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의 손수건

몇년전에 돌아가신 큰아버지는 신부님이었다. 한 교구를 책임지는 주교의 보좌역인 몬시뇰까지 올라가셨으니, 큰 아들과 두 딸을 성직자로 키우실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퍽 큰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가톨릭의 사제와 수녀, 수사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지낸다. 가족에 속하지 않고 교회와 사회, 그리고 신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는 서약을 하기 떄문이다.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전통을 거스르는 결정인지라 내적 갈등도 많을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신학생은 결국 한 여자를 잊지 못해 신학교를 나와 일반인이 되어 결혼을 택했다. 군대 후임이었던 다른 신학생은 술자리에서, “그냥 여자 손 한번 잡아봤으면 좋겠다. 그게 어떤 느낌인지 너무 궁금하다”고 털어놓았다. 큰아버지에게는 그런 사연이 하나도 없었을까? 궁금했다. 큰아버지께서는 말년에 몸이 많이 쇠약해지셔서 은퇴 후 시골에서 요양을 하셨는데, 그 무렵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들은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신학교로 진로를 정하신 큰아버지는 청소년 시절에도 성당 활동에 열심이셨다. 당시 함께 성당 활동을 하던 어떤 소녀가 있었다. 큰아버지 못지 않게 신실했던 그 분 역시, 큰아버지와 뜻을 함께 하여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셨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질 것이 두려웠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때문이었는지, 그 분은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끊고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폐쇄수녀원에 들어가기로 결정하셨다.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다. 가족조차. 그렇게 두 분은 영원히 헤어지셨다.

내 아버지는 어릴적 큰아버지를 무척 따랐는데, 가끔 방학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얼굴을 비추어주시는게 그렇게 좋았단다. 그 때 큰아버지가 쓰시던 책상 서랍에는 손수건 한장이 곱게 접어져 있었고, 그 손수건은 고등학교 졸업부터 신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사제가 되고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날, 큰아버지께서는 우연히 그 폐쇄수녀원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문득 생각이 났으니 얼굴이나 한번 볼 수 있을까 들렸다. 하지만 그 분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건강히 잘 지내시고 나중에 다른 세상에서나 만나 인사하자는 말을, 문지기 수녀님이 전해주었을 뿐이다.

내가 들었던 큰아버지의 일화는 이렇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테일러 커피: 플랫 화이트

FullSizeRender 2최근 테일러 커피 본점이 임대차 재계약을 무사히 마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최소한 2년은 같은 자리에 있는 테일러 커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홍대와 그 주변을 90년대 후반 무렵부터 지켜보면서, 진취적이고 용감한 분들이 애써 가꾸어 놓은 소중한 공간이 부동산이라는 무지막지한 돈놀이를 감당해내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모습을 너무 많이 지켜봐 왔기에, 제발 이 곳만은 그런 방식에 의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테일러 커피는 내가 “단골”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로컬, 스페샬티 커피숍이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것이, 단골이라 하면 매일같이 들려서 그곳을 지키는 분들과 가족처럼 지내야 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나는 요즘 홍대와 집이 조금 더 멀어졌다는 핑계로 몇주에 한번 겨우 찾아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가련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용기를 내어 “단골”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이곳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는 거의 유일한 전문 커피숍이기 때문이다. 내가 외롭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곳에서 내어주는 음료를 마시며 힘을 내고 기운을 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와 희망을 안고 찾아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을 잘 알지도 못하고, 아까 썼듯 자주 찾아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테일러 커피 본점이라는 공간을 사랑하고, 그 공간에서 우러나오는 커피와 그 향기를 사랑하며,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흥미롭다. 워낙 커피맛으로 유명한 곳인지라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 ‘로컬’ 특유의 색깔은 의외로 희미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이 곳이 홍대 스페샬티 커피숍의 오리지널리티를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그곳을 거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는 커피,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이곳에서 내어주는 플랫 화이트를 가장 좋아한다.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였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몹시 피곤했다. 눈이 시뻘개질 정도로. 하지만 이상하게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집에 가면 뻔한 저녁일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그날만큼은 그 과정을 밟기가 싫었다. 그래서 무작정 테일러 커피로 향했다. 손에는 책조차 들려 있지 않았다. 책도 없이 커피숍에 가다니! 그런 미친 짓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날 해보았다. 그곳에서 플랫 화이트를 시켰고, 마셨다. 입술 끝에서부터 부드러움이 밀려 들어왔다.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눈물이 찡 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날은 몹시 힘든 날이었고, 일주일의 한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던 평일 저녁이었다. 나는 빈속이었고, 카페인에 몹시 약한 탓에 저녁에는 절대 커피를 마시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그 한잔의 플랫 화이트는 정말, 정말 맛있었다. 그리고 몹시 고마웠다. 나는 ‘위로의 언사’를 신뢰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무언의 고통과 슬픔을, 타인이 단어와 낱말과 문장으로 위로해준다는 것이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그날 그 한잔의 플랫 화이트는 지치고 피곤한 나를 아무말 없이 너무나 잘 위로해주었다.

테일러 커피의 플랫 화이트는 어떤 바리스타가 어떤 날씨에 만들든 늘 일정한 맛을 보여준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부드러움과 코와 혀를 자극하지 않는 연한 향, 그러면서도 목구멍 저 너머까지 충실하게 채워주는 풍부한 맛. 마실 때마다 항상 만족하고,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이건 집에서 절대 만들지 못한다. 내가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최선의 커피는 좋은 원두로 내린 핸드 드립 정도일까. 하지만 프렌치 프레스나 드립커피같은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절대 채워주지 못하는, 깊은 여운이 느껴지는 커피가 있다. 테일러 커피의 플랫 화이트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깊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