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irut: No No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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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루트의 음악을 그다지 많이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물론, “가짜 집시 미국인이 만든 가짜 집시 음악”같은 일차원적 이유때문은 아니다. 집시 음악이라는 형식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는 편이었고, 오히려 빈틈 없이 꽉꽉 채워 넣으려는 잭 콘돈의 사운드메이킹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새 앨범 <No No No>는 참 좋게 들었다. 이유는 먼저 구조적으로 많이 단순해졌기 때문이고, 그래서 콘돈 특유의 ‘심금을 건드리는’ 어떤 지점이 더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베이루트의 음악에서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는 부분이었고, 그것이 이들의 과거 어떤 앨범들보다 조금 더 확실하게 드러나서 참 좋은 것 같다. 많은 악기들이 나누어가졌던 사운드의 중심을 키보드로 단일화시킨 점도 마음에 든다. 러닝타임이 너무 짧다는 단점은 오히려 그걸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가는 듯한 앨범의 곡 구성에서 충분히 가려진다. 짧고 쉽게, 힘 빼고 자연스럽게, 단순하지만 단단하게, 나는 이 앨범을 그렇게 들었다. 아름다운 앨범의 자켓만큼이나 충분히 여유롭고 원숙해진 것 같아 참 좋다. 이건 “No No No”에서도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질질 끌지 않고, 사족 전혀 붙이지 않고 깔끔하게 딱 끝낸다.

Beach House: Depression Cherry

Depression_CherryBeach House가 이번 앨범 <Depression Cherry>의 제작과정에 대해 “인디 시절 감성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했다. 악기 수를 최대한 줄였고, 기교도 최대한 자제했다”고 이야기한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었다. 그 인터뷰 기사 이후 이 앨범에 대한 기대가 확 올라갔던 것 같다. 전작 <Bloom>은 분명 좋은 앨범이었지만, 오버그라운드 데뷔작 <Teen Dream>의 성공에 의해 지나치게 hype된 나머지 조금은 산만하고 장황하게 진행된 감이 없지 않아 드는 음반이었다. 비치 하우스는 섬세한 음악을 하는 밴드이고, 그래서 더더욱 이렇게 재빠르게 원래의 감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한다는 소식이 반갑게 들렸다.

<Depression Cherry>는 그러한 밴드의 의도를 십분 반영한, 비치 하우스 원래의 감성과 색깔을 회복한 수작이다. 첫 곡 “Levitation”부터 <Teen Dream> 시절의 감성이 물씬 풍겨져 나온다. 우리가 흔히 ‘소녀 감성’이라고 카테고라이징하는 그 감성의 미국판이라고 생각하는데, “너와 나/ 우리의 금빛 긴머리/ 우리가 함께 느꼈던 그날 밤 이후/ 나는 너와 어디라도 함께 갈 수 있을 것만 같았어/ 너를 꼭 데려가고 싶었던 곳이 있는데/ 기차가 오면 너의 손을 잡고/ 왜냐하면 넌 내 마음을 훔쳐갔으니까/ 하늘로 함께 떠오를거야”같은 가사가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혼성 듀오의 잔잔한 사운드 위로 펼쳐지면 나도 함께 하늘로 떠오를 것만 같다. 물로 난 딱 1cm 정도만. 무거우니까. 찌들었으니까.이들이 단순히 과거로 회귀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Sparks”같은 곡에서는 이들 고유의 감성을 잘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를 실험하고 있으며, “Days of Candy”는 (아마도) 이 밴드가 더 진화할 수 있다면 그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아주 새로운 느낌의 트랙이다.

드립팝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머리를 산발한 채 자기 신발을 보면서 연주한다고 다 슈게이징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가사를 희미하게 중얼거리며 흐리멍텅하게 관중을 쳐다본다고 드립팝이 되는 것도 아니다. 듣는 이로 하여금 꿈을 꾸게 만들거나, 최소한 꿈을 꾸고 싶게끔 만드는 음악들이 있다. 우리 삶의 어느 한 순간을 거의 완벽하게 되살려내며 심리적 공감대를 극단적으로 확장시키는 ‘순간의 음악’이 있다. 그냥 몽롱한 사운드 그 자체로 완성되는 드림팝은 없다. 비치 하우스는 연약하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그래서 쉽게 더렵혀질 수 밖에 없는 그 시간을 노래하는 밴드다. 아름다운 사운드와 그 이야기가 어우러져서 비치 하우스를 좋은 드림팝 음악으로 기억하게끔 만든다. 이 앨범이 발매된 직후, 밴드는 놀랍게도 바로 후속작을 발표했다. 한 해에 두개의 신작을 접하게 되다니, 올해는 운이 좋다.

