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ke: Nothing was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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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ke 의 전작 <Take Care> 에서 내가 흥미를 느낀 부분은 래핑과 보컬 양쪽을 넘나드는 그의 목소리가 가진 재능보다는 그가 사용하는 샘플링, 더 나아가 전체적인 음악을 구성하는 방식의 특이함쪽이었다. 그는 덥스탭처럼 잘게 쪼개지는 리듬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거나 엠비언트 풍의 몽환적인 음악을 사용함으로써 진중하고 무거운 느낌의 기존 힙합, 알엔비 장르에 새로운 분위기를 선사했는데, 이번에 나온 신작 <Nothing was the Same> 에서 그만이 만들어내는 이러한 특이한 분위기는 한층 깊어진 느낌이다. 래핑과 보컬 양쪽에서 모두 성공한 최초의 뮤지션이라는 자화자찬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지만, 프랭크 오션이나 미구엘등이 이쪽 씬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PBR&B”, 혹은 “Alternative R&B” 라는 장르의 한복판에 서 있는 아티스트답게 꽤나 그럴듯한 킬링 트랙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앨범을 여는 첫곡인 “Tuscan Leather” 부터 그가 사용하는 덥스텝적인 리듬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고, 엠비언트 분위기의 몽환적인 곡 “Started from the Bottom”, 신스팝을 연상시키는 멜랑꼴리한 느낌의 “Hold On, We’re Going Home”, 반복되는 멜로디가 역시 침잠하는 느낌을 선사하는 “Own It”까지, 기존의 힙합 음악들이 기본적으로 깔고 있던 어떤 합의된 정서에서 일부러 엇나가는 듯한 감정선을 전달하고 있다. 물론 우탱클랜을 찬양하는 노래 “Wu-Tang Forever” 나 “Worst Behavior”, “All Me” 에서는 자신도 정통적인 힙합/랩 음악을 잘 한다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움직임도 있으나 심지어 이런 곡들에서조차 (“Worst Behavior”) 관습적인 힙합 리듬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어쨌든 그는 요즘 블랙뮤직씬에서 가장 핫한 뮤지션중 하나이고, 그가 이렇게 높은 어텐션을 받는 이유는 그가 확실한 펀치 라인을 가지고 만드는 킬링 트랙들의 존재때문일 것이다. 앨범 전체적으로 보면 (물론 나의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하나의 통일된 테마가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것도 자넬 모네나 아웃캐스트처럼 확장적인 스토리텔링 기법을 가지고 있는 뮤지션들과의 비교때문에 갖게 되는 편견일지도 모르겠다.

Soundtrack: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Soundtrack

벤 스틸러가 그동안 상상해왔던 세계를 현실로 치환시키는 성공적인 과정에는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헐리우드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방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이 듣고 보고 배운 것들을 그만의 언어로 재탄생시켜 꽤나 그럴듯한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가 사용한 음악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린랜드와 아이슬랜드를 휘휘 돌아 히말라야의 산자락에 안착하는 주인공을 뒤따라가는 영화는 호세 곤잘레스나 Of Monsters and Men, Junip 같은 북유럽 출신 뮤지션들의 음악을 그 배경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월터 미티가 회사를 박차고 나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는 장면에 쓰였던 아케이드 파이어의 음악 역시 광활한 평지, 혹은 끝없이 펼쳐지는 능선을 생각나게 하는 큰 사운드스케이프를 가지고 있고, Rogue Valley, Rogue Wave 까지 포함한 이들 음악은 월터 미티의 여행을 가슴 벅차오르는 삶의 진지한 도전으로 승화시키는데에 꽤 큰 공헌을 하고 있다. 그린랜드에서 헬기를 타고 다음 여정으로 나아가는데에는 David Bowie 와 Kristen Wiig 이 함께 부른 “Space Oddity” 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이 노래는 이후 극의 서사구조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영화의 다른 축인 월터 미티의 러브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호세 곤잘레스는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타이틀격인 곡 “Step Out” 부터 엔딩 크레딧송 “#9 Song”, 월터 미티의 내면을 들여다 볼때 나오는 “Stay Alive” 까지 담당하며 명실상부하게 이 영화의 목소리로 기능하고 있다. 월터 미티의 얼굴에 또다른 층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의 목소리인 셈이다. 영화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고, 영화음악 역시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들이 나왔지만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고 있다. 벤 스틸러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증명했고, 그의 영화를 꾸며주는 음악들 역시 하나의 완결된 스토리로 촘촘히 연결되며 하나의 앨범으로서도 썩 훌륭한 구성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Bilal: A Love Sur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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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발표된 Bilal 의 세번째 정규작인 <A Love Surreal> 은 발표 당시 많은 매체들로부터 보컬리스트로서나 프로듀서로서 전작인 <Airtight’s Revenge> 에서 한단계 더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빌보드와 아이튠즈 알엔비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흥행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던 이 뉴요커 싱어송라이터의 새앨범은 풍부하고도 끈적한 감성으로 가득차 있다. Erykah Badu, J Dilla, Roots, Guru, Jay-Z, Common, Beyonce 등 그와 함께 작업한 뮤지션들의 면면을 봐도 Bilal 의 내공이라던가 음악적인 지향점을 대략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매우 깊은 울림과 폭넓은 음역대를 가지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탄탄한 사운드메이킹을 가능케 하는 그의 프로듀싱 능력과 합쳐져 대단히 매혹적인 음악들을 만들어낸다. 전작에 비해 조금 더 느리고 루즈해진 분위기 속에 블루스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는 그의 신작은 춤을 추거나 최소한 고개를 까딱거리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훅과 리듬이 넘쳐 흐르는데, 음악을 보다 극적으로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 그의 목소리에 있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 같다. 소리를 가지고 노는 듯 유연하게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는 그의 목소리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데, 그 목소리를 허투루 낭비하거나 소진시키지 않고 아름다운 선율 속에 적절히 녹여 낼 수 있는 현명한 송라이팅과 편곡 능력도 인상적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우려나오는 맛이 진하고 강한, 추운 날씨에 들으면 더 좋은 그런 따뜻한 앨범이다.

