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ah Baumbach: Frances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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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인사이드 르윈> 이 생각났다. 사회-반사회의 경계를 넘나드는 정신세계를 가진 주인공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이곳저곳을 떠돌며 주변 사람들의 차가움에 시달리는 고난-여행기라는 점에서 닮은 점이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코언 형제가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채 주인공에 대한 씁슬한 애정을 어두운 톤으로 그릴 수 밖에 없었다면 이 <프랜시스 하>는 그보다는 조금 더 밝은 시선을 단보하고 있다. 또한 <인사이드 르윈>을 보면서 ‘한 개인이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절대적 존재’에 대한 고찰이라는, 코언 형제가 천착해 왔던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이 거의 없다고 받아들인 반면 (게다가 그 논의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거의 끝내지 않았나?) <프랜시스 하>를 보는 동안엔 그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인식을 충분히 하고 있는 와중에도 보잘것 없는 한 개인이 몸부림칠 수 있는 공간을 차분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세심하고 사려깊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인사이드 르윈>은 대단히 뛰어난 영화다. 그해 거의 최고의 영화였지. ‘거의’..)

이 영화는 최고의 오프닝 크레딧과 엔딩 크레딧 씬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영화라는 마법을 유려하게 부리고 있는 내성적이고 수줍은 마법사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영화가 창조한 세계 속으로 완전히 동화될 수 있는 강렬한 장면을 보게 되고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주이공이 창조한 삶의 한 조각에 진심으로 박수를 쳐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함께 웃고 울고 속상해하다가 주인공이 가까스로 탈출한 그런 종류의 삶을 여전히 살고 있는 나의 현실 속으로 돌아와야 할 때 느껴야 하는 쌉사름한 감정도 없다. 오히려 영화와 그 주인공에게 큰 힘을 받은 느낌이다. 영화가 현실에게 해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 영화의 시작은 그래서 위대하고 끝은 그래서 창대하다.

주인공 프랜시스의 고달픈 삶은 그 자체로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영화는 결코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잘못된 선택을 하며 자신의 삶을 구석으로 몰아가는 주인공 프랜시스는 언뜻 봤을 때 정상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녀는 동성 단짝 친구에게 “섹스를 더이상 하지 않는 레즈비언 커플” 같은 감정을 느낀다. 그녀는 자상한 남자친구의 동거 제안도 뿌리친채 단짝 친구 소피에게 집착하지만 소피는 그녀를 버리고 더 나은 조건의 삶을 찾아 떠난다. 끊임없이 갈구하던 애정에서 완전히 버림받은 이후 프랜시스의 삶은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는 유머를 잃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크게 부정하지도 않는다. 현실 인식이 없는 것도 아니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그녀가 반사회적으로 가끔 느껴지는 이유는 타인에 의한 삶의 강요를 온몸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능이 뛰어난 댄서가 아니지만 댄서로서의 삶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곁을 떠난 친구의 속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별로 좋지 않은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을때 기꺼이 침대의 한자리를 내어주고 여전히 그 친구가 시키는대로 양말을 벗는 배려를 보여준다. 프랜시스는 분명 실패한 인생이다. 그녀는 월세를 내지 못하는 경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꿈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르윈 데이비스와 똑같다. 르윈 데이비스가 다시 지하의 클럽으로 돌아갔던 것처럼, 그녀 역시 다시 어떤 ‘언저리’로 돌아간다. 그녀가 돌아가는 삶의 한 언저리에서 그녀는 밝게 웃는다. 프랜시스가 아파트 우체통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이름표를 거는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의 긴 성을 살짝 접어 ‘Ha’까지만 나오게끔 하는데,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앞으로도 결코 자신의 ‘모든 것’을 실현하지는 못하는 삶을 살겠지만, 구겨 넣든 끼워 넣든 일정 부분 포기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삶의 나머지 부분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우리의 삶이 그렇다. 아니 내 삶이 그렇다. 텍스 리턴을 받아야 거창한 외식을 한번 할 수 있고 매달 렌트를 어떻게 낼지 걱정하며 높은 꿈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능을 탓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언제나 나의 가장 가까운 곁에 있을거라 생각했던 사람은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신기루와 같으며 늘 나의 뒤에 든든히 버텨줄 것만 같았던 가족은 어느새 힘이 잔뜩 빠져 쉴 곳을 찾는 노인들이 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충동적인 여행은 카드빚을 늘려줄 뿐이며 확정되고 보장된 미래는 전혀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내가 프랜시스에게 느꼈던 감정은, ‘그래 우리의 삶은 이렇게 개판이구나’가 아닌, ‘부족한 삶은 부족한 삶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긍정의 힘이었다. 그녀는 어찌 보면 실패한 댄서이자 “데이트가 불가능한” 여자로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이다. 나 역시 실패한 학자이자 데이트가 쉽지 않은 남자로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 있으며, 또 살아가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가 <인사이드 르윈> 보다 훨씬 뛰어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하고 올 한해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가장 중요한 영화로 남을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좋은 음악과 뉴욕의 거리들, 실내 공간들은 흑백 화면과 어울려 멜랑콜리한 감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반드시 이야기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인공 프랜시스를 연기한 Greta Gerwig 이다. 그녀는 굉장히 복잡한 내면을 가진 프랜시스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그녀의 실제 고향은 새크라멘토. 프랜시스가 영화속에서 잠깐 방문하는 고향도 새크라멘토다. 그녀가 구사하는 캘리포니아 억양은 뉴욕의 거친 환경 속에 놓인 순결한 영혼을 표현하는 중요한 기표다. 이외에도 매 장면, 매 컷에서 의미를 읽을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영화다.

