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재산

오늘은 국감 종합감사날이어서 본원으로 불려가 하루종일 국회의원들의 질의와 위원장님과 우리 원장님의 답변을 속기로 받아적는 일을 했다. 일종의 차출을 당한건데, 동기들과 동료 박사님들은 “어떻게 박사에게 이런 일을 시킬 수 있냐!”라고 대신 한탄해주셨지만 정작 나에게는 본원에 하루종일 짱박혀 있으면서 실제로 하나의 부서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예상했던대로 사무실은 조용했고 분위기는 권위적이었으며 사람들은 한없이 친절했지만 결코 마음을 섞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회의 테이블에서 랩탑 네개를 나란히 켜두고 일한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 조사역, 선임조사역들이었는데 내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요즘’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아 살짝 반갑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똑같은 회사 사람들이었고, 나처럼 ‘짬’이 안돼 억지로 불려나온, 그날 해야할 업무를 이 국감 차출때문에 뒤로 미뤄야 하는 것에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일은 개떡같이 힘들었고 내 노동력은 찰떡같이 빨아먹혔다. 국회의원들의 짱짱한 목소리를 열시간 넘게 이어폰으로 듣고 있자니 현기증이 밀려왔다. 8시반쯤 이종걸 의원의 질의에 목이 반쯤 쉰 채로 대답하는 위원장님의 답변을 마지막으로 재재재보충질의가 끝나고 간단하게 사람들과 인사를 한 뒤 랩탑을 놓으러 원래 내 자리로 갔더니 팀사람들은 다들 퇴근하고 없었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밤늦게 혼자 앉아 이것저것 밀린 일들을 하는 생활을 6년동안 해왔는데, 이 회사라는 공간은 몇개월이 흘러도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있을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섯시 땡, 하면 퇴근해야만 할 것 같고, 그렇지 못하면 기분 나쁜. 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인가. 내가 원하는 공부를 내 돈 내고 하는 살떨리는 기쁨이 원천적으로 거세당한 상태이기 때문일까.

팀장부터 팀원까지, 대학교 친구들부터 고등학교 친구들까지, 오늘 처음 만난 차출인원들부터 인터넷에서 얼굴 한번 보지 않은 온라인 지인들까지, 모두 하나같이 헤어졌다는 말에 위로보다는 축하 인사를 먼저 건네는 것이 참 흥미롭다. 솔직히 말해 기분이 나쁘다. 당혹스럽다. 물론, 어제 함께 술을 마셨던 오래된 친구인 학교선배에게도 말했지만, 만 서른둘에 애인과 헤어졌다고 질질 짜고 술사달라고 조르고 마음이 아파서 잠도 못자고 밥도 못넘기고.. 그러면 안된다. 그건 스무살, 스물 두살들의 연애다. 서른둘의 연애는 달라야 한다. 왜 헤어졌는지 명확하게 파악되고 그 책임소재가 분명하면, 그 부분에 대해 수정하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술먹고 전화한 뒤 트위터에 찌질하게 미주알고주알 풀어놓는 짓을 했다.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꼭 해보고 싶었고, 아주 시원하게 스트레스가 해소됐다) 아파하는 것은 내 몫이다. 다른 사람에게 굳이 보일 필요 없는, 나만의 몫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지난 사랑이 쉽게 이야기될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찌 그리 남의 사람에 대해 쉽게 평가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오늘 들었던 말은
“이제 시장에서 잘 팔리시겠네요”였다.  이와 비슷한 말, 수도 없이 들었다. 들을 때마다 웃으면서 대꾸는 해주는데, 얼마전 헤어진 사람이 상대방 배려한답시고 웃으면서 괜찮아요, 해도 사실은 괜찮은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서 눈치를 채야 하는게 30대, 40대 아닌가 싶다. 알아서 입을 다물어 줄수는 없는건지.

