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ls Frahm: Spaces


독일 출신 뮤지션 Nils Frahm 의 신보 <Spaces> 를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역속적인 다른 형태의 당혹스러움이었다.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음악적인 형태때문에 느꼈던 당혹스러움이 첫번째였고, 그 이후 장르를 파괴하거나 특정 장르로의 귀속을 거부하며 “이것은 닐스 프람의 음악일 뿐이다” 라고 선언하는 듯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풍모에서 느껴지는 당혹스러움이 두번째 당혹스러움이었다. 차이코프스키를 전공한 학자에게 사사한 뒤 클래식 음악가로 키워진 유년 시절부터 치명적인 엄지 손가락 부상을 극복하고 전자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최근의 행보까지 그의 커리어를 설명할 수 있는 한두개의 단어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건반을 연주하는 미니멀리스트라고 표현하면 근사치에 가까울 수 있겠으나, 이 표현 역시 깊게 따지고 들어가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통상적으로 정의되는 미니멀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음악을 만드는 듯 하고, 건반만으로 낼 수 있는 소리들을 통해 건반이 주는 청각적인 느낌이라고 알려진 기존의 관념을 깨뜨리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클래식한 느낌의 “Improvisation For Coughs and a Cell Phone” 과 아방가르드한 전자음악으로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An Aborted Beginning”, 실험적인 음악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For-Peter-Toilet Brushes-More”, 그리고 감미로운 뉴에이지 발라드라고 할 수도 있을법한 “Over There, It’s Raining” 이 한 앨범 내에서 공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음악은 노이즈에 가까운 전자음과 클래식 피아노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며, 어떤 곡에서는 노이즈가 극대화되고 다른 곡에서는 오로지 피아노 한 대만으로 음악을 시작하고 끝내기도 한다.

그의 앨범을 관통하는 테마는 아마도 앨범 제목에 잘 나타나 있듯이 “공간” 에 대한 사유일 것이다. 그는 이 앨범에서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재정의내리고 있다. The XX 의 데뷔 앨범이 한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사료로서 기록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공간을 침묵으로 채우는 발상의 전환때문일텐데, Nils Frahm 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청자로 하여금 침묵의 공간 속으로 들어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Says” 등의 곡들을 통해 전통적인 형태의 미니멀리즘 (그러한 것이 존재한다면) 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한편 “Unter-Tristana-Ambre” 등의 피아노만으로 이루어진 곡들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미니멀리즘을 자신의 음악 속에서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최근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음악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특성을 뛰어 넘어 시각 그 이상의 느낌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렇듯 그는 청자에게 계속해서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음악을 통해 기존의 상아탑을 부수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음악들을 모두 새롭게 정의내리기를 원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그의 음악은 정의를 쉽게 내릴 수가 없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청각적 경험, 그리고 그것이 시대와 장르, 그리고 과거의 음악 감상에서 존재했던 습관들을 모두 극복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하지만 일차원적이지 않고, 직선적이지만 쉽게 독해되지 않으며, 아름답지만 마냥 착하지도 않은, 대단히 사려깊은 음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The XX 의 데뷔앨범에서 공간을 침묵으로 채우려는 시도에서 받은 충격은 Nils Frahm 의 2013년작 <Spaces> 에서 공간 안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 각각의 청자가 주체적으로 그 공간을 자신만의 침묵으로 채우려는 또다른 차원으로 확대된다.

베를린에 있는 유태인 박물관에는 이스라엘 현대미술가 메나쉐 카디쉬만(Menashe Kadishman)의 작품이 있다. 높은 천장에서 빛이 한줌 들어오는 좁은 공간의 바닥에는 유태인들을 상징하는 철골 구조물들이 깔려 있고, 방문객들은 스스로 그 바닥에 깔린 유태인들의 얼굴을 직접 밟아 소리를 내어 카디쉬만의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그들이 느꼈던 고통을 작품을 스스로 밟는 행위를 통해서 온전히 전달받는 것이다. 그러한 감상의 주체성이 느껴지는 앨범이다. 공교롭게도 프람 역시 베를린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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