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ghar Farhadi: The P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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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Le passé>. <A Separation> 을 만든 Farhadi 감독의 신작이다. 프랑스어로 제작됐다.

프랑스인 마리는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다. 그녀의 욕망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변덕스럽지만, 그런 휘발적인 욕망에서 스스로를 확신시키기 위해 임신과 출산이라는 방법으로 변해버린 욕망 끝에 남겨진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시킨다. 그녀는 세명의 남자와 결혼했고 두명의 남자와 이혼했으며, 이혼한 두명의 남자와의 사이에서 각각 한명씩의 딸을 낳았다. 그녀와 가장 최근에 결혼한 아마드는 심한 우울증을 앓았으며 그때문에 별거한 듯 보인다. 별거 후 4년동안 떨어져 지내던 두사람은 마리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자 별거의 확실한 매듭인 이혼을 하기 위해 파리에서 다시 만난다. 이혼을 위해 변호사를 보낼 수도 있었지만, 아마드는 마리와의 결혼 생활에서 함께 했던 두명의 아이들과 마리를 보기 위해 이란에서 파리로의 여행을 결심한다. 아마드가 잠시 머물게 될 마리의 집에는 그녀의 두 딸과 새로운 남자친구 사미르의 아들인 푸아드,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함께 살고 있다. 며칠간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이 두사람 앞에 놓인 짐들은 그리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사미르 역시 이혼하지 못한 아내 셀린느가 있다. 심지어 그녀는 자살을 기도했고 현재 뇌사상태다. 마리와 사미르는 그녀가 우울증때문에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아마드가 마리의 첫째딸인 루시와의 대화에서 셀린느가 마리와 사미르간의 불륜 사실을 자살 시도전 알고 있었고 루시가 그 사실의 전달 과정에 개입했음을 알게 된다. 아마드와 마리, 그리고 사미르가 셀린느의 자살 시도를 둘러싼 과거를 추적해 나가는 동안 아마드가 앓았던 우울증, 루시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가지고 있던 복잡한 감정들, 그리고 셀린느와 마리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미르의 감정들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이 영화는 과거가 어떻게 기억되고 어떻게 잊혀지는지를 다루고 있다. 또한 과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과 결국 과거에서 벗어나버리는 사람을 대비함으로써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집어 삼키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의 중심인 마리는 자신의 과거를 책임지지 않고 무책임한 미래를 펼쳐 놓는다. 아마드에게 이혼을 부탁하는 그녀는 이미 사미르의 아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낳은 딸인 루시와의 대화는 아마드에게 일임해 버리고 루시의 고통은 외면해 버린다. 임신한 상태에서도 줄담배를 피우는 그녀는 어미로서의 역할에서 완전히 무능한 상태인데, 심지어 어린 둘째딸인 레아까지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별 미련이 없어 보인다. 그녀의 두 딸은 언제든지 자신의 어머니를 떠나 탈출하고 싶어한다. 루시는 집을 단지 잠만 자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고, 레아는 루시가 자신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브뤼셀로 떠나면 따라 가겠다고 한다. 어머니로서 실격 상태인 마리에게 남은건 곧 사라져버릴 사랑에의 집착뿐일텐데, 이미 <Take This Waltz> 에서 확인했듯이 여성이 현재의 욕망에 충실할 경우의 비극적인 결말은 능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사미르의 아내 셀린느가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다면 그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미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셀린느가 깨어나길 바라고 있다. 자신의 부정때문에 셀린느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이상, 셀린느가 깨어나면 사미르는 더이상 마리 곁에 머물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마리에게는 사려깊은 전 남편 아마드가 있지만, 그마저도 그녀의 선택에 의해 과거로 만들어버렸다.