Body/Head: Coming Ap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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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Gordon 이 아방가르드 기타리스트 Bill Nace 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 Body/Head의 첫번째 앨범 <Coming Apart> 는 소닉 유스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로 활동했던 고든이 소닉 유스 era 이후 만들어내는 첫번째 음악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온당한 평가를 내리기 힘들 것 같다. 즉, 리버브와 디스토션이 잔뜩 걸린, 소닉 유스의 음악이 그랬던 것처럼 의도적인 미스튜닝을 거친 기타가 만들어내는 “wall of noise”를 들으며 아 이건 소닉 유스-출신 뮤지션-의 음악이구나, 생각한다면 이 앨범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딕과 노웨이브에 뿌리를 둔 이 앨범은 정식으로 소닉 유스라는 전설적인 밴드를 해체하고 박물관으로 보내버린 이후 내놓은 첫번째 작품이다. 여기에서 그녀는 다른 것들과의 비교를 통해서가 아닌, 절대적으로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듯 보이며, 이 앨범은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스트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한 여성 뮤지션이 어떻게 자신을 정의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적인 실험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스테레오검과의 인터뷰에서 (http://bit.ly/1f51Jey) 고든은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영화 감독 까트린 브레이야의 영화들과 (<Fat Girl>이나 <Mistress>같은) 시드 베렛 시절의 핑크 플로이드의 뮤직비디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브레이야의 영화들은 여성의 육체와 섹슈얼리티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 위주의 사회 안에서 여성이 당하는 핍박과 착취를 여성의 육체와 섹슈얼리티로 상징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고든이 이 앨범에서 보여주는 자아 성찰과 자기 정의 과정에는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Frontal”에서는 “넌 날 아마 죽일 수 있었을거야. 잠깐, 날 강간하지는 않았어?” 라고 누군가에게 묻고 있고 “Abstract” 에서는 “난 너를 단지 추상적인 관념 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을 뿐이야” 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너” 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인지 여성의 관점에서 타자화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상징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구체화시키는지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다. “Aint” 에서는 고든이 갖고 있는 것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열거하고 있는데 그녀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 – 향수, 악세서리, 친구들 – 과 가지고 있는 것들 – 피, 섹스, 열정 – 을 대비시키면서 역시 자신을 정의내리고 있다.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13분짜리 곡 “Black” 과 17분짜리 곡 “Frontal” 은 음악적으로 이 앨범을 완성시키고 있는 곡들이기도 하다. 30분동안 들을 수 있는 것은 노이즈가 거의 전부이지만 우리가 그녀에게 기대하는 것이 노이즈 말고 또 무엇이 있었단 말이냐. 우리는 매끈하게 잘 빠진 팝넘버들이 소음처럼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대에 살고 있고, 그런 시대에 불쑥 다시 등장한 고든은 온전히 집중해서 듣게 만드는 아름다운 노이즈를 만들어냈다. 음악적으로 에너지가 가득차 있는데 그 안에 들어 있는 메시지들도 결코 물러섬이 없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최소한 그녀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나도 게으름을 피우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Bahamas: Barch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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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chords>는 캐나다 토론토 출신 싱어송라이터 Afie Jurvansen의 솔로 프로젝트 Bahamas가 2012년 발표한 정규 2집이다. 빠르지 않은 템포의 멜로딕한 팝음악을 주로 선보이고 있는데, 2009년 1집을 발표한 뒤 Feist 의 투어 기타리스트로 동행했다고 해서 그런지 Feist 의 감성도 살짝 살짝 엿보인다. 조금 더 게으른 Jack Johnson같기도 하고 초창기 루 리드 음악의 분위기도 많이 느껴진다. 약간은 졸리운 것처럼 우물거리며 내뱉는 말들 속에 꽤 따가운 불평을 쏟아내는 그런 수다쟁이를 보는 느낌이다. 기타가 중심이 되어 느린 엇박자 위에 촘촘히 쌓아 올린 화음들을 통해 멜로디에 강점을 보이는 것은 그만이 가진 유니크한 미덕이기도 한데, 실연의 아픔을 결코 아름답지 않게 전달하는 쓰디쓴 가사는 음악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한번 더 비틀어 bittersweet한 감정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앨범이 다층적인 구조 속에서 읽힐 수 있는 것은 단지 그가 만들어내는멋들어진 훅에만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가사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공명하고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양가적인 정서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귀에 거슬림이 없는 아름다운 팝 넘버들로 가득차 있는 앨범이다.

