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ls Frahm: Solo

dc28abce닐스 프람은 현대음악에서 독특함을 넘어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제임스 블레이크가 소울이라는 장르의 영역을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범위까지 확장시켰다면, 닐스 프람은 전자음악과 클래식을 교배시켜 탄생시킨 그만의 스타일과 예술성을 통해 대중음악의 전체적인 지평을 확장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음악은 많지만, 그러한 ‘outlier’ 들중 눈에 띄는 중요성을 획득하며 기존의 장르들에게 역으로 영향을 주는, 그래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선도해나가는 경우는 쉽게 발견하기 힘들다. 프람은 그러한 소수의 개척자들중 한명이다. 그가 전작 <Spaces>에서 음악적 ‘공간’을 새롭게 정의내렸다면, 이번에 발매된 <Solo>에서는 자신이 단지 형식주의적 파이어니어만이 아닌, 대중음악과 클래식이 고유하게 품고 있는 ‘심상’, 혹은 ‘감정’의 결합에 있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잘 직조된 완성품을 선보일 수 있는 독보적인 아티스트임을 증명해내고 있다. 트위터 친구들중 한분이 이 음반을 가리켜 “선물같이 내려온 음반”이라고 표현했는데, 참 적절한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 피아노와 롤랜드 주노가 하나의 동일한 심상을 전달할 수 있음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형식과 표현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오로지 그가 창조한 사운드스케잎 안에서 감상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의 선물처럼 전달받고 있다.

Jlin: Dark Ener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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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주 Gary 출신 프로듀서 Jlin의 데뷔앨범 <Dark Energy>는 팝아트와 추상화의 정치적인 요소들만 따온 듯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앤디 워홀의 인더스트리얼, 바넷 뉴먼의 평면, 윌렘 드 쿠닝의 표현적 추상이 모두 이 유니크한 음악적 세계 안에서 감지되는 것이다. 시카고에서 2006년쯤 탄생한 풋워크(footwork)라는 하우스의 하위 장르는 만들어지는 음악의 95%가 샘플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Jlin은 샘플링 없이 풋워크라는 장르 안에서 흑인-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표현부터 내용까지 모두 실험이고 도전인 셈이다. 곡마다 주어지는 제목, 혹은 특정한 키워드 한두개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단서의 전부다. 그녀의 음악은 최소한의 정보만을 전달받은 청자가 장르적 토대 위에서 각자의 사운드스케이프 – 혹은 음악적 오브제 – 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는 놀이터처럼 느껴진다. 혹은, 그녀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가장 창조적인 방법으로 전달하는 플랫폼일수도 있다. 그녀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기존의 풋워크 장르의 관습을 과감히 거부하는 한편, 흑인으로서, 여자로서, 블루칼라 노동자 출신으로서 시카고 언더그라운드 일렉트로니카 씬에서 경험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비트안에서 과감하게 풀어낸다. 여기서 “과감하게”라는 표현은 나만이 경험한 주관적인 느낌일 수 있다. 아마도 듣는이 모두 각자의 프리즘에 맞춰 그녀의 음악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음악은 마치 심장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프리칸 민속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단순한 드럼/베이스 사운드가 그녀의 – 주술과도 같은 – 반복적인 음성과 합쳐져 기묘한 비트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국제적인 패션위크에서 유명한 패션디자이너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그녀의 음악이 어떻게 ‘인더스트리얼’한 세상에서 ‘뜨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일 것 같다.