아마드는 지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인물이지만, 마리와 사미르 사이의 중심 관계에서 비켜나 주변적인 위치에 머문다. 그는 루시와 마리 사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결국 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역할을 맡게 된다. 마리가 알지 못했던 루시의 과거는 마리와 사미르, 그리고 사미르와 셀린느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사미르는 루시에게 “jerk” 라고 불린다. 루시는 사미르에게 세탁소를 함께 운영하는 아내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머니와 불륜을 저지르는 그가 싫었으며, 그래서 셀린느 – 혹은 그녀라고 믿었던 사람 – 에게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전송한다. 결국 셀린느는 자신의 직원이 보는 앞에서 세제를 마시고 식물인간이 된다. 사미르는 그녀에게서 호흡기를 떼지 못한다. 그의 아들은 “자살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녀는 죽고 싶었을 것이다” 라고, 굳이 생명을 유지시킬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하지만, 사미르는 어떻게든 그녀를 다시 살려 놓고 싶어한다. 그가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고 싶어하는 것인지, 혹은 마리와 셀린느 사이에서 아직 방황하는 자신의 마음 탓인지 모르겠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미르가 셀린느와 자신 사이에 남아 있는 과거를 상징하는 향수를 통해 과거로의 복귀를 시도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파라디는 명석한 스토리텔러다. 영화는 이미 끝난 관계 위에서 과거를 살펴보는 두 남녀의 평범한 이야기처럼 흘러가지만 여기에 미스터리 구조를 끌어 들여서 이야기를 힘있게 끌고 간 뒤 결말에 이르러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혹은 과거에 지배당한 이들이 어떻게 현재를 침식당하는지를 묵직하고 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주인공처럼 보였던 아마드는 짐을 챙겨 떠난다. 짐을 들고 파리를 떠나는 아마드의 뒷모습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는 결국 과거로만 남을 것이다. 브뤼셀로 떠나고 싶어했던 루시는 결국 집에 남아 떠나는 아마드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녀 역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보속을 받을 것이다. 사미르는 향수 상자를 들고 병원을 찾는다. 죄를 지은 자들, 욕망에만 충실했던 자들은 그곳에 남아 미처 지우지 못한 과거로부터 물려 받은 채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강렬하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별로였지만. 어쩌면 이 영화는 롱테이크로 이어지는 이 마지막 시퀀스를 위해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셀린느의 모습에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 전까지 사미르와 마리, 그리고 아마드와 루시가 고통 속에서 밝혀낸 ‘그 날’의 과거때문이다. 셀린느가 흘린 눈물이 사미르와의 재결합을 의미하는지 그저 우연히 흘러내린 의미없는 눈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 눈물 한방울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그 안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미르와 마리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영화 내내 반복해서 나오는 대사가 하나 있었다. “Her decision is made.” 이 영화는 마리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녀의 선택은 어리석음 투성이이며 성급하고 거칠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일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선택을 이어나가며,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 만들어내는, 즉 그녀의 비틀거리는 과거가 그녀와 그녀 주변 사람들의 현재에 미치는 영향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크리스 벅, 제니퍼 리: 겨울왕국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다면, 그것도 마케팅이나 개봉 시기의 이점때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면, 세대와 지역성을 초월해 어필하는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난 <겨울왕국>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세가지 정도로 들고 싶다. 첫째, 뮤지컬 형식을 채용해 굉장히 빠른 서사의 진행을 보여준다. 영화 시작 후 몇분만에 부모가 죽고 그 이후 몇분만에 킬러 컨텐츠중 하나인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이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를 통과하기도 전에 “Let It Go” 가 나온다. 애니메이션에 국한시키지 않고 전체 영화를 통털어 이렇게 서사의 전개가 몹시 빠른 영화는 전에 보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언어를 배우면서부터 가지고 놀기 시작한 세대에 어울리는 속도인지, 그들과 함께 극장을 찾아야 했던 부모들이 지겨워 하지 않을 정도로 “뻔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그만 하도록 하지” 전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빠른 이야기의 전개와 뮤지컬 형식을 차용해 스토리의 많은 부분을 지루하지 않은 노래로 전달한 것이 주효하지 않았나 싶다. 관객은 <라푼젤>보다는 <레 미제라블> 의 만화 버전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은 것 같다. 둘째, 진부한 결말에 기대지 않고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슈렉> 이후 거의 모든 애니메이션들이 과거의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어떻게 하면 더 심하게 비틀 수 있는데에만 몰두했다면 <겨울왕국>은 기존의 전통적인 전래동화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현대적인 캐릭터를 구현해 영화의 중반까지 지루함을 달래주었고 그 캐릭터가 죽어버리는 영화 후반부에는 기존의 서사 구조를 비틀며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자매간의 사랑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셋째, 컴퓨터 그래픽과 작화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났고 성우들의 연기력이 훌륭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했는지 전에 비해 유독 매끄러운 느낌이 많이 들었고, 화려한 카메라 앵글이라던가 액션씬도 무리없이 화면과 잘 어우러졌다. 