아닐 것이다. 비틀즈나 The XX처럼 음악을 듣고 느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프런티어가 있는 반면, 요즘의 커트 바일이나 맥 드마르코, 코트니 바넷처럼 기존에 존재하는 장르 안에서, 기존에 존재해왔던 악기와 익숙한 코드진행을 그대로 차용하면서도 깜짝 놀랄 정도의 새로움을 선사하는 ‘조용한’ 천재들도 있다.

커트 바일은 록큰롤을, 기타를, 보컬을, 밴드음악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위에 루즈한 자신의 캐릭터를 더하고 그리 많이 뒤틀리지 않은 가벼운 유머를 더하여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아주 여유롭게 펼쳐 낸다. 그게 너무 새롭고 너무 좋다.이번 앨범에서 그는 “가족이 잠든 후 깊은 밤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해 노래한다. 그러니까 조금 더 어둡고,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의 유머와 여유로움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결코 듣는이에게 부담을 주거나 경직시키지 않으면서도 밝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없이 전달한다. 참 대단한 능력이다.

그의 오랜 친구들인 War on Drugs가 클라이막스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새로운 경험을 가능케 해준다면, 커트 바일은 그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나른하면서도 끈적거리는 감동을 선사한다. <b’lieve i’m goin down…>을 언뜻 듣다보면, 엄청난 찬사를 받았던 전작들인 <Smoke Ring for Halo>나 <Walkin on a Pretty Daze>에 비해 ‘훅’이나 ‘앵글’이 조금 부족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들어간 그의 내면을 가만히 지켜보다보면 그가 어떤 경지에 도달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 흔한 점층구조 하나 없이 끈질기게 하나의 구조를 오랜 시간 진득하게 밀어붙이는 “Lost my Head There”같은 곡은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으면서 큰 감동을 받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경험을 선사하는데, 나는 이러한 성취가 커트 바일같은 록큰롤 장인 정도 수준은 되어야 이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청자는 그의 음악을 참 쉽게 듣고 쉽게 좋아하는데, 그걸 실현시키는 뮤지션의 노력들, 예컨대 작곡, 편곡, 악기연주, 보컬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보면 결코 쉬운 부분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절묘한 밸런스를 스스로 깨지 않는한, 그는 앞으로도 계속 올해의 앨범 후보들을 꾸준히 만들어낼 것이다. 뭘 해도 거슬림이 없는 상태, 바일은 그런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Empress of: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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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ress of 는 온두라스계 미국인 Lorely Rodriguez의 솔로 프로젝트다. 그녀는 유튜브에 단일한 색으로 표현된 1분짜리 사운드를 올려 화제를 모았고(여기!), 2013년 두개의 언어로 녹음된 EP <Systems>로 호평을 받은 뒤 2015년 첫번째 정규음반인 <Me>를 발표했다. 피치포크에 따르면, 이 음반에 수록된 대부분의 노래는 멕시코의 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5주동안 기거하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치솟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부터 일그러진 연애관계까지, 자신을 둘러싼 여러가지 생각들을 이 외딴 시골마을에서 정리하여 신스팝을 베이스로 하는 사운드 위에 풀어냈다. 앨범 자켓과 타이틀에서 확연히 느낄 수 있듯, 이 음반은 철저하게 로렐라이 로드리게즈 개인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형식의 음반에서 청자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의 대부분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과 음악의 대상이 되는 사람 사이에 냉정한 분리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발생한다. 즉, 음악이 지나치게 개인에게 몰두할 때 청자는 고립감을 느낀다. 음악이 개인을 구체적으로 묘사해내지 못할 때 청자는 심심함을 느낀다. 고립된 장소에서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할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이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고 덧칠하는 방식으로 나아가면 청자는 피로함을 느낀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너무나 확고하게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그녀의 입장과는 상반되게 사운드 자체는 상당히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fka Twigs와 Grimes 사이에서, bjork과 Purity Ring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와중에 앨범이 가진 꽤 괜찮은 비트와 훅이 가진 매력도 함께 반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다음에는 조금 더 여유로운 자세와 조금 더 확고한 사운드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Drake Doremus: Like Cra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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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편적인 감정에 대한 영화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어떤 선택으로 인해 먼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장기간 떨어져 있게 되고, 그래서 소원해지고,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고,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나고, 거리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멀어지고, 그렇게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났다가, 거리를 극복하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영화는 실로 ‘묘사’에 충실하다. 별다른 해석도 설명도 없이, 그저 이 두 사람의 흔들리는 감정선을 흔들리는 카메라에 담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극단적으로 축약해서 보여주는 영화 초반의 몇개의 씬들과 결국 몸을 가까이에 두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극복할 수 없는 마음의 거리를 확인하게 되는 영화의 마지막씬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는 것은 그래서 정당해보인다. 이 두 사람이 잠시 외도 아닌 외도를 하게 되는 상대들이 지나치게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도, 그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일차원적으로 그려지는 것도 그래서 이해가 된다. 이 여자와 남자에게는 빈 틈을 채워줄 도구이자 대상이었을 뿐이므로, 그들의 기억속에는 그렇게 남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아름답고, 음악은 더 아름답다. 화면은 흔들리며, 주인공들의 마음은 더 정처없이 흔들린다. 미숙한 젊은이 둘이 만나 하나의 가정을 문제없이 꾸려나간다는 일은 정말 대단한 용기와 지혜가 필요해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정말 아무런 문제없이 잘 처리해나가는 커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구부터 보듬어주는지, 어디서부터 살펴 가는지, 누구의 옆에서 어떤 자세로 노력을 하는지의 여부다.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나도 실패했다. 단지 장거리연애에 대한 이야기라서 더 아프게 와닿았던 것만은 아니다. 나는 이들처럼 실패했지만, 이들이 택한 것처럼 영원히 슬픈 재결합을 택하지도 않았다. 우스울 정도로 가벼웠던 자존심때문이었는지, 미숙하고 거칠게 덮어진 상처가 덫나서 몹시 쓰라려서였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실패했고, 그 실패로부터 아직까지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Julia Holter: Have you in my Wilder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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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a Holter의 전작 <Loud City Song>을 분명히 구입했고 열심히 들었던 기억도 나는데 정작 블로그에는 이 음반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아카이빙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반성하며 신작 <Have you in my Wilderness>에 대한 감상 기록만큼은 꼭 남겨두리라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인디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이 음반에 대해 아직까지 이렇다할 글을 적어내지 못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반성한다.