나는 왜 실패했는가 (상)

결국 재능을 살리는 것이 첫째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그 다음이다. 최고의 재능을 포기하고 그보다는 좀 덜 잘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다면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복을 타고난 사람이다. 가장 잘 하는 일을 하는 것조차 요즘 세상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그냥 저냥 자신의 랭킹에 맞게 주어지는 일을 시스템 안에서 해나가며 돈을 버는 것이 요즘 세상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된 방식이고, 나는 이러한 삶을 ‘실패’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의 경우에 한해 이야기한다면, 지금까지 목표로 했던 어떤 지점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 이 시점에서 실패라는 단어를 꺼내 놓고 왜 여기까지 올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재능은 두가지 갈래로 주어졌다. 그것이 어떤 특수한 기술이나 영역에 있는 것은 아니고 그쪽 ‘바닥’에서 놀 수 있다면 가장 잘 놀았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그런 개념이다. 하나는 가톨릭이었고, 다른 하나는 역사였다. 이 두가지 영역 모두 나에게는 ‘주어진’ 것이었다. 아주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보수적인 가톨릭 문화를 온 몸으로 받아 들이며 성장해야만 했다. 가족중 가장 가까운 분이 사제이고 수녀였으며 열살 무렵부터 6년동안 복사일을 해오면서 가톨릭 성직자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중학교 3년동안 매달 예비 신학생 모임에 나갔으며, 이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신학교에 들어가게 될 줄 알았다. introvert 한 성격에 모순되게 무대 위에서 어텐션을 받는 것을 좋아했던 성격, 매년 반장따위의 일을 맡아 하면서 친구들 대신 혼나고 친구들 몰래 도와주고 친구들을 움직여 어떤 권위있는 조직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행위 등에 희열을 느꼈던 성격등이 성직자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성직자가 되면 천국에 갈 수 있는 확률이 조금은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다. 그만큼 십대 초반 나에게 죽음은 두려운 대상이었고 어떻게든 죽음 이후의 삶을 대비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주일학교에서 배운대로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면 천국에 가는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마음이 있었다.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옵션은 외고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게 된다. 먼저 “대를 이어야 한다”는 우스운 이유에 굴복한 탓이 컸는데, 보수적인 대구 출신 가족의 남아선호사상은 가톨릭 집안에서 사제를 배출한다는 영광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존재했나보다. 남녀공학으로 진학하면서 여자의 존재에 대해 뒤늦게 눈을 뜬 탓도 있었다. 여자를 꼭 사귀어 보고 싶었고,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싶었는데 대충 눈치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는 요원해 보였다.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 자연스럽게 체화된 문화, 그리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가톨릭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실제로 신학교에 입학 원서를 넣을 정도의 용기는 없었다. 매달 한번씩 신학교에 들어가 신학생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그들과 며칠동안 함께 자고 먹으며 피정도 해보았지만 도저히 ‘여자가 없는 삶’을 꿈꿀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평생 신자들만을 위해 살다가 결국 나쁜 병마만을 얻고 쓸쓸하게 돌아가신 큰아버지의 삶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역사는 다른 차원으로 내 삶을 지배해 왔다. 사학자인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공부하는 모습을 흉내내는 것이 어릴적 놀이중 대부분을 차지했던 유년시절을 지나 시간이 날 때마다 박물관에 나를 던져 놓았던 부모님을 원망하던 어린 시절을 통과하고 나니 그냥 대략적인 눈치밥으로만 주변 아이들보다 역사에 대해 많이 아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다행히 글짓기도 나쁘지 않게 하는 수준이었고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솟아난 여드름때문에 대인기피증이 생긴 뒤부터 집에 틀어박혀 책만 읽기 시작한 이후 남들에게 풀어낼 수 있는 ‘썰’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 되었다. 역사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가끔은 선생님들을 대신해 내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어 발표함으로써 수업을 대체하기도 했다. 대중을 상대로 기술된 역사책들은 시시하게 느껴졌고, 조금 더 깊은 차원에서 역사를 공부해볼 요량으로 한자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외고 입시 과정에서 아버지의 반대로 중국어과에 지원하지 못하게 되면서 역사에 대한 꿈도 함께 꺾였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때문이었는지, 서양사에 대한 흥미가 상대적으로 떨어져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고등학교 입학 이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국영수 중심의 수능 대비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역사 공부를 따로 시간을 내어 할 정도의 여유는 아침 일곱시부터 밤 열시까지 학교에만 있어야 하는 외고생에게는 너무 과분한 사치였다. 결국 아버지의 바램대로 나는 한자 까막눈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덤으로 나쁜 수능 점수를 받아 들게 됨으로써 원하는 학교에 지원할 수도 없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는 커트라인이 낮은 문과대에 일단 들어가서 고시를 준비하기를 원하셨지만, 정작 한자를 읽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한자로 가득찬 고시책을 읽으라고 하시는 아버지에게 심통이 나서 그쪽과 가장 거리가 멀어보였던 경제학과에 무작정 원서를 넣었다. 당연히 재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덜컥 합격이 되어버려서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그 결과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내가 사제가 되었든 역사를 전공으로 선택했든, 가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이랬을 것이다”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보다 더 인생이 꼬였을 수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내가 십대시절 나름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나의 재능은 위의 두가지에 집중되어 있었다. 남들보다 확실히 잘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 편하게 느껴졌고 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것을 대학 레벨에서 한번 더 숙성시키고 그것을 이용해 사회로 진출할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경제학이 대학에서의 전공으로 확정된 이후 나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십대 시절 수학을 잘 하지 못했고, 때문에 당연히 경제학도 잘 하지 못했다. 평균 이하였다. 남들은 쉽게 이해하는 개념도 잘 따라가지 못했고 그래프 하나 그리는 것, 수식 하나 계산하는 것도 남들보다 뒤쳐졌다. 경제학에 재능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을 꼭 극복하고 싶었다. 수학이라는 툴로 무장한 경제학은 문장과 ‘썰’로 논리를 풀어 나갔던 나에게 큰 장벽이었고,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평생 열패감에 시달리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때 경제학에 대한 기대를 접고 무사히 졸업만 한 뒤 평범하게 경제학과 상관없는 일을 했다면, 지금처럼 꼬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가정이기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우야돈동, 나는 군 제대 이후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파기 시작했고, 실력이 미달되었음에도 당시 리더가 베풀어줄 획기적인 자비로움에 힘입어 한국은행 스터디에 들어가 어려운 경제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실력은 바닥이었고, 비록 수업 성적은 잘 나오기 시작했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전혀 없었다. 나보다 경제학을 잘 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기세를 뽐내고 있었는데 나는 스터디원들이 당연히 받는다는 A도 변변히 받지 못하는 실력이었다. 평균보다는 잘하지만 최고들과 비교하면 보잘것 없는 성적표를 들고 교수님들을 찾아갔고, 교수님들도 갸우뚱거리며 “아예 유학을 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정을 내려주셨다. 그렇게 준비하게 된 유학에서 또 덜컥 한 학교에서 합격 통보를 받아버린 것이다. 그 학교에서 장학금까지 준다길래 냉큼 오퍼를 받아 들였고 그렇게 유학을 떠나게 됐다. 