4 thoughts on “Noah Baumbach: Frances Ha

  1. 어제 이 영화를 보고 왔는데 전 지금 좀 놀라고 있어요. in between days 검색타고 들어왔는데 jongheuk님이 보시는 영화나 책이 저랑 비슷해서 와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요. 전 굉장히 주관적인 느낌만을 블로그에 올리는데 이렇게 정리가 잘 된 글을 보니 좀 부끄럽네요ㅋㅋㅋ in between days를 거의 한 달 째 끌면서 반 정도 읽었는데(andrew porter를 무척 좋아하거든요!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를 여러번 읽었어요. 프란시스 하 감독도 Porter처럼 Vassar college출신이더라구요! 어제 영화 크레딧 보면서 어머 저 대학이 Vassar 였어?하면서 말이죠 ) 근 몇 주간 읽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혹시 이걸 읽은 사람이 있나 하고 검색해봤더니 음 이렇게 계시네요, 그것도 몇년전의 포스팅으로! 아무튼 반갑습니다 글을 남기는 편이 아닌데 뭔가 너무 신기한 마음에(+앞으로 종종 찾아보고 싶은 블로그를 발견해서!) 글 남기고 갑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포스팅 기대할게요!:-)

    • ㅎㅎ 앞으로 자주, 많이, 깊게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포터와 바움백의 출신 대학까지 찾아보실 정도면 저보다 훨씬 더 깊게 읽어 내려가시는 것 같은데요? (방금 구글맵으로 학교 위치 확인했습니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을 읽으신 분을 만나면 항상 반갑고 신기해요. 인 비트윈 데이즈는 아직 번역이 되어 있지 않죠?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반갑네요.

  2. 저는 어제 보았던 영화인데..두달여 전에 포스팅된 글이네요..첨와오는 블로그인데 정리된글이 공감되는부분이 많아 철나고는 안달아본 댓글도 남겨보네요 :)
    영화보며 방향없이 흔들리던 대학이후의 날들과 이제는 받아들일 부분과 의지와 용기를 내어야할 부분이 정리되어가고있는 저를 생각해보았지요.
    진지하게는 아니지만 계속계속 떠오르는 생각들 기억들^^
    스틸..완전하지않아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살아가는것은 숭고하다고.. 말걸어봅니다..저자신에게요.
    그리고..
    분주하고 삭막한 서울의 삶속에서도 음..뭐라고 말해야하나..지켜나가시리라 응원해봅니다 :)

    •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맞아요. 저도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대학시절부터 이어져온 긴 방황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해답을 내려준 영화였달까요.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처없이 떠도는 주인공처럼 저희들의 삶도 기약없이 둥둥 떠다닐뿐이지만 그 자체로도 이미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해요! 서울은 삭막하지만 습하고 눅눅하네요. ㅋㅋ 농담이고 여기는 여기 나름대로 살만한 곳 같아요. 힘들지만 적응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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