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메리칸 스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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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공화당원의 뻔한 전쟁영웅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여지가 존재하는 영화다. 영화는 약 2/3 지점까지 ‘<허트로커>의 보수주의자 버전’으로 충실히 기능하며 그 어떤 새로움도 없이 무기력하게 진행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와 <아버지의 깃발>에서 정반대편에 선 이들의 시선까지도 보듬어안으며 전쟁의 상처를 내재화시켰고, <그란토리노>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관심을 드러냈던 이스트우드가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저격수의 마지막 날들’을 기록하는 이 영화에서 그 어떤 새로움도 없이 관습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것은 분명한 퇴보다!’라고 확신할 즈음, 그러니까 구체적으로는 모래폭풍 전투씬 이후부터 영화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점프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전쟁을 끝낸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 근처로 추정되는, 허름한 펍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흐느낀다. 매일 매일을 가슴 졸이며 그가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랬던 아내는 그런 주인공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카우보이를 꿈꾸던 그에게 텍사스는 고향이라는 이름만 화석으로 남은 낯선 곳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그가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한 이라크는 그의 고향이 아니며, 전우들이 눈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지옥도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전역 후 주인공이 천착한 일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참전 군인들을 돕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돕던 한명에게 살해당한다. 주인공은 어쩌면 마지막까지 경계인의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지만 그 공간은 나의 공간이 아니며,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그 지옥도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머물러 있는 곳에서 떠나온 곳을 추억하며 사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일 수도 있다.

나는 이스트우드가 크리스 카일이라는 실존 인물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참전 군인들의 심리를 극단적으로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가 그의 사려깊은 전작들에 못미치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완성도를 가진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 사랑하는 ‘딸’을 잃은 뒤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던 주인공의 모습이 언뜻 스쳐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을 가지고 있음도 인정한다. 영화를 끝내는 부분에서 말이다. 시에나 밀러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아내의 시선으로 영화를 마무리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었다. 그 마지막씬이 영화를 구원하는 거의 유일한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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