전작에 대한 어렴풋한 느낌은 ‘크고 단단하다’, ‘어둡다’, ‘어렵다’ 등의 단어로 기억된다. “Bjork이 미국에서 태어나 제도권 음악교육을 받았다면?”이라는 다소 황당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누군가 한다면, 줄리아 홀터는 그에 대한 현답으로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뷰욕의 음악이 그러하듯, 홀터의 음악 또한 감상의 과정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음악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의 문턱이 결코 낮지 않을뿐더러, 탄탄하고도 치밀하게 설계된 세계는 실로 빈틈을 찾을 수가 없어서, “그래 항복, 너 정말 너무 잘한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열광적인 지지층과 다수의 무관심을 동시에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음악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다음 숙제는 아마도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느냐, 였을 것이고, 이것은 그녀의 음악이 보편성(universality)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획득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 자명해보였다.

<Have you in my Wilderness>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열렸으며 조금 더 보편적인 감성을 노래하는 뮤지션, 하지만 여전히 현재 인디씬에서 가장 독특한, 다른 레퍼런스를 필요로 하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있는  뮤지션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음반이 될 것이다. 그녀의 음악은 하나의 장르로 정의내릴 수 없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위키피디아는 이것을 “art pop”, 혹은 “baroque pop”이라고 표현하고, 올뮤직은 “아방가르드”한 “일렉트로닉” 음악이라고 표현한다. 고전적인 분류에 따르면 인디 일렉트로닉과 엠비언트, 챔버팝과 아방가르드 록 사이 어딘가를 가로지르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표현하든 그것은 이미 현현하는 하나의 실체를 묘사하기 위해 미디어가 고심 끝에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를 이용해 짜낸 근사치에 불과하다. 홀터의 음악은 <Have you in my Wilderness>로 인해 비로소 홀터 그 자신에 의해서만 성립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누군가의 음악을 “홀터같다”라고 표현할수는 있겠지만, 홀터의 음악을 다른 뮤지션의 이름을 빌어 묘사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사실 그녀의 음악은 사운드메이킹만큼이나 가사 측면에서도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도 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녀 개인의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지 않는 정직한 수필과 같은 느낌으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청자의 감정을 뒤흔드는 어떤 문학적 성취까지 이루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비슷한 종류의 느낌을 수프얀 스티븐스의 앨범에서 받았다) 나의 이러한 느낌은 거의 모든 노래가 일정한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 버스-코러스-버스-코러스로 이어지는 구조가 마무리된 후 노래를 종결짓는 아웃트로가 결론을 담담하게 찍고 넘어가는 식이다. 예컨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See Calls me Home”은 룰도 동반자도 필요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화자에게 바다라는 거대한 존재가 집(집으로 돌아오라는건지 집 자체라고 명명하는건지 모르겠지만)이라고 불렀을때 그는 “나 수영 못해. 너무 명확해. 진짜야!” 라고 호탕하게 받아친다. 그러면서 아웃트로에서 “해변가에서 작은 소리를 들었어/정해진 패턴은 없네”라는 인장을 찍는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명쾌하고, 굵직하면서도 무겁지 않다.