어쨌든, 오늘 잠깐 멍때리면서 한 부서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거나 일하는 척하며 재주껏 노-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디널스의 유망주 타베라스와 전 넥스트 보컬이자 “그대에게”를 작곡했던 신해철의 죽음을 동시에 접하면서, 이곳에서 나의 재산으로 허락된 것은 무엇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난 2년동안 ‘줄 수 없는 것을 빼고 모든 것을 주었던’ 상대를 며칠 전 잃었다. 가진게 하나도 없었지만 그 사람만 옆에 있으면 배가 불렀고, 앞으로도 부를 것만 같았다. 물론 지금은 그 사람이 가진 그릇의 한계때문에 더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고 그 결과에 대해 단 한톨의 후회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주변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 스스로 ‘잘 헤어졌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 이유에서), 어쨌든 있다가 없어진 것에 대한 공허함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가져온 컴퓨터는 펑 하고 터져버렸고, 랩탑에는 오렌지 쥬스를 쏟아서 키보드가 뻑뻑하다. 아홉시부터 여섯시까지 억지로 문장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데 퇴근 후에 또 글자를 보기엔 내 멘탈이 너무 무르다. 야동을 보자니 부모님을 봉양하는 삶을 살고 있고, 다른 여자를 만나자니 헤어진 여자를 다른 여자로 채운다는게 – 양쪽 모두에게 – 예의가 아닌 것 같다. 2k15를 하기 위해 컴퓨터를 다시 맞출까도 생각해봤는데 퇴근후에 농구게임을 하는 삶이 그닥 힙해 보이지 않았다. 음악은 출퇴근 길에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다시한번) 부모님을 봉양하는 삶을 살다 보니 시끄럽게 음악을 틀고 싶지도 않다. 결국 운동인가 싶다가도 최근 급격하게 떨어진 체력에 퇴근 후에는 늘 비몽사몽으로 침대로 쓰러지기 일쑤다. 답은 무엇일까. 가진 것도 없는 내가, 무언가를 가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통장에는 돈이 쌓이고 있지만 평생 모아도 자본가 계급은 될 수 없고, 자동차 하나 없으니 훌쩍 지방으로 여행을 가기도 버겁다. 아, 시간이 우선 없지. 마음도 비었고 주머니도 비었고 몸도 축났다. 답은 나도 알고 있다. 결국 다시 공부라는 것을.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통해 인생이 완벽하게 충만해지는 느낌을 단 한순간도 느끼지 못했다. 물론 무척 기쁘고 흥분되는 순간이 있다. 손만 잡아도 좋고, 섹스를 하면 더 좋고. 그 사람을 위해 살고 싶고, 그 사람의 존재로 인해 행복하고.. 그건 연애의 일반적인 감정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 내가 가장 나다워지고 내 인생의 의미가 가장 충만해졌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사람을 위해 항상 포기해야 하는 것이 생겼다. 뭔가 선택을 해야 했고, 그 선택은 선과악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을 포기해야 하는 때도 많았다. 그 모든 비논리적인 선택을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시키기엔,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가진 재산은 풍부한 감수성도, 클래스 있는 취향도, 좋은 직장도, 교양 넘치는 부모님도, 밝은 미래도 아닌 것 같다. 그것들은 나를 정의내려주지도 못하고 날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여자 꼬실 때는 좋겠지. 내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공부를 하고 싶어하고 공부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질머리, 이거 딱 하나인 것 같다. 그게 나를 지금의 여기까지 끌고 왔고 앞으로 어딘가로 날 끌고 갈 것이다. 공부를 할 때에만, 그것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때에만 나는 비로소 나다워 지고 100% 순수한 행복감을 느낀다. 결혼을 할 여자는 이런 나를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여자여야 하고, 내가 앞으로 갖게 될 직장도 이런 나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내 재산은 내가 이룩한 무언가가 아니라, 나를 이끄는 나만의 뿌리, 딱 그정도인 것 같다.

