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14.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버려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정장을 아예 입었다. 다시 호텔로 들어올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발레 파킹 밖에 되지 않는 호텔이라 울며 겨자먹기로 발레를 했는데 차를 찾을때 팁으로 5불을 줬다. 적당한 수준인지 모르겠다. 차문까지 열어주고 시트도 원래 내 포지션으로 맞추어주는걸로 봐서는 무척 친절한 발레파킹인데 팁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한번도 발레 파킹을 해본적이 없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새파란 하늘이 무척 가깝게 땅과 맞닿아 있었고, 햇살은 미치도록 강렬했다. 정장만 입고 다녀도 괜찮을 정도로 따뜻했다.

바로 학교로 올라갔다. 전날 두번이나 찾아갔지만 없었던 파트리샤가 이번에도 노크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메인오피스에 가서 마리아를 먼저 만났다. 항상 당황하지 않고 당당하게 일을 처리했던 마리아는 나를 봐도 놀라는 기색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킴벌리의 오피스에서 마리아, 킴벌리와 함께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밖에서 파트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쪽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서 달려왔어”하면서 등장한 그녀와 반갑게 포옹을 했다. 킴벌리는 놀랍게 살을 뺀 것 같아보였다. 원래 무척 작고 아담했던 그녀가 더 작아보였다. 내가 만난 백인중에 가장 작은 사람인 것 같다. 내 후임으로 들어온 자비에가 덴버에 직장을 구해 Web Assistant GAship을 포기했다고 한다. 학과는 새로운 사람을 뽑을 계획이 없다고 하고, 그래서 킴벌리는 다음 학기 내내 혼자 일해야 한다고 했다. 킴벌리가 나중에 졸업식장에서 “빡세게 일하고 많은 돈 받을래, 아니면 나랑 다시 일하면서 근근히 먹고 살래?”하고 물었을때 정말 후자를 택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좋은 보스였다. 마리아, 킴벌리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전달하고 파트리샤와 함께 그녀의 오피스로 이동해서 조금 더 수다를 떨었다. 엄마가 그녀를 위해 직접 만든 가방을 전달했고, 파트리샤는 이미 6개월전 나를 통해 전달받은 엄마의 선물-소반-이 손자손녀들의 체스판 받침대로 잘 쓰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몇십년된 골동품 소반이 콜로라도 어딘가에서 꼬마들의 체스놀이를 위해 쓰이고 있다니, 꽤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소반의 남은 인생은 굉장히 윤택할 것 같다. 파트리샤는 엄마를 만나고 나니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표현은 “You were so kind to everyone, and your mom is, too. Now I understand why you were so.” 비스무리했던 것 같다. 나는 학교 사람들을 꼭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살았는지 가장 정확하게 증명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항상 남을 돕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으며, 그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나의 선행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다만 그 누구보다 가깝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가족 중 한명에게 내가 정말 그렇게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그것이 그냥 아무런 의미없이 잊혀지는 것을 막고 싶었을 뿐이다. 이 사람들이 나를 정말 좋아했고, 지난 6개월동안-내가 그들을 생각한 것 만큼이나-나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은 플러스였다. 기뻤다.

밖으로 나오니 한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점심약속은 열두시였고, 남은 시간동안 내가 자주 산책하던 Boulder Creek을 엄마와 함께 걷기로 했다. 패밀리 하우징에 차를 주차하고 남쪽으로 슬슬 내려갔다. 개울은 여전히 맑았다. 강한 햇빛이 물줄기에 반사되는 모양새가 너무 예뻤고, 잠시 쉬어가는 듯한 오리떼와 그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와 손자의 모습도 예뻤다. 볼더에서 별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언덕까지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그곳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있었다. 아빠 하나가 아이 둘을 데리고 잔디밭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열두시에 경곤씨를 만났다. 마지막해에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고, 그때부터 이메일로 여러가지 팁을 주다가 한국으로 돌아갔을때 마침 출국을 아직 하지 않고 있어 한번 밥을 먹었던 사람이다. 너무나 예의바르고 착한 분이었다. 본바탕이 선하다고 할까, 겸손과 친절함이 몸에 벤 사람이었다. 엄마와 함께 셋이 라크버거에 가서 버거를 먹고, 바로 옆에 있는 플랫아이언 커피숍에서 차를 한잔씩 마셨다. 경곤씨는 다행히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강추했던 스바루를 샀고, 내가 강추했던 뉴튼코트에 잘 정착했으며, 내가 부탁했던 도영씨가 다행히 잘 보살펴주고 있다고 했다. 한학기가 끝났을 뿐인데 벌써 볼더와 사랑에 빠진듯 했다. 하긴, 우리 엄마는 볼더에 온지 사흘만에 사랑에 빠졌으니까.경곤씨는 도영씨와 나에 대해 가끔 이야기한다고 했다. 내가 1년만 더 있었으면, 셋이서 정말 많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하고. 하지만 난 내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도영씨에게 다 전수해주고 왔다. 도영씨는 그것을 발전시켜(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니까) 경곤씨에게 전달해주고 있고, 몇년 뒤 경곤씨와 도영씨가 볼더를 떠날 때쯤 새로운 한국인이 그 경험을 다시 전수받게 될 것이다. 그때쯤 나는 볼더를 많이 잊고 살 것이고, 볼더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선배의 역할은 거기까지다. 선배의 이름이 후배의 머릿속에 남아 있으면 안된다. 다만 후배가 선배보다 조금 더 앞에서 수월하게 출발할 수 있게 도와주는게 선배의 유일한 역할이자 의무이다. 경곤씨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역할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졸업식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엄마를 모시고 펄스트릿 홀푸드에 갔다. 시간이 많지 않아 물건을 사지는 못하고 그냥 한바퀴 휙 돌고 나왔다. 엄마는 지금까지 여행 내내 “네가 이렇게 좋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뻔 했다”라는 말과 “여기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면 참 좋을텐데..”라는 말을 많이 하셨다. 홀푸드는 그런 엄마의 생각에 쐐기를 밖는 결정타와 같았다.

