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2월 6일. 볼더.

아침에 늦게 일어나 버렸다. 빨래를 미리 하고 학교에 간다는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빨래와 함께 슬라이드를 다 만든다는 계획 역시 틀어졌다. 한시부터 다섯시까지 학교에 앉아 있었는데 킴벌리부터 조이, 릴리, 마리아 아줌마까지 모두 한번씩 내 자리로 찾아와 응원을 해주고 갔다. 나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이미 나를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주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형식적이지만 그 형식적인 말조차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었겠지. 고마웠다. 킴벌리는 세계 각국에서 도착하는 엽서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받은 엽서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킴에게 한국의 풍경이 담긴 엽서를 보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다섯시에 퇴근하고 바로 성당으로 가서 평일 미사를 드렸다. 짧지만 긴 여행이 될테니 힘을 좀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도.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기도 전에 컴퓨터부터 켜서 부랴 부랴 슬라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식부터 표, 그래프까지 이미 완성되어 있는 논문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전날 밤 미리 그래프를 jpeg 파일로 저장시켜 놓은 것이 그나마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었다. 아홉시 넘어 슬라이드를 완성하고 오타 체크도 그냥저냥 빨리 해버린 뒤 파일을 인사담당자에게 보냈다. 따로 랩탑같은 것을 가져올 필요 없이 그냥 몸만 와서 발표하면 된다고 한다.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영하 27도의 날씨에서 빨래를 하기 위해 세번을 들락날락거리고 빼먹은 것이 없나 두번 세번 확인하며 짐을 싸다 보니 어느새 열두시를 넘겨 버렸다. 침대에 누웠지만 당연히 잠이 올리 없다.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새벽 세시. 샤워를 하는 도중 리무진 셔틀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고, 기다리면서 티비를 보는 도중 걸려온 전화를 두번이나 놓치고 나서야 허겁지겁 장갑과 모자도 챙기지 않은채 밖으로 나가 벤을 탔다. 인디애나에 사는 할머니와 관광차 방문한 듯한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일본인,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 벤을 나누어 탔고, 눈이 잔뜩 쌓인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운전기사의 운전 스타일에 불만을 가질 틈도 없이 꾸벅 꾸벅 졸다가 공항에 도착했다.

2월 6일. 덴버에서 엘에이로.

새벽 다섯시에 도착해 다섯시 십분쯤 수속을 마쳤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공항에 너무 빨리 오는 경향이 있다. 늦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성격 탓이겠지만, 비효율적인 공항 관리 시스템의 최대 피해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 내 식당가조차 문을 열지 않은 시간, 시큐리티를 통과하는 시간이 5분도 채 안걸리는 시간에 도착해 두시간동안 게이트 앞에서 멍때리고 기다리다 비행기를 탔다. 돈을 좀 더 내고 맨 앞자리 스트래치 좌석에 앉았는데 나의 양쪽에는 아이패드와 아이폰으로 무장한 할머니와 워드 게임에 심취하신 다른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비행기에서 만난 미국인과 나누는 루틴한 대화, 즉 비행기 좌석에 대한 불만과 추운 콜로라도의 날씨, 한국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경제학 박사 과정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한 뒤 잠에 들었다. 밤을 새우는 것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는 전날 밤 잠을 전혀 자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고, 그래서 한시간이라도 더 비행기에서 자는 것을 간절히 원했다. 비행기 내 항공 소음에 민감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다행히 엘에이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잘 수 있었고, 충혈된 눈도 조금은 가라 앉아 있었다.

2월 6일. 엘에이에서 서울로.

영하 27도의 날씨에서 영상 15도의 날씨로 옮겨오니 나 혼자 코트를 뒤집어쓴 산동네 촌놈의 행색이었다. 후덥지근한 해안가 날씨의 엘에이 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 청사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비효율적 구조. 한참을 걸어가서야 겨우 국제선 청사에 도착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식당 코너가 공사중이었다. 낭패라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시큐리티 안으로 들어갔는데 게이트 앞 공간이 세련되게 바뀌어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레이오버가 딱 두시간 정도라 긴 기다림 없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통해 복도석을 확보해 두어 나름 뿌듯해 했는데, 타고 보니 가운데 좌석은 거의 다 비어 있는 한적한 비행기였다. 내 옆 가운데 좌석도 사람이 타지 않아 창가쪽에 앉은 아저씨와 그 공간을 나누어 쓸 수 있었다. 국적기였지만 그닥 재미있는 영화를 하지 않아 그래비티를 다시 봤다. 아니강 장면에서 다시 울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희망을 찾았다. 세상을 다시 한번 살아갈만 한 것이다.

