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공공장소

지난 6년동안 한국과 나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맹렬하게 멀어져갔지만,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깝게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빠른 시일내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보이는 것들, 혹은 그동안 상당부분 잊고 있었지만 요즘들어 꽤 자주, 절실하고도 새롭게 깨닫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나 연구실이나 집에서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동안, 나는 잘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와 끊임없이 마주치고 헤어진다. 1초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서로를 스쳐갈 수 있고, 이 정거장부터 저 정거장까지 이삼십분 정도의 시간동안 바로 옆에 앉아 서로의 체취에 익숙해질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이들 중 대부분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허락을 구하지 않은채 신체적 접촉, 혹은 신체적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데, 당연히 나에게 불쾌함을 선사한 뒤 사과를 하지도 않는다. ‘공공장소에서의 개인공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들중 그 누구도 이러한 공공장소에서의 개인공간의 침범행위가 예의에서 어긋나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요즘 지하철에서 공익광고를 한참 진행하고 있는 대중교통 이용시 백팩 위치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백팩 사용자들은 왜 자신이 버스나 지하철에 탑승할 때 백팩을 벗어서 손에 들거나 바닥에 내려 놓아야 하는지 이해하거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경험의 축적이나 교육의 부재같은 표면적인 요인들보다 조금 더 깊은 층위에서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즉, 한국인의 기본적인 사고과정이 왜곡되어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장면들이 너무 많이 목격되는 것이다. 이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에 대해 사고할 때 그 출발점을 ‘나 자신의 편의’로 삼는다. 즉,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빨리, 편안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 혹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을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독점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혹은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비추어질지에 대한 고려는 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진다.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암묵적인 ‘룰’ 자체가 그런식으로 형성되고 축적되다 보면, 선한 의도를 가지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이들이 지속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문고리를 잡아주는 경우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한국인들은 공공장소에서 문을 열때 무조건 민(push)다. 절대 잡아 당기지(pull) 않는다. 문 반대편에 서 있는 상대방이 다칠 수 있음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이 나아가는 방향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간혹 문고리를 잡아당겨 열고 뒷사람이 그 문고리를 이어 잡기까지 문을 지지하고 있다 보면, 그 뒤에 들어오는 사람 중 거의 대부분은 혼자 먼저 빠르게 그 문을 빠져나가버린다. 한 사람의 선의가 다른 사람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돌고 도는 선순환이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슬퍼진 것일까?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나는 뉴욕이나 런던, 도쿄, 빠리, 시카고, 샌프란시스코와 같은 서울과 대등한 규모의 대도시들에서, 서울사람들이 가진 무례함과 동등한 수준의 예의범절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더 심하면 심했지 약하지는 않다. 한국인은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예의 없는 사람들로 찍혀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국가적 ‘예의없음’은 생각보다 심각한 거시경제적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가진게 인적자본밖에 없는 나라에서 ‘내수’의 대부분은 아마도 외국인들의 방문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지출하는 비용은 상수다. 이들의 주머니를 쥐어짠다고 해서 그것이 내수진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이 좋아서, 서울이 좋아서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이곳에 머물면서 쓰고 가는 돈,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실질적인 내수다. (중국인 방문객이 원화로 명동에서 화장품을 사면 이것이 수출로 잡히는가, 국내소비로 잡히는가? 간단한 문제다) 외국인이 한국에 왜 방문하는가? 뚜렷한 사계절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건물과 사람때문이다. 멋진 건물들이 들어찬 도시에서 구경을 하고, 그 나라 사람들이 만드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그 나라 사람들이 품고 있는 문화를 향유한다.(그 문화가 상품의 형태로 존재하든, 무형의 공기처럼 떠돌아다니든 상관없다) 그것이 타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거의 유일한 이유다. 한국의 도시는 어떠한가? 세계에서 가장 근본 없고 계획 없는 스카이라인을 가지고 있는 유리와 철골 덩어리들뿐이다. 사람은 어떠한가? 음식은 먹을만한가? 자랑스럽게 내놓을만한, 발전시킨 문화는 있는가? 다른건 다 떠나서, 영어라도 잘 할줄 아는가? 답이 너무 궁색해진다. 내가 외국인이라면 굳이 이 나라에 방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한국인이 열등해서? 아니다. 한국인은 매우 뛰어나다. 단지 그 뛰어난 재능이 남을 깎아내리고, 남을 모방하며, 규칙을 파괴하고, 규칙 밖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쪽으로만 쓰이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겁이 많아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눈을 마주치지 않고도, 어깨를 부딪히고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고도 아주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를 풍성하게 가꾸고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필요성은 느끼지 못한채, 현재에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위치를 점하는 것에 더 큰 희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둔감하나 자신의 고통은 크게 부풀려 조금의 이익이라도 더 취할 수 있다면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 행위에 대해 한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으나, 헐뜯기를 좋아하며 짜증을 내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난 1년동안 공공장소에서 목격한 한국인들은 이런 모습이었다.

