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사람들, 말을 먼저 걸지 않는 사람들

군대에서  적응을 빠른 속도로 잘 하지 못하는 신병을 고참들이 갈굴때 “아직 사회물이 덜 빠졌네. 아직도 민간인인줄 아냐” 라는 말을 많이 한다. (삼천포1: 윤일병 사건때문은 아니고 그냥 만나기로 했던 군대 친구들을 조만간 한번 보기로 했다. 군대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선량한 마음을 가진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군대가 아니었다면 절대 내 인생에 나타나지 않았을 사람들이다. 군대는 그렇게 우리나라 여러군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미국물’이 덜 빠진 모양이다. 물론 군대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신병처럼 어리버리한 모습을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식당에 가면 앉기가 무섭게 물병을 찾아 들고 수저를 깔기 바쁘다.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대충 눈치를 보면 신입사원이 해야할 일들이 보인다. 그 일들만 게으르지 않게 하고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만 구분해서 하면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업무! 능력이 있다면 작은 흠결은 또 그냥 넘어가는 것이 조직사회인 것 같다. 아침 여덟시 반에 회사 의자에 딱 앉아서 여섯시가 될 때까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해야할 일들만 집중하면 혼나지는 않는 삶을 살 수 있다. (삼천포2: 다행히 이 회사 사람들은 매우 젠틀하고 스마트하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는, ‘인간에서 비롯되는’ 비합리성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일만 잘 한다면 사람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는 조직인 셈이다.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서로 건들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조직의 사람들이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시스템에서 비롯되는’ 비합리성들때문이다. 높은 분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뿌리 깊은 문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국물이 덜 빠졌다고 느낄 때는, 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욕망을 읽는 순간이다. 여기 사람들은 좀처럼 큰소리로 웃지 않고 먼저 말걸지 않는다. 길거리에서 특히 더 심하다. 모르는 사람과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몇마디 수다를 떨다가 이름도 물어보지 않고 빠이 하며 헤어지는 상황은 서울에서 왠만하면 발생하지 않을 것 같다. 버스 운전기사님들이 가끔 웃으면서 인사를 해주시는데, 이것도 왠지 회사사장이 시켜서 하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삼천포3: 회사에 있는 팀 사람들은 다들 나처럼 막 외국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 분위기가 좀 덜하다. 팀장님도 몇년전에 공부를 마치신 분이라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의 폭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넓으시다. 물론 회사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주제라던가 의견교환방식은 상대적으로 덜 수직적인 것 같다) 조용하고 담담하게만 흘러가는 이곳의 공기를 보다보다 참다참다 못해 한번 확 터뜨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미소만 지은채 내일 뵙겠습니다, 하는 목례 말고, 회식때 딱 각잡고 앉아서 윗분들 술잔 채워드리기만을 노리고 있는 그런 자세 말고,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한명이 더 타야 할때 땅만 쳐다보며 모른척 하는 그런 적막함 말고, 일얘기 하며 과거 무용담 늘어놓는 그런 점심식사 시간 말고! 여기에는 기분 좋은 유머가 없고, 기분 좋은 스킨쉽이 없다. 유머가 일상화되지 않고 스킨쉽이 일상화되지 않으니 정작 유머를 해야 할 때 어색해지고 스킨쉽을 해야 할때 어색해지기 쉽다. 일상에 스며든 유머, 일상에 스며든 스킨쉽이 절실해 질때가 가끔 있다. 억지로 하는 그런거 말고. 출퇴근길에서도 많이 느낀다. 누가 누군가를 치고 지나가도 양쪽 모두 기분나빠 하지 않는다. 누군가 튀는 복장을 하고 지나가면 그 누구도 그 사람에게 “멋져요!” 혹은 “별로예요!”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트위터에 올리거나 지인과 숙덕거린다.

한국이라는 높은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나라에 살다보면 끊임없이 익명의 타자를 만나게 된다. 그들과의 ‘관계형성’이 우리 도시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상의 작업이 된다. 나의 공간과 타자의 공간이 충돌하는 지점이 발생한다. 이 때 어떤 표정과 행동, 말이 튀어나오는지가 그 관계를 결정한다. 타자와 나는 몇초만에 다시 헤어질 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몇초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찰나의 순간을 깊게 자각하고 신경쓰는 사람은 드물다. 이건 미국인도 마찬가지일거다. 하지만 그들과 우리의 중요한 차이는, 이 관계형성이 몸에 베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일 것이다. 우리가 조금씩만 노력한다면 우리의 출퇴근길은 지금보다 훨씬 즐거울 수 있다. 좁은 버스에서 누군가 백팩을 매고 있다면 “사람들이 지나가기 힘들 것 같은데 가방을 벗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라고 웃으면서 물어보면 된다. 부끄러워하지 않을 정도로 친절하게. 한국 사람들은 너무 너무 빨리 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유를 찾지 못할 확률이 높다. 지하철 문은 너무 빨리 닫히며, 에스컬레이터를 서서 타기에는 걸어서 가는 것이 훨씬 빠를 것만 같다. (왜 빨리 가야 하는지 알지 못하면서! 빨리 가면 뭐가 있을지 알지 못하면서!) 그저 빨리 살기 위해서 빨리 살 뿐인 우리들이 잠시 스쳐가는 타인에게 베풀 배려 따위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몇초의 배려가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다. 나는 내일 팀장님에게 가서 “팀장님 우리 풋볼 잠깐 던지실래요?”라고 할 수 없고, 내 어깨를 치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는 사람을 붙잡고 “에스컬레이터는 원래 서서 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걸어 올라가시죠?”라고 물어볼 여유도 없다. 하지만 그걸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도 어느정도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그정도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2 thoughts on “웃지 않는 사람들, 말을 먼저 걸지 않는 사람들

  1.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참좋아하는 한 평범한 경제학부 후배입니다. 이거말고 트위터같은것도 하시는걸로 아는데 팔로우해서 보고싶은데 플텍을 하신건지 계정을없애신건지 찾기쉽지않네요. 요즈음 어디다가 글을 쓰시는건지 궁금해서 리플 남겨봅니다

    • 안녕하세요 후배님. 트위터는 그만 두었어요. 요즘 제가 너무 바빠서 블로그도 거의 들어와보지 못했네요. 앞으로 종종 여기에 글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랩탑에 오렌지쥬스를 쏟은 뒤부터 글을 쓰지 않게 되었어요 ㅠㅠ 키보드가 너무 뻑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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