잠을 두어시간 더 잘 수 있었고, 그래서 총 네시간 정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나름 대단한 성과였다. 소설책도 몇십페이지 읽었고, 영화도 한편 더 보았으며, 논문도 한편 읽었다. 이정도 수면 시간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갈 것 같지 않아 논문 수정은 하지 못했다.

열두시간의 비행은 지루하다. 특히 마지막 두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가는 그 길은 한국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하는 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더디게 가나보다. 한국은 흐렸고, 비가 내린 듯 보였다. 흐른 날에 도착하니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다.

2월 7일. 인천.

데이터 로밍을 해와서 비행기가 착륙하자 마자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문명의 이기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아이폰과 페이스타임, 그리고 아이메시지가 없었다면, 국제 데이터 로밍 서비스가 없었다면 나의 연애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했을 것이다. 출구에서는 애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막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고 있는 이 순간이 한국 방문 기간중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출구쪽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중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쭈뼛해지는 기분이 든다.

2월 6일 정오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7일 저녁이 되었다. 하루를 잃어버렸지만, 하루를 통째로 길바닥에 버리고 얻는 대가는 항상 너무 달콤해서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2월 7일. 신촌.

애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몇개월만에 한번씩 보는 사이라 첫 대면부터 익숙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늘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먹하다. 페이스타임에서 확인하던 얼굴이 눈앞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고, 화면 속에서만 보이던 그의 몸이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시간이 참 낯설고 신기하다.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었구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라고 인식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몇분에서 몇시간까지.

신촌에서 내려 현대백화점 1층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짐이 무거워 2층 주차장에 있는 어머니의 차에 짐을 일단 싣고 10층 식당 코너로 올라가 나는 알밥 정식을, 애인과 어머니는 덮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여자친구는 나의 언변을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우리 가족중 말주변이 그리 좋은 편에 속하지도 않는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경청하는 와중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시간의 수면당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나보다. 네시간밖에 못 잤으니 조금 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2월 7일. 상도동.

어머니를 먼저 보내드리고 나는 애인과 함께 상도동으로 향했다. 9호선으로 갈아타고 노들역에서 내려 상도 터널 윗쪽 골목으로 걸어 올라갔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던 아파트를 실제로 보면서 미래를 숙덕거렸고,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던 밤바람에 지치지 않기 위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7개월만에 다시 보게 된 여자친구의 집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에게는 미국에서의 7개월을 제외하면, 한국에서의 시간들만 기억하면 이틀 연속으로 가게 된 셈이었다. 재밌었다. 게임 중간 잠시 세이브를 시켜 놓고 딴짓을 하다가 다시 게임을 로딩하고 이어서 할 때의 그런 느낌.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시작.

눈이 많이 내리는 밤이었다. 볼더를 떠나올 때 고속도로까지 집어 삼킨 폭설에서 탈출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서울에 오니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올 겨울 가장 많다는 그런 양으로다가. 재밌었다. 프로즌이 요기잉네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바로 뻗었다.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월 8일. 홍대.

어머니와 함께 샐러드와 식빵을 먹었다. 이탈리아 말로 쓰레빠라는, 이름을 까먹은 빵으로 소스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누나 내외가 오기 전까지 잠시 밖에 나가 발표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홍대의 올빼미들은 아침 열시쯤에는 카페에 가지 않는 듯 하다. 테일러 커피는 열두시부터 문을 연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베를린에 갔다. 난로 옆에 앉아 이것저것 딴짓을 하고 있으니 애인이 왔다.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 일하러 가는 도중 들려준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고 이뻤다. 여자친구를 신촌역으로 데려다 주고 나는 걸어서 집으로 갔다.

2월 8일. 신촌.

집에 가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누나와 자형, 그리고 조카인 건이가 왔다. 건이는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도 엄청 컸고, 배에는 꿀단지를 숨겨 놓고 있었다. 건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아기 특유의 냄새가 코로 전해져 왔다. 이 어린 친구는 한명에게 시선을 다 주지 않고 고루 고루 풍경들을 살피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관찰했다. 고개는 바삐 움직였고 결코 어떤 대상 하나에 애정을 다 퍼주지 않았다. 어른들이 노력하며 애교를 피우면 살짝 웃어주고는 곧 관심을 끊었고, 배가 고플 때 잠깐, 혼자 뒤집기를 성공한 뒤 머리를 바닥에 부딪힐 때 잠깐, 그리고 얼떨결에 일어났다가 무릎에 힘이 풀리며 주저 앉을 때 잠깐 자신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찰나의 울음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시크하고 쿨한 녀석인데, 그만큼 겁도 많은 듯 보였다.