이들은 공공장소에서는 모두 괴물이지만, 각자 소중한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의 아버지나 어머니이기도 하고, 나의 할아버지나 할머니이기도 하다. 이들이 집에서도 가족들의 어깨를 치고 다니며 찌푸린 표정을 지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다. 그런면에서, 더더욱, 이들에게 이기적이라는 또하나의 죄명을 추가해야 한다.

나는 이들과 같아지는 것이 싫다. 그래서 내가 배워온, 최소한 현재의 한국사회보다 공중도덕에 있어서만큼은 선진적이라고 스스로 판단한 그 문화를 한국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지난 1년동안 그렇게 남들처럼 다르게 행동해도 나에게 돌아온 피해는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소위 말하는 교통강자이기 때문이다. 덩치가 큰 젊은 성인 남자. 흑인이나 동남아인같은 유색인종도 아니다. 그 누구와 어깨를 부딪혀도 밀려나지 않으며, 혹여나 내가 잘못한 행동을 해도 거칠게 따질 수 있는 사람도 적을 것이다. 그것을 이용한적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조심해야했다. 그렇게 비추어질 수 있으니까. 험하게 운전하는 버스기사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공익광고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지 말기같은 경제적 유인 제공에 실패한 정책까지도)은 하지 않고,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와 같은 말을 먼저 해서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을 최소화하고, 가게 점원부터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까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대화해주는 것. 굉장히 쉬운 일이며 아주 적은 에너지만을 소모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경우 타인의 하루를 조금씩 더 즐겁게 만들어줄 수 있는 행동들이다. 모두가 조금씩 양보한다면, 모두가 더 행복해질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조금씩 더 이기적이 된다면, 당장의 이익은 조금 늘어날지 모르지만, 모두가 조금씩 더 불쾌해질 것이다. 한국의 공공장소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빠져있다.  매 순간 실패하며 살고 있다.

2 thoughts on “지난 1년: 공공장소

  1. 여유가 없어서 그런거같아요. 뒤를 보지않고, 옆도 보지않고, 사람들이 앞만, 그것도 자기 갈길만 보면서 무작정 빨리 달리려고만 하기 때문에 그런것 같아요. 쓸데없는 데 오지랖 떨지 말고, 이런데에 신경을 쓰는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런 저조차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않긴 하죠. 공공장소에서 문을 당기는 것. 잘 참고하겠습니다~

  2. 제가 늘 생각하고 화가나는 점들을 속시원하게 써주셨네요. 가래침과 담배꽁초가 한국보다 많은 타국의 거리는 본적이 없네요. 왜이렇게 타인에게 배려가 부족할까요… 그런데 무서운건 어느새 나도 비슷해지고 있는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저라도 남탓하기 전에 먼저 반성해야겠어요~ㅠㅠ아 자야하는데 올리신 글들이 구구절절 공감되어서 멈출수가 없네요. 긴글 잘 못읽는데 말이죠. 가끔 같은 한국말인데도 너무 유식(?)하게, 혹은 추상(?)적으로 쓰셔서 배움이 모자른 저로선 읽기 힘든 글들이 많은데요, 님의 글은 참 흥미롭게 읽히네요. 아무래도 솔직하시기 때문인거같아요. 음악도, 글도 진정성이 중요하군요 ㅎ 수프얀 리뷰도 잘 읽고 갑니다! 아이쿠 제가 야밤에 폭풍리플을 달고 가네요~ㅋ 아무튼 우리라도 모범적인 시민이 되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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