Father John Misty: I Love You, Honey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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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her John Misty의 데뷔 앨범 <Fear Fun>이 플릿 폭시스풍 포크 사운드의 잔향과 사이키델리아에 기반을 둔 음악적 뿌리가 조쉬 틸먼의 뒤틀린 유머와 함께 버무려지며 그만의 독특한 음악적 판타지아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팜플렛같은 음반이었다면, 2014년 발매한 두번째 정규앨범 <I Love You, Honeybear>는 단단하게 완성된 파더 존 미스티라는 아티스트의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는 첫번째 악장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선 농도 자체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진하다. 아마도 최근 등장한 모든 인디 뮤지션(혹은 영미 팝/록 뮤지션을 다 합쳐도)들중 가장 뛰어난 라이브 무대 매너를 가지고 있는 이 섹시한 남성 싱어송라이터의 진가는 폭넓은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True Affection”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부터 “The Night Josh Tillman Came to Our Apt.”의 고전적인 포크록 넘버까지, 다시 “When You’re Smiling and AStride me”의 가스펠/소울 감성까지) 본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뚝심에 있을텐데, 그런 음악적 단단함이 있기 때문에 시니컬하면서도 뜨거운 가슴을 그대로 내보이는 그의 독특한 메시지 전달 방식이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미국사회의 모순된 단면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정직한 내부고발자이면서도 그 안에서 유머와 조크를 던지는 것을 멈추지 않는 익살스러운 광대이기도 하다. 달콤한 원나잇스탠드가 씻기 힘든 악몽의 시작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틸먼의 아내를 때린 남자를 바에서 만나기도 한다. “웃는게 웃는게 아닌” 상황들을 묘사하면서도 그는 끝까지 그 현장에 남아 현실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배우이자 화가가 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뒤범벅되는 와중에도, 다양한 감정들이 하나의 노래에서 뒤범벅되는 와중에도 우리는 조쉬 틸먼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모순되는 감정들이 찬란하고 풍성한 음악들 위에 피어오르면, 우리는 혼란스럽기 보다는 오히려 단순한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는 내면을 마주대하게 된다. 그것은 파더 존 미스티가 창조한 세계에 온전히 발을 디뎠음을 인정하는 첫걸음이며, 우리의 삶이 그가 이야기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즉 하나의 가치가 일관되게 지배하는 세상이란 없음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종소리이기도 하다. 우스꽝스럽고 모순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우스꽝스럽고 모순되게 표현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그래서 “Bored in the USA”에 삽입되는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조차 않는다. 이 뻔한 클리셰가 오히려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아이러니조차 너무 파더 존 미스티스럽다.

우리는 이제 막 이 유니크한 뮤지션의 묵직한 첫번째 발걸음을 목도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 수다스럽고 유별난 이야기꾼과 함께 가야할 길이 멀다. 무척 기다려진다.

Courtney Barnett: 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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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번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1988년생의 젊은 뮤지션, 코트니 바넷의 첫번째 정규음반 <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이 영국과 미국에서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 이미 보나루, 피치포크, 그라스톤베리는 그녀에게 초청장을 날렸고, 디셈버리스트, 벨 엔 세바스챤, 알라바마 쉐잌스, 스푼 등의 베테랑 뮤지션들이 그녀와의 합동공연을 추진했다. 바넷 개인이 설립한 작은 독립 레이블에서 발매한 단 두장의 EP만으로 이룩한 성과라고 하기엔 놀라운 수준이다. 무엇이 영미 인디 록씬으로 하여금 그녀를 향한 환호성을 내지르게 한 것일까.

바넷의 음악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개인적으로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하지만 그 평범한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줄 아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많아야 네 명, 가끔은 세 명만이 오르는 단순한 구성의 무대에서 그녀는 현대 록음악이 지금까지 쌓아온 많은 성취들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들만을 추출해 내어 자신의 것으로 재창조시킨다. 엄청난 훅과 에너지로 무장한 “Pedestrian at Best”는 기존의 록음악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바넷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색깔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대표적인 노래다. 이러한 음악적 성공은 바넷의 음악이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진, 많은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녀가 앨범에서 보여주는 레퍼러스는 실로 다양하고 풍성하다. “Debbie Downer”에서는 Doors의 음악적 기조를 빌려와 자신의 것으로 슬쩍 바꾸어 버리는 발칙함을 보여주고, “Kim’s Caravan”에서는 그녀의 음악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사이키델릭 록의 현대적 리바이벌을 시도하는 담대함을 드러낸다. 우리가 화이트 스트라입스나 스트록스같은 개러지 록 리바이벌에 열광했던 것은 그들이 6,70년대 록음악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트니 바넷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록음악의 통시적 흐름 위에 자신을 올려놓을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록음악의 미덕들을 다시 한번 새롭게 재탄생시키되 그것이 올려져 있는 큰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명민함도 함께 가지고 있다.