Marmozets: The Weird and Wonderful Marmoz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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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주 괜찮은 영국 출신 신인 롹밴드가 데뷔했다. 이들의 공통된 성(姓)에서도 쉽게 짐작이 가능하겠지만(Macintyre, Bottomley), 이들은 학교를 같이 다니던 형제, 자매들이 집 창고에 모여 결성한 개러지밴드로 출발했다.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18세였던 2007년부터 광적인 라이브 공연 무대의 명성을 쌓아올렸고, 2013년 처음으로 자신들이 헤드라이너가 되는 투어를 돌기 시작했다. 2011년과 2012년 두장의 EP를 발매했고, 이 <The Weird and Wonderful Marmozets>가 이들의 공식적인 메이저 데뷔앨범이다.

아직도 멤버들의 평균 나이가 20대 초중반임을 감안한다 해도 이 데뷔앨범은 놀라운 수준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도 지친 기색없이 쭉 달려나가는 힘이 대단한데, 사실 이렇게 높은 에너지로만 가득 채워진 앨범들이 의외로 금방 지루해지기 쉽다. 에너지 레벨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다 보니 청자의 귀를 배려한 완급조절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호흡으로 달려나가는 와중에도 다양한 장르를 적절하게 건드려가며 매 곡마다 다른 색깔을 덧입혀나간다. 사실 이건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콕 짚어낼 수 있는 큰 단점이기도 하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하드코어/메탈/네오펑크/매스롹 장르를 그 바탕으로 깔고 가긴 하지만 그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심한 벽덕을 보여준다. 이건 이들이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거나 이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이곡에선 이 장르, 저곡에선 저 장르를 건드리는 식이다. 꾸준한 수준의 에너지 레벨만큼은 칭찬하고 싶지만, 이들의 음악을 뭐라고 선뜻 정의내릴 수 없게 만드는건 이들의 색깔이 무척 회색빛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들의 행보에서 프로듀서의 행보가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들이 The XX와 같은 천재성을 가지고 있기 보다는 My Chemical Romance가 했던 것처럼 ‘정제를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많은 매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바와 같이, 이 정도 수준의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많지만, 이정도 수준의 음악을 데뷔 앨범에 보여주는 이들은 많지 않다. 메탈이나 네오펑크에서 빚을 지고 있는 듯한 구조의 훅은 무서울 정도로 깊게 가슴에 와서 박힌다. 그토록 명성이 자자한 이들의 크레이지한 공연 분위기를 스튜디오 앨범에 녹여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최소한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Cover Up”이나 “Why do You Hate Me?”, “Love You God”같은 빠른 템포의 곡들에서 보여주는 신나는 후렴구들뿐만 아니라 “Cry”나 “Particle”, “Back to You”같은 미디엄템포의 곡들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멜로디라인도 분명히 기억해두어야 한다. 몇몇 하드코어틱한 곡들에서 자칫 방향성을 상실하는 듯한 느낌을 보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이 앨범이 방향성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는, 제멋대로 미쳐 날뛰는 다섯마리 망아지의 거친 움직임을 그대로 포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젊음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그저 기쁘고 좋아서 미친년놈들처럼 낄낄거리며 뛰어 다녀도 보기 좋은 그런 것. 그러고보니 이들의 밴드네임인 marmozet도 그런 뜻이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원숭이.

Hamilton Leithauser: Black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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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kmen은 뉴욕을 베이스로 하는 인디밴드들 중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현대대중음악의 뿌리를 기억하고 있던 그룹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오래된 음악 장르의 리바이벌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이들만의 originality를 잔뜩 간직한채 대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창의성이었고, 그 중심에는 포크부터 왈츠까지, 재즈부터 클래식 팝보컬넘버까지 자유롭게 넘나들었던 이들의 폭넓은 장르 해석능력이 있었다. 이들의 음악은 프랭크 시나트라부터 밥 딜런까지 한꺼번에 연상될 정도로 그 스펙터럼을 매우 폭넓게 가져갔는데, 그러한 시도를 매력적으로 만들었던건 찰랑거리는 기타톤과 훅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작곡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프런트맨 Hamilton Leithauser가 만들어내는 고혹적인 보컬톤이었다.