안나와 엘사라는 두명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한 성우들이나 올라프같은 감초 역할을 맡은 성우의 연기력이 캐릭터의 생생함을 더 잘 전달해 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이러한 요인들이 영화의 작품성을 훼손하는 주된 기제로 기능함 역시 적시해야 겠다. 난 이 영화를 굉장히 안좋게 봤다. 지루했고 재미가 없었으며 아무런 감동도 받지 못했다. 첫째, 뮤지컬 형식의 구조는 영화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는 “Let it Go” 는 사실 영화의 서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굉장히 생뚱맞고 이질적인 부분이다. 엘사라는 캐릭터를 설명하기에도 적절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녀는 이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늘 자신을 감추고 희생했으며 이 노래를 부른 뒤에도 늘 망설이고 머뭇거린다. 오직 이 노래를 부를 때에만 당당할 뿐이다. 영화 중반 이후에는 아예 킬러 송이 나오지조차 못한다. 영화는 언제부터인가 노래가 아닌 대사를 통해 모든 것을 전달하려고 하고, 심지어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에는 노래가 완전히 실종되어 버린다. 결국 영화는 뮤지컬도 아니고 극영화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가 되어 버렸고, 이는 영화 중반 관객이 기대하는 바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한채 질질 끌다가 자매간의 사랑이라는 예상 외의 결말을 통해 성급하게 막을 내려 버린다. 둘째, 영화의 유일한 미덕인 캐릭터 역시 중반 이후 완전히 죽어 버린다. 엘사는 “Let it Go” 를 제외하면 사실상 악역에 가까운 캐릭터다. 엘사가 대체 왜 그렇게 자신을 봉인시키고 동생을 고난에 빠트려야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 이는 전적으로 지나치게 빠른 극의 전개 속도에 기인하고 있다. 영화는 엘사가 얼음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는 과정을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안나는 고전을 현대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현대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이지만 엘사에게 심장을 가격당한 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비실거린다. 그는 영화 속에 생기를 불어 넣고 유머를 지속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그녀가 아픈 뒤 올라프마저 함께 심각해지면서 영화는 위트를 상실해버린다. 영화 속 남성 캐릭터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어 왔던대로 주인공 자매를 보조해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아무런 매력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이 영화가 동성애 코드로 해석되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셈이다. 관객중 그 누구도 안나와 크리스토프가 과연 결실을 맺게 될지에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그 어떤 결말도 담보하지 않고 있는데, 즉 안나와 엘사, 안나와 크리스토프, 혹은 엘사와 그 누구도 어떤 확실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채 영화는 끝을 맺는다. 유일하게 관객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안나와 엘사가 다시 대충 행복하게 함께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인데, 그 지점에서 “I Love You”라고 서로에게 고백하는 장면까지 더해져 동성애 코드를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정말로 이 영화가 동성애 코드를 담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엉망으로 끝난 영화를 “열린 결말”이라고 포장하는 셈이다) 셋째, 결국 한두개의 영화 삽입곡이 그 영화 전체를 대표하게 되는 상황, 게다가 그 노래들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확고하게 포함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은 비극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과연 “Let It Go” 와 “Do You Wanna Build a Snowman” 이 영화를 상징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눈속에서 만들어져 여름을 꿈꾸는 올라프의 주제가가 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아주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따뜻한 왕국에 사는 공주가 얼음을 만들어내는 저주에 걸려 동생을 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얼음 속에 가두어버리고 이런 언니를 해방시켜주려는 진취적인 동생이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언니를 따뜻한 왕국으로 귀환시킨다는 줄거리는 그럴듯하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풀어내느냐였고, 그 방법론에서 <겨울왕국>이 택한 방향에 쉽게 동의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악역이 뜬금없이 등장하고 그 악역의 등장 방식의 영화의 문법, 혹은 관객과의 약속을 배반한다. 안나와 엘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의 가치는 영화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일차원적인 남성 캐릭터들과 감초 캐릭터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오로지 엘사와 안나에게 집중하게끔 강요하는 상황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서사 구조는 흔들리고 방황하며 지나친 속도로 인해 몰입과 충분한 이해를 방해한다. 아이들이 왜 이 영화에 열광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이룩한 최소한의 성취까지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심하게 만드는 셈이다.