누나네 가족과 어머니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건이를 보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곧 옷을 갈아 입고 신수동 성당으로 향했다.

2월 8일. 신수동 성당.

유아 세례에 참석하는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초등부 미사가 끝날 때까지 뒷좌석에서 기다리다가 보좌 신부님을 모시고 유아 세례를 진행했다. 누나와 자형, 어머니, 그리고 대부인 내가 참석했다. 아이의 머리에 기름으로 십자가를 긋도 물을 부은 뒤 부모와 대부가 맹세를 대신 함으로써 이 아이를 가톨릭 신자로 키울 것을 다짐했다. 과연 이 친구가 가톨릭 신자로 클 것인지는 지금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내가 나의 자식만큼이나 이 친구를 깊이 후원하며 보살필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이 아이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유일한 형제의 혈육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외삼촌을 생각하면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닌, 희망과 기쁨이 떠오르게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월 8일. 신촌.

성당에서 각자 헤어졌다. 나는 마을 버스를 타고 연세로로 향했다. 그곳에서 일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애인을 다시 만났고, 홍익문고에서 친구들을 만나 연세대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상권이 죽었다는 신촌은 그런대로 활기찬 느낌이었다. 거리를 정비를 새로 해서 깔끔해졌고 대기업들이 장악한 대로변은 여전히 재미가 없어 보였다. 도어스로 향했다.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우리가 신청한 음악들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간단히 맥주 한잔씩 한 뒤 헤어졌고,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중앙대 근처 작은 찻집에서 차 한잔씩을 더 한뒤 헤어졌다.

2월 9일. 신촌.

어김없이 여덟시에 눈을 떴고, 어머니와 성당에 다녀 왔다. 어머니와 함께 성당까지 걸어가며 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순간이 무척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두런 두런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은 그 어떤 다른 가치와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이제 자신이 무대 뒷편으로 사라져야 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한 생각을 굳히게 해준 영건이라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어머니에게 삶에 대한 다른 시선을 일깨워준 듯 보였다.

한국어로 미사를 드렸고,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 들려 소라빵을 샀다. 한국에 오면 반드시 소라빵을 먹는다. 어렸을 때부터 이 빵을 특히 좋아했다.

2월 9일. 홍대.

점심을 먹고 느지막히 집을 나섰다. 테일러 커피에 도착하니 이미 시끌벅적,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트위터에서 만난 테일러 커피 관계자분은 계시지 않은 듯 보였다. 계시면 반갑게 인사를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약간 허탈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분(?)이 갑자기 오셔서 선물을 주고 가셨다. 반가웠다. 조금 더 있으니 여자친구가 왔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애인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였지만 억지로 꾹 참고 있는 듯 보였다. 7개월동안 애인을 만나지 못한채 살아온 그녀의 삶이 너무 안쓰러웠고 그만큼 무척 미안했는데, 그렇다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선뜻 시간을 허락하지 못하는 나의 상황때문에 더 미안해졌다. 저녁을 먹이고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나는 어머니의 급한 연락을 받고 신촌 로터리로 향했다.

2월 9일. 신촌.

아버지를 영접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간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나는 로터리에서 하차하는 아버지를 픽업해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고 집으로 왔다. 날씨는 무척 추웠고, 아버지는 상의도 하지 않고 무작정 공항으로 가신 어머니때문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라는 필살기를 사용해 기분을 풀어 드리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세 가족은 무사히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오신 기념품들을 함께 구경하고 웃고 떠들다가 각자 할 일을 위해 각자의 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께 이메일 용량 관리하는 법을 알려 드리고 내일 있을 세미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렸다. 아이패드의 위대함을 역설하자 약간 솔깃해 하시는 눈치였다.

내일은 이번에 한국에 온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 한다. 동사무소에 들려 증명서를 발급받고 머리를 한 뒤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 발표는 오후. 그때까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고, 발표가 끝나면 비로소 한숨 돌린 뒤 여자친구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나만큼 고생한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8 thoughts on “일기.

    • 네 미국 국내선은 같은 이코노미석도 세분화가 되어 있어서 좌석간 간격이 넓은 자리를 얻으려면 추가적으로 요금을 조금 더 내야 해요 ㅎㅎ

    • 진정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으면 참 좋겠는데 최종 합격을 해야 말입니다 ㅋ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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