두시반에 졸업식장으로 갔다. 겨울 졸업식은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큰 강의실을 빌려서 한다. 들어가자마자 패트릭이 보여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신학생이었다가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경제학도로 삶의 방향을 크게 바꾼 친구였고, 함께 스포츠를 즐기면서 친해졌다. 오늘 도우미로 왔다고 했다. 졸업식 가운을 입고 기념촬영을 간단히 한 뒤 조이를 만났다. 조이는 아까 아침에 잠깐 학교에 들렸을때 자신의 오피스를 찾아오지 않아 서운하다고 했다. 나중에 킴벌리가 말해주었는데, 나를 가장 그리워한 사람이 조이라고 했다. 쓰레기통을 비울때마다 나를 언급한다고 한다. 내가 그녀의 쓰레기통을 대신 자주 비워주었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조이는 새로운 포지션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릴리가 하던 학과 스케쥴링 업무인데, 그 전에 했던 단순 비서 업무보다는 훨씬 재미있을 것이다. 조이에겐 예쁜 손자 손녀들이 있다. 오늘 그녀는 나에게 페이스북 신청을 했는데, 페이스북 사진도 손자 손녀를 양손에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오늘 박사를 받는 사람은 나와 잭, 두명이었다. 잭은 내 일년 후배였지만 나보다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잭의 TA를 한적도 있다. 함께 Bon Iver와 Feist의 공연을 본 적도 있다. Red Rocks에서! 잭은 ANU에 취직했다. 잡마켓에 나가지 않고 지도교수추천으로 바로 임용됐다. 경제사를 전공하는 친구인데 경제사는 취업에서 운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캔버라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캔버라에 스타벅스가 하나밖에 없다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좀 늘었으려나. 캔버라는 볼더와 비슷하다. 볼더보다 크고, 인종차별이 조금 있으며, 한국사람이 훨씬 많다. 그런데 이것도 7년전 기억이다. 지금은 그곳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당시 홈스테이를 했던 노부부가 가끔 생각난다. 그때도 무척 고령이었는데, 지금까지 살아있을지 궁금하다. ANU에 취직해서 그분들을 다시 뵙는 상상을 가끔 했는데, 어쩌면 잭이 그분들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참 이렇게 재미있다.

졸업식을 했다.

엄마를 모시고 다시 홀푸드로 가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점심 찬거리를 간단히 샀다.

엄마를 호텔룸에 안착시켜 드리고, 비상연락망을 적어 드린뒤, 여러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엄마는 자신이 보살핌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여행내내 그랬다. 그래서 이것저것 챙김을 받는 것을 어색해 했다. 그래도 자식된 입장에서 영어를 잘 못하는 노인을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맘편할리 없다.

루벤에 갔더니 스캇, 캐런 뿐만 아니라 에드, 기슬라, 더스틴,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3년차 애들 두명과 그들중 한명의 여자친구가 함께 있었다. 오스틴과 켄드라도 있었다. 내가 갔더니 막 일어나려던 참이었던 것 같다. 에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똑똑하고 좋은 친구였다. 역시 경제사를 전공하지만 그가 이번 잡마켓에서 분명히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퍼스타가 될거다. 대학원에서 만나 결혼까지 한 기슬라와 더스틴도 이번에 보스턴으로 간다. 스캇과 나중에 이야기했지만, 이번에 잡마켓에 나가는 친구들이 모두 수준급의 실력파들이다. 기대가 아주 크다. 파트리샤에게 듣기로 다행히 이번 잡마켓이 무척 좋다고 한다. 부디 모두 잘되기를. 에드, 기슬라, 더스틴과는 거기서 작별했다. 우리가 다시 만날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볼더 카페로 자리를 옮겨 조금 더 대화를 이어나갔다. 오스틴도 잡마켓에 나간다. 그도 매우 똑똑한 친구다. 메인 출신의, 전형적인 백인. 고등학교때 만난 켄드라와 몇년전 결혼했다. 그도 잘 풀릴 것이다. 크리스와 스티브가 볼더 카페에 도착했고, 스캇과 나, 캐런과 크리스는 밖으로 나와 드디어 에스테스 파크로 향했다.

볼더에서 에스테스 파크까지는 한시간 정도가 걸린다. 운전은 캐런이 했다. 음악을 크게 틀고 수다를 떨며 그곳으로 갔다. 우리가 묵을 곳은 YMCA of the Rockies. 크리스는 벌써 네번째라고 한다. 지금 크리스가 사귀고 있는 케이티의 딸인 노라를 위해 찾은 곳이라 그런지 각종 activity program이 모두 아이들을 대상으로 꾸며져 있었다. 우리가 점령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캐빈에 짐을 풀고 가지고 온 티비와 PS4를 설치했다. 매든과 2k14, FIFA를 함께 플레이했다. 술을 마시고 밖으로 나가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았다. 별이 너무 많아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스캇이 갑자기 졸리다고 해서 씻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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