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vert-phobia society

한국에는 ‘아싸’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내가 대학생때는 그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그 이후 세대부터 생긴 유행어같다. ‘아웃사이더’의 줄임말이라고 하는데, 과 친구들이나 동아리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주로 혼자 학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흔히 어떤 사람을 가리켜 ‘아싸’라고 하면 그것이 칭찬으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즉 친구들과 어울려 활발한 활동을 하거나 늘 바쁘게 주변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인식되고 ‘아싸’라는 범주 안에 들어가면 왠지 사회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아싸’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고, ‘아싸’가 ‘아닌’ 사람들은 그런 현실에 안도한다. ‘아싸’를 정의내리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겠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아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있다고 한다. 

1. 아무 계획도 없는 주말을 선호함
2. 모임이나 약속이 취소되었을 때 기쁨
3. 일이 끝나고 아무런 일정이 없을 때 안도감을 느낌
4. 어디서 전화가 오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받고 싶어하지 않음
5. 모임에서 혼자 겉돌때 문자하는 척 함
6. 밖에서 노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노는 것을 선호함
7. 친구나 직장 동료들의 사교 모임 초청에 바쁜 일이 있다고 거절함
8.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지 않음
9. 현실보다 온라인에서 노는 것이 더 재밌다고 느낌

위와 같은 특징은, 엄밀히 말해 발달된 형태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백번 양보한다고 해도 위와 같은 특징은 ‘아싸’가 아니라 내향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지탄받아야 할 사람들도 아니고 불쌍하게 생각되어져야할 사람들도 당연히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그들이 사회에 공헌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Susan Cain 이 쓴 베스트셀러 <Quiet> 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 전 세계는 많은 외향적인 사람들과 그들보다 발견하기 조금 더 힘든 내향적인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들이 각자 사회에 공헌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외향적인 사람들이 한 사회에서 위치를 찾거나 만들어나가는 방식이 훨신 적극적이고 공격적이기 때문에 현대 사회는 외향적인 사람들 중심으로 형성되어져 왔고, 그 때문에 내향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상식적인 외향적인 사람들에 의해 때때로 많은 비논리적인 차별이 행해져 왔다. 그것이 만연해 있는 미국 사회를 지나 조금 더 내향성을 높게 간직하고 있던 한국에서마저 이러한 차별이 조금씩 더 노골화되는 추세인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가 갖는 위험성은 명확하고 단순하다. 네오 나치즘과 같은 사회 파괴적 형태의 소수 차별 주의자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일베), 개인적인 사색의 공간이 갖는 가치 자체가 폄하되기 때문에 강제적인 사회 활동이 정당화될 소지가 높으며, 책을 읽기 보다 술 한잔을 더 마시며 사교 활동을 하는 편이 더 가치있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는 과정에서 집단적인 지적 능력 자체가 감퇴할 위험성도 있다. 모든 인간이 사교 활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이 더 많은 다른 인간들과 관계를 갖고 싶어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이들은 혼자, 혹은 한두명의 친한 사람들과의 교류만이 가치있다고 느낄 것이며 그 작은 관계에서 더 높은 가치를 생산해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 것을 극도로 부끄러워 하는 풍조가 있다. 혼자 영화관에 가거나 혼자 밥을 먹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공공 장소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는 ‘나에게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주변에 알리기 위해 조금 더 큰 목소리와 과장된 액션으로 심하게 푸드덕거리기도 한다. 그런 과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대상은 놀랍게도 생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완전한 타인들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우리는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가 얼마나 사교적인지 과시하기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과정에서 남는 것은 공허함뿐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다른 한명의 인간과 결혼할 수 있으며, 요즘같은 사회에서는 자녀를 많이 낳아봐야 세명이 한계이다. 그리고 죽기 전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죽을 때에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대화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향성을 경시하는 풍조를 가진 사회는 결코 이러한 현대 사회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 점점 외로워져 가고 고립되어 가는 현대 사회의 개인을 애써 무시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더 많은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것일 수도 있다. 즉 외향적인 사람들이 현실을 외면하는 겁쟁이일 가능성이 더 높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이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장려하는 사회 풍조를 형성해야 한다. 퇴근을 일찍 하고 집에 가서 책을 읽으며 세상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아름다운 미덕으로 찬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내향성은 결코 열등함의 다른 표현이 아니다. ‘아싸’를 마치 낙오자나 사회 부적응자로 묘사하며 경시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기저에는 그렇게 되기 싫다는 두려움이 공존할 것이며, 그 두려움의 근간에는 외향성에 대한 비논리적인 찬양이 각인되어 있다. 