유학 생활은 힘들었다. 다른 유학생들보다 실력이 뒤쳐졌음에도 한국에서 대학원이라는 예비 과정도 건너뛰고 급하게 온 유학이었기에 수업 내용을 따라가는 것이 벅찼다. 매일 밤 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 있어도 돌아가지 않는 머리는 어쩔 수 없었다. 당연히 과목중 하나에서 빵꾸가 났고,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남들보다 1년이 또 뒤쳐졌다. 만약 거기서 짤렸다면, 즉 학교를 타의로 나오게 되었다면 일찌감치 경제학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평범하게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보다 덜 꼬이지 않았을까. 물론 알 수 없는 일이다. 가정이기 때문에 지레 짐작할 수 없는 가지 않은 길이다. 우야돈동, 어찌어찌 짤리지 않고 버티면서 극복해내다 보니 석사를 받게 되었고, 석사를 받고 나서 또 한참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논문 쓰는 일에 소홀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시점부터 다시 논문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받아 들었을 것이다. 경제학 박사 잡마켓에 필요한 것은 딱 하나다. “A Damn Good Paper”. 그것을 5년 혹은 6년 이내에 만들어내느냐의 싸움이고, 나는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석사를 받고 나서부터 2년, 좋은 논문 한편..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재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은 이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 선물이라는 것 쯤은 알 수 있겠다. 

몇번의 기회가 있었다. 경제학을 포기할 수 있는 기회. 하지만 나는 그 때마다 경제학을 붙잡았다. 이 학문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당찬 결심따윈 없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여기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것 같다. 나는 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경제학을 통해 학자가 될 만큼의 재능도 없었고, 그 재능의 부족을 극복할 정도로 피를 토해가며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게으른 성격과 사태를 냉정하게 보지 못하는 통찰력의 부족이 화를 키웠다. 학문적으로 고립된 지역에 있는 학교에 온 탓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모든 과정이 논리적으로 이해가 된다. 납득이 가는 결과들의 연속이었고 나는 그 과정에서 흘러가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수준의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그렇기 때문에, 옳지 않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오히려 설득력있어 보인다.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면 더 나쁘지 않은 결과를 피할 수 있을 정도의 머리는 부모님께 잘 물려 받았다. 머리가 나쁜 아이는 아니었다. 문제는 이 머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나의 무능력함이다. 그리고 그 무능력함을 지난 11년동안 어떻게 잘 드러내왔는지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억울하지조차 않은 것이다. 

