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요즘 네이버 부동산을 뒤적이는게 취미 생활이 되어 버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국에서의 정착이고, 그 정착의 시작은 내가 살게 될 집을 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뉴스에서 흘려 보던 한국의 부동산 문제도 새삼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월세 혹은 전세를 살기 위해 들여야 하는 초기 비용의 크기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부모의 ‘큰’ 도움 없이는 쉽게 들어설 수 없는 서울의 높은 진입장벽은 삶의 고단한 일상이 현실화되어 평생 나의 발목을 무겁게 만들 것임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힘들고 피곤한 한국인들의 삶은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또 내가 그 일부로 편입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눈이 뻑뻑해지고 목이 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초,중,고를 모두 나온 부암동이라는 동네 근처에는 청운아파트라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에 등장하는 낡고 허름한, 지금 생각하면 기괴하기 까지 한 임대 아파트였다.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섰다고 네이버 부동산이 알려주었다. 어린 시절 성당 친구들이 살고 있던 그 아파트에 자주 놀러 갔는데, 어린 나이의 나는 부동산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이나 의미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거 신나게 뛰어 놀기만 했을 뿐이었다. 큰 아파트 단지였고 산 속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숨바꼭질을 하거나 비비탄 총으로 서바이벌 게임을 하기에는 참 좋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내 돈을 들여 살 집을 찾고 있는 서른살의 내가 20여년전의 그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14평도 되지 않는 낡은 단칸방 아파트에서 모여 살고 있던 친구들의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용직으로 일주일 내내 고생한 고단한 몸을 뉘이고 하루라도 좀 편하게 쉬어볼까 좁은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일요일 오후, 하나뿐인 아들이 끌고 온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놀라고 따뜻하고 넓은 자리를 비켜 주고 싱크대 옆 좁은 공간에 몸을 구기고 앉아 계시던 친구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역시 철거된 세검정 삼거리 신영상가 뒷편 쓰러져가는 판자촌에 살던 잘생긴 형은 우리가 놀러갈 때마다 몸이 불편해 누워 계시던 아버지를 일으켜세워 우리의 인사를 받게 했다. 우리는 그 집의 좁은 마당에 걸려 있던 빨래줄 두줄 사이 공간을 농구골대 삼아 바람빠진 배구공으로 농구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어서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다. 몇시간 동안 텅텅거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그 형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잔소리 한번 하지 않으시고 아무말 없이 과일을 깎아 내어 주셨다.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평창동의 300평짜리 집에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진짜 농구 골대와 진짜 농구공을 처음으로 만져볼 수 있었고, 3층짜리 집의 지하실에 놓인 진짜 탁구대에서 탁구를 치며 무언가 다른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 판자촌집과 300평까지 집은 불과 자동차로 1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 마을에서 2만키로 이상 떨어진 곳에서 인터넷으로 부동산을 이리 저리 찍어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20년쯤 지난 그 시절 그 아파트와 그 판자촌 집에 계시던 분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많이 죄송하고 부끄러워졌다.

4 thoughts on “우리집

  1. 아파트에서 눈을 돌리면 의외로 나쁘지 않은 집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되도록 월세만은 피하시길… ㅠㅠ 한국에 오시면 꼭 뵈어요. : ) [weiv]의 차우진입니다.

    • 넵 감사합니다. 저도 그래서 아파트에 대한 미련을 버렸어요 ㅋ 빌라나 다세대, 오피스텔에 살아도 감지덕지할 것 같습니다. 월세 피하라는 말씀, 머리속에 새겨 두겠습니다.

  2. 그래도 아직 청운동과 부암동 일대엔 썩 주택이 많은 편이죠. 조금만 더 가도 아파트가 있으니까요. 음.. :) 어디든 그렇지만 우리집, 내집 갖기 힘든 것 같습니다.

    • ㅎㅎ 내집 갖고 싶다는 미련을 버려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다른 방식으로 노후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제 꿈이 언젠가 다시 부암동으로 돌아가는건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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