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인사

안녕하세요.

전에 한번 블로그를 관둔다 만다 해서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결국 그 이후에도 계속 이 블로그를 붙잡고 있게 되었지만, 항상 일기 형식을 빌어 일방적인 글만 써오던 제게 처음으로 이 블로그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께 드리는 편지 형식의 글이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중요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번째 편지를 쓰려고 해요. 사실 그동안 블로그에 글을 많이 쓰지 못했어요. 원채 게으른 탓이 제일 컸고 바쁜 일들이 많았기도 했죠. 짤막한 생각같은 것은 트위터를 통해 해소하다 보니 블로그에 긴 호흡으로 글을 적게 되는 경우가 더 적게 발생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아요. 물론 이 블로그는 계속 할겁니다. 아직 할 이야기들이 많아요. 우선 지난 주말에는 보나루 페스티벌 (Bonnaroo Music and Arts Festival) 에 다녀 왔어요. Chvrches 부터 First Aid Kit 까지, Kanye West 부터 Jack White 까지 정말 많은 뮤지션들의 공연을 3박 4일동안 빽빽하게 채워서 보고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짐정리를 하고 있어요. 내일 모레 미국을 떠나서 한국으로 향합니다. 책이나 옷같은 큰 짐들은 이미 부쳤어요. 미주 대륙에 사는 한국인들이 워낙 많다 보니 국제 이사같은 서비스도 요즘엔 잘 되어 있는 것 같네요. 생각보다 수월하게 바퀴 여덟개 짜리, 침실과 냉장고가 딸린 큰 트럭에 저의 6년을 실어 보냈습니다. 지금은 집에 남아 있는 모든 것들을 버리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 집에서만 4년을 살았는데 그동안 묵혀 두었던 짐들이 참 많네요. 군대에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은 ‘잘 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볍게 떠날 수 있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짐이 적어야 해요. 어깨에 짊어 지고 있는 가진 것들의 무게가 무거울 수록 한 자리에 계속 머물게 되고, 그렇게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에 태평양을 건너 올 때에는 책을 담은 큰 박스 두개와 옷을 담은 이민 가방 두개, 커리어 가방 한개가 전부였던 제 살림이 이젠 스물 두개의 박스와 이민가방 세개, 커리어 세개 정도의 분량으로 늘어 버렸어요. 많이 버린다고 버리는데도 쉽지 않네요.

제가 이렇게 이사를 하는 이유는, 비로소, 이제서야, 겨우 졸업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 있는 직장을 구한 것은 다들 아시죠. 바로 다음주부터 출근을 해야 해요. 그래서 부리나케 준비중입니다. 지난주 화요일에 박사 논문 최종 심사를 통과했고, 이제 자잘한 것들을 수정한 논문을 지도 교수님과 학교에 이메일로 전송하면 제가 이 박사 과정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이 끝나게 됩니다. 요즘엔 발에 채이고도 남는다는 그 흔한 박사를 받았다는게 무슨 큰 자랑이라고 이렇게 편지 형식을 빌어 큰소리로 이야기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거예요. 사실 그 말이 맞습니다. 별거 아니예요. 남들이 하는 일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남들이 받는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다들 자신이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힘들고 가장 기쁜 장소가 되죠. 저 역시 그럴 뿐이었어요. 2008년 여름 처음 미국에 와서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이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부대끼며 하나의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애썼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눈물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기쁜 일도 참 많았고, 슬픈 일도 참 많았어요. 이십대 중반에 한국을 떠나 이곳에 온 저는 아마도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가장 좋은 시절일 이십대 중후반을 이곳에서 보내고 이제 삼십대 초반의 나이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가정을 꾸린 것도 아니고 밝은 미래가 보장된 그런 삶을 일군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저는 어른들이 정해준 길을 따라 보낸 지난 25년을 지나 제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하나의 도전을 무사히 완수했습니다. 이 도전은 저에겐 많이 힘든 것이었어요. 공부는 아무나 하는게 아니더라구요. 저는 극히 평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보통의 사람이었고 그래서 뛰어난 사람들이 이룩한 이 학문이라는 세계에서 저만의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지구만한 별의 매끈한 평면에 바늘만한 돌기를 뾰족 튀어나오게 만드는 것이 박사 논문이라고들 해요. 그정도로 보잘것 없는 결과물이지만 어쨌든 이 공동체와 사회에 바늘만한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제가 희생한 6년의 시간과 수억원의 비용이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야겠죠.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아침 여덟시에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밤 열두시에 문을 닫는다는 방송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때는 정말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공부를 했음에도 간단한 수식 하나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며칠을 허비해야 했으며, 결코 우수한 성적을 받지 못했음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기 보다는 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이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것 같아요. 이 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한 능력이 저에게 있다는 확신은 지금까지도 한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전 늘 제 능력과 재능을 의심해 왔고, 제가 눈에 띄는 학문적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전 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하나의 과제를 시작했고,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다시 돌아가거나 진로의 방향을 변경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반드시 앞으로 나아 가야만 한다는 가슴 시린 절박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왔습니다. 그 결과가 이렇게 나왔기 때문에 전 자부심과 성취감보다는 안도의 한숨과 기분 좋은 피로감을 먼저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꼴찌로라도 마라톤을 완주했을 때 느끼는 그런 자기 위안같은거죠.