Joen and Ethan Coen: Inside Llewyn D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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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인생을 막 시작하는 입장에서 실패한 뮤지션의 이야기를 보러 가는 길은 약간의 반가움과 약간의 불안감이 공존했다. 원하는 궤도에 오르지 못한채 그 변방을 떠돌기만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느끼는 동질감이 더 클지 ‘그래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라는 실패에 대한 확신을 더 굳히게 만들지 영화를 보기 전까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막 보고 나온 지금, 코언 형제의 신작은 밝음보다는 어두움, 희망보다는 절망에 조금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는 듯 느껴진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동일한 시퀀스를 약간의 비틈을 허용하며 조응을 이루는데, 그것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결국 주인공이 이 불행의 터널에서 결코 빠져나올 수 없다는 운명론적 시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코언 형제는 늘 그런 식이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도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절대악을 설정하며 결국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했고, <그 남자 거기 없었다> 에서도 끊임없이 굴러가는 바퀴처럼 비극적인 결말은 결코 그 어떤 다른 대안으로 치환될 수 없음을 강하게 드러냈던 그들이었다. 물론 코언 형제는 비극과 희극, 정극과 소동극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줄 아는 재주꾼이다. 그들의 영화는 키득거리는 유머와 서늘한 비장미가 늘 함께 공존하며 그것을 단순히 말초적인 자극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통찰과 관조의 시선으로 연결짓는 통로로 사용하기 때문에 젊은 거장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일게다. 박찬욱이나 김지운같은 감독들이 아마도 가장 따라하고 싶어하는 감독일 것이며, 알맹이가 결여된 이들 한국 감독들이 결코 코언 형제의 영화 세계를 완벽하게 흉내낼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르윈 데이비스라는 인물의 구슬프고도 고단한 여정에 동참하다 보면, 르윈의 피곤한 눈빛처럼 영화도 힘을 힘껏 주지 않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한결같이 유지하지 못한다. 갑작스러운 결말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기대했던 에너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서늘한 맛이 느껴지긴 하지만 익숙한 서늘함일 뿐이며, 곳곳에 배치된 유머는 유머 그 자체로 겉돌뿐 핵심으로 깊게 파고들지 못한다. 문제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Oscar Isaac 이 연기하는 르윈 데이비스의 캐릭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어떤 인물인가? “돈이 되지 않는”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경제적 파탄에 이르게 되고, 친구 뮤지션의 파트너와 잠자리를 함께 해서 덜컥 임신을 시키고 (혹은 시켰다는 의심을 사고), 매일밤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잠을 자야 하며 거의 구걸을 해서 겨우 도착한 시카고에서는 오디션에서 퇴짜를 맞는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운전중에 부딪힌 동물에게 극도의 미안함을 느끼며 잃어버린 후원자의 고양이를 찾기 위해 애쓰는 순박한 사람이지만 이와 동시에 fuck과 shit을 입에 달고 살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뮤지션의 공연을 망치려고 드는 거친 사내이기도 하다. 그는 피곤에 지쳐 결국 재능을 발견하지 못한 포크뮤직씬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고 폭력과 야유에 노출되어 있는 가난한 지하 클럽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내일은 어디서 잘 것이며, 그 다음날은 과연 무사할 것인가. 그에게 허락된 지속적인 안락함은 없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타박하지만 결코 그를 내치지 않는다. 문제는 그에게 있다. 그의 내부에 있다. 르윈 데이비스의 “인사이드”가 이 영화의 핵심 철학을 발견하는 key라면 그 내면을 제대로 설명하는 것이 감독의 의무일 것이다. 우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처럼 깔끔한 캐릭터가 발견되지 않는다. 이러한 캐릭터를 과연 행동의 나열 이상의 무엇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오스카 아이작이 부루는 포크 넘버들은 분명히 아름답다. 하지만 공허한 눈을 한채 자신의 삶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 주인공에게 과연 무엇을 느낄 수 있으며 무엇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실패한 인생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좋은 영화라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이 영화가 짧은 결말에서 그 모든 숙제들을 능숙하게 주워 담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데이비스를 둘러싼 주변인들 역시 깔끔한 영화 화면과는 다르게 흐리멍텅한 색으로 기억된다. 르윈 데이비스는 갈팡질팡하지만 결국 어떤 결론에 다다르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는 끝나 버린다. “영화는 인생의 한 부분만을 따로 떼어 보여주는 것일뿐 시작도 끝도 없다”는 이창동의 주장에 코언 형제가 동의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의 지난 영화들과 아주 다른 시각일 것이다. 주변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제시켜 놓은 동물들처럼 움직인다. 캐리 멀리건은 아름답지만 아름다운 얼굴로 거친 욕설을 쏟아내는 장면 말고는 기억에 딱히 남는 것이 없다. 저스틴 팀벌레이크도 마찬가지. 시카고 여행의 동반자들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했지만 그들은 결국 맥거핀으로 쓰일 뿐이었다. 어짜피 이 영화의 조연들은 모두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을 보다 더 잘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뿐인데, 결국 난 르윈 데이비스가 무척 힘들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으며, 아무런 메시지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저 실패한 커리어를 살아갔던 1960년 미국 뉴욕 포크씬의 이름없는 뮤지션의 며칠간의 여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다라면, 그건 코언 형제의 영화가 아닐 것이다.

