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그 “독립”이라는걸 최근 했다. 우리에게 이 “독립”은, 부모와 함께 살던 젊은이가 부모와 떨어져 혼자, 혹은 여럿이 살아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렸다. 미국에서의 6년은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으니 육체적으로 독립은 했다고 할 수 있지만 경제적 지원을 간헐적으로 계속 받았으니 경제적 독립을 했다고는 할 수 없고, 한국에서의 지난 1년은 경제적으로는 독립했으나 한지붕 아래에서 동거를 하며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밥을 얻어 먹었으니 육체적으로 독립했다고 할 수 없다. 계약금부터 월세까지 내가 오롯이 다 부담하며 밥도 스스로 챙겨 먹고, 쓰레기봉투도 내가 사와야 하는 이 생활의 시작을 완전한 독립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부모님은 여전히 나에게 안부문자나 전화를 하실 것이고, 우리는 자주 얼굴을 보며 서로의 안부를 염려할 것이다. 부모님에게 나는 언제나 불완전한 존재, 아이의 얼굴로 존재한다. 밖에 나가서 덤벙거리지 않을까, 무엇을 흘리고 다니진 않을까 걱정하신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 역시 부모님을 염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휴대폰은 제대로 만지고 계실지, 밭일을 하시다가 무리하시진 않을런지, 늘 걱정이다. 사실 걱정도 예전부터 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걱정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달라졌다는 점이 부모님과 나, 나와 부모님의 관계를 조금은 다르게 정의내리고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신경쓰는 부분이 하나둘씩 줄어들면서, 내가 부모님을 위해 해드려야 하는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보살핌’은 현재 양방향으로 존재하지만, 점점 나에게서 나가는 부분이 더 커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이라는 표현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심리적인 독립은 요원해 보이므로. 그냥 ‘이사’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새로 이사온 이 충정로집에서 딱 하룻밤 잤기 때문에 이 공간, 이 집,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콕 집어 이야기하긴 아직 많이 부족하다. 우선 함께 사는 이웃이 많이 달라졌다. 훌쩍 큰 아이들과 함께 사는 중년의 부부들이 주된 구성원이었던 신촌의 33평 아파트는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이웃간의 정은 없었지만 이웃간의 다툼도 없었고,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비하도, 무례한 교통예절도 찾아볼 수 없는, 나쁘진 않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10년을 살았다. 이곳 충정로의 작은 평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 나이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부터 갓난아기를 둔 젊은 부부까지. 13평에서 16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을 아쉽지 않게 쓸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면 연령대가 확 높아진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고 있다. 먼저 서울역을 거점으로 삼는 노숙자와 철길 근처에 있는 지원센터에 드나드는 일용직 노동자들, 종로학원 건너편에 자리잡은 재래시장과 성요셉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서민노동자층이 이 동네를 형성하는 한 축이다. 다른 한 축은 SK VIEW나 삼성사이버빌리지아파트와 같은 신식 주거공간에 들어온 중산층이다. 그 사이에 내가 사는 곳과 같이 작은 평수의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에 사는 젊은 세대가 있다. 충정로는 그런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고 공간만을 공유하며 사는 곳 같아 보인다. 아직 잘 모르겠다. 조금 더 많이 겪어봐야 이 동네가 가진 공기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동네 산책을 계속 다녀야겠다.

거실에서 음악을 틀고 춤을 추거나 운동을 할 수 있고, 샤워를 한 뒤 발가벗은채 밖으로 나와 물기를 충분히 닦아낸 뒤 속옷을 입을 수 있고,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전혀 듣지 않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랩탑으로 딴짓을 실컷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내가 밥을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너무나 당연하게 하던 것들이, 부모님과 함께 살며 ‘고려해야 할 것’으로, 다시 ‘하면 안될 것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이런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독립을 한 것은 아니다. 책과 옷으로 가득찬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연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배부른 소리같겠지만, 집에 일찍 돌아와 ‘타인에 의해 세팅된 환경’에서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차라리 퇴근을 늦게 하고 연구실에서 공부를 더 하는 편이 낫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는 여섯시 이후 냉난방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그리 좋은 장소는 아니다)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내기에는 이미 부모님이 구축한 세계가 너무 단단했고, 그분들의 리듬을 깨트려가며 내가 잘 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상이 지난 1년동안 연구성과가 전혀 없던 것에 대한 거창한 변명이 되시겠다. 이제 마음에 쏙 드는 테이블도 구했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구했다. 남들은 월세가 비싸다고 하지만, 나는 내가 생산해내는 것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기에 그 작업을 위한 환경을 구축하는데 쓰이는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삽니까? 돈을 아끼기 위해 삽니까? 아니면 정말 가치있는 일, 혹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면서 삽니까? 저는 후자입니다.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벌면서 낭비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내 자신에게 계속 투자하며 살아야 한다. 그걸 멈추는 순간 쓸모없는 인간, 혹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인간이 되어버린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소위 말하는 힘없는 ‘을’이 되어 남이 시키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 충정로 공간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한국에서의 독립적인 생활을 위한 첫번째 단계다. 홈데코레이션에 너무 많은 돈을 쓴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그것 역시 나중에 충분한 가치로 보상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밤이 많이 눅눅해졌다. 여름에 어울리는 음악을 미리 골라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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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thoughts on “이사.

