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결혼

아침 잠이 많은 편이다. 새벽의 무거운 공기가 채 사라지지 않은 이른 아침의 축축함을 좋아하지만 그 촉감을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많이 게으르다. 해가 중천에 뜬 후에야 겨우 침대 밖으로 몸을 끄집어 낼 수 있다. 요즘은 주로 여자친구의 전화로 하루를 시작한다. 소소한 수다들을 통해 언어의 감각을 회복하고 나면 어느새 하루를 바삐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하다. 일어나 몸을 씻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 뒤 청소기를 한번 돌리고 밀린 설거지를 끝내면 비로소 옷을 갈아 입을 시간이 주어진다. 미리 씻어서 불려 놓은 쌀을 그냥 내버려 두고 출근하지는 않을지 걱정하며 양말을 신은 뒤 취사 버튼을 눌러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는 학과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순수한 미국 백인 아주머니, 할머니 직원들 틈 사이에서 미국식 유머와 수다를 배워가며 힘겹게 소통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서쪽에 로키 산맥을 두고 있는 볼더는 해가 일찍 진다. 이미 한껏 어두워진 오후 다섯시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밥은 역시나 잘 되어 있고, 냉장고는 항상 홀쭉하다. 10분만에 저녁 식사를 뚝딱하고 나면 텔레비젼에서는 농구 경기를 하고 있을 것이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피곤한 몸을 책상으로 억지로 이끌어 논문을 검색하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궁리해야 한다. 그러다 빨래가 밀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도 봐야 한다. 지도 교수님에게 이메일을 보내야 하고, 논문은 되도록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 한국으로 세미나를 하러 갈 준비도 해야 한다. 일상과 공부가 뒤섞여 버린 나의 세계는 항상 조용하고 말이 없다. 여자친구에게 걸려오는 전화와 오피스에서 가끔 나누는 어설픈 영어 대화가 나의 입에서 소리를 내게 하는 유이한 시간이다.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것이 결혼이라는 형식으로 극복되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요즘 한다. 많은 것들이 나아질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결혼을 함께 이야기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덕분이겠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으로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욕구같은 것이 있다고도 느낀다. 가난한 생활에도 지쳤고 그 가난을 스스로 선택한 것에 대해 약간의 후회를 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그 외로움에 대한 지침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 이 세계를 떠나 다른 곳으로 나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6 thoughts on “일상과 결혼

  1. 여기는 하루가 시작되는 오전 9시입니다. 퇴근 하고 밥 드실 시간이네요. ㅎ 평안한 저녁 되시길,

  2. 뒤섞여 조용한 그 사이에서도 공기의 질감을 느끼며 지내시는군요 ㅠㅠ… 위태로운 균형을 응원하는 한편으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되네요. 모쪼록 건강히 따뜻히 지내시길 바랍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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