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ve McQueen: Hunger

Hunger movie poster Steve McQueen
영국산 스타일리스트 스티브 맥퀸을 세계에 알린 데뷔작품 <Hunger>는 1981년 북아일랜드의 한 교도소에서 있었던 IRA의 hunger strike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시 약 75명의 죄수들은 테러범이 아닌 정치범으로서의 대우를 바라며 죄수복 거부, 사역 거부, 감형제도 부활, 동료 죄수와의 자유로운 접촉 등을 요구하며 (말그대로) 벽에 똥칠을 하는 등의 dirty protest 를 벌이고 있었고, 이러한 집단적 단식투쟁이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한 리더 Boddy Sands는 릴레이처럼 돌아가며 진행하는 장기적인 단식투쟁을 계획하고 자신이 그 첫번째 주자가 된다.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는 특사를 보내 단식 중단을 요청했고, 단식기간 중 영국 하원의원 선거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그가 혼수상태에 빠졌을때 Sands의 부모는 의사의 도움을 거부했다. Sands는 결국 66일만에 숨졌다. 그가 숨진 이후 9명이 더 단식으로 인해 사망했다. 이후 영국 정부는 정치범으로서의 인정을 제외한 모든 조건을 수용했고 단식 투쟁은 마무리되게 된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교도소 안팎의 사람들의 일상을 리얼리즘적인 시각으로 다룬다. 그 방식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영화는 아주 미시적인 삶의 파편들에 집중하는데, 그 배경들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는 않는다. 예컨대 세면대에 고인 물이라던가 아침 식탁에 올려진 베이컨에 몇초씩 시선을 고정시키지만 ‘왜’ 그것들이 영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는 영화의 중반 이후에나 뒤늦게 알게 되는 식이다. 심지어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처음의 몇 시퀀스에서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평온한 중산층 마을에서 출퇴근하는 한 중년 남자의 히스테릭한 모습으로 출발하는 이 영화는, 이후 이 남자가 교도관이고, IRA 정치범들을 ‘거칠게’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며 하루종일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근심하는 그가 아침 출근길마다 자동차 밑을 유심히 바라봐야 하는 이유를 (결국 그의 근심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장면과 함께) 대구처럼 영화 중반 쯤에 보여준다. 교도소에서 우리가 처음 보게 되는 두명의 죄수는 영화 중반 이후에는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의 주인공인 바비 샌즈는 영화의 초반과 후반부를 구분짓는 엄청난 롱테이크씬에서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친한 신부와 나누는 이 길고 긴 대화씬이 영화의 주제를 고전적인 방식으로 (즉, 연극적인 방법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장면이라면, 이 씬이 포함된 신부와의 면회 시퀀스 이후 영화의 끝까지 정직하게 보여주는 샌즈, 그러니까 마이클 파스벤더의 앙상하게 비틀어져버린 몸은 영화의 주제를 지극히 영화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맥퀸다운’ 마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스티브 맥퀸은 그의 데뷔작에서, 시각적인 부분을 스타일리쉬하게 잡아낼 수 있고 또 그 안에서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재능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상대적으로 희미하게 비추어질 수 있는 언어적인 부분을 파스벤더라는 -미래에도 계속 이어질 그의- 페르소나를 통해 놓치지 않음으로써 영화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명민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맥퀸의 영화지만, 파스벤더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후 <Shame>에서도 그러한 성향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한 것 같은데, 맥퀸은 <Hunger>에서는 거의 절대적으로 파스벤더의 연기력에 의존하고 있다. 롱테이크씬에서의 능청스러운 악센트부터 시작해서 이후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대사 하나 없이 오로지 육체만으로 표현해내는 파스벤더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눈꺼풀 하나만으로 샌즈의 인생 전부가 담긴 복합적인 감정을 오롯이 뱉어내고 있다. 이에 반해 맥퀸은 꽤 흥미로웠던 전반부에 비해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파스벤더의 기에 오히려 눌리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샌즈의 유년기를 보여주는 부분은 퍽 진부해서 실망스러웠다. 신부와의 면회 장면에서 샌즈는 무엇이 널 이렇게 버티게 만드냐는 질문에 cross country라고 답했고, 달리기가 갖는 특성을 들어가며 “골라인”에 들어가기 위한 자신의 투쟁을 정당화한다. 영화의 마지막 회상씬은 아마도 그러한 샌즈의 신념을 구체화한 것 같은데, 이후 맥퀸의 영화들을 보여 항상 아쉬운 부분이었던 ‘too much’의 뿌리를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했다.

나의 투쟁은 세상을 향한 투쟁이기도 하다. 내가 스스로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순간부터 나는 세상에게 굴복하기 시작한다. 바비 샌즈는 그러한 면에서 폭력적인 IRA에 가장 적합한, 외곬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신은 자살이 아니라 멍청함때문에 널 처벌하실 것이다”라는 신부의 비판에 그는 “그 신은 당신의 거만함과 소심함을 외면하지 않을거다”라고 맞받아친다. 교도소 안에서의 투쟁은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고, 결국 대처를 움직이게 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죽음이 완전히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는 내면안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음으로써 제대로 서있기조차 힘든 육체를 극복하고 ‘정신승리’를 거두었다. 그의 투쟁방식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그의 죽음이 최소한 조금은 숭고한 차원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맥퀸의 데뷔작은 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짓눌리지 않고 경쾌하고 담백하게 그 과정을 서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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