이 밴드의 ‘클래식함’은 밴드활동의 잠정중단을 “extreme hiatus”라고 표현하는 방식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챕터와 챕터 사이, 혹은 긴 공연의 중간에 잠시 존재하는 인터럽션을 의미하는 이 hiatus라는 단어를, 밴드의 쉬어가는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로 선정하다니, 참 이들답다 싶었다. 그리고 보컬 Leithauser는 우리를 그리 오래 기다리게 만들지 않았다. Shins, Vampire Weekend, Fleet Foxes, Dirty Projectors, 그리고 the Walkmen 의 멤버들이 참여한 화려한 콜라보레이션 목록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워크맨의 보컬리스트가 발표한 첫번째 솔로앨범, 이라는 타이틀만 쾅 박아도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음악은 다행히 나쁘지 않다. 워크맨의 전통적인 작곡방식을 벗어나지 않지만 조금 더 보컬에 집중한 레트로-리바이벌 형식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워크맨의 (현재까진) 마지막 앨범인 <Heaven>에서 보여준 느낌 – 한 밴드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만 보여줄 수 있는 꽉찬 여유로움 – 의 후일담같은, 매우 편안하고 옹골찬 분위기의 넘버들을 들려주고 있다. <Lisbon>때부터 거의 최고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관악기의 사용은 이 앨범에서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정확하게 자기 자리를 찾아 간다. 최근 공연들에서 ‘혹시’하는 마음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던 Leithauser의 목은 이 앨범에선 꽤 괜찮아보인다. 더이상 1,2집때처럼 말도 안되게 찢어지며 쭉 올라가는 음역대는 선보일 수 없게지만, 최소한 자신의 색깔을 지키며 음악을 꽉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성량과 표현력이다. 워크맨 음악의 또다른 매력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이었다. 이들은 유난히 구체적인 지명이나 인명을 곡에 포함시키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러한 가사의 구체성이 이들의 음악을 하나의 ‘이야기’로 느끼게 하며 귀를 더 쫑긋 세우게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로 기능했다. Leitauser의 솔로 데뷔 앨범도 그리 다르지 않다. “Alexandra”부터 “St.Mary’s County”까지, 본인의 경험담 혹은 누군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삶의 성찰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I don’t need anyone”이나 “Bless your heart”에서 앨범을 마무리짓는 주제의식 역시 확실히 전달하고 있으니, 소위 말하는 메시지로 “꽉찬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이 앨범에는 새로움이 거의 없다. 워크맨의 음악에 익숙한 팬이라면 그들 음악 이상의 감흥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들어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놀라움은 없다. 조금 더 느슨해졌고, 조금 더 편안해졌다. 그뿐이다. 그리고 그게 나빠보이지 않는다.

what defines me?

차라리 “가난한 대학원생” 정도로 정보를 전달하면 끝이었던 유학생 시절이 훨씬 괜찮았다는 생각을 오늘 잠깐 했다. 지금은 날 수식하는 단어들이 너무 많고,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할 나의 정보들이 너무 많다. 그것들이 나는 아닌데. 날 꾸며준다고 해서 내 자체가 되는 것은 아닌데. 수식하는 단어들은 훨씬 많아졌지만 확실하게 날 정의내려주는 단어는 찾을 수 없다. ‘조건’이 아예 없으면, 상대방은 진짜 자신만을 바라보기 때문에 속이 차라리 편하다는, 정말 자신을 조건없이 사랑해주는 사람만을 만날 수 있어서 차라리 더 낫다는 한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나도 지금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데 어떤 사람이 진짜 나를 좋아해줄 수 있을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The Antlers: Familiars

FamiliarsAlbumCover“슬픔”의 단계, 혹은 종류를 표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crying”, “grief”, “sadness”, “mourning”, “sympathy”.. 그런데 그냥 “fail”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단순히 어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발생하는 “실패”의 상황이 아닌, 갈 수 없는 곳에 가기 위해 애쓰다가 끝내 주저앉아 버린, 혹은 열 수 없는 마음 앞에서 뒤돌아설 수 밖에 없는 절망의 상태, 그 모든 것이 “fail”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하는 인디밴드 The Antlers의 다섯번째 스튜디오 앨범 <Familiars>는 바로 이 “fail”의 감정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로 가득차 있다.

