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14-12.23.14

꿈을 두번 나누어서 꾼 것 같다. 둘다 좋은 꿈은 아니었다. 하나는 대학원생으로 돌아가 교수님께 야단맞는 꿈이었고,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상사들에게 놀림을 받는 꿈이었다. 볼더라는 공간이 환기하는 기억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긴장감이 무의식에 무언가를 불어넣었나보다.

세시반쯤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세수도 하지 않고 가기로 했다. 귀찮았다. 짐을 다 싸고 로비로 가니 예약해둔 리무진 셔틀 운전기사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착한 인도인 아저씨였다. 체크아웃을 하고 발레파킹비용을 지불한뒤 볼더를 떠났다.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했다. 다행히 체크인 서비스는 열려 있었고, 가방을 부치고 시큐리티 체크포인트까지 통과하니 두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스캇과 캐런도 같은 시간에 비행기를 타서 혹시나 하고 게이트가 어디인지 확인해 보았는데 다른 concourse여서 만나지 않고 그냥 각자 갈길을 가기로 했다. 덴버 공항의 탑승 게이트는 세개의 concourse로 이루어져 있고, 무인 전동차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인천 공항을 설계한 사람이 설계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일루미나티가 공항 곳곳에 그들과 관련된 표식들을 심어 놓았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기억도 났다. 던킨도넛에서 머핀과 핫초콜렛을 사서 어머니께 드렸다. 나는 미리 싸온 블루베리를 먹었다.

시애틀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잘 자지 못했다. 덕분에 은희경의 소설을 1/3 정도 읽었다.

시애틀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건 처음이라 약간 헤맸다. 다행히 LA처럼 완전 개판은 아니었다. 구조가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어서 무인전동차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끝에 국제선 체크인 코너를 찾을 수 있었다. 아시아나 직원들은 할러데이 시즌이라 그런지 머리에 산타 모자같은 것들을 쓰고 있었는데 조땅콩 생각이 나서 저건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궁금해졌다. 체크인을 끝내고 시큐리티 포인트를 다시 통과하기 전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께는 수프와 핫초콜렛을 사드렸고 나는 터키 샌드위치와 오렌지 쥬스를 먹었다. 시큐리티 체크포인트 앞에는 한 젊은 동양 여자가 울고 있었다. 아마도 연인을 막 떠나보낸 것 같아보였다. 나에게 매우 익숙한 풍경이라 마음이 짠해졌다. 부디 지금 울고 있는 그 마음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가 언젠가 꼭 같이 이 포인트를 통과하길 바란다고 마음으로만 빌어주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게이트 앞에 있는 면세점에서 담배를 한보루 더 사고, 시애틀 트리뷴을 하나 산뒤 비행기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맨 뒤 가운데 좌석이었는데, 다행히 2-3-2로 되어 있어서 복도쪽 좌석 하나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지 않으셨다. 내가 화장실에 갈때만 함께 따라 나오셨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는 영화를 한편도 보지 못하고 계속 골아떨어졌다. 비행기가 흔들릴때마다 깨어 났고, 맨 뒤 좌석이라 스튜어디스들이 떠드는 소리에도 가끔 일어났다. 하지만 열두시간의 비행이 이렇게 짧게 느껴진건 처음이었다. 피로는 풀리지 않았지만 시간이 빨리 가는건 좋았다. 엄마는 계속 영화를 보고 계셨던 것 같다. 무척 지루하고 힘들었다고 하셨다.

서울에 도착하니 23일 저녁 여섯시반이었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고 계셨고, 트위터 친구들이 반갑게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인터넷이 짱인 것 같다. 버스를 타고 신촌까지 와서 택시를 타고 아파트 현관까지 갔다. 엄마는 짧은 거리를 가는 것이 미안해서 웃돈을 택시기사에게 얹어주었고, 그 기사는 돈을 더 받고도 못내 불편한 기색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평소답지 않게 택시기사에게 차갑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짐을 풀고 있으니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나는 몹시 지쳐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할 힘이 없어서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샤워를 할때만 잠깐 나와서 몇마디만 나누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가 쉴새없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문 넘어로 들려왔다. 엄마는 나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편해 보이셨다. 여행이라는 특수성과 외국이라는 이질감이 엄마에게 필요 이상의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에게 내가 가장 편한 사람이 아닌 것도 사실이었다. 성질 급하고 간단한 사회생활조차 거부하며 신경질만 내는 아버지이지만, 그래도 엄마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가장 편한 말벗이자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호흡이 잘맞는 파트너였던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의 시간과 공간에 내가 끼여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편해졌다. 내년 6월이면 완벽한 독립을 하겠지만, 그 전에라도 떨어져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네이버 부동산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쓰러져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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