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인생

시험, 발표, 글짓기, 수업 태도등 많은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수치로 표현하는 평가방식을 고수하는 현대의 교육 시스템에 발을 들여 놓은 뒤부터 나는 한결같이 애매한 학생으로 평가받아 왔다. 단 한번도 압도적인 학업 성취도를 보인 적도 없었고, 여러가지 고만고만한 재능들중 낭중지추처럼 보기 좋게 튀어나온 뛰어난 재능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장래희망이라던가 미래의 희망 직업등에 있어서 하나의 완전한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채 성장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재능이 현실화되는 과정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그 유전적인 요소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사회적 환경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애매한 유전적 재능이 부모님의 심한 과보호 정책과 맞물려 제대로 현실에서 발현되지 못한채 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어울리고 싶은 소심한 성격 속에 묻혀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집 밖에서 쌓을 수 있는 경험치가 남들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졌던 나는 결국 아버지가 역사를 전공한 학자라는 가정 환경이 결국 가장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었고, 사춘기 이후 얼굴을 덮어 버린 흉칙한 여드름과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고단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방 속에 틀어 박혀 책을 읽는 것 – 플러스 PC통신 – 이 유일한 낙이 되어 버린 소년으로 십대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내가 제대로 된 사회적 평판이나 교육 시스템이 주는 확고한 전망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했다. 만약 외고에 진학할 당시 중국어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역사를 전공했겠지만 그조차 이루지 못했고, 상당히 애매모한 수준의 수능 점수를 받아 들고 고민끝에 완전히 생뚱맞은 경제학과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만족도를 떠나 간판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애매모호한 대학에 들어 갔고, 그곳에서 애매한 학점을 받았으며, 그 결과 애매한 수준의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애매한 성적으로 속앓이를 많이 했으며, 애매한 수준의 논문을 쓰는 바람에 잡마켓에서도 큰 좌절을 맛봐야 했다. 운좋게 한국의 한 회사에서 면접 기회를 주었고, 얼마전 한국에서 세미나를 했으며, 지난 주말 최종 연락을 받았다. 유일한 오퍼를 받아 들고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으나, 애매한 인생을 살아온 내게 확실한 잡 오퍼가 날라들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거절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제 승낙 메일을 보냈고, 이제 그쪽에서 다시 올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다.

애매한 인생을 사는 사람의 고충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글 읽는 것도 좋아하며 조용하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좋아한다고 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더 나아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자기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애매한 예상과 기대만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 왔고, 실망스럽게도 미국에서도 스스로에게 확신을 내려줄 만큼의 명쾌한 성취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앞날은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 없이 항상 어떤 선택과 결과들의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앞날이 애매하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선택에 따라 바뀌는 인생의 방향 폭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그 선택의 가치가 굉장히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 남아서 모험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시작할 것인가. 굉장히 극단적인 두 선택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내 능력이 애매하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조금 더 잘했더라면, 그래서 굉장히 좋은 논문을 썼더라면, 나는 미국이 좋은 학교와 덜 좋은 학교 사이에서 명쾌하고 덜 위험한 선택을 쉽게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부족하고 애매한 내게 감히 하나의 포지션을 내어준 그 회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아마도 나는 많이 부족할 것이다. 굉장히 서툴 것이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오로지 학교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온 내가 드디어 학교 밖으로 뛰쳐 나가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게 된 이유는, 더이상의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함께 애매한 인생에서 조금 더 확실함이 보이는 길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확실한 오퍼와 확실한 업무, 확실한 출퇴근 시간, 확실한 피곤함. 확실한 스트레스. 이런 것들로 나아가고 싶었다. 애매한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11 thoughts on “애매한 인생

    • 저도 궁금합니다. 과연 새벽에 일어나 여덟시, 혹은 아홉시까지 출근할 수 있을까요? 그때 일어나지도 않는데 ㅋㅋ

  1.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의 글에 굉장히 공감했습니다
    세상에서 저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되서 큰 위안도 얻었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애매함을 떨쳐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전 제 스스로 이런 상황을 만들어버린거라 어디다 하소연도 못하겠거든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멋진 인생을 사시길 바라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아직 너무 어색하네요. 위안을 얻으셨다니 진심으로 기쁩니다. 제가 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인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함께 애매함을 이겨내도록 해봐요. 언젠가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성숙해지는 때가 오겠지요. 그때가 되면 아마도 조금은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열심히 살겠습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갈게요. 감사합니다.

  2. 공부를 좋아하는 것과 공부를 잘하고 그래서 공부로 먹고살 수 있는 것 사이의 괴리감 때문에 늘 고민이 많은,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부생입니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 홀로 앉아 되지도 않는 공부를 하겠다고 낑낑대다가, 잠깐 쉴까 하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던 도중 우연히 들어온 블로그에서 마치 제 평소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한 듯한 글을 보게 되어,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곧 저에게도 이상과 현실 중에 하나는 버리고 하나는 취해야 할 순간이 올 텐데, 지금 읽은 이 글이 멀지 않은 미래의 그 순간에 혹은 그때까지의 제 숙고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poli-sci 님, 답이 늦었죠. 죄송합니다. 새벽에 홀로 독서실에 앉아 되지도 않는 공부 하고 계신 것 자체가 미래를 조금 더 밝게 만드는 것 같아요. 공부도 결국 현실이고, 회사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해야 겨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한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꿈을 잃지 않는 것이고, 공부를 즐기는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늘 행복하다는 사실같아요. 건승을 빕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