노래는 무척 아름답다. 화면은 곱고 선명하다. 서사는 거의 완벽하다. 카메라는 그들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아마 이들은 카메라와 인물, 카메라와 관객 사이의 거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미국 감독일 것이다. 코언 형제는 이 영화를 망치지 않았다. 깐느 영화제 그랑 프리 수상이 그것을 일정 부분 대변해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코언 형제 커리어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명작인가, 하면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몇년이 지나고 이 영화를 다시 한번 보면 그때는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Alexander Payne: Nebraska

Nebraska-poster
2년전 여름 친한 미국인 친구들과 네브라스카를 횡단해 오마하까지 (페이튼 매닝의 그 오마하 맞다)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명목은 친구중 하나가 졸업한 모교가 매년 오마하에서 열리는 컬리지 베이스볼 월드시리즈 결승에 진출했기 때문이었지만, 사실 우리 모두 한번도 가보지 않은 네브라스카라는 곳에 대한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여해이었다. 콜로라도의 동쪽부터 시작되는 광활한 평원과 끊임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을 여덟시간동안 달린 끝에야 오마하라는 말끔한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네브라스카가 가지고 있는 색채를 전혀 느낄 수 없는 도시 오마하를 오고 가는 길 위에서 경험한 그 곳의 이미지는 지금도 굉장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오마하로 가는 길에 들렀던 식당은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식당인 웬디스였다. 여느 때처럼 밝게 웃으면서 음식을 주문하려는 나를 아주 이상하게 쳐다보는 백인 서버의 표정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때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음식을 던지듯이 주었던 그녀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있나보다 생각하고 넘겼지만, 돌아오는 길에 들렸던 아주 작은 동네의 허름한 뷔페 레스토랑에서 실제로 존재하지만 전설처럼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온다는 ‘레드넥’ 들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동양인을 실제로 본 적이 없으며, (나 역시 백인 농부들을 실제로 접한 적이 없었다) 대학 문턱도 밟아 보지 못했고, 샷건을 항상 트렁크에 넣고 다니면서 동물들이나 이웃들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그런 존재들이었다. 몇만평에 이르는 옥수수밭을 기계의 도움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관리하는 그곳에서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느끼는 스케일은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큰 차이가 있었다. 그들은 자연을 정복해가며,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었고, 단조로운 일상과 저녁 내내 틀어 놓는 TV 소리에 익숙해진 반복된 삶을 살고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도시에서만 성장해 왔고 미국에 와서도 가장 발전된 형태의 커뮤니티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지내온 나에게는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는데, 이건 당시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난 미국인 친구들에게도 무척 흥미롭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그들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텍사스라는 “South” 지역 출신이었지만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해 사립학교를 졸업한, 화이트컬러 백인 중산층의 자녀들이었고, 그들에게도 네브라스카는 자동차로 몇시간을 달려서라도 여행을 떠나 체험을 해보고픈 그런 장소였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곳이 진짜 미국이라고 느꼈다. 뉴욕의 핫하고 잇한 문화, 캘리포니아의 여유롭지만 쿨한 문화 모두 미국의 일부분이지만, 네브라스카와 아이오와의 평지에 끊임없이 펼쳐진 옥수수밭과 그곳을 가로지르는 픽업 트럭에서 미국의 또다른 단면을 본 것 같다.

<네브라스카> 는 네브라스카가 고향인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돌아와 만든 첫번째 이야기다. 한 노인이 있고, 그 노인은 자신이 백만불의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한 스팸 광고를 믿고 네브라스카의 링컨으로 가 돈을 수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인의 아들과 함께 몬타나의 빌링스에서 네브라스카로 떠나는 이 로드무비는 ‘삶의 여정’과 ‘가족’이라는 페인 영화의 오랜 테마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전형적인 그의 영화다. 그만이 만들 수 있는 따뜻한 감촉과 서늘한 교훈이 공존하는 그런 영화다. 영화 음악은 여전히 아름답고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가 끊이지 않지만 ‘가족’이 한 개인에게 주는 양가적인 가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과정에서 결코 재미있지만은 않은 씁슬한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된다. 나 역시 나의 가족에게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친척들이 다 함께 모이면 반갑게 웃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지만 한차례 시끌벅적한 환영 인사가 끝나면 서로에게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불편해질 만한 말들이 심심치 않게 튀어나온다. 어렸을 때 나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혼자 놀이터로 도망가 시간을 때우곤 했다. 어른들의 대화는 항상 이해 관계에 맞물려 돌아갔고, 그 모든 대화들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어떤 선을 넘지 않으며 진행되었지만 그렇다고 가족간의 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들을 밖으로 꺼내 놓는 괴로운 과정을 피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네브라스카> 는 단순히 시끌벅적한 소동극에 네브라스카라는 독특한 환경을 결합한 로드무비 정도로 이해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훨씬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이슈들이 녹아있다고 생각했다.