  1. 축하드립니다.
    “나혼자 산다” 치명적인(…)유혹이죠
    제가 아직 이루지 못한 축제같은..
    충분히 즐기세요!

    • 축제라고 표현하시니 왠지 즐겨야 할 것 같은데요? ㅎㅎ 그냥 혼자 있는 시간, 그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제 내향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지나치게 많은 말을 했거든요. 아침에 일어날때 고요한 느낌이 좋네요!

  2. 잘 읽었습니다. 참 부럽구요 하하. 그리고 종혁님의 고요를 가장 많이 침범한 것 같아서 움찔움찔. 그나저나 테이블 참 좋아보입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온도와 위에서 보는 호수같은 잠잠함은 더:)

    • 테이블에 돈 제일 많이 썼습니다~ ㅋㅋ 좋아보인다고 하시니 다행이네요. 스승님께 혼나지만 않았으면 ㅠㅠ 얼른 놀러오세요.

  3. 안녕하세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독립을 축하드려요. 자신만의 장소를 세팅하는거 참 즐겁죠! 어디에서, 누구와, 언제 작업을 하느냐 (연구를 하느냐) 에 따라 결과나 프로세스가 영향을 참 많이 받는거 같아요. 여름에 어울리는 노래들이라니 어떤 노래들인지 나누어 주세요! (한국 여름밤 한강 근처에서 약간 눅눅한 감성을 가진 노래들과 더운 오후에 집에서 에어컨/ 선풍기 쎄게 틀어놓고 뒷 배경으로 라디오 틀어놓고 얇은 담요 덥고 쉴때 듣기 좋은 보사노바같은 라운징 노래들 과 마치 내일 죽듯이 여름밤 잔치벌이는 노래들?) 메일 보내주시면 제 여름 플레이리스트도 나누고 싶어요. 새집에서 좋은 아이디어 많이 내셔요!! catsieseo@gmail.com

    • 우와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의 플레이리스트를 훔쳐(?)가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죠.. 얼마전 이사한 집에서 집들이를 했는데요, 각자 가져온 음악들을 번갈아가면서 틀어서 다함께 듣는데 참 재밌더라구요. 이메일 보내드릴게요! 공유해주시면 감사!!

  4. 충정로에 종로학원이면 제가 재수 생활을 했던 곳이네요. 충정로역을 나와 재래시장이 있는 골목을 지나(생선 냄새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네요.) 브라운 스톤 건물을 보면서 종로학원으로 들어가던때가 엊그제같은데 이제 9년이 다 되가네요. 그립네요. 시험 끝나면 반드시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독립 축하드립니다! 전 자취를 안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끝내주실것같다는 생각은 드네요. 그 기분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P.S 인생에 대한 말씀 잘 참고하겠습니다. 제가 하게 될 일이 저 자신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그 어떤 직업보다 남에게(다른 말로 평판이라고 하죠) 끌려다니기 쉬운 직업이기에, 더욱 참고해야할것 같아요~

    • 또 한번 반갑습니다! ㅎㅎ 제 친구들도 종로학원에서 재수했어요. 그 생선냄새 아직도 나구요, 브라운스톤 근처에 누워계신 노숙자분들도 여전하십니다. 자취는 판타스틱한 일이죠 ㅎㅎ 빨래부터 요리까지, 청소부터 설거지까지 모든걸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더 삶을 스릴 넘치게 만들어준달까요? 제가 챌린징한걸 좋아해서 그런지 편하게 부모님 밑에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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