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me Impala: Curr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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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의 서쪽 끝에 자리잡은 도시 Perth는 언뜻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제대로된 길조차 허락하지 않을 것같은 기세로 광활하게 펼쳐진 내륙의 사막지역이 동남부의 큰 도시들과 이 도시를 확고하게 단절시켜 놓는 것처럼 보인다. 지리적으로는 물론 그럴 수 있다. 아마도 비행기를 타야만 시드니나 멜번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구 천만명이 넘는 대도시 서울에는 절대 오지 않을 것같은 신진 인디 밴드들이 꼬박꼬박 들려 공연을 하고 가는 곳이 이 도시이며, 많은 배낭여행족들이 반드시 거쳐가는 기점으로 삼는,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하는 도시가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꽉 막혀 있는 섬과 같은 서울보다, 세계 곳곳의 문화도시들과 조금 더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천재 뮤지션 케빈 파커가 이끄는 3인조 밴드 Tame Impala의 세번째 스튜디오 앨범 <Currents>를 처음 듣는 사람은 우선 당혹스러워 할 수도 있다. 60년대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성공적인 재림이라는 네오-사이키델릭 장르를 새롭게 개척한 이 촉망받는 밴드가 이번엔 기타가 아닌 신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알앤비와 같은 흑인음악의 리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뿅뿅거리는 사운드 위에 전형적인 펑크-디스코 리듬이 울려퍼지기도 하고, 춤을 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장시간 공간을 채우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변신, 혹은 커리어의 전환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테임 임팔라는 이미 1집 <Innerspeaker>에서 2집 <Lonerism>으로 넘어갈 때에도 만만치 않은 변화의 폭을 보여준 전례가 있다. 테마를 정해 외골수로 밀고 나가던 데뷔작과는 달리 2집에서부터 이미 적극적으로 신스와 샘플링을 사용하고 있으며, 팝뮤직에 대한 파커의 애정을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3집은 2집에서 내세웠던 변화를 조금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즉, 데뷔 앨범이 존 레논이었다면, 소포모어 앨범은 폴 매카트니 쯤 될 것이고, 이번 3집은 브라이언 윌슨 정도가 될 것이다. 파커의 손에 들린 악기가 다를지라도, 여전히 테임 임팔라의 음악은 테임 임팔라만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특정 지역, 특정 시대에 국한되지 않는 범용성을 여전히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앨범 역시 uniqueness와 universality를 동시에 달성하는 좋은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Currents>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변화는 장르나 악기와 같은 표면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운드스케이프를 구성하는 방식, 즉 구조적인 부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전작에서 파커는 텍스처를 겹겹이 쌓아올려 레이어를 두텁게 만드는 쪽을 택했다. 여기에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곁들여져 테임 임팔라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었다. 3집은 한결 단순하고 간결해졌다. 기존에 존재해왔던 여러 장르들의 특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위에 오로지 파커의 팝적인 감각을 양념으로 삼아 미니멀한 아키텍쳐를 가능케 했다. 1집이나 2집을 사랑했던 팬들이 3집을 두고 “싱겁다”거나 “힘이 빠진다”라고 불평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들만의 찐한 사운드가 조금 묽게 희석되었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기존에 존재해오던 것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밴드의 의도를 제대로 읽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서 길게 언급한 Perth라는 지역의 특성과 이번 앨범의 컨셉을 설명한 파커의 인터뷰 등과 연결시켜볼 때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다. 전작은 “외로움에 대한 것”이었다. Perth뿐만 아니라 빠리  등 유럽의 큰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진행한 투어에서 파커는 극도의 외로움을 느꼈고, 이것을 음악으로 표현해냈다. 역설적이게도 사운드스케이프는 빡빡했으며, 레이어는 두터웠다. 외부로부터의 고독을 음악안에서 counteractive 하게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언뜻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반대로, 3집의 타이틀곡이라고 할 수 있는 “Let it Happen”은, “무언가를 막거나 변화시키려고 할 때, 그것을 그냥 그대로 흘려보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이 들어간다”는 깨달음에서 착안한 노래다. 즉, 파커는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을 애써 새롭게 해석하려고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그렇게 흘려 보내는 것. 호주라는 대륙의 서쪽 끝에 “고립되어 있는” 한 도시가 여행객들을 받아 들이고 또 “떠나보내”듯, 다양한 층위의 문화를 힘껏 품었다가 테임 임팔라와 같은 대형 밴드를 세상에 내보내듯, 파커의 음악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것이 팝뮤직에 존재하는 다양한 장르를 품는 방향이라면, 나는 굳이 반대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이 노래를 만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라고 밝힌 “The Less I Know the Better”가 이러한 새앨범의 철학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전형적인 디스코-펑크 넘버인 이 곡은 장르안에서 그대로 박제화되어 버리지 않고, 테임 임팔라라는, 외롭지만 열려 있는 채널을 통과해, 대프트 펑크의 “Get Lucky” 이후 우리가 간직하게 될 최고의 모던-클래식 넘버로 재탄생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앨범의 거의 대부분의 곡들이 비슷한 심상을 전달한다. 좋은 앨범이고, 연말에 다시 이야기하게 될 음반이다.

5 thoughts on “Tame Impala: Currents

  1. 호오, 얼마 전 아들이 매우 좋다며 들어볼라고 일러준 그룹인데 여기서 1,2집 설명 들으니 저는 1,2집을 좋아할 것 같기도 하네요.

    • 1,2집은 시대에 남을 모던 클래식 명반이구요, 3집은 호불호가 좀 갈리는 것 같아요. 차례대로 들어보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ㅋ

    • 윽 답변이 너무 늦었습니다 ㅠㅠ 마이 모닝 자켓의 제트 앨범 정도의 방향 전환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엄청난 변화처럼 느껴지지만 잘 들어보면 밴드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바뀐건 또 아니잖아요 ㅎㅎ 신디사이저의 역할이 커지고 알앤비나 디스코 리듬을 차용했다는 점 정도일텐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 또한 마이 모닝 자켓과 비슷하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ㅎㅎ 여튼 최근 가장 즐겨 듣는 음반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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