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 물냉면과 불고기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빨간 풍선>의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서 ‘이 영화가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그 영화는 최소한 나에겐, 완벽한 영화는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완전한 영화였다. (it might not be a perfect film to everyone, but was a truly complete one to me) 음식에도 그런 것이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우래옥의 물냉면을 꼽을 것이다. 우래옥의 물냉면은 욕심을 부리지 않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음식이다. 겸손하지만 뿌듯해지는 맛을 가지고 있다. 이건 아마도 우래옥이라는 공간이 안팎으로 품고 있는 공기의 밀도, 혹은 색깔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래옥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의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낡고 오래된 3,4층 정도 되는 작은 건물들 사이에 위치해있지만, 큰 길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자세로 소복히 앉아 있다. 실내에 있는 널찍한 의자와 식탁이 ‘회전율’을 대놓고 무시하듯 느긋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직원들은 친절하다.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으니 부득이 합석을 해야 할 때는 충분히 양해를 구한다. 불고기가 식으면 다시 데펴준다. 빨리 나가라고 닥달하지 않는 분위기다. 식당탐방 프로그램의 화면을 캡쳐한 요란스러운 광고문구나 이 곳을 찾은 유명인사들의 서명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이 유명한 식당일 것이라는 유일한 단서는 냉면만을 시킬 경우 적용되는 선불 요금제뿐이다.

우래옥의 공기는 가볍지 않다. 손님을 들뜨게 하지 않지만, 기대하게 만든다. 육수가 그러하다. 공간은 겸손하다. 가슴을 내밀고 자랑하지 않지만, 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발견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면이 그러하다.우리가 ‘전통’이라고 정의내릴 수 있는 가치를 유지해오는 몇 안되는 식당일 것이다. 아마도 이 곳의 이러한 정체성을, 요란스러운 미디어와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입소문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을지로 4가라는 소규모 공장지대의 우직하고 소박한 땀방울들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냉면 두그릇과 불고기 2인분이라는 사치를 즐기고 나면 8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서울에서도 꽤 비싼 가격에 속하는 한끼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 맛을 반드시 느껴야만 한다면, 조금 더 지갑이 헐거워져도 속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반드시 느껴봐야 한다. 처음 젓가락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해서 마지막 젓가락에서 아쉬움보다는 감사함을 느끼게 만드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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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e XX: In Col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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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예쁘게 채우는 일은 쉽지만 그 공간을 비워내는 일은 어렵다. 물건을 사는 것은 쉽지만 버리는 것은 어렵다. 음식을 먹는 것은 쉽지만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혹은 그렇기 때문에, 공간을 비우고, 물건을 버리고,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창조’되는 emptiness의 가치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The XX의 지난 두 장의 앨범은 나에게 채우는 것보다 채우지 않는 것, 들려주는 것보다 들려주지 않는 것,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잠시 멈추어 서 있는 것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주었다. The XX가 위대한 이유는 단지 현대예술의 한 분파로서 존재하는 미니멀리즘을 음악적으로 예쁘게 구현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비워지는 공간 안에서 오롯이 그들만의 리듬과 호흡, 색깔과 정체성을 높은 차원에서 이룩해냈기 때문에 그 어린 나이에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앨범들의 프로듀서이자 The XX의 멤버인 Jamie Smith, 혹은 Jamie XX가 5년이 넘는 작업 끝에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The XX의 멤버가 만드는 본격 전자음악, 이라는 타이틀이 불러 일으키는 호기심은 상당했다. 호기심은 높은 기대로 이어지고, 그 기대는 ‘이들이니까 끝내주는 것을 만들어낼거야’라는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발전했다. 다 내 마음속에서 혼자 키운 망상이다.