한국 여행: 2/7 ~ 2/16

짧게 한국을 다녀 왔다. 이렇게 짧은 기간 한국을 방문한 것도 처음이고 학기중에 다녀온 것도 처음이며 날씨가 아직 쌀쌀한 겨울에 다녀온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 한국에 다녀온 뒤 가장 빠른 기간 안에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던 여행인 셈이다. 이런 이례적인 여행은 구직 활동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크게 한몫했다. 부족한 논문과 어설픈 면접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한 공기업에서 방문 기회를 주었고 (물론 자비를 털어서 가야 했다. 최종 합격하면 비용을 사후에 보전해 주는 조건으로..) 그 기회에 감사하며 일주일짜리 휴가를 내어 겨우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다. 여행 비용을 내어주신 부모님과 휴가를 선뜻 허락해준 학과, 그리고 나에게 최종 면접의 기회를 준 그 회사까지. 내가 이룬 것은 정말 아무 것도 없었고 모든 것이 타인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감사할 따름이다.

무척 짧았던 여행 기간이었기에 모든 것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도착한 날 공항으로 마중나온 여자친구와 반갑게 해후할 틈도 없이 신촌에서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는 그렇다 쳐도 여자친구는 7개월동안 기다려온 남자친구의 얼굴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의 어머니까지 함께 만나야 했으니 상당히 터프한 일정을 소화한 셈이다.

금요일 저녁에 도착해 월요일에 논문 세미나를 진행했다. 법령에 의해 설립되었고 공익을 위해 일을 하는 공기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그 회사는 한국에서 사회 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가 처음 느끼는 무거운 공기로 가득차 있었다. 인사팀 분들은 미소로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지만 건물 내부에 흐르는 공기의 무게를 어찌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기실에서 유학을 함께 준비한 대학 동문을 만나 반갑게 대화를 나누었지만 긴장을 풀어줄 정도는 아니었고. 채용 면접 세미나는 약 한시간동안 진행됐다. 애초에 질이 매우 낮은 논문을 가지고 발표를 해야 했기에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하지는 못했다. 한국어로 하는 첫번째 논문 발표였기에 문장이 매끄럽지도 못했다. 이런 저런 불만족스러운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든 채용 세미나를 마쳤다는 홀가분함이 꽤 달콤했다. 화요일에는 신체검사를 했고, 수요일에는 임원분들 앞에서 최종 임원 면접을 치루었다. 높으신 분들 앞에서 어떤 말을 해드렸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이 취업 시장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무사히 경험했고, 최종 결과와 상관없이 이 경험은 나중에 분명 좋은 자산이 될 것 같았다.

임원 면접이 끝난 수요일 저녁에는 여자친구와 장어 요리를 먹었다. 한국 방문 기간동안에는 채식을 타의적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그 기회를 십분 살려 (..) 평소에 먹고 싶었던 한국 음식들을 부지런히 섭취했다. 장어 요리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는 맛이 덜했는데 혀를 자극하는 맛 자체보다는 몸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의 부드러움이 더 기억에 남는다. 식당에서 함께 컬링 경기를 봤고, 식사 후에는 근처 당구장에서 함께 당구도 쳤다. 금요일에 여자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식사 후 여자친구의 아버지와 함께 당구를 칠 기회가 무산되어 약간 아쉬웠다.

9일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나는 면접과 가족에만 집중했다. 토요일 저녁 헤럴드 동기들을 만난 것 외에는 일절 지인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연락 조차 하지 않았다. 토요일 오후 조카를 드디어 만났고, 조카의 세례 성사에 참여해 생애 최초로 대부가 되었다. 조카의 존재는 나에게도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아직 강아지와 크게 구분이 되지 않는 정신 상태와 행동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나와 평생을 함께 보내온 하나밖에 없는 내 누이의 혈육이라는 생각에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내 품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조카의 체온을 느끼는 과정은 그래서 무척 신비롭기까지 했다. 목요일 저녁에는 누나네로 가서 광어회에 와인을 곁들이며 자형과 함께 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금요일 저녁은 여자친구의 가족들과 함께 했고, 토요일 저녁은 여자친구와 함께 나의 가족들을 만나 식사를 함께 했다.

여자친구는 아직 나의 가족들을 많이 어려워 하는 듯 보였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좋은 분들이고 여자친구도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좋은 일들만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위치와 관계에 갇혀 서로의 좋음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기도 한다. 여자친구가 나의 가족들에게 조금씩 더 많은 편안함을 느끼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우습게도) 여자친구의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다. 당연히 좋은 분들이고 그 좋은 분들과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무척 좁은 인간 관계를 유지해온 삶이지만 이 관계는 내가 거부할 수도 없고, 딱히 관리를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관계의 설정과 발전은 내가 얼마만큼 정성을 쏟고 신경을 쓰느냐에 달려 있고, 아마도 나는 진심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주시는 사랑과 관심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열흘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은 7개월동안 서로 만나지 못한 연인이 그동안 쌓인 그리움을 충분히 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눈앞에 있음을 깨닫고 그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비로소 서로에게 익숙해졌을때 다시 헤어져야만 했다. 내가 선택한 길 위에서 만난 한 사람이 나의 선택으로 인해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 앞에서 막연히 미안해질 뿐이었다.

