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ce Hammer: Ballast

다르덴 형제가 만약 미국에서 태어나서 남부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다면 어떤 모습일까. 벨기에의 한 공업 도시의 뒷골목에서 폭력에 시달리고 책임질 수 없이 잉태된 아기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는 소년의 일생을 보는 대신 뉴올리언스 어딘가에서 총과 마약에 무방비로 노출된 한 흑인 소년의 삶을 보게 되지는 않았을까. USC 를 졸업하고 할리우드에서 특수효과 담당으로 오랜 기간 일해온 백인 감독 Lance Hammer는 현대 미국 사회를 바라보는 프리즘에 다르덴 형제의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영화 한편을 2008년에 찍었다. 배경 음악도 없고 모든 장면은 자연광만을 이용한 핸드 헬드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실제로 촬영 지역에 사는 비전문 배우들만으로 촬영이 이루어졌고 카메라는 인물들의 삶 속으로 깊게 개입하려 하지 않고 늘 가까운 거리에서, 하지만 일정 거리 이상을 반드시 유지하며 이들의 삶을 뒤쫓는다. 카메라는 이들의 시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으며,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저 담담히 비추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보다 더 극단적으로 사실주의적인 시각을 택한 이 영화로 그는 선댄스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지만 그 이후 Hammer의 필모그래피는 멈추어 있는 상태다.

뉴올리언스 미시시피 삼각지대의 시골 마을에 사는 Lawrence 는 쌍둥히 형이 있었다. 함께 작은 수퍼마켓을 운영하던 그의 형은 그가 보는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로렌스 역시 충격에 빠져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다. 로렌스의 형은 별거중인 아내와 그녀가 키우는 자식이 있는데, Marlee 는 화장실 변기를 닦으며 그녀의 아들 James 만을 바라보고 사는 가난한 여인이다. 학교 농구 프로그램에 가입하기 위한 $20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그녀의 지난한 삶 속에서 James 는 거친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동네 불량배들에게 걸핏하면 돈을 뜯기고 얻어 터지기 일쑤다. 이들 불량배들은 급기야 말리와 제임스가 탄 차를 들이 받고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말리는 그 사고로 생긴 상처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로렌스의 집 바로 옆에 있던 죽은 남편의 집으로 이사한다. 문제는 로렌스와 말리가 서로 매우 미워하는 사이라는 사실이다. 말리는 남편의 죽음과 자신에게 드리워진 가난의 짐이 모두 로렌스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반대로 로렌스는 형의 비극적인 삶이 말리로부터 시작했다고 믿고 있다.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로렌스와 가난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말리를 다시 끈질긴 삶의 희망 속으로 끌어들이는 존재는 다름아닌 학교등의 제도권 교육에서 완전히 벗어난채 방치되어 있는 제임스이다. 로렌스와 말리는 제임스를 위해 문을 닫았던 가게를 다시 열고, 서툴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여전히 퍼석퍼석한 마른 낙엽과도 같은 이들의 일상이지만 이들은 함께 저녁을 먹고, 제임스는 더이상 권총으로 상대방을 위협하지 않게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두 시퀀스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에서 보아 왔던 기적과도 같은 순간을 미국적인 방식으로 재현하고 있다. 제임스는 자신을 괴롭혔던 그 모든 거친 세상과의 작별을 상징적으로 고한다. 그에게 여전히 교과서는 너무나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존재이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일하러 나간 적막한 집 한가운데서 끈질기에 연필을 잡고 글자를 읽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그들이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시동이 잘 걸리지도 않는 고물차를 끌고 집을 나서는 순간, 로렌스의 집을 지나치며 이들 모자는 더이상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아마도 꽤 오랫동안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제임스는 또다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로렌스는 간신히 잡은 삶에 대한 희망을 언제 다시 놓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위태위태하게나마 다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그동안 미국 영화 산업에서 완전히 무시당해 왔거나 과장되게 소개되어 왔던, 하지만 미국 남부 사회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특정 사회 계층의 삶을 정면으로 응시함으로써 영화가 가진 묵직한 힘을 재확인시켜주고 있다. 삶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서, 그리고 더 나아가 현실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작은 기적을 실현시키는 마술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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