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wel Pawlikowski: I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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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영화 <Ida>는 주인공 이다가 입은 수녀복과 같은 영화다. 무채색의, 하지만 잘 직조된, 정갈하고, 품위있는 옷. 입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변해주며,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까지 빠짐없이 설명해주는, 그런 옷. 영화는 매우 짧다. 그리고 매우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대사도 거의 없다. 하지만 영화의 층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영화가 내뿜는 에너지도 결코 단촐하지 않다.

줄거리는 <윈터스 본>과 흡사하다. 어떤 폐쇄적인 세계에서 평생 벗어나본 적이 없는 어린 여자가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부모의 마지막 순간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다. <윈터스 본>의 리가 ‘이웃’을 가장한 ‘적’들과 사투를 벌여가며 그녀가 벗어난 적이 없는 그 세계를 지키는 쪽이라면, <Ida>의 이다는 부모의 죽음을 찾아나가면서 자신이 한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세계를 조금씩 경험해가는 쪽이다. 이와 동시에, 수녀로서의 종신서원을 눈 앞에 둔 어린 이다가 ‘바깥세상’을 경험하며 그 경계선을 확장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 ‘바깥세상’에서 이다를 이끌며 그녀와 함께 미스테리한 여행을 떠나는 이모 완다의 이야기는 또다른 축으로 기능하며 이 영화의 층위를 풍성하게 가꾸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폴란드다.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그 곳은 이제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숙청에 의해 다시 피로 물든다. 이모 완다는 “새로운 폴란드”를 세우는데에 크게 공헌한 강경한 사회주의자이자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신여성이다. 이다의 부모는 유대인이었고, 폴란드의 어딘가에서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 부모와 이다를 연결시켜주는 존재인 완다 역시 누군가를 참혹하게 숙청했으며, 그 멍에를 온몸으로 버텨내며 조금씩 무너져내린다.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이다와, 자신이 구축한 세계안에서 고통을 받으며 그 세계를 마무리하려는 완다. 이 두명은 상호 교감하며 인생의 변곡점을 묘한 방식으로 교차한다.

남들이 보기에 “재밌는 커플”인 이 이다와 완다의 짧은 며칠간의 여행과 그 이후에 이 두사람 앞에 벌어진 변화들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폴란드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을 오롯이 필름안에 담아낸다. 묵직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수다스러운 영화들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며 밀도 높게 시간과 공간을 채운다. 그렇게 사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데에 크게 일조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황홀하고 아름다운 화면구성이다. 4:3 비율로 양옆을 과감히 잘라내고 흑백으로 색을 없애버린 뒤 인물과 배경에만 집중한 화면은 매 씬, 매 시퀀스가 뛰어난 사진작품을 보는 것 같은 완벽한 구도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의 얼굴을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지만 아랫부분을 뭉텅 잘라버리는 파격 속에서도 영화는 끊임없이 영화의 주제, 영화의 화두와 긴밀히 호흡한다. 대사가 별로 없어도 영화가 충만해질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화면 그 자체, 소리 그 자체로 끊임없이 관객과 대화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서 중요한 기제로 쓰이는 존 콜트레인의 음악은 수녀복 안에 갇힌 이다의 자아, 혹은 담배연기 속에 억지로 감추려고 하는 완다의 고통을 충실히 드러낸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를 보고 나면 콜트레인의 <Giant Steps>를 다시 꺼내 듣고 싶어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완전히 열려 있다. “별거 없는” 세상을 살짝 맛본 이다는 다시 정갈하게 수녀복을 차려 입고 길을 떠난다. 마주 달려오는 차의 헤드라잇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이다의 눈빛은 전과 묘하게 달라져 있다. 그녀는 수녀원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아니면 한낱 뜨내기인 재즈 색소폰 연주자 청년의 품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당당하게 걸어나가는 것일까. 그 어느쪽을 택한다 해도 이다의 선택은 이모 완다의 삶이 던져준 교훈을 바탕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것은 폴란드의 삶이기도 하다. 이다는 이모가 신던 구두를 신고 이모가 피우던 담배를 피워본다. 그리고 다시 수녀복을 꺼내입는다. 이다의 이 행동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닌, ‘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폴란드가 모든 것을 껴안고 앞으로 걸어가야 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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