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of the department

 군대에 있을 때 행정보급관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사병들은 2년 단위로 떠나고 장교들도 임기를 채우면 떠난다. 부대는 늘 같은 자리에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부대의 주인은 부사관들이다, 뭐 이런 주장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보급과 시설물 관리를 담당하는 행보관은 군대의 조직에서 어머니와 같은 역할이고, 나고 드는 사병과 장교들, 그리고 젊은 부사관들을 챙기며 움직이지 않는 부대의 역사를 목격하는 산 증인이 되기도 한다. 

요즘 오피스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학과 내에서 발간된 모든 석, 박사 논문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이다. 1960년부터 2013년까지 콜로라도 경제학과의 이름을 달고 발간된 모든 졸업 논문들의 저자와 연도, 논문 제목, 지도 교수, 그리고 세부 전공까지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논문 초록은 읽어야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 너무 오래된 논문은 지도 교수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거나 현대 경제학의 분류 기준으로는 도저히 정의내릴 수 없는 주제와 연구 기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기계적인 정보를 입력하는 일이야 단순 노동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세부 전공을 정의내리는 일은 논문의 초록을 넘어 가끔 목차나 서문까지 읽어야 파악이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꽤나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아마도 이 프로젝트에 나를 쓰나보다. 

1960년대에 박사 학위를 받은 나의 ‘선배’들은 아마 지금 이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이 논문을 끝으로 경제학계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은 이 졸업 논문을 발판으로 더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 몇십년동안 학계에서 명성을 떨치며 살아갔을 수도 있다. 어떤 논문은 지금 학계의 기준에서 보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고, 다른 논문은 눈이 번뜩 뜨이는 통찰력을 보여주며 현대 경제학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음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오늘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논문들을 정리했는데, 먼지가 가득 쌓은 논문들을 하나씩 꺼내 연도순, 알파벳순으로 정리하면서 차근 차근 하나씩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1980년 이후 발표된 졸업 논문들은 제법 현대 경제학의 흐름의 시초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 콜로라도 경제학과를 상징하는 대가들이 80년대 중반 이후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80년대 이후 경제학이 몇차례 큰 진화를 이루어내며 빠른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논문마다 수준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논문이 나에게 주는 재미와 흥미의 차이도 큰 편이긴 하지만, 하나같이 무척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한문장 한문장을 써내려갔음을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들은 아마도 당시 그들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힘껏 쥐어 짜내었을 것이고, 아마도 당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부어 가장 높은 수준의 문장을 완성해내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지기에 페이지를 넘기는 단순한 동작에도 경건함이 동반되어야 할 것같은 기분을 느꼈다. 

학부생들은 손님이다. 직원들은 몇년마다 한번씩 바뀐다. 대학원생들은 이 ‘둥지’를 거쳐 너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다. 그들에게 대학원은 고향같은 곳일 것이다. 젊은 교수들은 테뉴어를 받기 전까지 정신이 없다. 테뉴어를 받은 늙은 교수들은 묵묵히 학교를 지키지만 쉽게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언뜻 이 건물의 주인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그 누구도 이곳이 나의 집이요, 하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졸업 논문 정리 작업을 하면서 나는 학교의 주인은 학문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학과 건물의 작은 방 한쪽 벽을 가득 매운 이 몇백권의 논문들이 “콜로라도 경제학과가 대체 뭐요?”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학교, 이 학과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수많은 논문들이 이 곳의 역사이자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은 죽지만 이름을 남기고, 학교를 채우는 사람들은 늘 변하지만 학문은 그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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