너무 급하게 돌아다니느라 서울의 풍경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잠시만 머물다 가기를 반복했던 지난 6년동안 서울은 급격하게 변해 있었다. 2008년과 2014년은 꽤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다만 서울의 지하철에는 조금 더 익숙해질 수 있었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면서 휴대폰을 사용해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길을 걸어가다가 어깨를 부딪힌다던가 발을 밟히는 일은 서울에서 흔히 발생하는 상황이지만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다들 그냥 그렇게 서로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를 하지 않은채 살아가는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한국은 항상 그런 식이다.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무척 열심히 살아가는 곳이지만 극소수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표정을 짓고 거리를 걸어가는 곳. 시스템을 조금만 손보면 이들의 잠재력을 더 높은 차원으로 뽑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위정자들은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니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인들은 정말 열심히 산다. 그리고 정말 머리가 좋다. 하지만 그 높은 레벨의 에너지가 매우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며 사용되고 있다. 모두가 매일 피곤할 정도로 무언가를 쏟아내지만 그 노력에 비해 거두어들이는 성과는 몹시 불만족스럽다. 그러니 조금씩 날카로워 지고 이기적이 되어갈 수 밖에 없다. 정은 사라져 가고 한만 남는다.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Nicole Holofcener: Enough Said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여서 여운이 오래 남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는 시간조차 무척 짧게 느껴질만큼 대단히 소박한 규모의 소품 형식의 영화이지만 주연 배우들의 멋진 앙상블과 감독의 세심한 터치가 빛을 발하며 영화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꽤나 묵직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특히 여자 주인공 Eva 역을 맡은 Julia Luis-Dreyfus 는 마사지사 일을 보며 억척스럽지만 밝게 딸아이를 키우는 중년의 이혼녀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상대역인 Albert 역은 <소프라노스>로 잘 알려진 James Gandolfini 가 맡았는데 이 영화를 찍은 뒤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봐서인지 연기의 한톤 한톤이 모두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에바는 남편과 이혼한 뒤 멀리 떨어진 대학에 입학 예정인 외동딸을 혼자 키우는 마사지사다. 무거운 간이 침대를 차에 싣고 고객들의 집을 방문하며 마사지를 해주는 일은 고되지만 친구들과의 저녁 파티라던가 딸과 딸의 친구와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며 즐기는 일상까지 우울해지지는 않는, 미국의 서부 해안가에 사는 평범한 중년의 여인이다. 친한 친구 부부와 함께 참석한 한 파티에서 그녀는 성공한 작가의 삶을 살아가는 한 여인을 고객으로 유치함과 동시에 뚱뚱하고 머리가 벗겨졌지만 위트가 넘치고 가끔은 섹시하기까지 한 앨버트라는 남자를 소개받는다. 앨버트 역시 아내와 이혼한 뒤 외동딸을 가끔 만나는, 조용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중년의 남자. 외로운 남녀가 만나 개그코트가 맞으니 잘 되지 않을리 없다. 그녀의 새로운 고객이자 친구가 된 매리앤은 이혼한 남편과의 삶을 제외하면 성공한 시인으로서 거의 완벽한 삶을 즐기고 있다. 매리앤에게 이혼한 남편에 대한 불평을 듣게 됨과 동시에 앨버트와 꽤 로맨틱한 데이트를 즐기기 시작하는 에바는 어느 날, 앨버트의 딸과 매리앤의 딸이 동일 인물임을 알게 되고 고민에 빠진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에바의 고민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실패한 결혼 생활 이후 가까스로 만나게 된 마음이 맞는 남자와 그녀가 동경하는 삶을 살아오는 동년배의 여인이자 역시 참 만나기 힘든 마음에 맞는 친구가 헤어진 부부 사이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과연 그 모든 것들을 초연히 내려 놓을 수 있을 것인가. 이혼 뒤 가까운 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딸은 이제 먼 곳으로 떠나 자신만의 독립적인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무거운 간이 침대를 들고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버거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 그녀가 쉽게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고, 그런 그녀의 망설임은 집착이라기 보다는 삶의 절반 이상을 흘려 보내고 이제 조금 더 느리고 안정된 삶의 두번째 장으로 들어서는 중년의 지극히 정상적인 고민으로 느껴지게 된다.

결국 에바는 상황을 최악으로 끌고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여전히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며 용기를 낸다. 이것이 그녀를 2,30대 젊은이들의 삶과 분리시키는 주된 요인일 것이다. 그녀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지만, 같은 상처를 받은 젊은이들이 자신이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치고 있을 때 다른 이의 상처를 먼저 보듬고 그것에서부터 자신의 상처를 함께 치유해 나가고자 한다. 이것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주름살의 가치이자 의미일 것이고, 푸근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원천일 것이다. 아름답고 따뜻한 영화였다.

일기.

2월 6일. 볼더.

