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ck White: Lazar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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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nderbuss> 이후 2년동안 잭 화이트에게는 꽤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전처 캐런 엘슨과의 이혼이 2013년 마무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블랙 키스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메일이 유출되었으며,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깎아 내렸던 여러 뮤지션들, 예컨데 아델, 와인하우스, 라나 델 레이, 더피등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촌극도 있었다. 정통 로큰롤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데에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권위를 가지고 있던 장인이 젊은 후배들의 약진에 속좁게 못마땅해 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발표된 두번째 솔로 앨범 <Lazaretto>. 기세 좋게 나팔총(blunderbuss)을 쏘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였던 그가 스스로를 격리(lazaretto)시키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야 했던 것일까. 음악을 들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 같아 보이지는 않아 다행스럽다. 

아직도 멕 화이트와 함께 보여주었던 미니멀한 2인조 음악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화이트는 단 두개의 악기와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현대 대중음악이 이룩해낸 거의 모든 성과를 그대로 재현해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위에 음악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을 담아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랬던 그가 첫번째 솔로 앨범에서 외연적으로 확대된 풍부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그가 정식 밴드 구성을 갖추면 어떤 사운드를 빚어낼 것인가’에 대한 정곡법저인 해답을 제시했다면, 두번째 앨범인 <Lazaretto>에서는 11명에 달하는 빅밴드를 대동하고 로큰롤 이상의 무언가를 담아내려고 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만돌린, 오르간, 하모니카, 바이올린, 스틸 기타등 다양한 악기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걸 보면 다시 미니멀한 세팅으로 돌아갈 마음은 별로 없어 보인다. 풍부해진 악기 구성과 조금은 쉬어가는 듯한 여유로운 속도감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조금 더 과거로 회귀하는 듯 하면서도 다양한 장르를 손보는 듯한 그의 음악구조다. 바이올린과 만돌린이 기타를 제치고 전면에 나서며 로큰롤 이전을 탐구하는 듯한 “Temporary Ground” (이 곡은 여성 보컬을 조금 더 앞으로 끌고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할만 하다)나 정통 서던락을 표방하는 “Just One Drink”, 건반에 기대어 중심을 끌고 나가는 “Alone in My Home”, 컨트리와의 접점이 느껴지는 “Want and Able” 등은 전작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다양성의 증거들이다. 그렇다고 그가 로큰롤의 적자 자리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타이틀곡인 “Lazaretto” 를 비롯해 “That Black Bat Licorice”, “High Ball Stepper” 등에서 여전히 기타와 보컬만으로 쟁취한 스타디움급 뮤지션의 위용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다. 후배들의 위세등등한 성장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인지 이혼의 아픔 이후 조금 더 안으로 침잠해 들어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전작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인 들썩임은 덜한 편이다. 음악을 마무리하기 전 한번 더 생각하고 고민한 듯한 흔적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이 사려깊음으로 발전될 때도 있지만 머뭇거림으로 인한 에너지의 상실로 이어질 때도 있기 마련이다. 화이트의 두번째 솔로 앨범은 그 양가적인 가치를 모두 지니고 있는 음반이다. 

보나루 페스티벌에서 잭 화이트의 공연을 (만취상태에서) 볼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건 그의 목소리뿐이다. 그 카랑카랑하고 앙칼진 목소리로 두시간여동안 지치는 기색 없이 관객들을 독려하는 그 목소리. “여기엔 당신들과 나만 있어. 누가 음악을 통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오늘 하루종일 서 있었잖아. 그치? 그냥 당신들과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음악이 존재하는거야” 와 같은 상투적이지만 가슴을 찌르는 멘트를 날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그의 음악에 취해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잔디밭 어딘가에 누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그의 앵콜송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음악은 음악 파일 안에 가두기에는 너무 생명력이 강하고 펄떡거린다. 야생마를 우리에 가두어 두고 감상하는 느낌이랄까. 넓게 탁 트인 야외 공연장에서 적당히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를만한 공간을 마련한 뒤 빵빵 터지는 사운드로 그의 공연을 즐길때 아 이 음악이 이 순간을 위해서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큰롤을 공연을 위해 존재하는 음악이라고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는걸 보면, 화이트는 아직 늙지도 않았고 멍청해지지도 않았으며 여전히 장인처럼 음악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는 대가로 남아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서울의 외국인들

서울에서 한달을 보내면서 흥미롭게 지켜본 것들중 하나가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표정이었다. 내가 없던 지난 몇년동안 서울은 굉장히 많은 수의 외국이들을 맞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지하철의 칸마다 최소한 한명 이상의 외국인을 발견할 수 있고 번화가에서 외국인을 찾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외국인’은 육안으로 쉽게 구분이 가능한 다른 인종을 말한다. 중국인과 일본인등 보다 광범위한 외국인들까지 포함한다면 실제 내 주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중 상당수가 단기간 머물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겠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서울은 이제 외국인과 함께 어울려 사는 공간으로 확실히 변모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의 표정이 참 흥미롭다. 이들은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한국인들 틈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인들이 만든 서울의 문화에 적응할 수 밖에 없다. 일종의 암묵적인 규칙같은 것들 말이다. 걸음걸이의 속도나 모르는 사람에 의한 신체접촉의 허용 정도같은 것들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걸 혼자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물리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어쩌면 서울의 눅눅한 여름 공기처럼 축 늘어진 한국인들의 표정까지 닮아버린다는 데에 있다. 내가 볼땐 분명히 활기찬 캘리포니아나 맑디 맑은 남유럽 어디에서 온 사람같은데 표정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절대 웃지를 않고 늘 주변을 살핀다. 눈에 띄지 않게 행동거지를 조심하며 혹여나 누군가와 부딪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에스컬레이터의 왼쪽에 절대 서지 않으며, 길을 걸어가면서도 셀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누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의 고향에서는 맨발로 인도를 걸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하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해도 흔쾌히 받아줄텐데 여기에서는 괜히 근심어린 표정으로 멍때리고 있거나 휴대폰을 보다가 어깨를 누군가와 부딪혀야 겨우 서울에서의 삶에 적응한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는 것인가. 