이 앨범은 Paste Magazine의 주장대로, “이들의 역대 앨범들중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주는 앨범”일 것이다. 관악기를 적절히 활용한 이들 음악의 진폭은 전작들에 비해 훨씬 커졌는데 호흡은 반박자 여유로워졌다. 보컬리스트 Peter Silberman의 목소리는 여전히 구슬프지만, 그 얇고 높은 톤을 뒷받침해주는 사운드의 두께는 훨씬 두터워졌다. 같은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하는 다른 탑레벨의 밴드들 – Dirty Projectors, MGMT, Grizzly Bear 등 – 과는 다르게 여백의 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보이는 첫번째 앨범이라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외형적인 부분에서의 성숙이 중요하게 주목받아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이 비로소 가사와 형식을 일치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브루클린식 청승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밴드들로부터 이들을 분리시키는 가장 큰 부분도 바로 이 외형과 의미의 유기적인 결합에 있다. “슬픔”을 표현하는 여러 단어들 중 이들이 이 앨범에서 선택한 것은 바로 가장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멀어짐, 혹은 “fail”인 듯 보이며, 이 슬픔의 적극적 표현은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일 수 밖에 없다. 만들어진 슬픔의 물리적 표현이 아닌, 삶의 흔적들로부터 피어져나오는 스토리텔링이 이 앨범의 가장 큰 힘이다. <Hospice>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이들의 세계가 비로소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재능 넘치는 젊은 밴드가 베테랑 뮤지션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Broods: Evergreen

BROODS-Evergreen-2014
질랜드 출신의 Broods는 Georgia Nott 와 Caleb Nott 남매로 이루어진 혼성 듀오다. 이들은 2014년 1월 셀프타이틀 EP를 발매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8월에 발매한 첫앨범 <Evergreen>이 뉴질랜드 앨범차트 1위로 데뷔하면서 국내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전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Lorde의 앨범을 프로듀스한 Joel Little이 거의 전곡에 참여한 탓인지 Lorde가 ‘흥’했던 방식을 대부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보컬리스트인 Georgia Nott의 음색이 갖는 매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보컬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는 Caleb이 만들어내는 리듬도 나쁘지는 않다. 지루하지 않은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워진 시대에 창조적인 훅을 매 곡마다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충분히 특별한 재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다만 Georgia의 보컬이나 Caleb의 재능이 만들어낼 수 있는 회색빛의 드림팝적인 사운드스케이프를 상당부분 포기한 듯 느껴져서 살짝 아쉬워지기도 한다. 나는 Lorde가 ‘가짜’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창조해낸 Little의 힘을 빌렸다고 해서 Broods까지 함께 요란한 빈수레 취급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귀가 즐거워지는 음악을 잘 만들어내고 있다.

let her (be) herself, as she lets you (be) yourself

사역동사에서 be 를 생략해야 하는지 몰라 괄호를 썼다. 이래서 성문종합영어 종합편을 해야 했음. 

우리의 문제는 그거였던 것 같다.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그녀여야 했고, 그녀를 가장 그녀답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나여야 했다. 그런데 반대로, 만약 우리가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나답다, 는 것이 항상 고정된 형태의 변치 않는 내가 존재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나는 언제든지 그녀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가장 잘 대해줄 수 있는 누군가로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변하지 못했다. 변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내가 고집을 부렸다.