비단 음악뿐만이 아니다. 가사에서도 바넷은 평범한 주변의 소재들을 재치있게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을 가지고 있으며, 이점이 그녀의 음악을 듣는 재미를 배가시켜준다. 냉소적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포기한 루저도 아닌, 뜨거운 감성과 나름의 통찰력을 냉정한 시선와 담담한 언어와 뒤틀린 유머로 포장한 그녀의 가사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롭다. 오프닝송인 “Elevator Operator”는 대머리가 될 것이 걱정인 스무살 청년 Oliver Paul이 등장한다. 8시 45분에 일어나 뛰어가면서 아침을 먹고 96번 트램을 타고 출근하는 그는 잔디밭에 앉아 코크 캔으로 피라미드를 쌓고 심시티를 즐겨하는 평범한 청년인데,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톡스와 하이힐로 무장한 여자와 마주치고, 버튼을 누르다가 손가락을 겹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지 엘리베이터 오퍼레이터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이 남자의 망상과 서투른 인생에게 바넷이 주는 충고는 “You’ve got your whole life ahead of you, you’re still in your youth”. 히트곡인 “Pedestrian at Best”의 후렴구는 속이 후련할 정도로 자신을 둘러싼 의심들과 비판들에 대해 내지르는 한방이 매력적이다.

Eels: Royal Albe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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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ls는 라이브 음반을 스튜디오 음반 못지 않게 꾸준히 내는 밴드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총 16장의 스튜디오 정규/비정규 앨범을 발표한 이 캘리포니아 출신 베테랑 밴드는 총 7장의 라이브 앨범을 발표했다. 탄탄한 연주실력과 마크 에버렛 특유의 자기냉소적인 유머감각이 더해진 그들의 무대는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기로도 소문이 났는데, 그 라이브 앨범들 중 가장 즐겨 들었던 음반은 2006년에 발매된 <Eels with Strings: Live at Town Hall>이었다. 당시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는데(별거 없다. 제대 후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열람실에서 씨름하고 있던 시절이다) 이들의 아름다운 멜로디에 현악이 더해진 다채로운 편곡은 늦은 밤 지쳐있던 나에게 아주 좋은 진통제 겸 비타민으로 기능했다. 이들이 2014년 월드투어 중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가진 공연실황을 음반과 DVD로 발표했다. 프론트맨이자 밴드의 알파요 오메가인 에버렛의 sarcatic한 유머는 여전하다. “sweet soft bummer”라고 자신의 음악을 소개하며 능청스럽게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가락을 구슬프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의 태도를 얄밉게 볼 수 없는 것은, 굳이 그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가 미국 루츠/포크/얼터너티브 록의 흔들리고 비틀거리는 역사 속에서 약 20여년동안 굳건하게 살아남은 몇 안되는 밴드를 이끌고 있으며, 그 안에서 독특하고도 단단한 커리어를 만들어냈기에, 그의 멘트나 무대매너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밴드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고지식한 자세를 모두 좋아한다. 꼭 한번은 라이브를 접해보고 싶었다. 유학기간동안 이들의 공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라이브 앨범을 들으면서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한다. 귀로만 들어도 여전히 좋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Sufjan Stevnes: Carrie & Lo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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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음악을 한껏 가지고 놀다가 전통적인 포크음악의 품으로 돌아온 수프얀 스티븐스의 일곱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Carrie & Lowell>은 따뜻하고 섬뜩하다. 사운드는 한껏 가벼워졌지만 음악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아마도 그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전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음반으로 기록될 이 음반은 오레건에서 보낸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자,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고자 애쓰는 현재의 자신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멜로디 속에 자신의 어린시절을 장악했던 달콤쌉사름한 기억들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자, 그 저릿하고 서늘한 감성을 미치도록 아름다운 멜로디와 사운드 안에서 구현해내는 그의 음악적 재능에 대한 찬란한 춤사위이기도 하다.

