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14.

아침에 일어나 엄마를 모시고 성당에 갔다. 성당 가는 길에 엄마와 오늘 일정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주변 경치를 전혀 보여드리지 않은 것 같아 근처에 괜찮은 사이트뷰를 가진 곳 위주로 몇군데 보여드리기로 했다. 에스테스 파크에 가면 참 좋았겠지만, 36번이 다시 괜찮아졌는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포기하기로 했다.

성당은 그대로였다. 사람들도 그대로였다. 평일미사에서 자주 봤던 할아버지도 계셨고, 나를 자신의 클래스메이트로 착각하고 말을 걸어왔던 볼더 로컬 공대 대학원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떠난다. 로컬 주민은 남는다. 학생들이 중심이 되는 성당이지만, 매일 매일의 미사를 지키고 있는건 늙은 주민들이다. 피터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다. 성가도 익숙한 노래들을 그대로 부르고, 미사 방식도 똑같았지만, 아주 약간 영어 기도문을 잊어버린 나만 조금 달라져 있었다. 성체를 모시러 가면서부터 가슴이 무척 뛰기 시작했는데 피터 신부님이 나를 알아보시고 미소를 지어주셨다. 눈물이 잔뜩 고여있는 내 눈을 보고 놀라셨는지 그분도 “body of Christ”라는 말을 하지 않으시고 그냥 성체를 내 손 위에 올려주셨고, 나도 “Amen”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자리로 돌아와 울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보시던 엄마도 함께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미사가 끝나고 피터 신부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다음날 있을 여행에 대한 강복을 받았다. 반갑게 기억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아침미사를 보고 경수선배와 자주 갔던 Egg &  I 에 가서 나와 경수선배가 자주 먹던 메뉴를 시켜서 엄마와 함께 먹었다. 엄마는 상호명에 “egg”가 들어가기 때문에 계란이 들어간 메뉴를 원하셨고, 에그 프리타타를 시켜드렸다. 나는 덴버 오믈렛을 먹었다. 엄마는 노부부가 친구들, 혹은 가족들과 함께 여유롭게 즐기는 주말 아침식사 모습을 부러워하셨다. 성질급한 남편을 둔 죄로 식당에서 한시간 이상 있어보지 못한 삶에 대한 아쉬움이 약간 배어나오는 듯 했다. 나 역시 아버지와 함께 하면서 무언가를 진득히 기다리거나 여유있게 무언가를 마무리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행 내내 엄마 앞에서 아버지 흉을 꽤 많이 본 것 같다.

Chautauqua 트레일 코스를 지나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볼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온다. 여기서 조금 많이 더 올라가면 로키산맥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엄청난 뷰가 펼쳐지는데, 우리의 작은 피아트로 거기까지는 무리일 것 같아 그냥 볼더 전망대만 구경시켜드렸다.

테이블 메사로 넘어가서 볼더의 8학군이라고 할 수 있는 페어뷰 고등학교 주변 동네를 보여드렸다. 거위떼가 점령하고 있는 작은 호수가 있고, 굴곡진 길을 따라 굉장히 좋은 뷰가 펼쳐진다. 엄마에게 이곳을 보여드린 이유는 함양땅을 사신 것에 대한 은근한 힐책이었지만, 엄마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신 듯 보였다. 이제는 좀 이웃들과 함께 편하고 여유롭게 노후를 보내시기를 바라는건 자식의 마음이다. 하지만 반평생을 함께 살며 아버지의 급한 성격을 조금씩 닮아오신 엄마는 이웃들과의 교류보다는 땅과 함께 하는 조용한 삶을 이미 선택하신 듯 보였다. 물론,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울로 돌아와서 코스트코 쇼핑을 즐길 것이라는 말씀을 하긴 하셨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시면, 아버지는 아마 시골에 홀로 남으려고 하실 것이다. 그때쯤 되시면 자식들을 이길 힘이 없으시겠지만.