이 블로그는 저의 학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2007년, 전 유학 생활의 하루 하루를 담아낼 요량으로 이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워드프레스를 선택한 이유도 기존에 사용하던 티스토리가 미국에서는 너무 느리게 반응했기 때문이었어요. 유학 생활 내내, 이 블로그는 저에게 하나의 커다란 위로였습니다. 전 글을 잘 쓰지도 못할 뿐더러 듣는 음악이나 보는 영화도 참 얕고 한정적이죠. 그래서 사실 전 이 블로그에 일상을 기록하거나 음악이나 영화 이야기를 할 때에도 결국 나 혼자만 재미있어 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목적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들을 하나 하나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의 작은 기적과도 같은 기쁨이었어요. 다들 저와 성향이 비슷하신지는 몰라도 조용히 글만 읽고 가시는 여러분들의 발자취를 워드프레스가 제공해주는 간단한 통계 수치에서 확인하면서 피곤한 하루 하루를 위로받았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별 것 아닌 한번의 클릭이 쌓이고 쌓여 저의 6년을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 없어요. 이 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SNS” 같은 개념이 널리 퍼지지 않을 때였죠. 나중에 트위터나 페이스북같은 단발적인 의사 교환 수단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블로그는 전문적인 성격으로 변화되거나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었지만, 여전히, 지금 이 시간까지도 이 공간에서 저와 함께 호흡하고 계신 여러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저에게는 정말 큰 축복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의 하루 하루를 보살펴 주시고 보듬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감사의 인사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마치는 시기가 조금씩 늦어질수록 조바심이 많이 들었는데, 그 이유중 하나가 바로 제가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어요. 행여나 제가 학위를 받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평생 한이 될 것만 같았거든요.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 블로그가 저에게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얘가 왜이리 호들갑인가’ 하고 생각하셔도 하는수 없지요. 다만 저는, 이 블로그를 통해 하루 하루를 버티어 낼 수 있었고 어느 순간부터 이 블로그가 존재하는 이유로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돌아가서 직장을 다닐거예요. 생전 처음으로 8시 몇분쯤에 출근해 여섯시 이후에 퇴근하는 삶을 살겠죠. 통장에는 돈이 쌓일 것이고, 외식같은 것도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넥타이와 구두가 일상이 되는 삶을 살 것이며 친구들과 이태원 어딘가의 펍에서 미국 생활을 그리워하며 수제 맥주를 들이켜고 있을거예요. 그렇게 살아갈겁니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여자와 가정을 이룰 것이고 그렇게 가정과 일과 함께 늙어갈 겁니다. 언제까지 이 블로그가 그런 저의 삶과 함께 할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백명에서 삼백명 사이의 사람들이 들어와 무언가를 읽고 가는 이 작은 블로그가 언제까지 여러분과 저의 소통의 수단으로서 기능하게 될런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하고 싶을 때까지만 이 공간이 존재하겠죠. 이 블로그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전 제 일상과, 제가 듣는 음악과 제가 보는 영화들을 기록할겁니다. 그렇게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종혁 드림

6 thoughts on “감사의 인사

  1. 안녕하세요. 조용히 읽기만 하고 가버리던 사람 중 한 명 입니다. 가물가물 하지만, 영화를 검색하다가 이곳을 알게 된 후 오늘 까지 오게 됐네요. 깊은 생각과 고민들을 진중하고 따뜻한 글 속에서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또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시작하시게 된 것 축하드리며, 부디 매끄러운 날들을 맞이하시게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찾아와 주시고 읽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끄러운 글들 뿐이지만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열심히 살고 열심히 기록하겠습니다.

  2. 박사 받은 건 마음껏 자랑해도 됩니다.ㅎ 볼더 떠나시려니 시원섭섭하시겠어요.

    • ㅎㅎ전 매우 부끄러운 수준의 박사라 어디 가서 자랑하긴 힘들 것 같네요. 볼더 떠날 때 참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오니 또 여기서의 삶에 집중하느라 그리워할 틈이 자주 있을 것 같지는 않네요.

  3. 저도 자주 와보곤 했는데.. 한쿡 다시 오신다는 이야기 듣고 많은 생각을 했었더라는… 일단은 웰컴백입니다.

    • 제가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몇 안되는 분들중 한분이라 더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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