이 앨범이 ‘올해의 앨범’ 리스트의 맨 꼭대기에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은 앨범 전체를 듣기 전, 선주문시 미리 풀린 두 곡 중 하나인  “Should Have Known Better”을 처음 듣자마자 가질 수 있었다. 단 한 곡이 가지는 파괴력이 무척 컸다. “삶과 죽음, 사랑과 상실, 그리고 사랑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느껴야 하는 아티스트의 고뇌에 대한 앨범”이라는 스티븐스의 설명을 함축하고 있는 트랙이자, 평생 함께 산 기간이 거의 없었던 그의 친모에 대한 기억을 “be my rest, be my fantasy”라는 후렴구에 짤막하고 강력하게 녹여내는 트랙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앨범의 베스트트랙이 이 곡이 아니라는데에 있다. “Eugene”, “Fourth of July”, “Carrie & Lowell”, “No Shade in the Shadow of the Cross”같은 주옥같은 넘버들이 계속 끊기지 않고 나올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앨범이 소위 ‘모던 클래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단순히 아름다운 멜로디와 자기고백적인 가사로 이루어진 곡들이 앨범 전체적으로 하나의 완결성을 이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포크의 전통적인 구조 속으로 회귀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수많은 창조성을 발현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앨범의 각 곡들은 전통적이지만 진부하지 않다. 새롭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처음 들었을 때부터 행복하고, 계속 들어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앨범이 단순히 장르 안에서 장르의 관습을 받아먹으며 기생하는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지 아니하고 장르를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는 주체성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앨범이 수프얀 스티븐스 개인의 서사를 다루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아티스트가 음악을 만들때 개인의 서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메타-음악적인 근간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universal’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Sylvan Esso: Sylvan E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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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 더램에서 결성된 혼성듀오 Sylvan Esso가 작년 5월 발표한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구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음반이다. 이들은 데뷔앨범에서 신스팝과 포크라는, 사뭇 이질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양 극단에 있는 음악을 조합해 꽤 근사한 일렉트로-포크-팝 넘버들을 만들어 냈다. 사실 우리의 고정관념만 제한다면 결코 좁지 않은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장르가 신스와 포크일 것이다. 이 재미있는 장르의 교배는 밴드의 두 멤버 Amelia Meath와 Nick Sanborn의 음악적 배경에 기초하고 있는듯 보인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Meath는 자신의 밴드 Mountain Man에서 포크 넘버들을 만들고 있었고, 그녀가 밀워키에서 프로듀서 Sanborn을 만났을때 그는 Megafaun에서 일렉트로-신스 넘버들을 작업하고 있었다. Meath가 Feist와의 투어를 마치고 더램에 정착한 2013년부터 본격적인 음반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데뷔앨범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둔 밴드의 역사치고는 상당히 짧고 간결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의 음악도 비슷하다. Meath가 만들어내는 어메리칸 포크의 전통적인 구조와 가락을 크게 거스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Sanborn의 검소한 데코레이션이 가미되어 탄생한 간결하고 깔끔한 인디팝 넘버들이 앨범에 소복히 자리잡고 있다. 이들의 음악이 갖는 오리지널리티는 Meath의 보컬과 Sanborn의 사운드가 모두 집중하고 있는, 상당히 고전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크적인 감성에 기인하고 있다. 무작정 ‘힙’하려고 덤벼드는, 어쩌면 최근 ‘대세’라고 할법도 한 여자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간결한 구조의 일렉트로-팝 밴드들과 구분되는 차별성은 역설적으로 팝역사상 가장 전통적인 장르에의 애착에 있었다. 씬에 좋은 교훈을 하나 던져준 셈이고, 씬은 좋은 음악평과 나쁘지 않은 흥행(빌보드 앨범차트 37위)으로 화답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앨범의 베스트트랙이자 가장 ‘rocking’한 트랙이라고 할 수 있는 “Play it Right”이 밴드 결성 전인 2012년에 만들어졌다는 것인데, 당시 이 노래는 지금 우리가 듣는 것과 같은 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Meath가 머나먼 밀워키에서 완전히 다른 장르를 하는 프로듀서를 만나 그에게 밴드를 하자고 제안하고 함께 앨범을 만들게 되는 모든 과정이 이곡 하나에 집약되어 있다고 할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부를 전하는 상대, 안부의 내용.