Chvrches: Every Open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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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발매 전 선공개되었던 트랙들에서 느꼈던 당혹스러움에서 벗어나 침착하게 반복해서 듣다 보면, Chvrches의 소포모어 앨범 <Every Open Eye>는 그렇게 나쁜 앨범이 아니다. 오히려 들으면 들을수록 꽤 들을만한 신스팝 앨범임을 확신하게 된다. 로렌 메이버리의 보컬은 여전히 사랑스럽고, 처치스 특유의 착착 감기는 박자 감각도 여전하다. 모두가 사랑하는 코러스 라인도 더 풍성해졌으면 풍성해졌지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아쉽다고, 그것도 아주 많이 아쉽다고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조금 더 미묘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건 세 멤버가 이 앨범에서 취하고 있는 ‘태도’에 기인한다. 이들의 데뷔 앨범에서 우리가 느꼈던 희열은 단순히 ‘또 하나의’ 통통 튀는 여성 보컬을 앞세운 인디 신스팝 밴드의 출연때문은 아니었다. 이들을 M83같은 선배들, 그리고 퓨어리티 링이나 패션 핏같은 동세대 경쟁상대들과 구분지었던 지점은 이들이 가지고 있던 진보적이며 진취적인 ‘태도’에 있었다. 메이버리의 페미니스트적 가사와 밴드의 딱딱 씹어대는 사운드는 절묘한 합치점을 찾아냈다. 그 황금률 안에서 단지 페스티벌에서 방방 뛰기 위해 존재하는 음악보다 조금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이 되었고, 너무 깊게 가라앉지 않고도, 어깨를 들썩거리면서도 충분히 사유할 수 있는 ‘꺼리’를 던져주는, 절묘한 위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들이, 이번 앨범에서는 꽤나 많이 보수적이 되었다. 이건 ‘공격적’에서 ‘방어적’인 변화도 아니고, ‘영’에서 ‘올드’한 변화도 아니다. 당연히 ‘젊음’에서 ‘완숙’으로의 변화도 아니다. 데뷔 앨범을 위해 너무 많은 공연을 소화한 탓일까, 그래서 지친 걸까. 메이버리의 가사는 나이브하게 착해졌다. 이유 없이 껴안으려 하고 생각 없이 이해하려 한다. 그러니까 ‘어두움’에서 ‘착함’으로의 변화도 아니다. 덩달아 사운드 역시 데뷔 앨범에서 이미 충분히 선보였던 장점의 의미없는 반복일 뿐으로 들린다.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아닌, 장점을 그냥 다시 한번 다른 소스를 입혀서 재생시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러한 보수성덕분인지(혹은 때문인지) 퓨어리티 링과 디스클로저, 패션 핏의 소포모어 앨범이 완전히 망해버린 것과 달리 처치스의 소포모어 앨범은 형식적인 면에서 충분히 구제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디페쉬 모드나 팻 샵 보이즈와 같은 대선배들의 진화과정을 따라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힘든 위치로 떨어져 버렸다. 메이버리는 데뷔 앨범에서 마돈나, 혹은 신디 로퍼의 페미니스트 버전으로 존재했다. (우리가 그녀를 여신으로 떠받는 이유다!)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인문학적 재능을 창조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재능 넘치는 신스팝 밴드가 그저 그런 ‘또 하나의’ 페스티벌용 밴드로 전락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 같다.

