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vrches: Every Open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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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발매 전 선공개되었던 트랙들에서 느꼈던 당혹스러움에서 벗어나 침착하게 반복해서 듣다 보면, Chvrches의 소포모어 앨범 <Every Open Eye>는 그렇게 나쁜 앨범이 아니다.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꽤 들을만한 신스팝 앨범임을 확신하게 된다. 로렌 메이버리의 보컬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처치스 특유의 착착 감기는 박자 감각도 여전하다. 모두가 사랑하는 코러스 라인도 더 풍성해졌으면 풍성해졌지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아쉽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아쉽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조금 더 미묘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건 세 멤버가 이 앨범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에 기인한다. 이들의 데뷔 앨범에서 우리가 느꼈던 희열은 단순히 ‘또 하나의’ 통통 튀는 여성 보컬을 앞세운 인디 신스팝 밴드의 출연때문은 아니었다. 이들을 M83같은 선배들, 그리고 퓨어리티 링이나 패션 핏같은 동세대 경쟁상대들과 구분지었던 지점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진보적이며 진취적인 ‘태도’에 있었다. 메이버리의 페미니스트적 가사와 밴드의 딱딱 씹어대는 사운드는 절묘한 합치점을 찾아냈다. 그 황금률 안에서 단지 페스티벌에서 방방 뛰기 위해 존재하는 음악보다 조금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이 되었고, 너무 깊게 가라앉지 않고도, 어깨를 들썩거리면서도 충분히 사유할 수 있는 ‘꺼리’를 던져주는, 절묘한 위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들이, 이번 앨범에서는 꽤나 많이 보수적이 되었다. 이건 ‘공격적’에서 ‘방어적’인 변화도 아니고, ‘영’에서 ‘올드’한 변화도 아니다. 당연히 ‘젊음’에서 ‘완숙’으로의 변화도 아니다. 데뷔 앨범을 위해 너무 많은 공연을 소화한 탓일까, 그래서 지친 걸까. 메이버리의 가사는 나이브하게 착해졌다. 이유 없이 껴안으려 하고 생각 없이 이해하려 한다. 그러니까 ‘어두움’에서 ‘착함’으로의 변화도 아니다. 덩달아 사운드 역시 데뷔 앨범에서 이미 충분히 선보였던 장점의 의미없는 반복일 뿐으로 들린다.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닌, 장점을 그냥 다시 한번 다른 소스를 입혀서 재생시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보수성덕분인지(혹은 때문인지) 퓨어리티 링과 디스클로저, 패션 핏의 소포모어 앨범이 완전히 망해버린 것과 달리 처치스의 소포모어 앨범은 형식적인 면에서 충분히 구제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디페쉬 모드나 팻 샵 보이즈와 같은 대선배들의 진화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든 위치로 떨어져 버렸다. 메이버리는 데뷔 앨범에서 마돈나, 혹은 신디 로퍼의 페미니스트 버전으로 존재했다. (우리가 그녀를 여신으로 떠받는 이유다!)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인문학적 재능을 창조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재능 넘치는 신스팝 밴드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페스티벌용 밴드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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