인스타그램 일기

IMG_2035회사의 (최종)보스와 우리팀이 식사를 한번 한적이 있다. 이 팀 자체가 보스의 지시로 만들어진 조직이라 보스의 관심은 각별해보였다. 뉴스에 나오고 신문에 나오는 유명인사와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인생인지라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는데, 한시간쯤 함께 있으면서 긴장이 조금 풀어지다 보니 그냥 우리 아빠같고, 동네 아파트 주민 아저씨같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분이 해주신 말씀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냥” 여의도를 한바퀴 돌아보라는, “그냥, 이유없이” 한강 다리도 한번 건너보라는, 다소 황당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가끔 서강대교를 “그냥” 건너곤 한다. 운동삼아, 라는 좋은 핑계가 있긴 하지만, 매연이 가득한 다리를 건너는 것이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은 한번만 건너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리를 건너는 것이 그리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중간에 있는 밤섬때문인지, 가끔은 퍽 이쁜 저녁노을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IMG_2038여의도 한강시민공원은 예쁘다. 반포나 이촌, 잠원보다도 한수위라고 할 정도로 쾌적하다. 경치도 나쁘지 않고, 주차장도 넉넉한 편이다. 하지만 내 직장이 여의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주 가는 것이 꺼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곳 거실 창문에서 직장이 보이는 것도 싫은데 굳이 여가시간에도 회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편의시설을 즐기고 싶지는 않다. 리프레쉬가 되지 않는 느낌이다. 

IMG_2040미국에 있을때 “테일러 커피에서 시간을 때우고 싶다”는 불평을 트위터에 대고 많이 했다. 사실 볼더에는 테일러만큼이나 괜찮은 커피숍들이 많이 있다. 테일러보다 훨씬 커피를 잘 뽑아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훨씬 편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진 커피숍은 많이 있었다. 하지만 테일러만이 주는, 미국에서는 절대 발견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엄청 맛있는 레모네이드라던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워서 정신줄을 놓게 만들어버리는 플랫화이트라던지. 이 날은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다. 카페에 앉아 읽을 거리를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는 나는 레모네이드와 케잌 한조각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가끔은 밤 열시쯤까지 가만히 책만 읽고 오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한번도 해보진 못했다. 집 근처에 좋은 커피숍이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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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에 통의동에 있는 연수원에서 일주일동안 연수를 받았다. 경력/전문 직원들을 대상으로 회사의 이모저모를 소개해주는 자리였다. 실질적으로 배울 수 있는건 거의 없었다. 이 교육기간이 한달이었어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군대에 가도 그렇지 않은가. 훈련소에서 배운 것 중 쓸모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결국 실전에 투입되어서 깨져가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다.