서울 사람들, 더 나아가 한국 사람들은 무례하다. 다시 말해 예의가 없다. ‘없다’를 ‘모른다’로 바꾸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정체불명의 자부심 아래 몇십년동안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이 사람들은 이제 OECD 국가들중 어디에 가도 중국인과 함께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행동거지를 보여주는 사람들로 꼽히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는 국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동방예의지국’도 중국쪽에서 유래한 말 아닌가) 단지 인사를 할때 고개를 숙이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행동거지에서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지 않으며 거짓된 언행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사람들이 득세하는 이 곳이 전혀 예의바르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 이곳에서의 삶을 마치고 고국으로, 혹은 그 어딘가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부디 예의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어두운 표정이 나에게는 아직 많이 어색하다. 나는 아직 모르는 사람 앞에서도 미소를 짓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습관이 언제쯤 사라질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여기에 사는 외국인들보다 아직 덜 한국화가 진행된 것 같기도 하다. 

여기 있는 삶

나는 지금 서울에 있다. 지난 6월 21일 서울에 도착한 이후 딱 한달을 이곳에서 보냈다. 25일부터 출근하기 시작했고, 오늘부로 정확하게 20일의 출근 일수를 채웠다. 그동안 세번의 회식을 경험했고 야근은 한번도 하지 않았으며 지각도 한번도 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개인 오피스에서 여의도 공원과 빌딩들이 보이는 큰 창문을 뒤로 한채 책을 읽거나 자료를 찾거나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의 사회생활은 군대 이후 처음이었다. 20대의 거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 나로서는 갑자기 변한 환경만큼이나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하더라도 테네시의 들판에 누워 공연을 밤새도록 보고 있던 나는 여의도의 한 한식집에 각을 잡고 앉아 높은 분들의 무용담을 새겨 듣고 있었다. 나는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인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실패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여기 조직 안에서부터 바깥에서 나의 인생을 지켜보는 사람들까지,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독실에서 일하며 야근은 생각지도 않는 삶을 사는 내가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그 배부른 소리들을 자세하게 괘 오랫동안 할 생각이다.

여섯시에 칼퇴근하고 저녁 약속을 잡지 않은채 집에 오면 여섯시 반쯤. 집으로 오는 버스에 앉아 오늘은 블로그에 무언가를 반드시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집에 오면 그렇게 차분히 마음을 큰 폭으로 움직일 기운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한달을 보냈다. 6월초부터 지금 7월말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음악은 거의 듣지 못했고 (최근에야 다시 주섬주섬 조금씩 챙겨듣기 시작했다) 영화도 거의 보지 못했으며 책은 꿈도 못꾸고 있다. 그렇게 무언가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것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루에도 몇번씩 한다. 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기록을 위해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 버거울 정도로 지금 나는 서울에 종속되어 있다. 앞으로는 저녁을 거르더라도 퇴근 후 근처 카페에 가서 한두시간은 꼭 노트북을 열고 무언가를 담아내야 겠다고 (다시 한번 헛된) 다짐을 한다.

최근에 우는 일이 잦아졌다. 한국에 와서 벌써 세번쯤 울었다. 그렇게 볼더가 그립다. 꿈에도 나오고 걷다가도 문득, 밥먹다가도 문득 떠오른다. 그렇게 많이 그립다. 다시 갈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다. 나는 아직도 마냥 대학원생인 것만 같다. 통장에 무서운 속도로 쌓이는 돈도 어색하고, 일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 했던 정장 바지와 짱짱한 셔츠를 매일 입고 출근하는 내 모습도 어색하고, 여섯시에 여의도의 회사원들 틈에 끼여 퇴근하는 나의 걸음걸이도 뭔가 어색하고, 전공과 영 상관없는 논문을 읽으며 윗분들이 관심있어 하시는 사안에 대해 혜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 자체도 너무 어색하다. 나는 여전히 하루 한잔 사 마시는 차이 티 라떼가 너무 소중하고 일주일에 한번 큰맘먹고 외식을 하는 것에 감사하며 아마존에서 책을 두어권 주문할 수 있는 통장 잔고를 가지고 있음에 행복해 하는 대학원생인 것만 같다. 지도교수님에게 메일이 오면 전전긍긍해 하고 논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가끔은 늦잠을 자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그런 가난한 학생인 것만 같다. 몸에 아로새겨진 그 습관들은 6년이라는 세월동안 깊숙히 박혀버려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볼더를 그리워하는 것만큼 볼더에서의 내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

이제부터 조금씩 기록해 나갈 것이다. 지난 한달반 정도 되는 기간동안 내 삶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굉장히 큰 일들이 있었다. 우선, 나는 지금 서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