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ving home, going home

지난 며칠동안 감정적으로 참 많이 힘들었다. 볼더를 떠나는 준비를 하면서 볼더에 남아 있는 지인들과 나누는 작별 인사 과정에서 참 많이 울었다. 지난 6년동안 내 대학원 생활에서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파트리샤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던 와중 항상 강철같던 모습의 그녀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던 것이 계속 마음 깊숙한 곳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 볼더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스캇, 스티브와 함께 했는데 이후 이어진 술자리에서 많이 취해 있었고, 그 즈음 프리티와 그녀의 남자친구 댄이 들어와서 그들에게 파트리샤에 대해 이야기하던 도중 울음이 갑자기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몇시간동안 정말 서럽게, 소리내어 울었다. 술집에서도, 스캇과 함께 집에 가는 길 위에서도, 작별 인사를 하고 걸어가는 스캇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무척 서럽게 울었다. 지금까지 태어나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던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볼 친구들임에도 불구하고 쿨하게 헤어지지 못했던 이유는, 생각보다 내가 그들을 더 많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긴 이별을 약속해야 하는 순간에야 깨달았다는 자책감때문이었으며, 아마도 다시는 이들을 영영 보지 못할 것 같다는 본능적인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볼더와 볼더에서 만난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들은 내 현재가 무너지지 않게 내 옆에 함께 버티고 서서 나를 지탱해 주었던 이들이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볼더에서의 나라는 존재를 가장 잘 이해해주었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과 헤어지는 것이 참 힘들었다. 볼더에서 포틀랜드나 뉴햄프셔로 가는 거였다면 절대 울지 않았을 것이다. 도착하면 연락할게, 크리스마스쯤에 연휴 맞춰서 함 보자, 라고 쿨하게 술 한잔과 함께 이별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나는 태평양을 건너 나의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곳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임을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6년은 정말 힘들었다. 지금 당장 무너져내릴 것 같은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기 보다는 하루 하루 조금씩 쌓여 가는 감정적인 피로가 나를 서서히 녹아 내리게 만들었다. 미래가 없는 내일, 가난한 오늘, 한국에서 경제적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는 친구들, 매일 매일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하루하루, 눈에 띄게 늙어가는 부모님, 그리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 고독감. 그런 하루 하루들이 나를 지치게 만들어도 결코 쓰러질 수 없었던 것은 알량한 자존심같은 하찮은 이유들때문은 아니었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슴이 서늘하게 덜컹 내려 앉는 듯한 기분과 함께 절감해야 할 때마다, 나의 재능과 능력은 즐겁게 인생을 즐기며 이 바닥에서 생존해 나갈 수 있을 정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부터 상당히 확실하게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입에 풀칠이라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 바닥의 누군가의 발목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서 비굴한 모습으로라도 스스로를 이쁘게 꾸며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를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입을 다물어 버리고 한국에 있는 누군가로부터 이해를 구하는 것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결국 여기까지 쓰러지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볼더라는 도시 자체가 나를 품어 주었기 때문이고, 볼더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나이 표정과 숨소리만으로도 나를 이해해주는 공기를 형성해 주었기 때문이다. 난 그들에게 나의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그들은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전혀 갖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필요한 기술적인 부분들을 충족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일 것이다.

내가 트위터나 블로그에서 교류하던 사람들에게서 느꼈던 감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향내를 맡을 수 있는데, 현재성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의 감정적인 동질성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 역시, 과연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 소리내어 울어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기꺼이 내 마음의 한켠을 내주어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을 할 용의가 있는 대상임은 명확한 사실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에게 내가 갖는 감정적인 헌신은, 지난 6년동안 내가 쌓아올린 인생의 한 축이 어떤 수준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면 그와 동일한 수준의 존중을 받아야 하는 셈이다. 그만큼 내 인생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고, 지워져서는 안되는 존재들이다. 이것을 다른 무언가와 헷갈려 한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인식 체계에 따른 결과일 뿐이지 내가 신기루를 형성했다고 착각하는 것은 일종의 실례인 셈이다.

어쨌든, 헤어지는 과정은 무척 힘들었다. 그리고 지난 6년동안 떠나 왔던 나의 집, 혹은 이제 새롭게 다시 정착해야 할 어떤 곳으로 방금 막 돌아 왔다. 한국은 매년 최소한 한번은 방문했던 곳이다. 1년중 한달 정도는 이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학을 떠나기 전 평생 이곳에서 살아 왔다. 적응은 생각보다 수월할 것이다. 혹은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지난 6년동안 새롭게 깨닫고 배운 어떤 가치들을 이곳에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면, 그리고 그 다짐을 실천으로 이어갈 능력이 있다면, 나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이 새로운 사회와 충돌할 것이다. 내가 어떻게 변해갈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막 서울의 한 아파트에 있는 작은 방에 짐을 풀었을 뿐이고,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으며, 창문 넘어 들어오는 탁한 바람을 맞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아직 잘 모르겠다.

 

5 thoughts on “leaving home, going home

  1. 안녕하세요, 한국에 오신다니, 오셨다니 반갑습니다.
    가끔 좋은 음악도 알게 되고, ‘볼더’라는 평생 가 보지 않을 지명에도 익숙해 지고, 한 사람의 경험과 눈은 세상과의 또 다른 ‘접점’입니다. 곧, 대상을 바라 보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종혁씨가 궁금하네요. 일전에 부암동에 사셨다고도 하는데. 얼마전에 효자동에 까페를 오픈했습니다. 우리까페 한 번 오시지 않을래요? 커피는 당근 무료제공할게요. 대신 우리까페에 잘 어울릴 음악 리스트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cafe z kumuun hall 효자동 60-6. 언제 시간이 되시면 슬쩍 들려 봐 주세요.

    • 안녕하세요. 환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볼더’를 알게 되셨다니 쑥스럽고 감사하네요 ㅎㅎ 저도 그곳에 가기 전까진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어요. 그리고 지금은.. 꿈에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아련하고 그리운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장소 말이지요.

      네, 부암동에서 15년쯤 살았습니다. 자하문 고개 넘어서 부암동사무소 옆 골목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집들중 하나에 살았어요. 효자동에 카페를 내셨군요. 꼭 찾아 뵙겠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내에 찾아 뵐게요. 어느 분께 제가 왔다고 알려드리면 좋을까요?

    • 안녕하세요, 답을 주신 걸 몰랐어요. 며칠 째 보다가 없길래, 바쁘신가보다 하구, 벌써 한 달이 되었군요.
      저는 김현아이구요, 까페에서 커피 내리고, 샌드위치도 만드는 잼병 바리스타예요. 늦밤에 맥주나 와인도 하실 수 있어요. 언능 오세요!!

    •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제가 이 블로그에 매일 들어오지 않아요. (..) 늦게 답변드려서 죄송해요. 마침 다음주부터 통인동으로 한 일주일 출근할 것 같습니다. 연수를 받으러 오라네요.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