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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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요란하게 선전되어 있는 것처럼 2011년을 줄리언 반스의 해로 만든 이 소설은 사실 노벨라, 즉 중편에 가까운 짧은 분량을 가지고 있다. 짧다는 것이 자칫 충분한 네러티브와 표현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앙상함이라는 약점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반스 정도 되는 작가라면 꼭 필요한 단어를 최고의 구성 안에 집어 넣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 결과물이라고 추측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반스는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치밀하게 단어와 문장과 문단을 조합해 하나의 완결된 주제의식,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라인을 거침없이 표현해낸다. 기억의 왜곡과 타인에 대한 폭력, 죄의식과 구원이라는 일반적인 개념들을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충격적인 서사구조를 통해 구현해냄으로서 오리지널리티와 보편성을 모두 획득함과 동시에 가독성까지 확보했다는 점이 부커상을 수상하게 된 이유가 되지 않났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저그랬다. 인생과 의식에 대한 냉철하고 통찰력있는 시각 자체는 인상적이었으나, 그 시각의 색깔이 내가 좋아하는 쪽이 아니었다. 독한 시선을 넘어서서 지적능력을 과시하는 수준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우려도 가진 것이 사실이고, 지나치게 단순한 내러티브를 지나치게 현학적인 수사들로 꾸미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거북한 치장이 보이지는 않았나 하는 트집을 잡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어전히 가즈오 이시구로 스타일의 느리고 침착한 문체를 더 좋아하며, 오히려 이시구로의 담담한 묘사력이 인생의 본질을 더 잘 꿰뚫어보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고 고백해야겠다. 반스의 소설은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재미있게 읽고 난 뒤에 남는 씁슬한 감정은 비단 소설의 주제의식이 강렬하게 각인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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