한국에 와서 참 많은 변화를 겪었다. 아직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은 착각에 가끔 빠지기도 한다. 그런 한편으로, 작년 6월말경 한국에 다시 들어왔을 때의 낯선 느낌을 아직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데 벌써 1년 가까이 흘렀다니, 하는 생각에 놀라기도 한다. 사실 많은 순간, 감각과 감정은 양가적으로 다가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좋으면서 싫기도 하고, 커피는 쓰면서도 달다. 밤에 늦게 자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늦게 자고 싶고,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 모든 사물과 현상, 사람과 관계에 대해 하나의 확고하게 완성된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은 그래서 매우 힘든 일이다.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사도처럼 확고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에바처럼 끊임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에 와서 겪은 참 많은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일 것이다. 참 많은 사람들을 새로 사귀었다. 아는 사람 한명 없는 미국의 시골 도시에서 새로이 만나고 친해진 사람들도 그렇게 많았는데, 25년동안 삶의 터전이었고 익숙함의 정도가 차원이 다른 이 서울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계속 만나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만 지속해 나갔다. 인터넷의 도움을 빌어, 관습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쉽게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보다 더 큰 감정적인 위로를 받았다. 인간관계에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큰 편이기에 많은 사람들을 동시에 만나지는 못한다. 그래서 최근, 감당이 안될 정도로 빠르게 확장되는 관계들을 어느 순간 부여잡고 내가 정말 정을 제대로 줄 수 있는 사람들로 추리는 마음의 작업을 해왔다. 아직도 먼저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기까지 몇번을 고민하고 최악의 상황에서 “어떤 쪽팔림을 당해야 할까” 고민할 정도로 많은 용기가 필요한 나이지만, 최소한 그렇게라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만 주변에 놓고 싶은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들에게 내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전혀 두렵지 않다. 서로 가진 패를 가지고 눈치를 보고 장난을 치는 과정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내가 가진 패를 모두 다 까서 보여주고 상대의 판단, 혹은 결정을 기다리는 것을 선호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 언제든지 나를 떠나가도 좋아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내 곁에 머무른다면, 이런 나를 이해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무방비상태가 될 때 편안함을 느낀다. 관계에서 더이상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덜컹 주어진 하나의 덤 정도로 생각한다. 좋은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그것 자체로도 너무 감사하고 귀하고 소중한 것이니 아껴 보살피고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없다면, 그 상태에서도 내 인생은 계속 가야할 길, 계획된 길을 가야 한다는 덤덤함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해주어도 아쉬움이나 아까움이 없다.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줄 뿐이다. 그것이 돈이 되었든, 시간이 되었든, 간(肝)이 되었든, 내가 줄 상황이 된다면 준다. 다만, 그들이 달라고 했을 때 줄 뿐이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받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관계설정이다.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줄 때에는 감사한 마음보다는 불편한 마음이 더 크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많이 좋아하는데, 그냥 내 인생 안에는 나 하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역시 양가적, 혹은 양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이후, 한국에서 나를 만난 거의 모든 한국인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잘 지냈어요?” 나도 매번 똑같은 대답을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직장생활에 바삐 적응하고 있고, 오래 사귄 여자친구와는 지난 가을 헤어졌고, (이쯤에서 보통 “어쩜, 아니 왜? 어떻게 헤어졌어요?”라는 부가질문이 나온다) 올해 초에는 소개팅을 몇번 했고, 한 공연장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지금까지 연락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올 여름 독립을 목표로 열심히 돈을 모으고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게 내가 평소에 하는 템플릿 대답이다. 이제 막 공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미혼의 30대 초,중반의 남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질문이 결혼과 직장, 혹은 여자와 돈이라는 사실은 약간 서글픈 일이다. 재미도 없고, 교훈은 더더욱 없는, 답이 뻔한 질문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듣고 계십니까 부모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질문을 조금 다르게 한다.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이 뭐예요?” “피스톤스의 오프시즌은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요즘 논문 수정은 잘 되어 가요?” “보나루는 언제 가요?” “이사가는 집 데코레이션은 어떻게 할거예요?” “영국에 계신 분은 언제 돌아와요?” “테일러에서 만날까요?” “아스날 시발..어쩌면 좋죠” 내가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굴리며 되새김질하는 생각들을 꼭 집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를 상대적으로 더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들이겠지만, 아무리 자주 만나도 해야할 말이 뻔한 관계들도 너무 많은 세상에서 이런 귀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마냥 쉽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들에게는 에너지를 있는 힘껏 짜내서 나의 소식을 최대한 자세하게 전해주고 싶다. 눈앞에서 하품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네들끼리 딴 이야기를 하면서 건성으로 듣고 있을지라도 상처받지 않고, 더 열심히, 웃으면서 이야기해도 괜찮을 그런 사람들을 만들고 싶은 요즘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는.

