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외국인들

서울에서 한달을 보내면서 흥미롭게 지켜본 것들중 하나가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표정이었다. 내가 없던 지난 몇년동안 서울은 굉장히 많은 수의 외국이들을 맞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지하철의 칸마다 최소한 한명 이상의 외국인을 발견할 수 있고 번화가에서 외국인을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외국인’은 육안으로 쉽게 구분이 가능한 다른 인종을 말한다. 중국인과 일본인등 보다 광범위한 외국인들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내 주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중 상당수가 단기간 머물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겠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서울은 이제 외국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공간으로 확실히 변모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의 표정이 참 흥미롭다. 이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한국인들 틈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이 만든 서울의 문화에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일종의 암묵적인 규칙같은 것들 말이다. 걸음걸이의 속도나 모르는 사람에 의한 신체접촉의 허용 정도같은 것들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걸 혼자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물리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울의 눅눅한 여름 공기처럼 축 늘어진 한국인들의 표정까지 닮아버린다는 데에 있다. 내가 볼땐 분명히 활기찬 캘리포니아나 맑디 맑은 남유럽 어디에서 온 사람같은데 표정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절대 웃지를 않고 늘 주변을 살핀다. 눈에 띄지 않게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혹여나 누군가와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에 절대 서지 않으며, 길을 걸어가면서도 셀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누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의 고향에서는 맨발로 인도를 걸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하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해도 흔쾌히 받아줄텐데 여기에서는 괜히 근심어린 표정으로 멍때리고 있거나 휴대폰을 보다가 어깨를 누군가와 부딪혀야 겨우 서울에서의 삶에 적응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는 것인가. 

서울 사람들, 더 나아가 한국 사람들은 무례하다. 다시 말해 예의가 없다. ‘없다’를 ‘모른다’로 바꾸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정체불명의 자부심 아래 몇십년동안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이 사람들은 이제 OECD 국가들중 어디에 가도 중국인과 함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행동거지를 보여주는 사람들로 꼽히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동방예의지국’도 중국쪽에서 유래한 말 아닌가) 단지 인사를 할때 고개를 숙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거지에서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며 거짓된 언행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이 곳이 전혀 예의바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 이곳에서의 삶을 마치고 고국으로, 혹은 그 어딘가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부디 예의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어두운 표정이 나에게는 아직 많이 어색하다. 나는 아직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미소를 짓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습관이 언제쯤 사라질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여기에 사는 외국인들보다 아직 덜 한국화가 진행된 것 같기도 하다. 

4 thoughts on “서울의 외국인들

  1. 격하게 공감하네요 특히 마지만 문단. 저는 한국에 들어온지 꽤나 되었는데, 점점 지쳐가고 있지요. 처음에는 한국인들이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하다가, 문화적 다양성으로 이해하자고 생각하다가, 이건 문화적 다양성이 아니고 단지 배려심이 없고 예의가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니야 내가 예민해서 그런 거야 대충 넘기면 되지 하다가 매일매일 이어지는 타인의 폭력 앞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슬슬 들어오네요.

    눈팅하다가 이렇게 댓글이라도 적어보는 건, 이런 얘기는 남 앞에서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자칫하다간 외국물 좀 먹고 왔다고 재수없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입다물고 있지요.

    • 이런 얘기 남들 앞에서 하기 힘들죠. 그래서 제가 대신 해드리겠습니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죠 ㅋ 한국인들이 기본적으로 선진국 기준의 예의범절을 쫓아가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분들이 급격하게 발달한 사회구조를 언급하시는데 저는 생각이 좀 달라요. 한국사람들 그렇게 느리지 않거든요. 어떤 특정 행동양식을 체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을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의식과 예의범절에 있어서만큼은 굉장히 느리고 완강하게 발전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즉 ‘그렇게 하지 않을때 더 큰 효용을 획득하는 것’이지요.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신다면 가셔야죠! 자신이 살기 가장 좋은 곳에서 사는게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모두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잖아요.

  2. 음… 실례지만 예의가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 구체적인 예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저도 간혹 그렇게 생각할때가 있곤 하지만 이렇게 단호한 어투를 보니 대체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네요… 오랜 시간 외국유학을 다녀오신 분의 관점에서 어떤 부분이 외국과 다른지 궁금해서 여쭈어봅니다..^^

    • 예의바르게 질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당연히 모든 한국인이 그렇다는건 아니예요. 정말 착하고 좋은 분들도 많이 살고 계시죠. 예의가 없다는 것은.. 예를 들면 이런거예요. 한국인들은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말을 하긴 하는데 정확한 대상이 없이 이야기합니다. 관계설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요. 진심을 느끼기 어려워요. 제가 생각할때 그 이유는 이미 사회적으로 암묵적으로 정해진 ‘위치’를 모르는 사람과의 순간적인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들을 하기 떄문이 아닐까 해요. 즉, 버스에서 나이 많은 사람은 당연히 저 좌석이 자신의 좌석이라고 생각하죠. 양보를 받기를 원해요.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이 다 내리기도 전에 타려고 시도해요. 어짜피 지금 내리는 사람과 다시 마주칠 일이 없으니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더라도 자신이 빨리 타고 싶어하거든요. 빨리 탄다고 해서 딱히 더 얻게 되는게 없는데도요! 식당에서 서빙하는 직원들은 아무런 감정없이 달달 외운 멘트들을 손님에게 던져요. 높임말을 쓴다고 해서 예의 있는게 아니고, 고개숙여 인사한다고 해서 예의를 차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눈을 똑바로 보고,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것에 대해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공공장소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아요. 비좁은 버스에서 백팩을 벗어 앞으로 돌리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부탁하는 사람도 없어요. 그냥 피해가거나 툭 치고 가죠. 그 상황에서는 둘 다 예의가 없어지는거죠. 그렇게 왜 서로를 조금씩 피곤하게 만들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조금씩만 더 배려하고 조금씩만 더 웃어주고 조금씩만 더 눈을 마주치면 우리는 출근길에, 퇴근길에, 등하교길에 받아야할 스트레스의 절반은 줄일 수 있을거예요. 서로에게 조금씩만 예의를 차린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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