Gwenno: Y Dydd Ol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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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적힌 앨범 제목을 보는 순간 ‘흔한’ 제 3세계 음악인줄 알았다. “y”라는 글자 하나때문에 당연히 라틴-스패니쉬 계열이라고 넘겨 짚었고, 그래서 ‘음, 역시 지중해 기운이 느껴지는군’이라는 편견의 끝을 달리기도 했다. 정작 이 예쁜 데뷔 앨범을 만든 이는 Gwenno Saunders라는 이름을 가진, 웨일즈 카디프 출신의 여성 아티스트다.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 중 9곡은 Welsh, 즉 웨일즈 지방 언어로 만들어졌고, 한 곡은 Cornish라는 또 다른 언어로 녹음이 되었는데, 이건 현재 약 600명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웨일즈 지역의 특색을 잘 살렸던 음악으로 우리가 알만한 아티스트는 Gorky’s Zygotic Mynci 정도가 있을 것이다)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자신의 데뷔 앨범을 꾸민 이 대담한 작업의 목적이 영국과 영어라는 거대한 문화권력에 지배당하고 잠식당하는 소수언어/문화 공동체의 존재 의의를 알리는 것이라고 하고, 이 앨범 자체가 이러한 문화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길 바란다고 하니, 어쩌면 Gwenno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인물일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입장은 알아들을 수 없는 Welsh어로 적힌 가사에서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I can only apologize for feeling the frustration/ Young and ambitious in a minority culture/ I joined the middle but it didn’t really impress me.”) 이러한 시도에 정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칠하고 아름답게 채색된 사운드 그 자체다. 아마도 올해 들었던 칠아웃-팝 계열 음악들 중 가장 시원하고도 청량한 기운을 선사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그녀의 음악은 가사를 음미하지 못한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푸른 산호빛으로 가득차있다. 올 해 여름 내 주변의 온도를 1도쯤 낮추어준 음반이다.

Speedy Ortiz: Foil D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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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 <Major Arcana>에서 확인할 수 있는 Speedy Ortiz 사운드의 가장 큰 장점은 ‘싱싱함’이다.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펄떡이는 사운드를 스튜디오로 가져왔고, 그렇게 나흘만에 녹음된 거칠지만 살아있는 사운드는 (raw하다는) 지적보다는 (lively하다는) 칭찬을 더 많이 받으며 이들이 성공적으로 씬에 안착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이들의 사운드는 90년대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얼터너티브록부터 2000년대 중반 이후 씬에서 그 세를 더해온 인디팝/록 사운드까지 골고루 섞여 있는, 기타를 기반으로 한 ‘맛있는 잡탕밥 록’에 가깝다. 이 밴드가 가진 장점은 귀가 지루하지 않게 신나는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 접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 역시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 밴드가 굳이 아니어도 이런 음악은 많이 들을 수 있는데, 각각의 곡들이 하나의 굵은 실로 꿰어지지 않는다면 밴드의 존재의의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두번째 앨범 <Foil Deer>는 바로 그 중요한 질문, 밴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서가 무엇인지 확실히 제시하는 힘 있고 단단한 앨범이다. 이 앨범은 한달만에 녹음되었다. 데뷔 앨범 작업기간에 비하면 많이 늘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속전속결, 밴드 특유의 라이브한 에너지를 응집하면서도 데뷔 앨범에서 지적되었던 산만함을 제거하기에는 오히려 더 적절한 길이의 기간인 듯 보인다. 스피디 오티즈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음울하면서도 신나는 분위기의, 90년대의 감성과 2010년대의 감성이 묘하게 뒤섞인 사운드가 다양한 장르를 기반으로 펼쳐진다. 다이노서 주니어부터 빌리 브랙, 스톤템플 파일럿까지 연상되는 육중한 기타 사운드에 보컬 Sadle Dupuls의 여리지만 당찬 목소리가 합쳐져 조금 더 ‘스피티 오티즈다운’ 색깔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살을 더하는 것은 메시지다. Dupuls는 데뷔 앨범을 내고 이 앨범을 녹음하기 전까지 문학(시)을 공부했고, MFA를 받았다. 그녀가 이번 앨범의 가사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사회 속에서의 여성성이다. 이제 밴드는 그냥 단순히 쇳소리나는 기타 사운드에 가녀린 여성 보컬리스트를 ‘끼얹은’ 또 하나의 인디팝/록 밴드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씬에서 가장 강한 페미니스트적인 목소리를 내는 여성주의 밴드로 재탄생했다. 들쭉날쭉했던 장르간 이종교배를 기타팝/록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밴드의 색깔을 확고히 하는 메시징 작업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으니, 지금까지 들어온 스피디 오티즈의 음악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