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워진 나의 마음

요즘 마음이 많이 어지럽고 삶이 버겁다. 일은 할 만 하다.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야근도 거의 매일 하고 있지만, 그만큼 나도 일이 손에 익은터라 스트레스나 긴장감은 입사 초기만 못하다. 야근을 하면 저녁밥을 공짜로 주니 식비도 거의 들지 않는다. 아침 대신 먹는 요거트와 우유, 오렌지쥬스 정도가 요즘 거의 유일한 식비 비출 내역이다. (물론 점심값과 커피값은 많이 나간다!) 그렇게 꾸역꾸역 돈도 쌓이고 있다. 음악도 여전히 감사히 잘 듣고 있다. 예전처럼 구입한 모든 음악을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출퇴근길 이어폰과 퇴근 후 오디오에서는 음악이 항상 흘러나온다. 영화도 가끔 본다. 어제는 허우샤오시엔의 신작 <자객 섭은낭>을 봤다. 허우샤오시엔은 여전히 삶의 작은 조각들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감사했다. 밥도 잘 먹고, 일도 잘 하고, 돈도 잘 모으고, 음악도 잘 듣고 있다. 가끔 영화도 본다.

사람에 너무 부대끼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밖까지 관계가 확장되어 버렸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어리석다. 유학기간동안 관계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일까, 꼭 그랬던 것도 아닐텐데, 어쩐지 나는 여전히 성장을 하지 못한채 못나고 추한 모습으로 관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과정은 서투르고, 헤어지는 과정은 이기적이다. 비단 연인관계에 한정지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쓸데 없는 상처를 주고,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상처를 받는다.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정제할 능력은 없고, 생각은 늘 남들보다 느리게 돌아간다. 이제는 누가 좋은 사람인지, 누가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인지 구분을 할 자신도 없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누군가에게 의해 험담의 대상이 되며, 누군가에 의해 실제 존재하는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이해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폭력을 가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며, 누군가의 생활에 침범한다. 나는 남들만큼 자유자재로 타인을 투사하고 조제할 능력이 없다. 늘 내 문제로 고민할 뿐인데, 이곳의 사람들은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보여주고 싶은 것, 들려주고 싶은 것을 내 안에 쑤셔 박는다. 그걸 어떻게 거부해야 할지도,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수정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어리버리거리다가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뜯어 먹히고 지친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그래서 얻는 것은 거의 없다. 굉장히 공허하다.

유학 가기 전부터 알고 지낸 오랜 친구들부터 나에겐 너무나 새로운 세계인 직장에서 하루종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료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새롭게 알게 된, 또다른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던 친구들까지, 이들 중 노골적으로 나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정에서, 조직에서, 그룹에서 소중한 존재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악하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기 입으로 착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 누구도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손가락질당할 사람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나의 시간과 공간을 번갈아가며 공유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체계적으로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지는 않는다. 그걸 챙겨야 하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인데, 나는 지금도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들을 내 삶에서 완전히 떼어놓을 수도 없다. 내 호흡, 내 리듬을 얼른 찾아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지난해 6월 이후 단 한순간도 이걸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게 몹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