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ole Holofcener: Enough Said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여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시간조차 무척 짧게 느껴질만큼 대단히 소박한 규모의 소품 형식의 영화이지만 주연 배우들의 멋진 앙상블과 감독의 세심한 터치가 빛을 발하며 영화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꽤나 묵직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특히 여자 주인공 Eva 역을 맡은 Julia Luis-Dreyfus 는 마사지사 일을 보며 억척스럽지만 밝게 딸아이를 키우는 중년의 이혼녀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상대역인 Albert 역은 <소프라노스>로 잘 알려진 James Gandolfini 가 맡았는데 이 영화를 찍은 뒤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봐서인지 연기의 한톤 한톤이 모두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에바는 남편과 이혼한 뒤 멀리 떨어진 대학에 입학 예정인 외동딸을 혼자 키우는 마사지사다. 무거운 간이 침대를 차에 싣고 고객들의 집을 방문하며 마사지를 해주는 일은 고되지만 친구들과의 저녁 파티라던가 딸과 딸의 친구와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며 즐기는 일상까지 우울해지지는 않는, 미국의 서부 해안가에 사는 평범한 중년의 여인이다. 친한 친구 부부와 함께 참석한 한 파티에서 그녀는 성공한 작가의 삶을 살아가는 한 여인을 고객으로 유치함과 동시에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졌지만 위트가 넘치고 가끔은 섹시하기까지 한 앨버트라는 남자를 소개받는다. 앨버트 역시 아내와 이혼한 뒤 외동딸을 가끔 만나는, 조용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중년의 남자. 외로운 남녀가 만나 개그코트가 맞으니 잘 되지 않을리 없다. 그녀의 새로운 고객이자 친구가 된 매리앤은 이혼한 남편과의 삶을 제외하면 성공한 시인으로서 거의 완벽한 삶을 즐기고 있다. 매리앤에게 이혼한 남편에 대한 불평을 듣게 됨과 동시에 앨버트와 꽤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기 시작하는 에바는 어느 날, 앨버트의 딸과 매리앤의 딸이 동일 인물임을 알게 되고 고민에 빠진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에바의 고민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실패한 결혼 생활 이후 가까스로 만나게 된 마음이 맞는 남자와 그녀가 동경하는 삶을 살아오는 동년배의 여인이자 역시 참 만나기 힘든 마음에 맞는 친구가 헤어진 부부 사이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과연 그 모든 것들을 초연히 내려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혼 뒤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딸은 이제 먼 곳으로 떠나 자신만의 독립적인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무거운 간이 침대를 들고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버거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 그녀가 쉽게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고, 그런 그녀의 망설임은 집착이라기 보다는 삶의 절반 이상을 흘려 보내고 이제 조금 더 느리고 안정된 삶의 두번째 장으로 들어서는 중년의 지극히 정상적인 고민으로 느껴지게 된다.

결국 에바는 상황을 최악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며 용기를 낸다. 이것이 그녀를 2,30대 젊은이들의 삶과 분리시키는 주된 요인일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지만, 같은 상처를 받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치고 있을 때 다른 이의 상처를 먼저 보듬고 그것에서부터 자신의 상처를 함께 치유해 나가고자 한다. 이것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주름살의 가치이자 의미일 것이고, 푸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일 것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영화였다.

2 thoughts on “Nicole Holofcener: Enough Said

  1. 아- 좋다. 물론 영화가 개봉한다면 당연히 보고싶지만, 영화가 개봉하지 않는다해도 그리 서운하지 않을것 같아요. 이 글 자체가 무척 좋아서요.

    • 꼭 보세요. 이 영화 보면서 다락방님 생각이 났어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늘 위트를 잃지 않는 현명한 여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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