한국 사회와 삶의 고단함.

오늘 봄방학 첫날을 맞아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서 쉬는셈 치고 부동산과 자동차 시장을 동시에 검색했다. 뭐가 그리 복잡한지. 판매자를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구매 결정 이후의 절차부터 실제로 동산/부동산을 임의대로 사용하기 까지의 과정이 온전히 소비자의 책임과 몫으로 전가되고 있었다. 즉, 판매자나 공공기관이 불편함을 떠안으면서 소비자로 하여금 ‘돈만 내면 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것을 가지고 싶다면 저것도 해야 하고 그것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도 사실 갖지 못할 수도 있어’ 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시스템은 반대라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이 가장 불편한 부분을 모두 떠안고 시장이 온전히 수요, 공급자와 가격에 의해 결정되게끔 환경을 조성한다. 미국의 공무원들이 아무리 게으르고 불친절하다고 해도 그런 불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시스템이 있기에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공무원들도 개인의 능력에 상당 부분 기대야 하고 시장의 규칙이라는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직접 겪어 봐야 처리가 가능한지 알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시장이 개인의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시장은 예측할 수 없다. 물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수많은 팝업창을 뚫고 컴퓨터를 충분히 느리게 만든 뒤에야 ‘제발 결재가 성공하게 해달라’ 라고 기도할 수 있는 단계에 다다를 수 있다. 아마존처럼 원클릭으로 구매하게 하면 판매량도 껑충 뛰고 내수도 상승할 수 있을텐데 소위 말하는 구두창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셈이다. 이건 경제학 용어로 deadweight loss, 소위 말해 그냥 죽은 돈이 되어 버린다.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 나아가 부동산 시장은 점점 새로운 진입 장벽을 높게 쌓아올려가고 있는 중이다. 빚을 내어 집을 산 사람은 몇년째 가격이 오르지 않아 하우스 푸어가 될 지경인데, 이제 미국에서 금리를 서서히 올리기로 마음 먹었으니 따라 금리를 올려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가계 부채가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매매가격이 오르지 않으니 사람들은 돈이 있어도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들어가려고 한다. 전세 가격은 이미 ‘원래 전세를 살아야 할 정도의 형편을 가진 자’들이 도저히 덤빌 수 없을 정도로 올라 버렸다. 그래서 나온 월세라는 것도 외국의 월세와는 다르게 초기 보증금이 어마어마하게 비싼 수준이라 이 역시 목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전세라는 마이너스 이자율을 지급하고 저축을 하는 형태의 재산 축적 방법이 있다 보니 매달 일정 비용을 지출하는 월세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수요자는 점점 전세로 몰리지만, 전세는 이미 두터운 벽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가 나서서 월세의 보증금 한도를 크게 낮추어 버리면 월 소득을 보전받기 위해 월세 가격도 큰 폭으로 상승할 여지가 높다. 이래저래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젊은이들은 서울 밖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 밖으로 밀려나면 통근 시간이 길어지고, 통근 시간이 길어지면 저녁이 없어지고 삶은 고단해 진다. 취미 생활을 할 수도 없고 차분히 앉아서 생각을 할 수도, 공부를 할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가고 그렇게 세상에 짜증을 내다가 새누리당을 찍게 된다.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이 왠지 노무현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열어도 텔레비전을 틀어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현대의 서울, 혹은 서울 근처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서울에 정착하기 힘든 구조에서 살고 있다. 12년동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 뒤 또다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주거 비용이다. 이렇게 만난 남녀 (혹는 남남, 여여) 는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다. 결혼 전까지 몇년동안 모은 돈을 전세 자금으로 쏟아 붓고도 돈이 모자라 대출을 또 받아야 한다. 이렇게 시작한 가정은 조금 더 돈을 모아 조금 더 큰 전세로 옮겨 가고 그렇게 십년 넘게 돈을 모으면 드디어 매매로 집을 구매해 대출을 계속 갚아나간다. 그렇게 또 대출을 다 갚아 나가다 보면 인생의 절반을 훌쩍 넘긴 시기에 비로소 빚이 없는 아파트 한채를 갖게 되지만, 그것도 몇년 지나지 않아 자식들의 대학 자금과 결혼 자금으로 융자를 받아 까먹게 된다. 그렇게 서울의 번듯한 집 한채는 낡아 빠진 채로 헐값에 팔려 나가고, 자식들에게 약간의 돈을 보태주고 나면 거의 빈털터리 신세로 서울 밖으로 밀려나 연금으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생, 한국에서 굉장히 성공한 인생에 속한다. 그리고 이 고단하고 별로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 힘겨운 삶을 살기 위해 많은 한국인들이 오늘도 뼈빠지게 일하고 있다.

