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umpa Lahiri: The Low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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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는 이민자 가정의 근본적인 어두움과 외로움을 세밀한 시선으로 포착해 내는 데에 천착해 왔다. 이민 1세대가 이민 과정에서 갖게 되는 예상 가능한 범주 내의 어려움을 교과서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이전 세대의 이민자 문학이었다면, 줌파 라히리나 주노 디아즈, 크리스 킴등의 최근 작품에서 발견되는 이민자 문학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다문화 사회 안에 하나의 고정된 요소로 자리잡은 이민자 문화를 미시적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 확실한 차이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라히리가 써낸 단편들은 하나같이 가정 안에서 미묘하게 뒤틀린 갈등과 고독의 심연을 파헤치고 있는데, 등장인물들은 이민자라는 거시적인 상황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기 보다는 그저 미국안에 자리잡은 하나의 세부 문화로서의 정체성을 조금 더 강하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녀가 장편을 냈다. 그것도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조망하는 통시적인 구성이다. 소설은 수바시와 우다얀이라는 각기 다른 형질을 타고난 형제가 남기고 가꾸어 놓은 한 뒤틀린 가정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다. 수바시와 우다얀, 가우리와 벨라라는 네명의 인물이 살아가는 과정을 침착하게 묘사하면서 라히리가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하게 응시하고 있는 주제는 여전히 고독이다. 이들 모두가 고독과 싸우는 평생을 보냈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독을 품에 끌어 안으며 인생을 흘려 보냈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이 고독이라는 낯선 감정은 끊임없이 인물들을 괴롭히며 수세로 몰아 넣는다. 그 와중에 아주 약간의 평화를 성취한 사람도 있고, 끝까지 자신의 선택에 따른 대가를 고독으로 치환시키며 그곳에서 굳이 탈출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운명적으로 주어진 삶의 우여곡절을 처절하게 버티어 내며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도 있다.

사회주의 운동에 헌신한 형제 우다얀과 달리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의 수바시가 공부를 위해 선택한 곳은 미국이었다. 동북부에 있는 로즈 아일랜드에서 시작된 수바시의 미국 생활은 ‘이민’이라는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묘한 경계성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 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으며, 자신이 결코 미국 사회에 완전히 섞일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젊은 시절을 보낸다. 이후 우다얀의 죽음을 겪으며 가우리를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시작하는 수바시의 두번째 미국 생활은 유학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철저히 책임감과 생존 의식으로 점철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사랑없는 결혼을 받아들였고, 형제의 핏줄을 지키기 위해 인도에서 벗어나 미국에서의 외로운 생활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에게는 우다얀의 딸 벨라가 유일한 삶의 목표였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삶 역시 그런 차원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다.

가우리는 조금 다른 상황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격했으며 남편의 아이를 잉태한 뒤 시댁으로부터 버려질 위기에 처했다. 수바시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녀는 이후 자신의 학문적 재능을 발견한 뒤 딸 벨라에 대한 양육과 자신의 실존 사이에서 극심한 방황을 하게 된다. 수바시와 가우리 모두에게 학문은 일종의 생계 수단이자 현실에서 도피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하지만 수바시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고독한 삶에 꾸준히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가우리는 그러한 실존적 고독을 극복하지 못한채 탈출하여 서부로 향한다. 서부에서 시작하는 그녀의 세번째 인생은, 그녀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앙상한 나뭇가지보다 더 단촐하고 성마른 나날의 연속이다. 그녀는 딸의 양육을 포기한 대가를 삶의 고독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보속했다. 아마도 독자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가 가우리였을텐데, 가우리가 로즈 아일랜드에서 느꼈을 그 숨막힘, 잠시 아이를 집에 두고 나와 근처 수퍼마켓에 가거나 캠퍼스의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릴때 느꼈을 그 찰나의 여유를 상상해보면 나는 그녀의 선택 역시 그리 엉뚱하거나 극단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녀는 조금 더 숨을 천천히 내쉬고 들이 마시기 위해 입을 닫고 귀를 막아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것이 남편의 죽음과 딸의 탄생, 남편의 형제를 또다른 남편으로 받아 들여야만 했던 그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치환한 고독의 크기였을 것이다.

수바시, 가우리와 달리 그들의 딸 벨라가 선택한 연고 없는 떠돌이 생활 역시 고독이라는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신을 버린 뒤 땅과 생명에 집착한다. 땅이 갖는 어머니로서의 이미지를 생각해 보면 역설적으로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그녀가 가정이라는 시스템을 온몸으로 거부하면서 수바시와는 최소한의 관계만을 유지한채 땅과 생명에 온 힘을 쏟는 동안, 그녀는 아마도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자기 자신만의 것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약간의 여유를 확보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수바시에게로 돌아와 자신의 딸을 잉태했음을 알렸을 때, 이 소설은 다시 한번 도약해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 운명적으로 얽힌 한 남자와 한 여자, 그 둘이 만들어낸 소녀의 성장담에서 끝나지 않고 이들이 선택하고 받아 들인 고독의 무게가 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그 다음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음을 자각하게 될때, 우리는 다시 거꾸로 시간을 거슬로 올라가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끼게 된다. 그 의무감이 막 머릿속을 파고들 때 라히리는 다시 한번 우다얀의 이야기를 풀어 놓고, 그렇게 가우리와 우다얀의 출발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소설은 마무리되게 된다. 이들이 평생을 두고 싸워야만 했던 고독이라는 존재는 미국이라는 장소에서 극대화되는 경향을 가진다. 작품의 제목인 “lowland” 는 수바시와 우다얀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동네의 지정학적 위치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수바시와 가우리, 벨라와 우다얀이 결코 탈출할 수 없었던 마음속의 심연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들은 그 누구를 용서할 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적극적으로 파고 들어가 외로움을 함께 이겨내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운명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든 삶의 굴곡들이 쌓이고 쌓여 이렇게 흘러 왔든, 그들은 어느 한 지점에 멈추어 서서 각자 거리를 만들어 냈을 뿐이다. 마침내 새로운 관계를 시작한 것은 오직 수바시뿐이다. 그는 가장 우직하게 한 자리와 시간을 견디어 냈고,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 라히리가 왜 가우리를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대하고 있는지는 아직도 궁금할 따름인데, 이는 아마도 여성 작가만이 느꼈을 여성이 가지고 있는 고독에 대한 어떤 동질감의 왜곡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2 thoughts on “Jhumpa Lahiri: The Lowland

  1. 크- 감탄하며 읽었네요.
    안그래도 이 책 어떻게 읽었을지 되게 궁금했었어요.

    가우리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이 많으리라 생각했어요. ‘비호감’이라고 생각하게 될 독자들도 많을거라고. 그렇지만 저는 그녀가 이해되더라고요. 안그랬다면 여러사람에게 더 좋았겠지만, 그녀는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 거라고 생각해요.

    종혁씨가 고독함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국은 외로움을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읽는 내내 너무나 외로워서 힘들었어요. 아, 다들 외롭다. 누구를 위한 선택을 하든 다들 너무 외로워, 하고 말이지요. 제게 이 책은 ‘외로운’ 책이었어요.

    • 많아요 주인공들 모두 참 외롭죠. 끝까지 마음속에 있는 빗장 하나를 치우지 못해 힘들어 하는데 그 힘들어함을 스스로 택함에 있어 선택의 이유도 이해가 가고.. 가장 안타까웠던건 역시 벨라였어요. 스바쉬가 잘 챙겨주긴 했지만 그래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아픔을 달랠 길이 없어 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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