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나 역시 장준환 감독의 새 영화를 오랫동안 기다렸던 사람들중 하나다. 그가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나 서사구조를 직조하는 방식은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가 만든 탄탄한 세계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뚜렷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앞으로의 작품 활동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시작점으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루머로만 떠돌았던 수많은 영화들이 시나리오 단계, 혹은 그 이전의 단계에서 수 없이 좌초되었다는 이야기들만 수년동안 듣다가 겨우 마주한 그의 신작은, 한마디로 말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진지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듯 하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여전히 캐릭터를 옹골차게 만들어 내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다층적인 서사 구조를 무리 없이 설계할 수 있는 영민한 감독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채 한편의 킬링타임용 영화를 생산해 낸 것 같아 보인다.

영화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시작해서 성장으로 끝맺는다. 순종적인 아들은 자신의 핏줄에 대한 비밀을 알아버리자 순식간에 평생 함께 살던 대안 가족을 적으로 돌린다. 자신의 하나 남은 핏줄이라고 믿고 있는 인물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지금까지 자신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은 그의 양아버지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괴물이 되어야만 더이상 괴물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는 마지막 남은 아버지의 말은 영화의 끝부분에서 여전히 인간성을 유지한 채 조금 더 진화한 형태의, 즉 아버지를 극복한 아들의 모습으로 살아 남은 주인공을 모습을 통해 배반된다. 그는 자신의 친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쏘아 죽였고, 그가 자신의 어머니라고 믿고 있던 여자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의 곁에 남은 사람들은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선사해준 또래 여자 아이와 그를 평생 돌봐준 양어머니뿐인데, 그는 그녀들을 자신의 곁에 둠으로써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과거의 대안 가족을 탈피해 자신의 의지로 설계한 또다른 대안 가족을 이끌어 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아버지를 극복해야지만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제 의식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이러한 주제 의식이 독창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형식적인 면에서 진부한 클리셰들을 끊임없이 남용한다. 심지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들이 다니는 거리 속으로 파묻혀 들어 가는 – 헤드폰과 첼로 케이스로 그의 순수성을 증명하면서 – 소년의 뒷모습은 과연 이 감독이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보았으며 그 영화들의 형식에서 제대로 탈출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자아내게 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대부분의 액션씬과 자동차 추격신, 그리고 마지막 저격신은 모두 영화 본 시리즈에서 그대로 가지고 온 듯 한 기시감을 주며, 아버지에게 총구를 겨누고 “왜 저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주지 않았죠?” 라고 묻는 장면은 따로 레퍼런스를 적어 내기조차 미안할 정도로 수많은 영화들에서 이미 다루어진 구조다. 왜 그랬을까? 대체 왜 장준환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길래 오랜만에 내놓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진부한 피떡칠로 도배해 버린 것일까?

정말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나의 결론은 그가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이러한 표현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아주 착한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괴물들에게 납치되어 괴물로 키워진 한 소년이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되자 괴물들에게서 받은 재능을 이용해 괴물들을 처치하고 환상속에 등장하는 괴물도 극복하며 그 결과 자신의 순수한 뿌리로 회귀한다는 이 영화의 간단한 줄거리는, 괴물같은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한국의 어떤 한 세대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네이버를 통해 이 영화에 대한 전문적인 리뷰를 검색하려고 시도했지만 제대로 검색이 되지 않는 개떡같은 네이버 시스템때문에 포기하고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한개도 읽어보지 않았다. 이렇게 순수에 가까운 나의 무지에 기대어 이 영화를 바라보자면, 감독은 처음부터 주인공인 소년에게 자신과 자신의 세대가 살아온 역사를 투영하고 싶었을 것이고, 아직 결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 세대의 어두운 현재를 다소나마 황당하고 허황된 영화의 결말을 통해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는 허술하고 매끄럽지 못하다. 하지만 우직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아마도 감독의 의지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 의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이 소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쉽게 거두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내 이웃들, 혹은 그냥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느낌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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