 부동산 매매 가격은 앞으로도 오르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양천구부터 강남구까지, 용산구부터 분당에 이르는 몇몇 지역들은 투기 심리에 따른 거품이 빠지지 않았고 이 지역들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꾸준히 있을 것이지만 투기를 위해 집을 산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의 가격 상승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는 이제 성장 동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고 수출은 여전히 제조품 위주이며 국내 소비는 여전히 불편하고 노동 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금리가 상승하면 빚을 지고 있는 많은 가계들이 더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며 많은 이들이 파산하게 될 것이다. 부동산을 팔아 빚을 갚고 소득을 올리고자 하는 많은 이들은 그 꿈이 좌절된 채 높은 이자에 시달릴 것이고, 돈이 있는 자들은 비싼 전세 가격 형성에 기여하며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닐 것이다. 청년 실업률은 앞으로 점점 더 악화될 것이고 9급 공무원이 거의 모든 젊은이들의 꿈이 된 이 사회에서 모순되게도 안정적인 삶이란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가치가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리 만무하다.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은 뭘로 매울까. 외국인 노동자들을 싼값에 쓰면서 사회 계층 분화는 심화될 것이고 네오나치즘같은 소수민족 차별 운동이 한국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노동시장은 더 악화될 것이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들이 헐값에 노동력을 내어주면서 갑과 을의 격차는 더 깊어질 것이다. 대기업 중에서는 오로지 삼성만이 안정적인 현금을 만질 수 있을 것이며 정치는 새누리당 혹은 그 당을 잇는 다른 이름의 정당이 계속 집권하면서 권력이 어느 한 지점에 모이게 될 것이다. 월급쟁이들의 삶은 점점 더 비참해질 것이며, 장사를 하려 해도 소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새롭게 여는 가게마다 족족 망해나갈 것이며, 거의 모든 가게들은 대기업들의 체인점으로 변신한채 비정규직들의 비율을 급속하게 증가시켜 나갈 것이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점점 더 고단해질 것이며, 그 어떤 밝은 미래도 기대하지 못한채 조금씩 사그러들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다. 

history of the department

 군대에 있을 때 행정보급관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사병들은 2년 단위로 떠나고 장교들도 임기를 채우면 떠난다. 부대는 늘 같은 자리에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그 자리를 지키는 부대의 주인은 부사관들이다, 뭐 이런 주장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보급과 시설물 관리를 담당하는 행보관은 군대의 조직에서 어머니와 같은 역할이고, 나고 드는 사병과 장교들, 그리고 젊은 부사관들을 챙기며 움직이지 않는 부대의 역사를 목격하는 산 증인이 되기도 한다. 

요즘 오피스 사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중이다. 지금까지 학과 내에서 발간된 모든 석, 박사 논문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일이다. 1960년부터 2013년까지 콜로라도 경제학과의 이름을 달고 발간된 모든 졸업 논문들의 저자와 연도, 논문 제목, 지도 교수, 그리고 세부 전공까지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논문 초록은 읽어야 원하는 정보를 모두 얻을 수 있다. 너무 오래된 논문은 지도 교수의 이름이 누락되어 있거나 현대 경제학의 분류 기준으로는 도저히 정의내릴 수 없는 주제와 연구 기법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기계적인 정보를 입력하는 일이야 단순 노동이니 그러려니 하는데 세부 전공을 정의내리는 일은 논문의 초록을 넘어 가끔 목차나 서문까지 읽어야 파악이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꽤나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된다. 그래서 아마도 이 프로젝트에 나를 쓰나보다. 

