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

텍스 리턴을 천불 넘게 받았다. 이렇게 큰 돈이 갑자기 통장에 들어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혹시 모를 불안한 미래를 위해 그냥 통장 속에 그대로 놔두는 것이지만, 지난 10년동안 늘 그런 식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스스로를 위해 사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꼭 사고 싶었지만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책 두권을 샀다. 양장본에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시리즈로 된 책이라 권당 가격이 60불이 훌쩍 넘었는데, 페이퍼백 버전이 나올 때 쯤이면 이미 내가 미국에 없을 터라 큰맘 먹고 아마존에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도 하나 샀다. 지금까지 미국 생활 내내 함께 해준 똑딱이에서 드디어 벗어나 요즘 유행한다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나 가지게 됐다. 새로운 기종이 나와 신품을 거의 반값에 팔고 있었다. 렌즈까지 더해진 킷의 가격을 보니 그 렌즈의 원래 가격 정도 밖에는 되지 않으니 사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 최대한 이곳을 많이 담아갈 생각으로 샀고, 지금까지 볼더가 나에게 베풀어준 것에 비하면 이정도 카메라와 렌즈로 기억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수준의 카메라와 렌즈였다. 마지막으로는 내일 모레 덴버에 방문하는 피스톤스 원정 경기 티켓을 한장 샀다.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고 그냥 내것만 달랑 샀다. 무척 비싼 티켓을 샀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들 옆에 앉아 같이 보는 VIP석은 아니다. 그것은 3천불이 훨씬 넘어 내가 도저히 살 수 없었고, 원정팀 벤치 바로 근처의 가장 앞자리 좌석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백불 조금 넘는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원래 가격은 200불 정도. 선수들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껏 응원을 하고 올 생각이다. 펑퍼짐한 천시 빌럽스의 저지 대신 새로 나온 드루먼드의 모터시티 저지를 입고 가야 겠다. 피스톤스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어쩌면 살아생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리 아깝지 않았다.

이번에 지른 것들 모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다음으로 미루어 두고 물리쳐 버렸을 것들이다. 한국에 가면 아마 다시는 이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이 볼더를 방문하게 될지 알 수 없었으며, 미국에서 농구 경기를, 그것도 피스톤스의 경기를 직접 볼 기회도 분명 쉽게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래서 돈을 펑펑 썼다. 이제 또 다시 배고프게 살면 된다. 지를 때에는 지르는 그 순간만을 즐기면 된다.

2 thoughts on “사치

    • 하하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편안해 (?) 지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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