요즘 티볼리 오디오를 샀어요. 모델2요. 우퍼베이스는 없고 씨디플레이어까지만 샀는데도 지금의 좁은 방에서는 충분해요. 특히 씨디플레이어의 존재는 요즘 제 삶을 많이 바꿔놓고 있어요. 지금까지 꾸역꾸역 사모았지만 재생시킬 플레이어가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거든요. 그 음악들을 요즘 아주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선물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데, 음악 선물은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선물받은 음악들, 사모은 음악들, 집에서 열심히 잘 듣고 있어요. 지금은 Eiichi Ohtaki 의 을 듣고 있어요. 블로그친구인 진하씨에게 선물받은 음악이죠. 앨범의 첫곡인 “君は天然色”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요. 최근에 너무 좋았던 앨범은 Sufjan Stevens의 새앨범이었지만, 로라 말링의 새앨범도 결코 나쁘지 않았어요.

피스톤스는 올 시즌에도 50패를 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어요. 표면적으로만 보면 전형적인 안되는 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그래도 전과는 다른 희망을 갖게 만드는 요소들이 눈에 띄는게 약간 다른 점이랄까요. 지금까지 수집해온 코어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여기에 한두명의 재능을 더하고 저렴한 금액에 FA로 풀리는 젊은 선수들을 잡을 수 있다면 한번쯤 승부를 걸어볼만한 시점이 올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플레이오프만 진출해도 너무 좋을 것 같아요. 다음시즌에도 당연히 응원할겁니다. 콜로라도 록키스는 시즌초반 잘하다가 최근에 다시 부진하고 있는데, 매년 겪었던 일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아요. 콜로라도 대학교 농구팀과 풋볼팀은 지난 시즌보다는 훨씬 나을 거예요. 기대중입니다. 제 고민중 하나가 한국에 와서 한국 로컬 스포츠팀을 제대로 응원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예요. 응원하고 싶은 로컬팀을 쉽게 찾을 수 없네요. 수준차이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리틀야구 경기도 충분히 박진감 넘칠 수 있고, 동네농구에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잖아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어요. 회사 생활도 결코 나쁘진 않아요. 일도 재미있고,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프리즘같은 역할도 하고, 돈도 주고요. 회사를 위해 일을 해주는 대가로 먹고 살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결과를 동료 학자들과 나누고, 학생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일이 저 개인적으로는 약간 더 큰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어요. 일생의 거의 대부분을 학교에서만 지냈기 때문에 생긴 관성일지도 모르겠지만, 보고서보다는 논문 쪽이 조금 더 챌린징하고 흥미로운 작업이라는 생각에는 거의 확신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틈틈이 논문을 계속 손봐서 학문적인 업적도 쌓아야겠죠. 쉽지 않은 일이예요. 일과시간에는 일을 해야 하고, 퇴근 이후, 혹은 휴일에 다시 학자의 신분으로 돌아가 집중을 해야 하니까요. 제가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어요. 하지만 해야 겠죠.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할 일에 항상 후행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회사일이 만만치는 않아요. 한국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분들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려도 따라가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보고서 하나를 써도, 말 한마디를 해도 집중을 해야 해요. 심지어 간단한 인사나 회식자리에서도 말이죠. 거기에 더해, 저에게 주어지는 일의 수준이 만만치 않아요. 정책 보고서와 소논문을 쓰는 일이 저의 주요 업무인데, 6월 30일까지 마무리지어야 하는 큰 일을 하나 부여받았어요. 그러니까, 6월 중순에 열리는 보나루에는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이지요 ㅠㅠ