1960년대에 박사 학위를 받은 나의 ‘선배’들은 아마 지금 이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이 논문을 끝으로 경제학계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은 이 졸업 논문을 발판으로 더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 몇십년동안 학계에서 명성을 떨치며 살아갔을 수도 있다. 어떤 논문은 지금 학계의 기준에서 보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고 있고, 다른 논문은 눈이 번뜩 뜨이는 통찰력을 보여주며 현대 경제학에 지대한 공로를 세웠음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오늘은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논문들을 정리했는데, 먼지가 가득 쌓은 논문들을 하나씩 꺼내 연도순, 알파벳순으로 정리하면서 차근 차근 하나씩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1980년 이후 발표된 졸업 논문들은 제법 현대 경제학의 흐름의 시초를 형성하고 있었다. 지금 현재 콜로라도 경제학과를 상징하는 대가들이 80년대 중반 이후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80년대 이후 경제학이 몇차례 큰 진화를 이루어내며 빠른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논문마다 수준 차이가 분명히 존재하고 논문이 나에게 주는 재미와 흥미의 차이도 큰 편이긴 하지만, 하나같이 무척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한문장 한문장을 써내려갔음을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학자로서의 커리어를 막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들은 아마도 당시 그들이 낼 수 있는 모든 힘을 힘껏 쥐어 짜내었을 것이고, 아마도 당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부어 가장 높은 수준의 문장을 완성해내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들이 단어 하나, 문장 하나마다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지기에 페이지를 넘기는 단순한 동작에도 경건함이 동반되어야 할 것같은 기분을 느꼈다. 

학부생들은 손님이다. 직원들은 몇년마다 한번씩 바뀐다. 대학원생들은 이 ‘둥지’를 거쳐 너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다. 그들에게 대학원은 고향같은 곳일 것이다. 젊은 교수들은 테뉴어를 받기 전까지 정신이 없다. 테뉴어를 받은 늙은 교수들은 묵묵히 학교를 지키지만 쉽게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언뜻 이 건물의 주인이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계속 바뀌고 그 누구도 이곳이 나의 집이요, 하며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졸업 논문 정리 작업을 하면서 나는 학교의 주인은 학문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학과 건물의 작은 방 한쪽 벽을 가득 매운 이 몇백권의 논문들이 “콜로라도 경제학과가 대체 뭐요?”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학교, 이 학과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수많은 논문들이 이 곳의 역사이자 주인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사람은 죽지만 이름을 남기고, 학교를 채우는 사람들은 늘 변하지만 학문은 그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teach vs. report

많은 대학원생들이 미래의 직장으로 회사보다는 학교를 선호한다. 물론 근본적이고도 실질적인 이유는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괜찮으니까’ 혹은 ‘일주일에 다섯번 출근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겠지만 그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이유는 ‘티칭이 좋아서’ 이다. “교육이라는 가치에 헌신하는게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와 같은 오글거리는 멘트로 대변되는, 주로 올빼미족들인 이들이 내건 새빨간 거짓말인 이 변명은 언뜻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다. 교실 안에서는 선생이 ‘완갑’이고 최소한 티칭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그 누구의 통제도 거의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리서치가 오로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 혹은 동등한 위치에 있는 누군가와의 협업임을 생각해 볼때 학교는 대학원생들에게 기나긴 ‘을’로서의 기간으로부터의 거의 완전한 탈출을 보장해 주는 신의 직장임에 틀림없다. 이에 반해 정부기관이든 사기업이든 일단 회사에 들어가면 ‘보스’라는 존재가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한다. 회사에 들어간 경제학 박사들은 티칭에서 해방이 되지만 (i.e., 젊음을 빙자한 어리석은 방종을 매주 몇시간씩 의무적으로 관찰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신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현 경제 상황에 대한 리포트를 써야 한다. 이는 ‘서비스’의 관점에서 리서치가 주된 업무이자 평생의 업이라고 생각하는 박사들에게 티칭과 동등하게 치환될 수 있는 일종의 의무사항인 셈인데, 글 쓰는 것을 말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 오히려 이쪽이 더 마음이 편할 수가 있다. 하지만 리포트 역시 어떤 ‘갑’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점에서 티칭보다 더 큰 부담이 되는건 어쩔 수 없다. 즉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또다른 ‘을’로서 ‘갑’을 상대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마 연봉의 차이를 떠나 외국의, 그것도 왠만하면 미국의 학교를 국적불문하고 일순위에 놓고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대신 더 좋은 환경을 갖춘 학교일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좋은 리서치 스쿨에서 테뉴어를 따내는 것은 정말 정말 힘든 일이며, 그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어쩌면 차라리 ‘갑’이 시키는 일을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의 끔찍한 업무량이 기다리고 있다. 성공한 학자로 살아 남는 것은 어떤 길로 나아가든지 참 힘든 일이다. 나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멍을 계속해서 찾아나가고 있다. ‘서비스’와 ‘업’ 이 분리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그래서 축복인 것 같다. 