이 음반은 지난 한해 가장 많이 들었던 음반 중 하나였고,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음반중 하나였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그 좋았다는 내한공연에는 갈 수 없었다. 하지만 홀터의 공연은 앞으로 계속 볼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성취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정도의 내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사월: 수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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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x김해원의 <비밀>을 처음 접했을 때, 한국적 포크에 적을 두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은 사운드메이킹 능력에 대한 감탄보다도 (아마) 조금 더 먼저, 김사월이라는 보컬리스트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크게 흡족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 이전에 존재했던 그 어떤 다른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를 레퍼런스로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지만,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많은 감정을 하나의 노래에, 하나의 앨범에 균등한 무게로 담아낼 수 있는 목소리, 고유한 색깔을 지닌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부터 감미로운 느낌까지 다양하게 창조해낼 수 있는 그녀의 목소리에 너무 감탄한 나머지, 나는 그녀를 단순히 ‘보컬리스트’로서만 정의내리는 우를 범했다. 그녀의 첫번째 정규 솔로 앨범인 <수잔>은 이러한 나의 편견이 틀렸음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녀는 보컬리스트 이전에 훌륭한 송라이터고, 훌륭한 송라이터 이전에 확고한 자기애와 주체성을 가진 페미니스트며, 페미니스트 이전에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이고, 매력적인 인간이다.

<수잔>에서 김사월은 김해원과의 협업에서 물려받은 유산을 애써 거부하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포크를 바탕에 두고 전형적인 가요의 형식부터 엠비언트적인 요소의 도입까지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운드에서 다양성을 획득한다. 그녀의 음악은 확실하게 짚어주는 후렴구의 멜로디와 세심한 변주로 인한 형식적 의외성이 조화롭게 어울리며 청자가 매 곡마다 갖는 ‘기대’를 보다 용이하게 이루어지게끔 도와주는데, 이 ‘기대’는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다. 포크라는 장르는 아티스트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가장 유용한 형식이다. 나는 김사월이 이 지점에서 대단한 성취를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포크의 본질적 요소를 외면하지 않은채, 2015년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슬기롭게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절묘한 균형감만큼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은채 주체성을 획득한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며(“꿈꿀 수 있다면 어디라도”) 쉽게 멀어지지도 못하지만(“새”),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향기”) 헤어진 상대에 대한 연민의 정과 배려를 잊지도 않는다(“존”). 더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 획득해야 할 위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만 그 화법은 무척 현명하다.  이와 동시에, 대상화되는 여성에 대한 시각 역시 사려깊고 냉철하다(“수잔”, “젊은 여자”).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을 잃지도 않고, 더 나아가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성성이라는 거대담론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않고 확장시킬 수 있는 아티스트를 그녀 이전에 몇이나 접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솔직하고, 욕망하며, 좌절하고, 깨닫는, 성장하는 인간이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경험을 타인과 나눌 수 있는 현명한 사람이며, 이러한 이야기에 어울리는 형식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좋은 뮤지션이다.

몇년 전 나온 이랑의 <욘욘슨>이 개인주의자적 시선을 담지하는 유쾌한 선언이었다면, 김사월의 <수잔>은 주체적인 여성이 세상을 품을 때 탄생할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올해 마지막으로 발견한 올해의 음반이 될 것 같다. 오랫동안 기억되어야 할 음반이다.