이사 문제는, 조금 상황이 복잡해졌어요. 전 되게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땡전 한푼 없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덕’을 누리며 틈틈이 모아놓은 돈으로 월세 보증금을 하고, 지금 당장의 자본금은 적어도 앞으로 벌 돈은 많으니(..be positive!) 월세로 시작해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전세는 아직 생각하고 싶지 않았구요. 제가 좋아하는 동네에서 제가 번 돈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설정이 근사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자라난 곳인 종로구 세검정과 광화문 일대, 그리고 제가 지금 살고 있고 제 삶의 터전이 모두 갖춰진 곳인 마포구 서교동-연남동-홍대입구 일대를 중심으로 검색을 계속해왔어요. 방 한두개짜리 소형 아파트나 빌라, 다세대 정도가 저에게 딱 맞는 수준이라고 생각해서 괜찮은 매물도 몇개 찜해 둔 상태였죠. 입주날짜만 정해지면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그게 일주일전까지의 상황이예요. 근데 최근 약간 상황이 달라졌어요. 부모님의 입장과 책임감, 가족간 존재하는 관계의 끈끈함 등이 더해져서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으로 넘겨져버렸고, 저는 잠시 숨을 고르며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bottom line is that I will settle in and start to live alone by mid of July..this is our final deadline. stay tuned.

하지만! 데코레이션은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방이 하나가 될지, 두개가 될지, 세개가 될지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13~18평 정도의 실평수를 가진 집에서 살게 될 것 같은데요, 방이 두개 이상이 되면 제가 다 컨트롤하지 못하기 때문에, 방 하나를 떼어 손님용 방으로 꾸미고 싶어요. 부모님이 두고 가시는 침대 하나에 옷장, 책상 정도만 놓고 언제든지 깔고 덮을 수 있는 린넨을 상시 구비해두는거죠. 누가 와도 그곳에서 편하게 하룻밤 정도는 쉴 수 있도록.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친척분이 될 수도 있고, 은퇴후 서울나들이하러 올라오시는 부모님이 될 수도 있고(어머니! 코스트코가 부릅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집에 가기 귀찮아진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체력은 방전되었는데 퇴근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죠. 전 손님을 집에 들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무심하게 방 하나 정도 내어줄 정도의 인심은 있어요. 제가 살게 될 집의 또다른 주요컨셉은 거실의 용도변경입니다. 텔레비전과 소파가 넓게 차지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현대 한국의 아파트구조에서 탈피해서 거실의 장점중 하나인 채광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요. 창가 가까이 6인용 테이블을 두고, 한쪽 벽은 책장으로, 다른 한쪽 벽은 그림과 사진으로 채우고 싶어요. 소파를 굳이 두어야 한다면 2~3인용 러브체어 정도를 하나 두어 혹시나 집에 손님들이 오실 경우 편하게 앉으시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싶구요. 그래서 거실은 책과 책상과 음악과 그림과 사진만이 존재하는 공간으로만 꾸미고 싶어요. 제가 즐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서 가능할 것 같아요. 무한도전과 아스날 경기 모두 컴퓨터로 볼 수 있으니까.. 크고 아름다운 모니터를 가진 컴퓨터를 사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아이맥 5K 레티나 아 아닙니다.