사치

텍스 리턴을 천불 넘게 받았다. 이렇게 큰 돈이 갑자기 통장에 들어오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혹시 모를 불안한 미래를 위해 그냥 통장 속에 그대로 놔두는 것이지만, 지난 10년동안 늘 그런 식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스스로를 위해 사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꼭 사고 싶었지만 비싸서 엄두가 나지 않았던 책 두권을 샀다. 양장본에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시리즈로 된 책이라 권당 가격이 60불이 훌쩍 넘었는데, 페이퍼백 버전이 나올 때 쯤이면 이미 내가 미국에 없을 터라 큰맘 먹고 아마존에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카메라도 하나 샀다. 지금까지 미국 생활 내내 함께 해준 똑딱이에서 드디어 벗어나 요즘 유행한다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나 가지게 됐다. 새로운 기종이 나와 신품을 거의 반값에 팔고 있었다. 렌즈까지 더해진 킷의 가격을 보니 그 렌즈의 원래 가격 정도 밖에는 되지 않으니 사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 최대한 이곳을 많이 담아갈 생각으로 샀고, 지금까지 볼더가 나에게 베풀어준 것에 비하면 이정도 카메라와 렌즈로 기억하는 것이 무례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수준의 카메라와 렌즈였다. 마지막으로는 내일 모레 덴버에 방문하는 피스톤스 원정 경기 티켓을 한장 샀다.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고 하지도 않고 그냥 내것만 달랑 샀다. 무척 비싼 티켓을 샀기 때문이다. 물론 선수들 옆에 앉아 같이 보는 VIP석은 아니다. 그것은 3천불이 훨씬 넘어 내가 도저히 살 수 없었고, 원정팀 벤치 바로 근처의 가장 앞자리 좌석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백불 조금 넘는 가격에 구할 수 있었다. 원래 가격은 200불 정도. 선수들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껏 응원을 하고 올 생각이다. 펑퍼짐한 천시 빌럽스의 저지 대신 새로 나온 드루먼드의 모터시티 저지를 입고 가야 겠다. 피스톤스 경기를 직접 볼 수 있는, 어쩌면 살아생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그리 아깝지 않았다.

이번에 지른 것들 모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다음으로 미루어 두고 물리쳐 버렸을 것들이다. 한국에 가면 아마 다시는 이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이 볼더를 방문하게 될지 알 수 없었으며, 미국에서 농구 경기를, 그것도 피스톤스의 경기를 직접 볼 기회도 분명 쉽게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절박했다. 그래서 돈을 펑펑 썼다. 이제 또 다시 배고프게 살면 된다. 지를 때에는 지르는 그 순간만을 즐기면 된다.

갔던 길.