결론부터 말해, <In Colour>는 아주 많이 새로운 앨범은 아니다. 우선 “Gosh”부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이미 The XX라는 이름은 나같은 평범한 청자로 하여금 “The XX스러운 전자음악”을 기대하게 했을텐데, 앨범은 첫 곡부터 이러한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이 앨범은 완전히 비워지지 않았고, 앨범 전체가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지도 않으며, 에너지가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앨범은 다양한 층위가 각각의 오리지널리티를 뽐내며 존재하고 있으며, 각각의 곡은 풍성하고 건강한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뽐내고 있다. 앨범 제목과 커버처럼, 비슷한 듯 하지만 하나로 묶여질 수 없는 고유한 색깔들의 다발을 보는 느낌이다. 그렇다. 이 앨범은 The XX의 다른 어떤 앨범보다 시각적이다. Jamie XX는 그의 첫번째 솔로앨범에서, 전자음악이라는 장르 자체를 그만의 호흡으로 해석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정 하위장르에 매몰되지 않고, 특정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전자음악이라는 커다란 플랫폼 자체를 포괄하는 어떤 사운드의 모집단을 구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어떤 시대에 의해서도 구속받지 않는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다”는 Jamie XX의 말처럼, 앨범에 등장하는 샘플들은 1971년의 영국 드라마부터 디트로이트에서 멤버들이 직접 구입한 로컬 음반에 등장하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시대와 공간을 대변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피처링으로 참여한 Romy의 침착하고 단정한 보컬과 미국 래퍼인 Young Thug, 자메이카 뮤지션 Popcaan의 걸죽한 목소리는 사뭇 거리가 멀어보인다. “Gosh”와 “SeeSaw”, “I Know There’s Gonna Be(Good Times)”는 분명히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트랙들이지만, Jamie XX는 다른 음악적 뿌리를 가진 이 결과물들을 굳이 화학적으로 혼합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것은 그것대로, 이것은 이것대로 그저 존재하게끔 내버려둘 뿐이다. 나는 이것이 The XX 멤버들의 또다른 진화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개인적으로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라고 생각하는 “Obvs”는 아주 단순한 사운드메이킹만으로도 음악의 진수를 발견하고 성취해내고야 마는 Jamie XX의 능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좋은 곡과 좋지 않은 곡, 이들’다운’ 곡과 그렇지 못한 곡이 뒤섞여 있는 이 앨범은 기존의 팬들에겐 실망감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장르 전체를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담대한 방식으로 포섭하고 싶어하는 1988년생 아티스트의 야심에는 분명히 흥미로운 지점이 존재한다. 그리고 난 그의 그런 시도를 응원하고 싶다. 수프얀 스티븐스, 파더 존 미스티, 켄드릭 라마, 토비아스 제소 주니어, 코트니 바넷, 뷰욕 등의 앨범과 함께 올해 상반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음반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최저임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나요?

최저임금이 사상 최초로 시간당 6,000원을 돌파했다. 전년대비 8%대 상승률이다. 물가상승률보다는 당연히 높을 것이지만, 여전히 한시간 일해서 밥 한그릇 사먹기 빠듯하다. 당연히 노동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너무 적다는거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자쪽도 잔뜩 뿔이 나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올라가면 고용을 감당 못한다는거다. 양쪽 모두 불만인 결과가 나왔다. 누가 맞는걸까? 해결책은 있는걸까?

우선, 최저임금이 제대로 변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이다. 다음의 그림은 최저임금의 전년대비 상승률을 식료품 및 비주류 물가지수(2010년=100 기준)및 전,월세 변화율과 비교한 것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 때문에 식료품 값보다 최저임금이 더 적게 상승한다면 그만큼 배가 더 고파진다고 추측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자가주택이 아닌 전세 혹은 월세 형태의 주거형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임대차비용이 최저임금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할수록 이들의 삶은 더 궁핍해질 것이다.

전년대비변화율

98~99년, 09~11년을 제외하고, 최저임금의 전년대비 변화율은 식료품이나 전,월세 변화율보다 항상 더 높았다. (두번의 예외적인 시기는 모두 경제위기 상황이다. 경제위기시에는 임금이 동결 혹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으나 환율상승 및 수입원자재, 수입최종재 물가지수의 상승으로 전체 물가는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지수를 최저임금으로 나눈 값을 살펴보자. 이 값이 높을수록 최저임금으로 기본적인 음식을 사먹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식료품물가지수 식료품물가지수변화율

첫번째 그림은 물가지수를 최저임금으로 나눈 값을 시계열로 나타낸 것이고, 두번째 그림은 두 변수의 변화율로 다시 구한 것이다. 두번째 그림은 변화율이기 때문에 들쭉날쭉한 모양을 보이고 있는데, 검은색 점선인 추세선으로 보면 약간이나마 하락하고 있다. 두번째 그림에서 수치가 1보다 높으면 그해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 물가의 변화율이 최저임금 변화율보다 높았다는 뜻이다. 94, 98~99, 2008~2011년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상당히 퍽퍽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먹는 문제, 사는 문제는 점차 개선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소득불평등의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살만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도 되지 못한다. 그저 시계열상에서 드러나는 ‘상대적인’ 삶의 질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소득재분배 효과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통계청에서는 전체가구를 10분위로 나누어 소득분위별 근로소득 및 소비지출을 집계한다. 월별 자료로 환산하기 위해 최저임금에 209를 곱하여 비교해 보았다.

