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부모님

2014년 6월 21일 새벽, 한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촌스럽지만 ‘성공적인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사진도 찍었다. 나에겐 ‘생존’이었지만 부모님에겐 ‘성과’였고, 나에겐 ‘실패’였지만 부모님에겐 ‘성공’이었던 6년을 어떻게든 기념해야 했다. 부모님댁으로 돌아와 6년동안 비워두웠던 작은 방에 짐을 풀었고, 그렇게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지 정확히 1년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아주 잘 얻어 먹었고, 두 분이 지내시던 공간을 침범해 공짜로 아주 잘 살았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빨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가끔 분리수거를 도와드리거나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한 것 빼고는 대부분의 가사는 어머니의 몫으로 떠넘겼다. 그것이 어머니의 직업이라고, ‘당연히’ 떠밀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두 분이 만들어놓은 세계에 6년만에 불쑥 나타난 ‘손님’이었고, 두 분이 공고히 만들어놓은 규칙을 깨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더이상 부모님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었으며, 부모님 역시 나를 신경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며 거실이나 화장실같은 공유를 위한 공간만을 나누어 사용했다. 예를 들어, 이 집의 부엌은 어머니의 것이다. 요리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주방은 ‘주인’과 ‘손님’이 엄격하게 분리된 공간이다. 익숙함이나 오너쉽과 같은 일차원적인 이유때문이 아니라, 그 집의 ‘안주인’만이 가지는 고유한 영역을 반드시 존중하고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난 어머니를 위해 설거지는 마음껏 할 수 있었지만, 요리는 거드는 정도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우리의 ‘동거’ 계약의 기간은 정확하게 1년이었다. 아버지의 은퇴 날짜는 정해져 있었고, 이 집이 팔릴 시점도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의 은퇴 이후, 이제 두 분은 다시 10년, 혹은 그 이상을 나와 떨어져 지내실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지난 1년동안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우리가 헤어진 후에 느끼실 내 존재가 부재하다는 사실에 대한 허전함과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적극적인 효도로 인한 기쁨 사이에서 내 위치를 정하지 못해 갈등하기를 반복했다. 마음은 늘 부모님을 향해있었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어머니가 무언가를 시키시면 이등병처럼 튀어나가 처리했다. 물론 수동적으로 두 분의 세계를 존중한다는 변명을 통해 스스로를 비겁하게 만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집안일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집에 있을 때에는 대부분의 소소한 일상들 – 밥을 함께 먹거나 수다를 떨거나 드라마를 함께 보는 일들 – 을 부모님과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거나 몸을 크게 움직여야 하는 일은 내 몫이 되었고, 어머니의 루틴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사소한 일들을 대신 처리해드렸다. 아버지는 수시로 나를 불러 컴퓨터나 휴대폰에 대해 물어보셨다. 나는 그런 것들이 몹시 기뻤다. 부모님의 삶에 조금이라도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막내는 막내의 역할이 있다. 막내가 부릴 수 있는 투정이나 게으름을 하나씩 거두어내면서 막내만이 드릴 수 있는 기쁨들을 남겨두는 것이 지난 1년동안 부모님을 위해 내가 한 일이다.

이제 부모님과 다시 헤어져야 할 시기가 왔고, 아마도 우리 모두가 건강하다면, 다시 함께 살 날은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중 누구 한명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면 그때 다시 모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누군가를 지켜주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과는 또 많이 다를 것이다. 그 날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란다. 한두달에 한번쯤 함양에 내려가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밀렸던 수다를 실컷 떨다 하룻밤 자고 올라오는,  그 정도 관계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급한 일이 터지면 그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달려갈 수 있는, 그 정도의 가까움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지난 6년동안 애타게 그리워하며 찾아 왔던 그 정도 거리가 이제 눈 앞에 당도했다. 이제 더이상 부모님의 집 앞에 서기 위해 24시간을 날라오지 않아도 된다. 차를 몰고 휘휘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서너시간만에 부모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대단히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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