Aside

방금 전 또 한명의 유학 준비생께 이메일을 보내드렸다. 작년부터 부쩍 이렇게 유학 상담을 해주는 경우가 늘어난 것 같다. 이번에 문의를 해오신 분은 콜로라도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고 생활이나 환경등을 고민하고 계신, 아이가 둘이나 있는 한 가정의 가장. 뒤늦게 유학을 결심하셨으니 그만큼 생각해야 할 부분도 많았을게다. 내가 입학 전 고민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다시 질문으로 받고 이 것에 대해 꼼꼼하게 답변을 다는 내내 눈물이 계속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졸업할 때가 가까워져서일까. 이 힘든 길을 앞장서서 걷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볼때마다 가슴 한켠이 애리다. 앞으로 5년, 혹은 6년, 아니 그보다 어쩌면 더 길지도 모르는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실까 생각하니 그저 힘내라는 말 밖에는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저, 그저 힘내시라, 앞으로 정말 많은 힘든 일들이 있을텐데 제발 좌절하지 마시라, 이런 말들을 차마 직접 이메일에 적지는 못하고 화면의 한 귀퉁이 빈곳에 마음으로 담아 새겨놓았다.

부디, 부디 힘내시길. 그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도 분명 있을테니까.

우리집

요즘 네이버 부동산을 뒤적이는게 취미 생활이 되어 버렸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기정사실화된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국에서의 정착이고, 그 정착의 시작은 내가 살게 될 집을 구하는 일이 될 것이다. 뉴스에서 흘려 보던 한국의 부동산 문제도 새삼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여졌으며, 월세 혹은 전세를 살기 위해 들여야 하는 초기 비용의 크기가 구체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서 돈의 노예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부모의 ‘큰’ 도움 없이는 쉽게 들어설 수 없는 서울의 높은 진입장벽은 삶의 고단한 일상이 현실화되어 평생 나의 발목을 무겁게 만들 것임을 직감하게 만들었다. 힘들고 피곤한 한국인들의 삶은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또 내가 그 일부로 편입해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눈이 뻑뻑해지고 목이 탁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내가 초,중,고를 모두 나온 부암동이라는 동네 근처에는 청운아파트라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에 등장하는 낡고 허름한, 지금 생각하면 기괴하기 까지 한 임대 아파트였다.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공원이 들어섰다고 네이버 부동산이 알려주었다. 어린 시절 성당 친구들이 살고 있던 그 아파트에 자주 놀러 갔는데, 어린 나이의 나는 부동산이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이나 의미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거 신나게 뛰어 놀기만 했을 뿐이었다. 큰 아파트 단지였고 산 속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숨바꼭질을 하거나 비비탄 총으로 서바이벌 게임을 하기에는 참 좋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내 돈을 들여 살 집을 찾고 있는 서른살의 내가 20여년전의 그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14평도 되지 않는 낡은 단칸방 아파트에서 모여 살고 있던 친구들의 가족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용직으로 일주일 내내 고생한 고단한 몸을 뉘이고 하루라도 좀 편하게 쉬어볼까 좁은 방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일요일 오후, 하나뿐인 아들이 끌고 온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놀라고 따뜻하고 넓은 자리를 비켜 주고 싱크대 옆 좁은 공간에 몸을 구기고 앉아 계시던 친구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역시 철거된 세검정 삼거리 신영상가 뒷편 쓰러져가는 판자촌에 살던 잘생긴 형은 우리가 놀러갈 때마다 몸이 불편해 누워 계시던 아버지를 일으켜세워 우리의 인사를 받게 했다. 우리는 그 집의 좁은 마당에 걸려 있던 빨래줄 두줄 사이 공간을 농구골대 삼아 바람빠진 배구공으로 농구를 했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어서 해가 질 때까지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다. 몇시간 동안 텅텅거리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던 그 형의 아버지는 우리에게 잔소리 한번 하지 않으시고 아무말 없이 과일을 깎아 내어 주셨다.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평창동의 300평짜리 집에 사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진짜 농구 골대와 진짜 농구공을 처음으로 만져볼 수 있었고, 3층짜리 집의 지하실에 놓인 진짜 탁구대에서 탁구를 치며 무언가 다른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 판자촌집과 300평까지 집은 불과 자동차로 1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 마을에서 2만키로 이상 떨어진 곳에서 인터넷으로 부동산을 이리 저리 찍어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20년쯤 지난 그 시절 그 아파트와 그 판자촌 집에 계시던 분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많이 죄송하고 부끄러워졌다.