늙은이가 느끼는 소외의 감정, 그것은 함께 늙어가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조차 때로는 이해받기 힘든 것일 수도 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마저 한 노인이 느끼는 철저하게 고립된 것 같은 감정을 온전히 받아줄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하나의 숙제같은 것이고, 지금까지 유지해온, 앞으로도 변화시키기는 힘들 듯한 완고한 정체성 위에 늙어버려서 쓸모 없어진 육체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개인의 존재 가치를 재정의내리고 스스로에게 그것을 재확인시켜야 하는 힘든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속 Woody Grant는 이것을 복권으로 상징화시켰다. 그는 백만달러를 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따져 묻는 아들에게 좋은 트럭 하나와 에어 컴프레서 하나를 사고 싶었을 뿐이라고 중얼거린다. 평생을 자동차 수리공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잊지 못할 과거가 있고, 그 과거에서 헤어나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부여잡고 살 정도로 떳떳하지도 못한 삶을 살아온 우디에게 새로운 트럭과 새로운 컴프레서는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매개체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돈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다시 재차 묻는 아들에게 그는 “그냥 너희들에게 무언가를 남겨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고백한다. 단순히 가는 귀가 먹은 괴팍한 노인네라고 여겨졌던 이 알콜중독자는 자기 나름대로 삶을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네브라스카는 쇠퇴하는 곳이다.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늙은이들은 풋볼 경기나 보며 시간을 때워야 한다. 몬산토같은 다국적기업이 농촌을 기계화시키기 시작했고 가족 중심의 전통적인 미국 농촌 산업은 사라졌다. 혼자서는 제대로 자동차에서 내리지도 못하는 우디가 그곳으로 돌아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백만달러에 당첨되었다는 그를 바라보는 그의 오래된 친구들은 그에게 무엇을 욕망할 수 있었을까. 답은 뻔하지만, 그 뻔한 답을 영화적인 어법으로 슬기롭게 풀어낸 페인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신이 나고 자란 그곳을 결코 왜곡시키지 않으면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그의 카메라는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이 네브라스카 그 장소 자체임을 상기시켜 준다. 영화는 종종 우디와 그의 아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Hawthorne 이라는 네브라스카의 가상의 작은 마을의 모습들을 비춘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추고, 포장이 되지 않은 도로와 허름한 술집을 바라본다. 더이상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네브라스카의 한 늙은 마을로 돌아온, 희망없는 복권을 들고 있는 늙은 남자의 이야기인 <네브라스카>는 영화의 도입부와 엔딩씬을 조응시킴으로써 삶이 단지 죽음으로 가는 여정만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있고, 그 아들은 그에게 삶의 작은 기적을 선물한다. 그 기적으로 말미암아 노인은 아마도 앞으로 몇년동안은 또다른 희망을 부여잡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좋은 영화다. 페인의 다른 영화들처럼.

Ben Stiller: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Secret Life of Walter Mitty
한국에서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는 우스꽝스러운 – 그리고 한국 마케팅 담당자의 영화에 대한 몰이해가 여실히 드러나는 – 제목으로 개봉한 이 영화는, 인터넷 시대로의 이행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Life’ 지의 필름 사진 원판 담당자에 대한 이야기다. ‘Life’지는 사진 역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사진들을 많이 출판해 왔다. 서강 헤럴드라는 학교 영자 신문사에 잠시 몸담았던 시절에 보도 사진 연구를 할 때 쓰이던 교보재도 이 매체였다. 강렬한 흑백사진으로 표현된 보도 사진의 표현력에 경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모든 출판 업체가 인터넷 시대로의 이행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몸을 실으면서 사진 출판업계도 필름에서 디지털로 급속하게 넘어가기 시작했고, 비록 우리가 눈으로 확인하는 결과물의 차이는 크지 않을지언정 그 산업 내부에 있는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맞닥뜨렸던 문제는 분명 life-changing 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특히 이 영화의 주인공 Walter Mitty처럼 필름 원본의 보관을 업으로 삼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지나치게 내성적인, 하지만 조용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대한 존중을 삶으로 실천해 왔던 한 소심한 사내가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벤 스틸러는 헐리우드라는 변화부쌍한 산업에서 평생을 몸담아 오면서 결코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좋은 영화들의 좋은 점들을 바로 바로 습득했고, 이를 자신의 영화에 슬기롭게 재현해 냈다. 비록 각각의 장면에서 바로 바로 연상되는 레퍼런스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영화가 오리지널리티를 놓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는 필름 사진이라는 역사의 박물관에 보관되기 시작한 산업의 삶의 끝자락을 관조하면서 한 사람의 짤막한 모험담을 필름 카메라의 프레임 안에 담아내듯 표현해 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수만장의 사진을 이어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영화를 사각 프레임안에 가두어 놓지만은 않는다. 광활한 자연 풍경을 역동적으로 담아내는 화면 구성에 더해 관객의 마음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좋은 배경 음악, introvert 한 성격을 스스로 깨고 나오는 힘든 여정을 절절히 표현해 낸 벤 스틸러의 연기 (문학, 영화 가리지 않고 내성적인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가 실제 지구상에 존재하는 내성적인 사람의 비율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예전부터 흥미로웠다), 영화의 구석구석에 현명하게 배치한 내러티브를 풍성하게 해주는 장치들까지,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서도 상당한 레벨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종종 비약을 하고 결말은 지극히 헐리우드 엔딩스럽지만, 그건 벤 스틸러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당연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참 좋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타인의 삶>을 연상시키는데, 시대의 명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그냥 복제해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영화의 주제 의식에 부합하도록 적절하게 비틀어 사용한 스틸러의 영민함이 오히려 돋보였다. 어쨌든 그는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역사의 한 부분에 지극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고, 그 애정을 단순히 특정 산업, 특정 직업에 국한시키지 않고 한 개인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모습으로 승화시킴으로써 그 감정을 일반화, 개인화시킨다. 영화가 다른 경지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이러한 역량덕분이다.

