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일기

IMG_2035회사의 (최종)보스와 우리팀이 식사를 한번 한적이 있다. 이 팀 자체가 보스의 지시로 만들어진 조직이라 보스의 관심은 각별해보였다. 뉴스에 나오고 신문에 나오는 유명인사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인생인지라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는데, 한시간쯤 함께 있으면서 긴장이 조금 풀어지다 보니 그냥 우리 아빠같고, 동네 아파트 주민 아저씨같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분이 해주신 말씀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냥” 여의도를 한바퀴 돌아보라는, “그냥, 이유없이” 한강 다리도 한번 건너보라는, 다소 황당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가끔 서강대교를 “그냥” 건너곤 한다. 운동삼아, 라는 좋은 핑계가 있긴 하지만, 매연이 가득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한번만 건너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건너는 것이 그리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중간에 있는 밤섬때문인지, 가끔은 퍽 이쁜 저녁노을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IMG_2038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은 예쁘다. 반포나 이촌, 잠원보다도 한수위라고 할 정도로 쾌적하다. 경치도 나쁘지 않고, 주차장도 넉넉한 편이다. 하지만 내 직장이 여의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주 가는 것이 꺼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곳 거실 창문에서 직장이 보이는 것도 싫은데 굳이 여가시간에도 회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편의시설을 즐기고 싶지는 않다. 리프레쉬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IMG_2040미국에 있을때 “테일러 커피에서 시간을 때우고 싶다”는 불평을 트위터에 대고 많이 했다. 사실 볼더에는 테일러만큼이나 괜찮은 커피숍들이 많이 있다. 테일러보다 훨씬 커피를 잘 뽑아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훨씬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커피숍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테일러만이 주는, 미국에서는 절대 발견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엄청 맛있는 레모네이드라던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워서 정신줄을 놓게 만들어버리는 플랫화이트라던지. 이 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카페에 앉아 읽을 거리를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는 나는 레모네이드와 케잌 한조각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가끔은 밤 열시쯤까지 가만히 책만 읽고 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한번도 해보진 못했다. 집 근처에 좋은 커피숍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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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에 통의동에 있는 연수원에서 일주일동안 연수를 받았다. 경력/전문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이모저모를 소개해주는 자리였다.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건 거의 없었다. 이 교육기간이 한달이었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군대에 가도 그렇지 않은가. 훈련소에서 배운 것 중 쓸모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결국 실전에 투입되어서 깨져가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다.

이곳에서 ‘동기’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서른명 남짓 만났다. 변호사, CPA, IT 전문가, 국제교류전문가 등 각 분야에서 날고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길게” 가고 싶은 마음에, 집에 있는 처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에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 오는 사람들의 심리는 모두 마찬가지인가보다. 나는 정년까지 이곳에 남아 있을 확률이 거의 없지만, 그런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경험해보는 것이 결코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의동 연수원은 경복궁에서 담벼락 하나, 이차선 도로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다. 점심을 먹고 경복궁 앞마당까지 살짝 산책하고 올 수도 있었다. 경복궁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통의동 및 효자동은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관광지화되어있었다. 팬시한 커피숍들과 ‘맛집’이라고 불리워지는 음식점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가던 탁구장, 내가 가던 당구장, 내가 가던 피시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건물들은 여전히 낮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곳도 결국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몫으로 버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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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는 내 방이 따로 있다. 일종의 연구실이다. 문을 닫고 있지는 않아서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방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방의 한쪽 벽은 창문으로 되어 있다. 보통 커튼을 쳐 놓는다. 아침에는 햇빛이 직접 들어오고, 저녁에는 길 건너편 빌딩의 유리창에 반사되어 또 햇빛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름은 맑은 날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우중충한 가운데 무척 습하고 더웠다. 비가 온 다음날 아침 몇시간 정도가 겨우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인데, 방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기쁨도 그때 바쁜 마음으로 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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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네 가족이 이사를 했다. 이삿날 나는 엄마를 모시고 그곳으로 가서 소소한 일들을 도왔다. 사실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드리지 못하고 대충 왔다는 시늉만 내다가 약속이 있어서 일찍 나왔다. 작고 낡은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에서 넓고 새로 지은, 쾌적한 환경의 아파트로 간 누나와 자형의 선택이 멋졌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이곳이 훨씬 나을 것 같아보였다. 나는 콜로라도에서 인형을 하나 사 왔는데 마침 그곳에 원숭이 인형 친구가 하나 더 있어서 짝지워 주었다. 조카는 착하고 떼를 쓰지 않는 대신 겁이 좀 많다. 인형을 무서워한다. 이 빨간 입술 원숭이 인형은 사실 나도 좀 무서운데, 함께 잘 놀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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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욱이와 간단하게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갔다. 광화문은 떼가 탄 노란 리본과 변희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천막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바쁘게 퇴근길을 재촉하는 젊은이들과 그들이 지나쳐가는 거리를 밝게 비추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공존하는 곳이었고, “명박산성”이 있던 자리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천막이 위치한, 뒤틀린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일곱살 무렵부터 지켜봐왔고 평생 그리워한 이곳이, 이제는 내 다음 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이야기해주어야 할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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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 회식을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처음 가봤다. 박박사도 처음 가보는 것이어서 우리 둘은 관광객처럼 신기하게 이곳저곳을 둘러 보고, 팀장님과 최박사는 열심히 가격을 흥정하고 생선의 질을 보고.. 그런걸 했다. 박박사와 잠깐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렇게 서울의 역사를 그대로 흡수해버린 곳이 진짜 관광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광장시장, 통인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이런 곳이 서울의 간판 얼굴이 되어야 맞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경복궁도 좋고 코엑스도 좋고 홍대도 좋지만, 이들이 “서울은 어떤 곳이야?” 혹은 “서울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야?”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곳은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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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를 바쁘게 보냈다. 대구에 계신 친척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지방의 시외버스터미널의 아비규환을 직접 경험했다. 부모님이 사신 함양땅을 드디어 두 눈으로 확인했고, 덤으로 엄마의 페이보릿 스팟이라는 마천땅도 가봤다. 함양에서 이틀을 보내면서 일을 좀 거들었는데, 낫질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그 이후 며칠동안 허리가 고생했다. 조카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이틀을 함께 보내면서 비로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마 지금은 또 다 잊어버렸겠지만, 조카와 친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함양땅은 부모님이 내년 은퇴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마련하신 곳이다. 두분은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 노심조차하신 듯 했지만, 정작 내가 그분들께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처음부터 없었다. 당신들이 가장 편하고 가장 그분들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나도 전적으로 지원해드릴 의무가 있는 것이지, 그분들의 재산으로 산 그 땅에 대해 내가 불만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좋다 싫다를 말하기 전에 언제 어떻게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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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이네 집에서 진욱이 와이프 친구들과 함께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들끼리 따로 빠져나와 이태원 근처에 살고 있는 해종이를 불러내 이코노미스트지 기자 양반이 차렸다는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 친구들은 나를 굉장히 오래 보아온 친구들이라 나의 어린 시절의 미숙했던 모습들부터 하나 하나 성장하는 과정 모두를 지켜봐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 대해 그리 크게 놀라워하지도 않으며, 내가 하는 말들을 거의 대부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이다. 의심을 받을만한 행동들을 많이 하며 한번에 쉽게 이해하기도 힘든, 상당히 까다로운 언행을 일삼는 나를 편하게 대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곁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매우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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