테이블 메사까지 다 보자 강한 바람을 몰고 왔던 먹구름떼가 잠시 걷히는 것 같아 보였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어디에 갈까 잠시 고민하다가 2008년 7월 18일, 볼더에 처음 왔을때부터 약 1년간 묵었던 곳을 보여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떠날때만 하더라도 한참 공사중이었던 아라파호 Ave.는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처음 1년간 살던 아파트 주변을 돌면서 잠시 그때 당시 추억을 말씀드린 후, 28th St. Mall에 있는 피츠커피에 가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머니를 잠시 그곳에 계시라고 한 후 옆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 가서 아이폰을 사서 한국에서 쓸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애플 스토어에서 파는 휴대폰은 티모바일용이라서 한국에서는 4G까지밖에 쓸 수 없단다. full LTE 스피드를 즐기려면 버라이존 제품을 사야 하는데, 현재 버라이존 제품을 사면 무조건 2년 약정으로 쓸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그냥 밖으로 나왔다. 분명히 직구해서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미국의 공기계값 차이가 한 13만원 정도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펄스트릿으로 가서 차를 주차해놓고 어제 네시간동안 쇼핑했다는 엄마의 쇼핑목록을 하나하나 수거하기 시작했다. 주로 페퍼콘에서 파는 여러가지 잡기들을 샀는데, 엄마 몫으로 산건 정작 몇개 되지 않고 대부분 영건이를 위해 요리하는 누나를 위한 것들이었다. 누나가 만약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면, 엄마의 누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더 컸을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엄마와 딸 사이에 흐르는 마음의 온도는 무뚝뚝한 아들내미가 감히 넘겨볼 수 없는 뜨거움이 있다. 엄마는 요즘 닭과 관련된 것들을 모은다고 하셨다. 그래서 닭무늬가 들어간 삶을 달걀을 올려놓는 그릇과 향료통을 몇개 샀다. 접시를 몇개 사라고 권해드렸지만 가지고가다가 깨질 것 같다고 한사코 거절하셨다. 안타까웠다. 대신 무쇠로 만든 튼튼한 팬을 하나 샀다.

숙소로 돌아와 둘다 잠시 뻗어 있었다. 한시간 정도 낮잠을 잔 후 차를 반납하러 나왔다. 기름을 다시 채워서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 차가 개솔린인지 디젤인지 알 길이 없어서 아까운 국제전화비를 지불하고 엔터프라이즈에 전화를 걸어 렌트한 차가 레귤러 개솔린임을 확인했다. 기름을 채우려는데 이번에는 또 카드가 안먹혀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 돈을 따로 지불했다. 이런 방식으로 기름값을 내본건 또 처음이었다. 차를 반납하고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고, 어머니를 보시고 부슬부슬 비가 내기를 골목길을 걸어 김광민 교수님 댁에 도착했다.

김교수님 댁에서 6개월동안 산 적이 있다. 2013년 1월부터 6월까지. 그때 나는 연애를 시작했고, 김교수님이 공짜로 숙소를 제공해주신 덕분에 렌트비를 세이브해서 그 돈으로 한국에 한번 다녀올 수 있었다. 사귄지 3개월만에 이별의 위기를 겪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고 일주일동안 한국에 다녀왔다. 그렇게 이어진 연애는 올해 가을까지 이어졌다. 그 기간동안 몇번의 이별의 위기가 더 있었고, 아마도 나는 그걸 현명하게 잘 넘기지 못한 것 같다. 아무튼, 그 집은 연애를 처음 시작할때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페이스타임, 구글행아웃, 각종 사진들에서 내 모습의 뒷배경을 장식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두시간여동안 시간을 보낸뒤 김교수님의 부인이신 임교수님이 호텔까지 우리를 태워주셨다. 어머니를 들여보내고 친구들이 있는 일리걸 피츠로 갔다.

로컬 맥시칸 식당인 일리걸 피츠에는 스캇, 크리스, 스티브, 캐런과 크리스의 형, 형의 친구 이렇게 여섯명이 있었다. 셀카봉 사용법을 알려주고 크리스와 캐런에게 선물했다. 카우보이스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대해 이야기하고, 케이팝에 대해 이야기했다. 크리스 형과 그의 친구와 작별한 뒤 펄스트릿 펍으로 자리를 옮겨 조금 더 술자리를 이어갔다. 나이트로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뒤 열한시쯤 헤어졌다. 아마도 이 그룹의 다음 만남은 2015년 보나루일 것이다. 그곳에서 크리스는 바첼러 파티를 할 것이라고 했다. 크리스는 2014년 보나루에서 입었던 주완 하워드의 매버릭스 저지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낡고 헤어진, 땀냄새가 그득 배인 레플리카 저지였지만 고맙게 받았다. 내가 만약 다시 미국에 온다면, 그건 아마도 2015년 6월 내쉬빌행일 것이다.

숙소로 돌아오니 엄마가 이미 짐을 다 싸놓고 계셨다. 간단히 씻고 세면도구까지 챙겨 넣은 후 잠시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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