애매한 인생

시험, 발표, 글짓기, 수업 태도등 많은 요소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수치로 표현하는 평가방식을 고수하는 현대의 교육 시스템에 발을 들여 놓은 뒤부터 나는 한결같이 애매한 학생으로 평가받아 왔다. 단 한번도 압도적인 학업 성취도를 보인 적도 없었고, 여러가지 고만고만한 재능들중 낭중지추처럼 보기 좋게 튀어나온 뛰어난 재능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장래희망이라던가 미래의 희망 직업등에 있어서 하나의 완전한 결론에 다다르지 못한채 성장해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어린 아이들의 재능이 현실화되는 과정에는 유전적인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그 유전적인 요소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사회적 환경이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애매한 유전적 재능이 부모님의 심한 과보호 정책과 맞물려 제대로 현실에서 발현되지 못한채 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어울리고 싶은 소심한 성격 속에 묻혀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집 밖에서 쌓을 수 있는 경험치가 남들에 비해 현격하게 떨어졌던 나는 결국 아버지가 역사를 전공한 학자라는 가정 환경이 결국 가장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었고, 사춘기 이후 얼굴을 덮어 버린 흉칙한 여드름과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고단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방 속에 틀어 박혀 책을 읽는 것 – 플러스 PC통신 – 이 유일한 낙이 되어 버린 소년으로 십대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성장한 내가 제대로 된 사회적 평판이나 교육 시스템이 주는 확고한 전망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했다. 만약 외고에 진학할 당시 중국어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자연스럽게 역사를 전공했겠지만 그조차 이루지 못했고, 상당히 애매모한 수준의 수능 점수를 받아 들고 고민끝에 완전히 생뚱맞은 경제학과로 진학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만족도를 떠나 간판이 중요한 한국 사회에서 상당히 애매모호한 대학에 들어 갔고, 그곳에서 애매한 학점을 받았으며, 그 결과 애매한 수준의 대학원에 진학해야 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도 애매한 성적으로 속앓이를 많이 했으며, 애매한 수준의 논문을 쓰는 바람에 잡마켓에서도 큰 좌절을 맛봐야 했다. 운좋게 한국의 한 회사에서 면접 기회를 주었고, 얼마전 한국에서 세미나를 했으며, 지난 주말 최종 연락을 받았다. 유일한 오퍼를 받아 들고 잠시동안 생각에 잠겼으나, 애매한 인생을 살아온 내게 확실한 잡 오퍼가 날라들었기 때문에 이 제안을 거절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제 승낙 메일을 보냈고, 이제 그쪽에서 다시 올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다.

애매한 인생을 사는 사람의 고충은 크게 두가지다. 첫째,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글 읽는 것도 좋아하며 조용하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좋아한다고 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더 나아가 공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자기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애매한 예상과 기대만을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 왔고, 실망스럽게도 미국에서도 스스로에게 확신을 내려줄 만큼의 명쾌한 성취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앞날은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 없이 항상 어떤 선택과 결과들의 사이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앞날이 애매하기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서 선택에 따라 바뀌는 인생의 방향 폭이 굉장히 크다. 그래서 그 선택의 가치가 굉장히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미국에 남아서 모험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족과 함께 안정적인 삶을 시작할 것인가. 굉장히 극단적인 두 선택 사이에 놓여 있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알고 있다. 내 능력이 애매하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를 조금 더 잘했더라면, 그래서 굉장히 좋은 논문을 썼더라면, 나는 미국이 좋은 학교와 덜 좋은 학교 사이에서 명쾌하고 덜 위험한 선택을 쉽게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부족하고 애매한 내게 감히 하나의 포지션을 내어준 그 회사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아마도 나는 많이 부족할 것이다. 굉장히 서툴 것이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오로지 학교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온 내가 드디어 학교 밖으로 뛰쳐 나가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시작하겠다고 다짐하게 된 이유는, 더이상의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과 함께 애매한 인생에서 조금 더 확실함이 보이는 길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확실한 오퍼와 확실한 업무, 확실한 출퇴근 시간, 확실한 피곤함. 확실한 스트레스. 이런 것들로 나아가고 싶었다. 애매한 인생을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