최저임금대비가계소득및지출
파란색 선은 전체가구의 월별기준으로 근로소득을 최저임금으로 나눈 값이고, 빨간색 선은 가구당 소비지출액을 최저임금으로 나눈 값이다. 전체가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 가구 평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값이 높을수록 평균적인 가구의 근로소득 및 소비지출과 최저임금을 받는 가구의 소득 및 지출 사이에 차이가 크다는 의미다. 그만큼 최저임금 노동자 계층이 평균에서 멀어진다는 의미이므로, 소득 불평등의 한 척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료가 가용한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이 수치는 점차 감소해왔다. 즉, 평균적인 가구의 근로소득 및 소비지출 수준과 비교해 최저임금 노동자 가구의 소득 및 지출 수준이 점차 완화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이 수치는 근로소득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위계층으로 갈수록 비근로소득(금융소득 등)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최저임금 가구의 경우 근로소득의 비중이 클 것이다. 때문에 비근로소득까지 포함시키면 불평등의 정도는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 그래프는 최저임금과 시간당 명목임금의 전년대비 변화율을 비교한 것이다.

시간당명목임금자료가 가용한 2000년부터 비교해보면, 2010년을 제외하고 최저임금의 상승률이 전체가구의 시간당 명목임금 상승률을 항상 상회하였다.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최저임금의 하방경직성을 확보한 결과는 불평등의 완화와 최저임금 계층의 상대적인 삶의 질 개선이다. 물론, 위의 결과들이 여전히 ‘최저임금으로 먹고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되지는 못한다. 여전히 최저임금 노동자가 한 달에 받는 월수입은 하위 2분위에서 3분위 사이다. 하위 1분위는 월 근로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더 많다. 즉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극빈층이라는 뜻이다. 그 바로 윗 레벨이 최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정규직으로 편입되지 못한 계층이 ‘알바’만으로 은퇴시점까지 생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다달이 월세를 내면서 음식을 사 먹으면서 ‘저축’을 할 수 있는가, 즉 노후를 대비할 여력이 있는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할 것이다. 과연 하위 몇분위부터 안정적인 저축이 가능한가, 안정적인 노후대비가 가능한가에 대한 관찰이 필요하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물가수준이나 평균임금상승률보다 더 빠르게 최저임금을 상승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정부가 해야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나는 정작 중요한 것은 최저임금이 아니라는 주장을 일전에 이곳에서 펼친 적이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노동환경의 안정이다. 근로소득자 개개인이 자신의 미래 근로환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획득하고 이에 대해 대비할 수 있는 여유를 확보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함께 전세계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하지만 미국보다 현격히 떨어지는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즉, 비정규직의 사회적 불안정성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뜻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최저임금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Torres: Spr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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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을 기반으로 내쉬빌을 오가며 작업한 여성 싱어송라이터 토레스(본명은 Mackenzie Scott이다)의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은 사실 손이 몇번 가지 않은 음반이다. 당시 평론계의 많은 상찬을 받으며(“젊은 PJ Harvey가 나타났다”와 같은) 센세이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던터라 잔뜩 기대를 한 채 앨범을 구입했지만, 음울하고 느린 단조로운 구성에 매우 짧은 러닝타임으로 인해 집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금세 지루해져 몇번 듣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녀의 두번째 앨범 역시 꽤 좋은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모았던터라 과연 어떻게,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호기심에 소포모어 앨범 역시 구입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eye-opening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운드는 훨씬 ‘로킹’해졌지만, 데뷔앨범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회색-보라색 정서가 희미해지지도 않았다. 강약을 조절하며 그녀만의 호흡과 리듬을 비로소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단순히 볼륨의 높낮이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멈추고, 쉬고, 달리고, 다시 쉬는 그 호흡의 규칙성 덕분에 청자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끝까지 반복해서 들을 수 있게 한다. 어쩌면 조금 더 선명해졌다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정서는 유니크하다. 그녀는 훌륭한 스토리텔러이고, 우리가 놓치고 지나쳐가는 감정들을 소환한다. 때문에 소중하다. 굳이 이 강점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단지 청자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어떻게 그녀의 정서를 왜곡시키지 않고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형식의 문제 정도가 내가 그녀의 데뷔앨범에서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이었다. 소포모어 앨범에서 그녀는 이러한 걱정을 말끔히 씻어내며 홈런을 날린다. 그녀의 사운드스케이프는 온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조금 더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딱딱 끊어지는 사운드 속에 가사전달력은 놀라보게 향상되었고, 앨범은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라인을 가진 장편소설처럼 물 흐르듯 흘러간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숙제는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강요하느냐, 정도일 것이다. 섀론 반 에텐이나 로라 말링처럼 젊은 나이에 하나의 깊고 단단한 세계를 완성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뒤를 잇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에 대한 더 깊은 확신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