아침에 늦게 일어나 버렸다. 빨래를 미리 하고 학교에 간다는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되었다. 빨래와 함께 슬라이드를 다 만든다는 계획 역시 틀어졌다. 한시부터 다섯시까지 학교에 앉아 있었는데 킴벌리부터 조이, 릴리, 마리아 아줌마까지 모두 한번씩 내 자리로 찾아와 응원을 해주고 갔다. 나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이미 나를 그들의 일원으로 받아주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형식적이지만 그 형식적인 말조차 마음이 없이는 할 수 없었겠지. 고마웠다. 킴벌리는 세계 각국에서 도착하는 엽서를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받은 엽서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시간이 허락하는대로 킴에게 한국의 풍경이 담긴 엽서를 보내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다섯시에 퇴근하고 바로 성당으로 가서 평일 미사를 드렸다. 짧지만 긴 여행이 될테니 힘을 좀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도.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기도 전에 컴퓨터부터 켜서 부랴 부랴 슬라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수식부터 표, 그래프까지 이미 완성되어 있는 논문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전날 밤 미리 그래프를 jpeg 파일로 저장시켜 놓은 것이 그나마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었다. 아홉시 넘어 슬라이드를 완성하고 오타 체크도 그냥저냥 빨리 해버린 뒤 파일을 인사담당자에게 보냈다. 따로 랩탑같은 것을 가져올 필요 없이 그냥 몸만 와서 발표하면 된다고 한다.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영하 27도의 날씨에서 빨래를 하기 위해 세번을 들락날락거리고 빼먹은 것이 없나 두번 세번 확인하며 짐을 싸다 보니 어느새 열두시를 넘겨 버렸다. 침대에 누웠지만 당연히 잠이 올리 없다.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새벽 세시. 샤워를 하는 도중 리무진 셔틀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고, 기다리면서 티비를 보는 도중 걸려온 전화를 두번이나 놓치고 나서야 허겁지겁 장갑과 모자도 챙기지 않은채 밖으로 나가 벤을 탔다. 인디애나에 사는 할머니와 관광차 방문한 듯한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일본인,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 벤을 나누어 탔고, 눈이 잔뜩 쌓인 고속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리는 운전기사의 운전 스타일에 불만을 가질 틈도 없이 꾸벅 꾸벅 졸다가 공항에 도착했다.

2월 6일. 덴버에서 엘에이로.

새벽 다섯시에 도착해 다섯시 십분쯤 수속을 마쳤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공항에 너무 빨리 오는 경향이 있다. 늦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성격 탓이겠지만, 비효율적인 공항 관리 시스템의 최대 피해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 내 식당가조차 문을 열지 않은 시간, 시큐리티를 통과하는 시간이 5분도 채 안걸리는 시간에 도착해 두시간동안 게이트 앞에서 멍때리고 기다리다 비행기를 탔다. 돈을 좀 더 내고 맨 앞자리 스트래치 좌석에 앉았는데 나의 양쪽에는 아이패드와 아이폰으로 무장한 할머니와 워드 게임에 심취하신 다른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비행기에서 만난 미국인과 나누는 루틴한 대화, 즉 비행기 좌석에 대한 불만과 추운 콜로라도의 날씨, 한국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경제학 박사 과정에 대한 짤막한 설명을 한 뒤 잠에 들었다. 밤을 새우는 것을 전혀 하지 못하는 나는 전날 밤 잠을 전혀 자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고, 그래서 한시간이라도 더 비행기에서 자는 것을 간절히 원했다. 비행기 내 항공 소음에 민감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다행히 엘에이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잘 수 있었고, 충혈된 눈도 조금은 가라 앉아 있었다.

2월 6일. 엘에이에서 서울로.

영하 27도의 날씨에서 영상 15도의 날씨로 옮겨오니 나 혼자 코트를 뒤집어쓴 산동네 촌놈의 행색이었다. 후덥지근한 해안가 날씨의 엘에이 공항은 국내선과 국제선 청사가 저만치 떨어져 있는 비효율적 구조. 한참을 걸어가서야 겨우 국제선 청사에 도착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식당 코너가 공사중이었다. 낭패라고 생각하고 일찌감치 시큐리티 안으로 들어갔는데 게이트 앞 공간이 세련되게 바뀌어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충전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레이오버가 딱 두시간 정도라 긴 기다림 없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미리 온라인 체크인을 통해 복도석을 확보해 두어 나름 뿌듯해 했는데, 타고 보니 가운데 좌석은 거의 다 비어 있는 한적한 비행기였다. 내 옆 가운데 좌석도 사람이 타지 않아 창가쪽에 앉은 아저씨와 그 공간을 나누어 쓸 수 있었다. 국적기였지만 그닥 재미있는 영화를 하지 않아 그래비티를 다시 봤다. 아니강 장면에서 다시 울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희망을 찾았다. 세상을 다시 한번 살아갈만 한 것이다.

잠을 두어시간 더 잘 수 있었고, 그래서 총 네시간 정도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나름 대단한 성과였다. 소설책도 몇십페이지 읽었고, 영화도 한편 더 보았으며, 논문도 한편 읽었다. 이정도 수면 시간으로는 머리가 잘 돌아갈 것 같지 않아 논문 수정은 하지 못했다.

