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xander Payne: Nebraska

Nebraska-poster
2년전 여름 친한 미국인 친구들과 네브라스카를 횡단해 오마하까지 (페이튼 매닝의 그 오마하 맞다)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명목은 친구중 하나가 졸업한 모교가 매년 오마하에서 열리는 컬리지 베이스볼 월드시리즈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이었지만, 사실 우리 모두 한번도 가보지 않은 네브라스카라는 곳에 대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여해이었다. 콜로라도의 동쪽부터 시작되는 광활한 평원과 끊임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을 여덟시간동안 달린 끝에야 오마하라는 말끔한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네브라스카가 가지고 있는 색채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도시 오마하를 오고 가는 길 위에서 경험한 그 곳의 이미지는 지금도 굉장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마하로 가는 길에 들렀던 식당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식당인 웬디스였다. 여느 때처럼 밝게 웃으면서 음식을 주문하려는 나를 아주 이상하게 쳐다보는 백인 서버의 표정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음식을 던지듯이 주었던 그녀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있나보다 생각하고 넘겼지만,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아주 작은 동네의 허름한 뷔페 레스토랑에서 실제로 존재하지만 전설처럼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온다는 ‘레드넥’ 들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동양인을 실제로 본 적이 없으며, (나 역시 백인 농부들을 실제로 접한 적이 없었다) 대학 문턱도 밟아 보지 못했고, 샷건을 항상 트렁크에 넣고 다니면서 동물들이나 이웃들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몇만평에 이르는 옥수수밭을 기계의 도움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관리하는 그곳에서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느끼는 스케일은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자연을 정복해가며,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고, 단조로운 일상과 저녁 내내 틀어 놓는 TV 소리에 익숙해진 반복된 삶을 살고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도시에서만 성장해 왔고 미국에 와서도 가장 발전된 형태의 커뮤니티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지내온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는데, 이건 당시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난 미국인 친구들에게도 무척 흥미롭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들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텍사스라는 “South” 지역 출신이었지만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해 사립학교를 졸업한, 화이트컬러 백인 중산층의 자녀들이었고, 그들에게도 네브라스카는 자동차로 몇시간을 달려서라도 여행을 떠나 체험을 해보고픈 그런 장소였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곳이 진짜 미국이라고 느꼈다. 뉴욕의 핫하고 잇한 문화, 캘리포니아의 여유롭지만 쿨한 문화 모두 미국의 일부분이지만, 네브라스카와 아이오와의 평지에 끊임없이 펼쳐진 옥수수밭과 그곳을 가로지르는 픽업 트럭에서 미국의 또다른 단면을 본 것 같다.

<네브라스카> 는 네브라스카가 고향인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와 만든 첫번째 이야기다. 한 노인이 있고, 그 노인은 자신이 백만불의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한 스팸 광고를 믿고 네브라스카의 링컨으로 가 돈을 수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인의 아들과 함께 몬타나의 빌링스에서 네브라스카로 떠나는 이 로드무비는 ‘삶의 여정’과 ‘가족’이라는 페인 영화의 오랜 테마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전형적인 그의 영화다.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따뜻한 감촉과 서늘한 교훈이 공존하는 그런 영화다. 영화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고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가 끊이지 않지만 ‘가족’이 한 개인에게 주는 양가적인 가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에서 결코 재미있지만은 않은 씁슬한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된다. 나 역시 나의 가족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친척들이 다 함께 모이면 반갑게 웃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지만 한차례 시끌벅적한 환영 인사가 끝나면 서로에게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불편해질 만한 말들이 심심치 않게 튀어나온다. 어렸을 때 나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혼자 놀이터로 도망가 시간을 때우곤 했다. 어른들의 대화는 항상 이해 관계에 맞물려 돌아갔고, 그 모든 대화들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떤 선을 넘지 않으며 진행되었지만 그렇다고 가족간의 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을 밖으로 꺼내 놓는 괴로운 과정을 피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네브라스카> 는 단순히 시끌벅적한 소동극에 네브라스카라는 독특한 환경을 결합한 로드무비 정도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훨씬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이슈들이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늙은이가 느끼는 소외의 감정, 그것은 함께 늙어가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 때로는 이해받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마저 한 노인이 느끼는 철저하게 고립된 것 같은 감정을 온전히 받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하나의 숙제같은 것이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앞으로도 변화시키기는 힘들 듯한 완고한 정체성 위에 늙어버려서 쓸모 없어진 육체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개인의 존재 가치를 재정의내리고 스스로에게 그것을 재확인시켜야 하는 힘든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속 Woody Grant는 이것을 복권으로 상징화시켰다. 그는 백만달러를 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따져 묻는 아들에게 좋은 트럭 하나와 에어 컴프레서 하나를 사고 싶었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평생을 자동차 수리공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잊지 못할 과거가 있고, 그 과거에서 헤어나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부여잡고 살 정도로 떳떳하지도 못한 삶을 살아온 우디에게 새로운 트럭과 새로운 컴프레서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매개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돈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시 재차 묻는 아들에게 그는 “그냥 너희들에게 무언가를 남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한다. 단순히 가는 귀가 먹은 괴팍한 노인네라고 여겨졌던 이 알콜중독자는 자기 나름대로 삶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브라스카는 쇠퇴하는 곳이다.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늙은이들은 풋볼 경기나 보며 시간을 때워야 한다. 몬산토같은 다국적기업이 농촌을 기계화시키기 시작했고 가족 중심의 전통적인 미국 농촌 산업은 사라졌다. 혼자서는 제대로 자동차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우디가 그곳으로 돌아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백만달러에 당첨되었다는 그를 바라보는 그의 오래된 친구들은 그에게 무엇을 욕망할 수 있었을까. 답은 뻔하지만, 그 뻔한 답을 영화적인 어법으로 슬기롭게 풀어낸 페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신이 나고 자란 그곳을 결코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의 카메라는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 네브라스카 그 장소 자체임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는 종종 우디와 그의 아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Hawthorne 이라는 네브라스카의 가상의 작은 마을의 모습들을 비춘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고,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와 허름한 술집을 바라본다. 더이상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네브라스카의 한 늙은 마을로 돌아온, 희망없는 복권을 들고 있는 늙은 남자의 이야기인 <네브라스카>는 영화의 도입부와 엔딩씬을 조응시킴으로써 삶이 단지 죽음으로 가는 여정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은 그에게 삶의 작은 기적을 선물한다. 그 기적으로 말미암아 노인은 아마도 앞으로 몇년동안은 또다른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좋은 영화다. 페인의 다른 영화들처럼.

4 thoughts on “Alexander Payne: Nebraska

  1. 어바웃 슈미트에서 네브라스카가 꽤 중요한 배경으로 사용되었죠.
    감독의 고향이었군요.

  2. 너무나 잘 읽어서 댓글을 남기고 갑니다:) 아.. 정말 미국은 그 넓은 땅떵이 만큼이나 여러 모습이 있지요.. 저도 이 모습이 좀 더 진짜 미국ㅎ같아요. 아직도 꿋꿋이 그런 미국을 그려주는 감독이 있다는게 고맙기도 하구요^^ 페인이 조금만 더 자주 영화를 내놓았으면 하고 늘 바랍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가 네브라스카 바로 옆에 있는 비슷한 분위기의 동네에서 지내서 그런지 레드넥에 대한 묘한 애정같은게 있어요. 퉁명스럽고 뭉툭하지만 깊은 정도 있고 뿌리더 있는.. 저 역시 페인를 집에 가두어놓고 영화만 만들게 하고 싶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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