이곳에서 ‘동기’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서른명 남짓 만났다. 변호사, CPA, IT 전문가, 국제교류전문가 등 각 분야에서 날고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다들 “길게” 가고 싶은 마음에, 집에 있는 처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에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정년이 보장되는 직장에 오는 사람들의 심리는 모두 마찬가지인가보다. 나는 정년까지 이곳에 남아 있을 확률이 거의 없지만, 그런 목적을 가지고 온 사람들을 경험해보는 것이 결코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의동 연수원은 경복궁에서 담벼락 하나, 이차선 도로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다. 점심을 먹고 경복궁 앞마당까지 살짝 산책하고 올 수도 있었다. 경복궁은 여전히 시끄러웠고, 통의동 및 효자동은 ‘서촌’이라는 이름으로 관광지화되어있었다. 팬시한 커피숍들과 ‘맛집’이라고 불리워지는 음식점들이 골목을 채우고 있었다. 내가 가던 탁구장, 내가 가던 당구장, 내가 가던 피시방은 사라지고 없었다. 건물들은 여전히 낮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곳도 결국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몫으로 버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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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는 내 방이 따로 있다. 일종의 연구실이다. 문을 닫고 있지는 않아서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방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방의 한쪽 벽은 창문으로 되어 있다. 보통 커튼을 쳐 놓는다. 아침에는 햇빛이 직접 들어오고, 저녁에는 길 건너편 빌딩의 유리창에 반사되어 또 햇빛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름은 맑은 날이 거의 없었다. 대체로 우중충한 가운데 무척 습하고 더웠다. 비가 온 다음날 아침 몇시간 정도가 겨우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인데, 방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기쁨도 그때 바쁜 마음으로 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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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네 가족이 이사를 했다. 이삿날 나는 엄마를 모시고 그곳으로 가서 소소한 일들을 도왔다. 사실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드리지 못하고 대충 왔다는 시늉만 내다가 약속이 있어서 일찍 나왔다. 작고 낡은 서울 변두리의 아파트에서 넓고 새로 지은, 쾌적한 환경의 아파트로 간 누나와 자형의 선택이 멋졌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이곳이 훨씬 나을 것 같아보였다. 나는 콜로라도에서 인형을 하나 사 왔는데 마침 그곳에 원숭이 인형 친구가 하나 더 있어서 짝지워 주었다. 조카는 착하고 떼를 쓰지 않는 대신 겁이 좀 많다. 인형을 무서워한다. 이 빨간 입술 원숭이 인형은 사실 나도 좀 무서운데, 함께 잘 놀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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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욱이와 간단하게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갔다. 광화문은 떼가 탄 노란 리본과 변희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천막이 동시에 존재하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바쁘게 퇴근길을 재촉하는 젊은이들과 그들이 지나쳐가는 거리를 밝게 비추는 노점상 아주머니가 공존하는 곳이었고, “명박산성”이 있던 자리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천막이 위치한, 뒤틀린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일곱살 무렵부터 지켜봐왔고 평생 그리워한 이곳이, 이제는 내 다음 세대에게 부끄러운 역사를 이야기해주어야 할때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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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 회식을 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 처음 가봤다. 박박사도 처음 가보는 것이어서 우리 둘은 관광객처럼 신기하게 이곳저곳을 둘러 보고, 팀장님과 최박사는 열심히 가격을 흥정하고 생선의 질을 보고.. 그런걸 했다. 박박사와 잠깐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렇게 서울의 역사를 그대로 흡수해버린 곳이 진짜 관광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광장시장, 통인시장, 노량진수산시장, 이런 곳이 서울의 간판 얼굴이 되어야 맞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그럴 것이다. 경복궁도 좋고 코엑스도 좋고 홍대도 좋지만, 이들이 “서울은 어떤 곳이야?” 혹은 “서울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야?”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가장 좋은 곳은 이런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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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를 바쁘게 보냈다. 대구에 계신 친척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지방의 시외버스터미널의 아비규환을 직접 경험했다. 부모님이 사신 함양땅을 드디어 두 눈으로 확인했고, 덤으로 엄마의 페이보릿 스팟이라는 마천땅도 가봤다. 함양에서 이틀을 보내면서 일을 좀 거들었는데, 낫질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그 이후 며칠동안 허리가 고생했다. 조카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이틀을 함께 보내면서 비로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아마 지금은 또 다 잊어버렸겠지만, 조카와 친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만으로도 큰 소득이었다. 함양땅은 부모님이 내년 은퇴후 노년을 보내기 위해 마련하신 곳이다. 두분은 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무척 노심조차하신 듯 했지만, 정작 내가 그분들께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은 처음부터 없었다. 당신들이 가장 편하고 가장 그분들답게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나도 전적으로 지원해드릴 의무가 있는 것이지, 그분들의 재산으로 산 그 땅에 대해 내가 불만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좋다 싫다를 말하기 전에 언제 어떻게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들 수 있을지부터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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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이네 집에서 진욱이 와이프 친구들과 함께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우리들끼리 따로 빠져나와 이태원 근처에 살고 있는 해종이를 불러내 이코노미스트지 기자 양반이 차렸다는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셨다. 이 친구들은 나를 굉장히 오래 보아온 친구들이라 나의 어린 시절의 미숙했던 모습들부터 하나 하나 성장하는 과정 모두를 지켜봐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에 대해 그리 크게 놀라워하지도 않으며, 내가 하는 말들을 거의 대부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이다. 의심을 받을만한 행동들을 많이 하며 한번에 쉽게 이해하기도 힘든, 상당히 까다로운 언행을 일삼는 나를 편하게 대해줄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곁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매우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