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h Polley: Stories We T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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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This Waltz>가 특별했던 이유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남녀관계에 대한 서늘함이 결코 냉소적인 시각으로부터 도출된 결과물이 아닌, 오히려 그 반대편의, 거부할 수 없는 관계의 운명적 속성을 받아들이는 내재화 과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영화를 보고 난 후 꽤 오랜 기간동안의 저릿함을 경험한 뒤에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이 영화의 장면들, 대사들이 생각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여자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결코 패미니즘적인 시선을 적극적으로 담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보아온 그 어떤 영화들보다 여성을 위한 강하고 굵은 메시지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목욕탕신에서 여성의 육체를 적나라하게 잡아내는 장면이나, 레오나드 코헨의 동명곡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녀관계의 거의 모든 것을 뱅글뱅글 도는 카메라 안에 잡아내는 장면을 보며 어떻게 1979년생의 배우 겸 감독이 자신의 두번째 영화에서 이런 것들을 가능케 했을까, 하고 요즘에도 가끔 생각하곤 한다. 이 우매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한조각을 <Stories We Tell>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다. 사라 폴리 감독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폴리 감독의 형제 자매들, 아버지(들), 그리고 알 수 없는 관계의 주변인들이 그녀가 11세때 암으로 사망한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풀어놓는 이야기(들)를 담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 형제들로부터 “아버지와 닮지 않았다”라는 농담을 들으며 성장했고, 그 농담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되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진짜 아버지를 찾게 만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로서 커리어를 쌓아나가던 그녀는 18세때 역시 배우였던 어머니가 동료 배우와 불륜 관계에 있었으며 그 배우가 자신의 생부라는 루머를 접하게 되고, 그 루머를 추적해나가던 중 영화 프로듀서였던, 어머니와 불륜을 저지른 자신의 생부를 약 29세 무렵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평생 그녀를 키운 그녀의 또다른 아버지가 직접 쓰고 읽은 영화의 나레이션은 담담하게 자신의 아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불륜을 저질렀으며, 그 이후 그녀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기술하고 있다. 여기에 살을 붙이는 것은 각기 다른 성을 가진 폴리 감독의 형제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를 알고 있는 주변인들의 기억들이다. 이들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제각각이다. 다이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여자를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있고, 이들이 이야기하는 다이앤에 대한 기억들은 종종 폴리 감독의 ‘목적’과 충돌하기도 한다. 이들은 카메라 뒤에 있는 폴리 감독에게 항의하기도 하고, 따지기도 한다. 즉, 각기 자신의 방식대로 이 ‘이야기(들)’를 이끌어 나가고 싶은 것이다. 이 미묘한 신경전에서 폴리 감독은 끝까지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다. 그녀는 영화 내내 결코 적극적인 발화자로 기능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나레이션 녹음 장면에서 얼굴이 포착되고 또다른 아버지(생부)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낭독하는 장면에서 살짝 목소리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결코 적극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가 “아무도 관심없어할 것 같은 이 멍청한 가족의 이야기”를 하나의 극적인 영화적 사건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식은 발화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 사이에 비어있는 공간들을 대역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재현해내는 것 정도다. 그리고 이 작업을 통해 폴리는 모두가 각기 다르게 이야기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하나의 독립된 여자 개인으로 직조하게 된다.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사실은 한 개인에게 상당히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무리 냉정하려고 해도 감정적이 되기 쉬웠을 것이며, 더욱이 그러한 사실을 완성된 장편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어지간한 지혜와 용기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어려움 속에서 이 영화가 다이앤이라는 한 여성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심지어 어떤 ‘서늘함’까지 느끼게 만든다는 것은, 영화가 끝난 후 사라 폴리라는 개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정도로 이 감독의 시선이 매우 단단하고 냉철한 것임을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폴리 감독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완벽한 자기 개인사를 통해 드러낸다. 어쩌면 이 영화는 스스로가 주인공이 된 <Take This Waltz>의 또다른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자신을 낳은 다이앤은 끊임없이 극단적인 수준까지 에너지를 분출했고, 욕망했으며, 그 욕망을 결코 숨기지 않았고, 욕망을 실현한 댓가로 받은 고통도 순순히 감수했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죽어가고 있었”으며, 그녀의 남편을 많이 사랑하기도 했고, 적게 사랑하기도 했다. 그게 여자다. 사랑과 임신, 육아와 자아실현이라는 상충된 가치들 안에서 끊임없이 욕망하고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존재. 사라 폴리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가장 민감한 주제를 가장 솔직하게 풀어냈다. 참 무섭고, 못된 여자다. 그래서 참 좋고, 매력적인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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