한국에서의 1년 정도의 생활에서 저는 나름대로의 ‘로컬’을 확보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기업 자본 최대한 덜 소비하고 소규모, 로컬샵 위주로 소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것도 제가 살고 있는 제 삶의 터전 위주로요. 한국에서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이겠죠. 미국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한국 특유의 전통적인 맛을 ‘진짜로’ 우려내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해요. 평래옥같은 맛있는 냉면집부터 홍대 앞의 작은 분식집까지, 잘 먹고 있습니다. 커피도 단골을 몇군데 만들었어요. 홍대입구역 근처에 있는 테일러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어요. 집 근처에 정말 맛있게 커피를 내리는 로컬 커피숍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근사하지 않습니까? 테일러 외에 단골 찻집이라고 한다면 성수역에 있는 자그마치가 있어요. 이 글도 자그마치에서 쓰고 있습니다. 정말 근사한 곳이예요. 최근에 커피숍 창업 붐이긴 한지, 저처럼 좁은 인간관계망을 가진 사람도 ‘아는 사람’이 하는 커피숍이 벌써 두세군데는 되는 것 같아요. 그 곳들을 다 단골처럼 들락날락거릴 순 없겠죠. 철저하게 이기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공간, 제가 좋아하는 커피의 맛,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색깔 등을 고려해서 제 발걸음이 닿는 곳으로 가야겠죠. 머리도 연남동에 있는 ‘무어’라는 로컬헤어샵에 가기 시작했어요. 사장님 혼자 운영하시는 작은 헤어살롱인데, 틀어주시는 음악도 마음에 들어요. 음식, 커피, 머리.. 그리고 아마 다른 소비생활도 웬만하면 모두 제가 살고 있는 곳 중심의 로컬샵에서 하고 싶은 소망이 있네요.

요즘 주된 고민거리 중 하나는 책을 잘 끝내지 못한다는 거예요. 한국에 오니 한국어로 쓰인 책을 읽고 싶잖아요. 그래서 몇권 샀죠. (사실 몇십권) 그런데 미국에서 가져온 책들을 먼저 다 읽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그래서 갈팡질팡. 두세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버릇이 생겼어요. 오늘은 이 책을 읽다가, 다음날엔 저 책을 읽는 식으로요. 그래서 책을 확실하게 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반성중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인 Stephen Marglin이 쓴 와 브로케트가 쓰고 김윤철이 번역한 <연극개론>이예요. 여기에 더해 틈틈이 Saunders의 단편소설집 를 읽고 있고요. 는 경제학적 사고방식이 어떻게 전통적 형태의 ‘커뮤니티’ 구조를 파괴했는지 다루고 있는 책이예요. 흔히 예로 들자면 유타주에 사는 몰몬교 커뮤니티가 있겠죠. 현대 경제학의 영향을 받는 현대사회에서는 사라져버린 사회유지방식이죠. 저자는 경제학의 근간에 깔린 철학적 배경이 어떻게 가족중심, 인간중심의 커뮤니티를 비효율적으로 보이게끔 만드는지를 대단히 정교한 방식으로 기술하고 있어요. 재미있는 책입니다. 쉽게 읽히진 않지만요. <연극개론>은 영국에 있는 그분을 이해하기 위해 읽기 시작했어요. 연극배우인 그녀는, 저를 처음 만나는 날 (처음 만난지 약 두시간여만에) “제 4의 벽”같은 개념을 이야기했어요. 그 친구의 profession, 그 친구의 커리어, 그 친구의 삶의 큰 부분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 친구의 철학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친구는 읽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는 앞에 말한 “미국에서 사온 책들 빨리 떨쳐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고 있는 책이예요. 얼른 얼른 다 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자, 또 무엇을 안부로 전해드려야 할까요. 트위터에서 짤막짤막하게 쓰는 문장들은 의식의 흐름에 기반한, 사용되고 바로 버려져야 하는 인스턴트적인 감상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들과는 약간 성격이 다른 것 같죠. 다시 이쪽으로 돌아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