gravity

지난 일요일 아침, 회사 야구 동호회에 불려가서 몸을 좀 움직이다가 허리를 다쳤다. 쌀쌀한 기온에 비까지 으슬으슬하게 내려 몸이 많이 굳어 있었던 것 같다. 나름 열심히 몸을 푼다고 풀었는데, 그냥 평범한 레이업을 올라가다가 팝! 소리와 함께 무릎이 나간 데릭 로즈의 경우처럼, 부상은 그것과 상관없이 찾아오나보다. 한동안 몸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지 못했고, 덕분에 구급차 신세를 지고 응급실에서 주사까지 맞았다. 함양에 계신 어머니에게 급하게 도움을 요청했고, 종합병원과 한의원을 오가며 받을 수 있는 치료는 다 받았다. 사고 후 사흘이 지난 어제가 되어서야 어머니는 다시 시골로 내려가셨고, 나흘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비로소 나는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허리에 전해지는 통증은 상습적이긴 하지만 참을만 하다. 한시간 쯤 앉아 있다 보면 그 통증이 심해져 다시 침대에 몸을 누여야 하지만, 어쨌든 혼자 음악을 틀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차려 먹고, 빨래를 하는 등의 일상생활이 뒤뚱거리는 우스꽝스러운 동작 속에서도 어찌어찌 다시 가능해졌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지난 며칠동안, 중력의 존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취하는 동작들 중 아주 많은 것들이 허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기도 했다. 지구에 비하면 먼지보다 가벼운 내 몸을 일으켜세우는 동작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좁게만 느껴졌던 집도 엄청 커보였다. 아무리 걸어도 화장실에 도착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무언가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다시는 주울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1리터가 조금 넘는 생수통 하나도 너무 무거워 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모든 신경이 허리에 집중되어 있어서 그런지,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맛있는(하지만 내겐 헤비하기도 한) 음식을 세 끼 다 받아 먹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음에도 살이 전혀 찌지 않았다. 덕분에 회사도 나가지 않아 육체적으로는 아주 잘 쉬고 있지만, 가만히 누워 할 수 있는 일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외에 딱히 많지 않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라기도 했다. 책을 읽으려면 고개를 들거나 팔을 들어야 하는데 이 두 동작 모두 많든 적든 허리에 부담을 주었다. 가벼운 스마트폰 하나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가만히 낭비하고 있자니, 오디오 앞으로 걸어가서 음악 하나 틀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얼마나 작은 차이 하나로 그러한 삶 속으로 편입될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이번 사고도 결혼과 연결지으셨다. 놀랍지도 않았다. 여자친구라도 있었으면 일요일 아침 야구 따위를 하러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만에 하나 야구 도중 똑같은 부상을 당했다고 해도 지금보다 훨씬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는 명쾌하고 반박하기 힘들었다.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아보이는 서울에서조차 혼자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음을 적지 않게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택배 하나를 받으려고 해도, 막힌 수도관을 뚫으려고 해도 9시부터 6시까지 부재중인 직장인에겐 다른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전세자금대출같은 정책적인 혜택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한국은 여전히 가족, 그것도 남자와 여자의 법적 혼인관계로 생성된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이 갖는 이점이 상당한 구조의 나라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 점이 우려스럽기 때문에 나에게 결혼을 종용하고 계신 것인지도 모른다. 더 늙기 전에, 이런 우스꽝스러운 사고가 더 빈번히 일어나기 전에 어서빨리 ‘동반자’를 하나 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당하고 상식적이다. 나 역시,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런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늙은 어머니를 며칠동안 고생시키면서 룸메이트라도 하나 구해야 하나 싶었다. 결국 내 개인공간을 침범당하기 싫다는 병적인 고집을 스스로 꺾을 수 없어 이내 포기하긴 했지만, ‘늙은 나이까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게 된 것만큼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대학원 졸업 당시에는 당연히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 소도시로의 이주같은(노스 다코타나 미주리같은), 아주 외딴 곳으로 홀로 걸어들어가는 시나리오는 이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외로움같은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너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지구라는 중력 외에 다른 어떤 끌림을 거부하지 말았어야 하는가,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끌림과 어울림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지구로부터 받는 중력을 거부할 능력 따위는 없지만, 최소한 수평적으로 존재하는 또다른 중력 안에서 행복을 창조하고 발견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 중력의 영향을 애써 부정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됐다.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별을 중심으로 일정한 궤도를 도는 또다른 별들은 중력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너무 가깝게 다가가려 하지도 않고, 영원히 작별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계속 영향을 주고 받는다. 우리 지구가 달을 붙잡아두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의 삶에서 달이 묵직하게 계속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력도 그 정도가 어떻겠나 싶다. 극단적으로 가까워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멀어져 가지도 않는, 꽤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서로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그 정도의 관계. 물론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 어찌 그렇게 완벽하게 존재하는 해답처럼 단단히 고정되어 버릴 때가 있던가. 어제 본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의 가여운 여자와 남자처럼, 지나치게 가까워졌다가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기도 하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마음의 변덕스러움이다. 그래서 힘들고 그래서 재밌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으로 숨어버리지 않는 것이다. 중력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보면, 결국 어디에도 이끌리지 못하고 어둠속을 영원히 헤매는 인공위성의 파편 조각 정도로 늙어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기는 싫다. 이번 사고를 당한 뒤 약간은 변한 나의 마음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