열두시간의 비행은 지루하다. 특히 마지막 두시간이 참 더디게 간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가는 그 길은 한국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이 계속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하는 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더디게 가나보다. 한국은 흐렸고, 비가 내린 듯 보였다. 흐른 날에 도착하니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다.

2월 7일. 인천.

데이터 로밍을 해와서 비행기가 착륙하자 마자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문명의 이기는 정말 놀라운 것이다. 아이폰과 페이스타임, 그리고 아이메시지가 없었다면, 국제 데이터 로밍 서비스가 없었다면 나의 연애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야 했을 것이다. 출구에서는 애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막 공항에 도착해 입국 수속을 밟고 있는 이 순간이 한국 방문 기간중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출구쪽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중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생각하면 쭈뼛해지는 기분이 든다.

2월 6일 정오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7일 저녁이 되었다. 하루를 잃어버렸지만, 하루를 통째로 길바닥에 버리고 얻는 대가는 항상 너무 달콤해서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2월 7일. 신촌.

애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향했다. 몇개월만에 한번씩 보는 사이라 첫 대면부터 익숙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늘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먹하다. 페이스타임에서 확인하던 얼굴이 눈앞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하고, 화면 속에서만 보이던 그의 몸이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 시간이 참 낯설고 신기하다. 진짜 살아 있는 사람이었구나,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라고 인식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몇분에서 몇시간까지.

신촌에서 내려 현대백화점 1층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짐이 무거워 2층 주차장에 있는 어머니의 차에 짐을 일단 싣고 10층 식당 코너로 올라가 나는 알밥 정식을, 애인과 어머니는 덮밥을 먹었다. 맛있었다. 여자친구는 나의 언변을 좋아하지만, 사실 나는 우리 가족중 말주변이 그리 좋은 편에 속하지도 않는다.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경청하는 와중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시간의 수면당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나보다. 네시간밖에 못 잤으니 조금 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2월 7일. 상도동.

어머니를 먼저 보내드리고 나는 애인과 함께 상도동으로 향했다. 9호선으로 갈아타고 노들역에서 내려 상도 터널 윗쪽 골목으로 걸어 올라갔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던 아파트를 실제로 보면서 미래를 숙덕거렸고,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던 밤바람에 지치지 않기 위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7개월만에 다시 보게 된 여자친구의 집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에게는 미국에서의 7개월을 제외하면, 한국에서의 시간들만 기억하면 이틀 연속으로 가게 된 셈이었다. 재밌었다. 게임 중간 잠시 세이브를 시켜 놓고 딴짓을 하다가 다시 게임을 로딩하고 이어서 할 때의 그런 느낌. 그 모습 그대로 다시 시작.

눈이 많이 내리는 밤이었다. 볼더를 떠나올 때 고속도로까지 집어 삼킨 폭설에서 탈출해서 기분이 좋았는데 서울에 오니 다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것도 올 겨울 가장 많다는 그런 양으로다가. 재밌었다. 프로즌이 요기잉네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바로 뻗었다. 언제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2월 8일. 홍대.

어머니와 함께 샐러드와 식빵을 먹었다. 이탈리아 말로 쓰레빠라는, 이름을 까먹은 빵으로 소스까지 싹싹 긁어 먹었다. 누나 내외가 오기 전까지 잠시 밖에 나가 발표를 준비하기로 했다. 하지만 홍대의 올빼미들은 아침 열시쯤에는 카페에 가지 않는 듯 하다. 테일러 커피는 열두시부터 문을 연다고 해서 근처에 있는 베를린에 갔다. 난로 옆에 앉아 이것저것 딴짓을 하고 있으니 애인이 왔다.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 일하러 가는 도중 들려준 마음이 기특하고 고맙고 이뻤다. 여자친구를 신촌역으로 데려다 주고 나는 걸어서 집으로 갔다.

2월 8일. 신촌.

집에 가서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누나와 자형, 그리고 조카인 건이가 왔다. 건이는 생각보다 훨씬 큰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도 엄청 컸고, 배에는 꿀단지를 숨겨 놓고 있었다. 건이를 품에 안고 있으니 아기 특유의 냄새가 코로 전해져 왔다. 이 어린 친구는 한명에게 시선을 다 주지 않고 고루 고루 풍경들을 살피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관찰했다. 고개는 바삐 움직였고 결코 어떤 대상 하나에 애정을 다 퍼주지 않았다. 어른들이 노력하며 애교를 피우면 살짝 웃어주고는 곧 관심을 끊었고, 배가 고플 때 잠깐, 혼자 뒤집기를 성공한 뒤 머리를 바닥에 부딪힐 때 잠깐, 그리고 얼떨결에 일어났다가 무릎에 힘이 풀리며 주저 앉을 때 잠깐 자신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찰나의 울음으로 표현할 뿐이었다. 시크하고 쿨한 녀석인데, 그만큼 겁도 많은 듯 보였다.

