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jandro G. Inarritu: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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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은 <보이후드>가 가져갈 것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버드맨>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물론 <버드맨>을 본 뒤에도 나는 <보이후드>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확신’에서 ‘바램’으로의 변화는 상당히 큰 것이다. 그만큼 <버드맨>은 대단히 뛰어나고 영리하며 유쾌하고 지적으로 자극적인, 멋진 작품이다. 이냐리투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혹은 터닝포인트로 기록될 영화이고, 마이클 키튼의 필모그래피에도 아마도 비슷한 수식어와 함께 기록될 것이다. 플롯부터 캐스팅까지, 촬영부터 사운드까지, 대사 하나하나부터 큰 철학적 질문까지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설계되고 구조화된,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를 경험했다. 단지 좋은 기획과 캐스팅에 만족하지 않고 이것을 엄청난 에너지로 가득찬 작품으로 결국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자전적 이야기를 멋지게 소화한 키튼과 이야기의 큰 판을 설계한 이냐리투 모두에게 크래딧을 주고 싶다.

이 영화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연극으로 옮기고자 하는, 왕년의 수퍼스타였으나 이제는 젊은 배우들에게 스팟라잇을 빼앗긴 그저그런 중년 배우의 이야기다. 히어로물에 출연한 경력으로 얼굴은 팔릴대로 팔렸으나 그 이후의 커리어가 지지부진한 이 남자는 성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어서 평론가들로부터는 혹평을, 아내로부터는 이혼을, 딸로부터는 힐난을, 후배 배우로부터는 비아냥을, 내연녀로부터는 이별을 통보받는 그런 사람이다. 딸에게 물려줄 별장까지 처분할 정도로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든 이 연극은 시작부터 엉망진창이다. 캐스팅한 배우는 동료 여배우에게 추근덕거리고, 일을 도와주는 서먹한 사이의 딸은 마리화나를 태운다. 이 연극의 성패를 쥐고 있는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는 혹평을 쓰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고, 공연에 배우로 캐스팅한 애인은 아이를 임신했다고 말한다. 머릿속이 복잡한 이 남자,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한 이 사람은 정말 초능력을 가진 수퍼히어로였을까, 아니면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머지 망상에 사로잡힌 가련한 중년일 뿐일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첫 장면과 호응하며 관객에게 기분 좋은 상상력을 강요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테이크로 이어진다. 물론 여러가지 효과들을 가미한 페이크 롱테이크이긴 하지만, 연극이라는 소재나 주인공의 내면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 등 롱테이크를 택했을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2 thoughts on “Allejandro G. Inarritu: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1. 오늘 이 영화를 보고왔어요. 굉장히 호평하셨는데, 영화가 내내 섬짓했던 입장에서 궁금해서 댓글을 남겨봅니다!

    위플래시에서 플레쳐와 주인공의 관계가 어찌됐든간에, 마지막 장면에서 신들린 연주 끝에 두사람이 교감하는 것이라고 봤어요. 이때 그 두사람의 문제적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이라는 것 하나만 극단적으로 끌어올린 상태에서 통한다는게 묘하고 섬뜩하더라고요. 버드맨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게… 어느순간 이후로 ‘버드맨’ 캐릭터(분열된 자아?)에 저항하고 시달리던 주인공이 오히려 일체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때부터 주인공의 마음이 평안해지고 또 그렇게 갈구하던 세상의 인정과 성공이 따라오는 것이 똑같이 섬짓했거든요. 세상의 많은 상식적이고 세속적인 가치(‘폭력적인 교육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혹은 ‘내적갈등과 정신이상은 건강히 해결해야 한다’ 등)를 무시하는 영화적 흐름이라는 점에서 두 영화가 유사하게 느껴졌어요.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라든가, 형식적 만듬새가 뛰어나다는 것은 공감이 가요. 개인의 내면(~면에서 정말 최악이지만 ~면은 또 썩 괜찮은 보통 인간의 모습)과 투쟁, 삶에 대해서 훨씬 많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버드맨이 더 많이 생각하고 만든 영화인 것도 알겠고요. 그런데 버드맨에서는 위플래시에서와 같은 어떤 문제적 소지? 위악적인 것?을 느끼진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또 훌륭한 영화라고 할때 형식외의 내용 어떤 점을 어떻게 평가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제가 생각과 질문을 명확히 표현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댓글에 부담스럽지 않으시길…ㅜㅜ

    • 안녕하세요 ^^ 답변이 늦었습니다..

      정곡을 찔러주신 것 같은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두 영화 모두 ‘비정상을 편견없이 바라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면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다만, 저는 두 영화가 여전히 큰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첫번째 이유로 위플래쉬는 ‘윤리성’을 건드리는 지점이 있는 반면, 버드맨은 주인공과 카메라 사이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고, 그래서 관조적인 시선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싶어요. 즉, 위플래쉬는 윤리적으로 대단히 위험한 영화라고 생각하구요, 버드맨은 그에 반해 주인공의 비정상적 행위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오히려 주인공의 내면을 형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인정’을 하고 들어간다는 점에서 여전히 제도권 사회의 영향력 아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무조건 나쁘다는건 아니예요. 하지만 위플래쉬는 ‘폭력’을 아주 나쁜 방식으로 정당화시키기 위해 봉헌된 영화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반드시 지탄받아야 할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버드맨은 ‘미치광이’라는, 즉 사회적으로 ‘정의’된 어떤 경계선 상에 위치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윤리’보다는 푸코가 말하는 사회적으로 정의된 정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지적이고 논리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째로, 위플래쉬는 영화의 모든 구성요소가 그 ‘폭력의 정당화’를 위해 공헌하고 있는 반면, 버드맨은 백번 양보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할만한 주인공의 심리상태 및 주제의식을 제외하고도 볼거리가 넘쳐난다는 점에서 훨씬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어요. 즉, 위플래쉬에는 ‘진짜’가 거의 없어요. 극단적인 클로즈업, 들어본적도 없이 창의적인 욕설, 이미 잘 알려진 재즈 명곡들, 음악에 대한 예의없음, 등등이 모두 폭력에 대한 시각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리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위해 희생당하고 있는 반면, 버드맨은 독창적인 형식과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리듬만으로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죠. 위플래쉬의 ‘세계’가 있나요? 버드맨은 ‘세계’가 있어요. 그걸 창조한 감독과, 그저 자기 할말을 하기 위해 비겁하게 플롯을 비꼬아 버린 감독 중 누가 더 훌륭한 감독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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