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끝.

지나치게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먹는 우리네 삶에서 가끔 그저 스쳐지나간 것임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기간동안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맴도는 문장들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때 교통 사고 예방 글짓기 대회에서 쓴 글의 첫번째 문장이라던가 열두살때쯤 아버지가 나를 앞에 앉혀 놓고 들려주셨던 역사 이야기의 어느 한 구절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몇년 전인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어느 날 한국의 지하철에서 읽었던 씨네21에 나온 이창동의 인터뷰의 한 구절이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그는 영화에서 똑 부러진 기승전결 구조를 가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게 똑 부러진 사건과 사건들의 연속은 아니지 않느냐면서, 영화가 어떤 사람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에는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의 어느 한부분을 잘라 낼 수 밖에 없고, 영화의 주인공은 그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도 존재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존재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실로 그러하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 했던 나의 부모조차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 그들의 모습은 알 길이 없다. 나의 자식이 만약 나중에 태어난다고 해도 언젠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알 수 없는 친구와 알 수 없는 수다를 몇시간씩 떨게 될 그(들)의 삶의 일부분만을 훔쳐볼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삶 안으로 들어가야 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삶 전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한다. 그 사람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존재했으며, 나와 헤어진 이후에도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 죽음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존재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삶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분만을 목격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물결 속으로 기꺼이 들어갈 용기가 있다면, 그 순간만이라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출발했는지를 알고 싶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정말 그야말로 흐름을 거슬러야만 가능한 일이 될 것이며 늘 불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언젠가 내가 없는 삶을 살아갈 그에게 그의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채우려는 시도 역시 하면 안되는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지금, 이 순간, 혹은 아주 근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며,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나의 과거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에 준비되어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즉, 나의 현재에 그 사람을 초대해도 부끄럽지 않은 삶 말이다. 보통 그런 삶을 가꾸고 살기가 참 힘들다. 나 역시 그렇다. 때문에 결국 나약한 나는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다. 무언가를 더 채우려고 하기보다 가지고 있는 것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아둥바둥 악을 써야 하는 비루한 삶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하나를 잃어가고, 나는 앙상하게 남은 나 자신에게만 또 집중하며 아직은 괜찮다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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