누나네 가족과 어머니와 함께 점심 식사를 한 뒤 건이를 보며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곧 옷을 갈아 입고 신수동 성당으로 향했다.

2월 8일. 신수동 성당.

유아 세례에 참석하는 가족은 우리뿐이었다. 초등부 미사가 끝날 때까지 뒷좌석에서 기다리다가 보좌 신부님을 모시고 유아 세례를 진행했다. 누나와 자형, 어머니, 그리고 대부인 내가 참석했다. 아이의 머리에 기름으로 십자가를 긋도 물을 부은 뒤 부모와 대부가 맹세를 대신 함으로써 이 아이를 가톨릭 신자로 키울 것을 다짐했다. 과연 이 친구가 가톨릭 신자로 클 것인지는 지금 알 수 없으나, 최소한 내가 나의 자식만큼이나 이 친구를 깊이 후원하며 보살필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이 아이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유일한 형제의 혈육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미국 외삼촌을 생각하면 두려움이나 걱정이 아닌, 희망과 기쁨이 떠오르게 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월 8일. 신촌.

성당에서 각자 헤어졌다. 나는 마을 버스를 타고 연세로로 향했다. 그곳에서 일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던 애인을 다시 만났고, 홍익문고에서 친구들을 만나 연세대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상권이 죽었다는 신촌은 그런대로 활기찬 느낌이었다. 거리를 정비를 새로 해서 깔끔해졌고 대기업들이 장악한 대로변은 여전히 재미가 없어 보였다. 도어스로 향했다. 손님은 우리뿐이었고, 우리가 신청한 음악들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간단히 맥주 한잔씩 한 뒤 헤어졌고, 나는 여자친구와 함께 중앙대 근처 작은 찻집에서 차 한잔씩을 더 한뒤 헤어졌다.

2월 9일. 신촌.

어김없이 여덟시에 눈을 떴고, 어머니와 성당에 다녀 왔다. 어머니와 함께 성당까지 걸어가며 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순간이 무척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두런 두런 나누며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은 그 어떤 다른 가치와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이제 자신이 무대 뒷편으로 사라져야 함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한 생각을 굳히게 해준 영건이라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어머니에게 삶에 대한 다른 시선을 일깨워준 듯 보였다.

한국어로 미사를 드렸고, 돌아오는 길에 빵집에 들려 소라빵을 샀다. 한국에 오면 반드시 소라빵을 먹는다. 어렸을 때부터 이 빵을 특히 좋아했다.

2월 9일. 홍대.

점심을 먹고 느지막히 집을 나섰다. 테일러 커피에 도착하니 이미 시끌벅적,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트위터에서 만난 테일러 커피 관계자분은 계시지 않은 듯 보였다. 계시면 반갑게 인사를 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약간 허탈했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분(?)이 갑자기 오셔서 선물을 주고 가셨다. 반가웠다. 조금 더 있으니 여자친구가 왔고,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애인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보였지만 억지로 꾹 참고 있는 듯 보였다. 7개월동안 애인을 만나지 못한채 살아온 그녀의 삶이 너무 안쓰러웠고 그만큼 무척 미안했는데, 그렇다고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선뜻 시간을 허락하지 못하는 나의 상황때문에 더 미안해졌다. 저녁을 먹이고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나는 어머니의 급한 연락을 받고 신촌 로터리로 향했다.

2월 9일. 신촌.

아버지를 영접하기 위해 공항으로 나간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나는 로터리에서 하차하는 아버지를 픽업해 무거운 짐을 나누어 들고 집으로 왔다. 날씨는 무척 추웠고, 아버지는 상의도 하지 않고 무작정 공항으로 가신 어머니때문에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들이라는 필살기를 사용해 기분을 풀어 드리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세 가족은 무사히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오신 기념품들을 함께 구경하고 웃고 떠들다가 각자 할 일을 위해 각자의 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께 이메일 용량 관리하는 법을 알려 드리고 내일 있을 세미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드렸다. 아이패드의 위대함을 역설하자 약간 솔깃해 하시는 눈치였다.

내일은 이번에 한국에 온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다. 아침부터 바삐 움직여야 한다. 동사무소에 들려 증명서를 발급받고 머리를 한 뒤 증명사진을 찍어야 한다. 발표는 오후. 그때까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시 한번 점검해야 하고, 발표가 끝나면 비로소 한숨 돌린 뒤 여자친구와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이다. 나만큼 고생한 그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데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