영화 음악이 참 좋다. 다들 아는 아케이드 파이어부터 영화 주제가를 담당한 호세 곤잘레스, 그리고 영화의 서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는 데이빗 보위와 크리스틴 윅이 함께 부른 “Ground Control to Mike Tom” 까지, 한결같이 참 좋은 음악들이 많다. 영화 음악을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나도 어떤 벽을 깨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여기저기 꽉 막혀 있는 지금의 내가 참 많은 위로를 받은 영화, 그리고 영화 음악이다.

Jean-Marc Vallee: Dallas Buyers Club

<Dallas Buyers Club> 은 댈러스 근교에 사는 Ron Woodroof 라는 전기 기술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카우보이기도 한 한량은 술과 여자, 그리고 코카인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아간다. 게이를 혐오하고 여자를 섹스의 상대로만 생각하며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이 하층민에게 어느날 갑자기 HIV 양성 판정이 나오고, 30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그는 스스로 삶을 다시 일으켜 보고자 모든 종류의 약을 구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AZT이라는 신약을 실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몰래 그 약을 복용하던 중 멕시코에 있는 한 무면허 의사에게 그 약에 대한 위험성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의사가 처방해준 DDT와 펩사이신 T 등의 대안적인, 하지만 FDA에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 약을 미국으로 밀반입해와 팔기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이 Woodroof 라는, 술과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배우지 못한 사내가 스스로 의학 논문들을 읽어 내려가고 에이즈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부당하게 자신이 스스로 약을 처방할 권리를 빼앗은 FDA를 상대로 싸워나가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영화는 주인공의 사투를 통해 FDA 와 거대 제약회사를 둘러싼 의약계의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지만, 관객들에게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이 Woodroof 라는 실존 인물의 마지막 7년을 따라가는 데에 집중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영화는 상투적으로 한 사람의 인간 승리 과정을 상투적인 장치들을 통해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담아내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이 Woodroof 라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약을 불법으로 팔았던 사람이다. 죽기전 마지막으로 한탕 해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자신이 혐오하는 동성애자들이 주 고객이었고, 돈이 없는 가난한 환자는 고객으로 받지 않았다. Dallas Buyers Club 은 그가 FDA 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만든, 한달에 $400의 회비를 내면 무제한으로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해주는 편법적인 단체의 이름이다. 그가 혐오하는 게이들만 걸린다고 믿었던 에이즈에 감염되고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가 그 게이들에게 약을 팔기 시작하면서 그의 폭력적이고 편협했던 가치관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시작한 이 일이 결국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구하는 일로 확대되고,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약을 파는 “drug dealer” 가 아닌, 오히려 자본의 힘을 앞세운 합법적인 “drug dealer” 들로부터 진실과 정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매튜 매커네히의 필모그래피 역사상 아마도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될 이 영화에서 그는 단지 환자처럼 보이기 위해 깡마른 몸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바닥을 찍고 죽기 싫어 발버둥치는 한 못배운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아예 눈빛까지 바꾸어 버리는 혼이 실린 연기를 보여준다. 관객은 아마도 그의 헬쓱하다 못해 앙상한 몸이 아니라 그의 눈빛과 웅얼거리는 말투를 통해 영화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배우 매커네히를 완전히 지워낼 수 있었을 것이다. 재러드 레토가 연기하는 레이언이라는 여장남자 역시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 둘이 만들어내는 연기 앙상블은 영화가 오로지 연기자의 힘만으로도 어떤 수준 이상으로 격상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포스터도 참 안끌리게 만들었고 영화 제목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 영화는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꽤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영웅이 아닌, 오히려 평범한 축에도 들지 못했던 한 거친 남자가 굴곡진 인생을 통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 이 거짓말같은 실화를 영화는 결코 왜곡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난 매커네히가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꼭 받았으면 좋겠다. 아직 다른 후보작들을 다 보지 못하긴 했지만,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수상 소감에서 FDA 에 대해 한번 더 거론해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